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의 객토작업
최상호
봄을 맞기 전에
내 갈라진 마음 밭에도
새 흙을 좀 부어야겠다.
어린 시절
농부인 아버지는 한 해의 농사를 끝낸 뒤
푸석해진 논밭에 자주
기름진 산자락 흙을 옮겨 덮으셨다.
잃어버린 땅심을 찾아야한다며
발길 안 닿은 새 흙을 퍼 넣으시던
그때의 아버지처럼
나도 내 척박해진 영혼에 퇴비를 해야겠다.
한때는 제법 윤택했던 손
처음에는 웬만큼 너그러웠던 귀와 눈이
회복을 위해
새해에는 검붉은 산자락 흙과 강변 고운 모래로
늙어버린 마음밭에
객토작업을 해야겠다.
시집『마음밭의 객토작업』2018. 시학
어머님이 주신 단잠
최상호
나는 내가 우리 집 비를 막아 주는
큰 나무가 못 되는 것이 늘 마음이 아팠다
그늘이 넉넉한 후박나무이거나
쨍쨍 햇살에도, 펑펑 내리는 눈에도
제 몫의 땅을 지키는
낙락장송이 못 되어서 언제나 미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내 옹이만 무성한 가지와
자잘한 이파리를 쓰다듬으시며
얘야,
큰 나무는 큰 뿌리 탓에 집 안엔 심을 수
없단다
우리 집 마당에는 네가 딱 알맞구나 하시며
내 작은 그늘에다
돗자리 하나를 깔고 누우셨다
난생 처음으로
온몸이 가뿐해지는 단잠이었다
시집『마음밭의 객토작업』2018. 시학
경북 경주 출생
중앙대 및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원 졸업
1996년 <교단문학>에 황금찬 시인 추천으로 등단.
시집 『김춘수의 '꽃'을 가르치며』『그대 가슴에도 감춰진 숲이 있다』『고슴도치 혹은 엔두구 이야기』『마음밭의 객토작업』
율곡중학교, 광양제철고등학교를 거쳐 현 환일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