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성전의 본래 모습을 봅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루카 19,46)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해 성전의 본질을 일깨우십니다. 성전이 거래와 잇권의 장이 되면서 그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물건 파는 이들을 쫓아내시는 거친 행동을 하시면서까지 성전의 성전다움을 되찾으려 하십니다.
이 일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지금의 성전 모습은 그들의 기득권이나 재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대문이다."(루카 19,48)
하지만 예수님을 참 예언자 또는 메시아로 여기는 백성들이 그분 곁에 머무르고 있으니 적대세력들을 예수님을 붙잡을 기회를 좀처럼 얻기 어렵습니다.
말씀이신 분 곁에 모여든 백성들을 관상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지요! 그분 입에서 흘러 나오는 진리의 가르침이 백성들의 영혼을 적시고 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그분께 집중하고 있는 이들은 온 존재로 듣는 중입니다.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와 백성들 안으로 스며들며 공유됩니다. 과연 그들 모두는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전이 성전다워집니다. 하느님의 거처인 기도의 집은 영혼들을 말씀으로 엮어 주는 안식처입니다. 성전이 이 본질을 지킬 때 세상 모든 사물도 자기 자리와 제 질서를 찾습니다. 피조물다움, 사람다움이 회복되는 것이지요.
제1독서에서는 요한 묵시록 저자의 놀라운 체험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 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묵시 10,10)
그는 천사가 명한 대로 두루마리를 받아 삼킵니다. 주님을, 입으로 받아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입에는 달고 배는 쓰리게 합니다. 말씀은 힘 주어 전하는 이의 입을 즐겁게 하지만 육신은 고달프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너는 많은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임금들에 관하여 다시 예언해야 한다."(묵시 10,11)
말씀을 받아 먹은 그는 예언자의 소명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동안 충실해 해온 대로 듣고 본 말씀을 받아 적고, 이를 전하는 일입니다. 그는 말씀을 받아 먹은 이, 말씀을 전달하는 이입니다.
이미 그 자신이 성전입니다. 그를 살게 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주임이신데, 그분이 곧 말씀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기도를 주님께 뭔가 졸라대고 간청하는 것으로 국한시켜 생각하지만, 기도는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님 현존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분을 듣고, 그분을 사랑하는 존재적 상태가 곧 기도입니다. 이처럼 말씀 안에 머무르는 이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성전입니다.
매일 다가오시는 말씀을 들으려 이곳을 찾으시는 벗님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주님 곁에 머물러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관상하고 기도하는 동안, 우리의 성전다움이 차츰 회복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통해 공동체와 세상도 조금씩 더 자기다움을 회복해 가는 것이지요. 말씀이신 주님을 모시고 세파와 격랑을 헤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전이 되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