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빈센트 반 고흐를 말 할 때 늘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살아생전 팔린 그림이 단 한 점이었다는 것.
그리하여 평생을 빈곤에 시달린 불운의 화가였다고.
그 단 한 점의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라는 제목의 유화이다.
고흐는 그림 ‘아를의 붉은 포도밭’을 그려서 동생
테오에게 선물한다.
생활비와 물감비용을 후원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으리라.
동생 테오는
화단에 형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선물로 받은 그림을
전시회에 출품했고 그림이 팔렸다.
초상화를 그려준 인연으로 고흐와 가깝게 지내게 된
(벨기에의 화가이자 시인)외젠 보흐라는 이가 있었다.
189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인상파 전시회에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 출품되자 그의 누나 안나 보흐가
그 그림을 구매한 것이다.
외젠 보흐의 부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그림은 400프랑이었고 지금의 200만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금은 보험가액이 950억 원이다.)
안나 보흐는 그 그림을 16년 후에 베른하임 갤러리에
1만 프랑에 판매할 수 있었다. (25배가 오른 금액이다.)
그림은 같은 해에 제정러시아 미술품 수집가에게 다시 팔렸다.
러시아에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1918년 11월 볼세비키에 의해 압수된 그림은 정부의 소유가 되었으며
모스크바의 푸쉬킨 미술관에 남게 되는 지금에 이르렀다.
그림에 사용한 물감이 자외선에 변색되는 크롬산납 성분의 페인트가
들어있어 그림이 손상되었다 한다.
2021년 8월 복원작업을 할 때에
예술분야 글로벌 마케팅으로 우리나라 L*전자가 후원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의미 있는 동참이고 의식 있는 경영이라 생각했다.
형을 후원하고 격려하고
형이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이라도 그림이 팔리는
기쁨을 안을 수 있는 역할을 했던 테오.
1890년 7월 29일 고흐는 죽었고
6개월 뒤인 1891년 1월 21일
그가 가장 사랑했던 동생 테오는
형의 곁으로 가게 된다.
청포도가 싱그럽게 익어가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7월에
별이 되어버린 슬픈 영혼 반 고흐가 생각났다.
첫댓글
오늘의 시름을
쏵 ㅡ가시게 하는
아를의 붉은 포도 밭
저 그림을
마음의 크기로 산다면
제가 사고 싶을 만큼
그림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ㆍ
헤도네님의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귀한 그림 올려주심
제게 안식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ㆍ
저 그림 열 개도 더 살 수 있는 커다란 마음 안에
따뜻한 맑은 아름다운 수 많은 언어를
구수하고 찰지고 해학적인 수 많은 언어를
가득히 담고 사시면서
듣기도 좋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이야기를
술 술 술~ 풀어내시는
돈 키우는 시인 윤슬님
감사합니다.
첫 댓글은 늘 반가움 열배 입니다. ^^
저는 신던 구두를 그린 게 참
좋던데요.
느낌이 묘하더군요.
동생이 있어 의지와 위안이 되어
덜 외로웠을 것 같아요.
고독한 화가의 생이 마음 아프네요.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요.
맞아요 그 그림.
세월이 흐를수록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새로이 읽혀지고 뭉클해지는
낡고 헤진 신발이 걸어온 그 모든 시간이
함께 느껴지는...
또 하나의 그림도 기억으로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이 빛나는 밤
당신의 팔레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하며
여름날을 들여다봐요.
빈센트라는 이 노래는 고흐의
삶과 죽음을 덤덤하게 노래한 곡이지요.
고흐..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을지
그의 생애를 읽고 음악을 듣고 많이 슬퍼집니다.
그가 이제 빛나는 별이 되어 외롭지 않기를..
단 한점 팔린 그림 이야기...감사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끄덕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을까요.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는 제 귀에 들렸던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고흐의 영혼이 위로 받겠구나 생각하면서
코가 싸해지던 아주 옛날이 생각나는 노래입니다.
역시 음악으로 풀어주시는 댓글 감사합니다.
역시, 헤도네님의 빈세트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이네요.
평생, 인생의 힘든 역경을 딛고 살아 온 고흐,
포도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그린,
'아를의 붉은 포도밭'은
아를의 들녘에서 포도밭을 본 기억과
상상력으로 그렸다고 하네요.
기억으로 그린 그림들은
자연속에서 그린 그림들 보다
더 예술적인 느낌을 준답니다..
고흐의 생전에 팔렸다는
단 하나의 작품
<아를의 붉은 포도밭>에 대하여
다시 공부하고 갑니다.
헤도네님의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수필방 사랑에 감사합니다.
무더운 더위지만
즐겁게 지내소서.
세부적인 숫자나 몇 단어들은 기억나지 않아서
찾아보며 썼습니다.
수필방에 어울리는 글쓰기를 하고 싶은데
재주의 모자람으로 하지 못하여
또 그림이야기로 수필방 불을 켰습니다.
콩꽃님도 더위 잘 다스리시고 건강하세요.
고흐가 있기 까지는 동생 테오의 힘이 컸고 ‥사후에는 테오의 아내의 역할이 컷다고 하더군요. 고흐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테오의 아내도 참 훌륭했던 인물 같아요.
고흐가 가지고 있던 외젠 보흐의 초상화를 고흐 사후에
돈 받지 않고 본인에게 주었다고 하더군요.
푸른비님 글 중 안 읽은 글 찾아 읽다가 '화가의 출세작' 읽고 와보니
댓글이 달렸네요.
텔레파시 통했나봐요.. ㅎ
방학동안 어디로 여행 계획하셨는지도 궁금해요.
'민길호' 님이 쓰셨던 고흐 얘기가 어럼풋이
생각나서요. 반가움에^^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예술가들의 삶이라는게 평탄하지가 않아요.
상상을 초월하는 외로움과 고독이 예술가들의
숙명같기도 하구요.
그나마 고흐는 테오같은 동생이 있었으니
대복인거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반 고흐지만
나무랑님께서 이렇게 댓글로 말씀해 주시니
특별한 교감을 하는 듯 반갑습니다.
외국의 개인주의적인 정서로 보면
어떻게 그런 동생이 있는지 정말 감사한
일이죠.
전 하지 못하지만 봉사하시는 분들
많이 존경합니다.
나무랑님처럼 글을 잘 쓰고 싶은데
그렇지를 못해서 알고 있는 고흐이야기
썼습니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뵈어요. ^^
전 뭐 그림에 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사진과 그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진의 최초 발명은 1839년~
고흐는 1850년대 출생 ~
지금처럼 사진이 발전된 시기라면
과연 고흐가 다시 돌아왔다해도 그의
그림은 어떤 평가와 대접을 받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네요!
해도네님의 끊임없는 예술과 건축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조예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리는 사실주의 화가들은
당연히 설 자리를 잃었지요.
시시각각 빛이 변하는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빛의 색채를 화가의 느낌 감정을 실어서 그리는
인상주의 화풍은 카메라가 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려지지요.
인상주의 화풍이 카메라로 인해 설 자리를 잃은
화가들에게는 돌파구가 되었을 테고
카메라의 발명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창작 활동이
더 활발해지는데 일조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관심은 맞고요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님을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아~
저도 그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주변에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거든요 .
이번 한국 여행에서 제주도에 갔을때
고흐의 그림으로 관광소(?)를 만든
뮤지엄에 다녀 왔답니다 .
제 생각으로는 그다지 좋은 발상은 아니라
생각 되던데 ....
귀한 작품이 그렇게 쓰여진다게 저는
좀 ~ 그랬습니다 .
해도네님 좋은글에서 배움을 더 얻어 갑니다 .
단 한번 그에게 기쁨을 준 그 그림이야기를
그가 떠났다는 7월이기도 해서 써보았답니다.
아녜스님 저랑 똑같은 생각을 가지셨군요.
그림은 액자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 응용된것은 원본의 감흥을 느낄 수도 없고
귀한 작품이 함부로 쓰여진 것 같아 저도 별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하는 편이랍니다.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네스님.
해박한 지식~
나의 기억에 오래 남기를 바라며
조금 얻어갑니다~^^
오래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해박한 지식은 아니옵고
고흐를 많이 좋아하니 조금 아는 내용을
적어봤습니다.
캐나다 여행 다녀오셨다니
많이 부럽습니다.
무사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