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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 중심주의의 한계 (정통성에 대한 편협한 이해): 고대, 중세의 국가 정통성을 오로지 '왕실 혈통'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백제 멸망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백제 건국 당시, 실질적인 정치적 기반은 지역 호족과 유민들의 지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혈연에만 집착하는 것은 당시의 현실 정치를 간과한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고려도 고구려와 무관한데 고려에 대해서는 주장을 유보하면서도 "안타깝지만" 이라는 부분으로 은근슬쩍 그럼 고려는? 에 대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피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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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리적 오류: 일관성 부족과 자의적 해석
일관성 없는 기준 적용: 고려의 경우 고구려 왕족 출신이 아님에도 고구려 계승을 인정하는 보편적인 학계의 시각과 달리, 유독 후백제에 대해서만 혈연적 정통성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이는 이중 잣대로 보일 여지가 큽니다.
근거 없는 자의적 전제: '역성혁명이어야만 재건이다'(그러면 고려도 신라를 역성혁망한 건 아니었다), '특정 영토나 누구의 승인만으로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학술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개인적인 잣대입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보편적인 역사학의 기준이라기보다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조건에 가깝습니다.
3. 근본적 원인 추측: 현대적 관점의 투영과 경직된 사고
그렇다면 상대방은 왜 이러한 주장을 고수하는 것일까요? 몇 가지 근본적인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현대적 잣대의 과거 투영 (Presentism): 현대의 국가, 법률, 상속 개념(예: 법인 회사 비유, 근대 국제법적 국가 승인)을 전근대 사회, 특히 10세기 한반도의 상황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는 과거를 당시의 맥락이 아닌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전형적인 오류입니다.
'정치적 수사'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 국가의 건국이나 계승 과정에서 명분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수사'를 실체가 전혀 없는 허구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적 선언 이면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정치 세력의 규합과 유민들의 동의라는 역사적 실체를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수사가 없으면 애초에 독립이나 건국을 위한 이념이나 지지 결집이 불가능한 데 그 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된 기준: 국가의 계승이나 부활이라는 개념을 완벽하고 무결점의 상태(예: 혈통, 영토, 제도의 완전한 연속성)로만 해석하려는 경직된 사고방식이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역사의 역동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챗GPT의 대답:
1️⃣역사학적 오류
후백제 계승성 부정론에서 나타나는 역사학적 오류 (1) “혈연적 정통성 = 국가 계승의 필요조건”이라는 전제
이 주장은 전근대 국가에서 왕실 혈통이 곧 국가 동일성의 본질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박·석·김 교대
고구려·백제 초기의 복수 왕계 가능성
고려 건국 시 고씨 혈통 부재
조선 건국 시 왕씨 혈통 단절
등을 보면, 국가 정통성은 혈통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현대 역사학에서도 국가는
지배 엘리트
지배 이데올로기
지배 공간(영역)
정치 공동체의 자기 인식
등 복합 요소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부여씨가 아니므로 부활 불가”는
👉 19세기식 왕조주의적 정통론을 일반화한 오류입니다.
(2) 660년 부흥운동과 900년 후백제를 동일 조건으로 비교하는 오류
부여풍을 옹립한 660~663년 복국 운동은
백제 멸망 직후, 왕족이 생존해 있던 상황입니다.
그러나 900년은 멸망 240년 후입니다.
이 시점에서는:
왕실 혈통의 정치적 의미가 약화
유민 의식과 지역 정치세력이 정통성의 주체
로 변합니다.
두 시기를 동일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 시대 맥락을 무시한 비교 오류(아나크로니즘) 입니다.
(3) 중국식 선양·정통론을 한국사에 기계적으로 적용
위진 남북조적 정통론이나 송대 성리학적 정통론은
중국 정치사상 내부 논리입니다.
이를 그대로 한국사에 적용해
“역성혁명이므로 신규 창건이다”
라고 규정하는 것은
👉 문화권 내부 개념의 외삽 오류입니다.
The Creation of States in International Law의 국가 동일성 이론은
근대 국제법 체계 기준입니다.
이를 10세기 동아시아 왕조 정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 시대 불일치 오류입니다.
(4) 당대 인식 무시
당대 문헌에서:
후백제는 “백제”로 칭해짐
고려는 고구려 계승을 공공연히 천명
송·요·금 등 외교 문헌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음
그럼에도 현대인이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 당대 인식보다 후대 이론을 우선하는 역사해석 오류입니다.
2️⃣ 논리적 오류 (1) 허수아비 논증
상대는 “부활 = 동일 법질서 완전 복원”이라는 정의를 먼저 설정한 뒤
그 정의에 맞지 않으니 부활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정의 자체가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 정의 선점 오류 + 허수아비 논증
(2) 거짓 양자택일
“부활 아니면 후계 중 하나만 선택하라”
그러나 실제 역사 개념에서
재건(revival)
계승(successorship)
은 중첩 가능합니다.
👉 False Dilemma(거짓 양분 오류)
(3) 기준의 선택적 적용
고려에는 느슨한 기준,
후백제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 이중 잣대 오류
첫댓글 전 걍 견훤이 신라 영토 출신에 신라군이었던적까지 있어서 연결성이 고려해 비해 적지 않나 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요
살짝 문제 삼을 여지는 있으나 당대에도 역사학적으로도 그건 치명적인 정도의 흠결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901년도 고려 건국이 더 하자가 크죠. 궁예는 아예 경문왕의 왕자였습니다.
@마법의활 나무위키등에선 궁예 출생의 논란이 있던걸로 아는데 일단은 왕자가 맞다고 보나 보군요 학계는
@paul1117 비판 능력 없는 역덕들이 임용한 박사님의 썰을 너무 진지하게만 받아서, 나무위키 궁예 항목은 엉망진창입니다. ;;
@마법의활 그렇군요
그거야 일본제국 식민지 태생에 소학교 선생과 만주군까지 했던 원조박통도 행보가 비판 받을지언정 그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다 OR 그 사람이 대통령이니 대한민국 국체의 연속성이 없다. 이런 얘기 안나오는거랑 유사하지 않을까요.
@▦무장공비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경상부족주의자 혹은 전라도 혐오증 인종주의자는 조선왕조 후손이 아니면 대한민국은 조선 및 그 이전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거죠. 그럼 고구려는 뭐냐, 라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라고 우물쭈물..... 그나마 이 대목에서 "고구려도 우리 역사 아니에욥! 혹은 따지는 것 자체가 안 좋거나 중국하고 공동사에욥! 고구려는 고구려인들의 역사에욥!" 이라고 외쳐대는 PC충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경지에 있으니 이것도 위기상황이죠. 머리 나쁜 진보가 수구꼴통 인종주의자보다 저질이라는 게 입증되는 상황이니.... 후자는 이제 이걸 트집잡아 진보 집단 전체를 반민족주의자 친중으로 몰아가고요.
견훤이 국호를 백제로 한 시점에서 답이 나온게 아닌가요?
경상부족주의자들은 생각이 다릅니다.
모든걸 혈통 나아가 자신들의 세계관 아래로 보는 신라인들의 습관과 오늘날의 호남에 대한 혐오가 콜라보된 환상의 시나리오이죠.
애초에 신라군을 이끌고서 실적 세우고 진골출신보다도 못할게 없는데도 골품때문에 신라도통도 못 시켜주는 신라 체제가 맛탱이가 간 거죠. 고작해봐야 골품 해소하는게 6두품에 대해서 집중되어 있는게 현실이고 중위제따위로 200년을 울고먹는게 신라 집권층이 내민 개혁수준이니.. 골품제에 대한 패악은 아무도 지적안하죠. 그저 6두품이 대아찬으로 올라가지 못한다고만 배울 뿐
그나마 동북공정하고 논리가 똑같다고 지적하면 몸을 사리니, 그 부분은 아예 고구려사 갖고 싸우는 건 유치합니다 따위로 넋나간 소리나 하는 PC충들보다는 낫더군요. 사실 오늘날 경상부족주의자들은 기껏해야 1970년대부터 나타난 종자들이었고 신라인들 자체는 927년에 물리치료 당하고 935년에 정신마저 항복한 후에는 정신을 차리고 고려인으로 거듭났으니, 저는 그걸 갖고 통합에 실패한 신라와 경상부족주의자들을 엮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기괴한 그들의 근거 없는 자부심이 이미 역사의 패배자로 선고된 9세기 중반 신라인들의 오류와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말씀대로 골품제의 본질은 제도적 차원에서 고구려 유민, 백제 유민을 차별하는 제도였음이 핵심이고, 웃기는 건 골품제에 가장 먼저 학을 떼고 뛰쳐나간 게 견훤같은 신라 왕실 직할지 신라 비진골이었다는 건데.... 이상하게 교과서에서는 이런 걸 가르치지 않습니다. 뭐랄까 그걸 가르치기 시작하면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전라도 차별이 불거지니 (그나마 지금은 사회적 측면에서 진정되어가는지 20년은 된.....) 불편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