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42차, 53, 21 추사의 할머니 화순옹주불심
추사 할머니의 불심
조선에서는 유교 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하였던 정치와는 달리
내불당을 만들어 부처님을 찬양한 궁중
영조 왕도 정비의 아들이 아니라 평생 약점으로
성균관 유생들에 의하여 정치적 왕건을 세우지 못하고
신하들이 남인 북한 소론 노론이라는 파별을 만들었네
영조 임금은 이러한 정치를 타파하려고 했으나
제 아들 사도 세자를 뒤주에 갇히는 죽음에
정치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역사를 감행한 것
그날의 역사를 바르게 고찰하려는 것은
추사를 통해서 고찰하려고 함이네
추사 증조할머니의 불심을 통해
불교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참조하려고 하면
조선의 불교를 전승한 것은 바로 내불당
조선의 불교를 내불당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불교를 전승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
그것은 바로 내불당의 전승이라고 말한다.
화순옹주의 불심에 의하여 조선의 불교는
추사로 이어지는 역할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네
추사는 바로 할머니의 애정을 받고
불교의 깊은 사상을 접하였지만
불교라는 이름을 접한 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불심으로 인하여 접하게 되었지만
유배 이후에 초의를 만난 이후에 불심을 알았네
추사는 초의가 없었으면 불교사상을 알 수 없었네
추사는 초의를 만나 선불교를 알고
고대 신라 고려 조선의 불교사에 대한 고찰
선불교의 역사를 탐구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유생의 지위를 얻고 있었기에
불교에 대해 연구를 할 수 없었다.
조선의 불교가 는 것으로는 불교를
속으로는 불교를 표방하지 못했다.
추사도 불교를 접한 것은 어린 시절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사찰을 방문했다는 전설
그러한 전설만이 전해지고 있음이네
추사가 유배를 당한 것은 별것도 아닌 죄를
적용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역사는
대흥사를 지나면서 초의에게 써준 글씨
그러한 글씨를 보고 있을 때는 초기의 끌은
최고의 글씨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제주도에서 유배가 풀리어 대흥사에
아서 자신의 글씨를 보니 부끄럽다고
추사도 반성할 기회를 주고 있음이네
추사의 할머니는 불교의 신앙을
궁중에서 배우고 있었던 것인데
대불당이라는 궁중에 마련하여
비구니들을 양성했던 것인데
비구니는 작은어머니 언니들이
비구니가 되었던 것을 인정해야 한다.
조선에 불교를 비구니의 집단이라는 것
조선의 불교를 비구니로 인하여 불교를 지켰다.
추사는 대흥사에서 선불교를 강습했다는 점인데
화순옹주의 불심을 잊을 수 없는 추사였네
2026년 4월 14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