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음 비용~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죽음을 지켜봤다. 지난주에는 교도소에서 나온 지 여섯달 만에 자살을 한 남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그는 대낮에 바로 옆방에 사람이 있는데도 얇은 벽 하나를 두고 천정에 줄을 묶고 목을 매달아 죽었다. 바로 옆방에 있던 집주인 여자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얼마 나 괴로웠겠어요? 그때 몸부림을 치면서 발이 벽에 조금만 닿았더라도 내가 바 로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런데 그 남자는 그러지를 않았어요. 죽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거예요. 참 독한 사람이예요.”
나는 그가 죽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십사년 동안이나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같이 고독한 징역 생활을 견뎌온 사람이었다. 집주인 여자도 죽음의 원인이 궁금했던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죽은 남자가 서울로 일자리를 얻으러 다녀오곤 했어요. 그 러다가 마지막엔 좋아했어요. 음식점에서 차로 손님들을 모시는 일을 하기로 했대요. 그러다가 죽기 전날밤 전화를 받고 절망하는 걸 봤어요. 식당 주인이 살인 전과가 있 어 쓰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 같아요. 다음 날 목을 매 자살한 거예요.” 교도소의 벽보다 사회적 편견의 벽이 더 두껍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의 죽음을 배웅하 면서 깨달은 건 저승으로 가는 그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주는 사람이 없는게 더 불행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쉽게 죽일 수 있었을까.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친구가 그 순간의 고통을 내게 얘기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허리띠를 벽 위에 박힌 굵은 대못에 걸고 의자에 올라 목을 맸지. 그리고 의자를 발로 차서 목이 걸리는 순간이었어. 혁대의 버클 부분이 약해서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나는 방바닥에 궁둥방아를 찧었지. 그 짧은 순간의 고통은 말도 못해. 그래서 그 방법으로는 다시는 자살을 하지 않기로 했어. 물에 빠져 죽는 것도 그 죽는 몇초 사이가 일평생 겪은 고통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크다고 하잖아?” 그래서 안락사 회사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얼마 전 아는 부잣집 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돈 삼천만원이면 스위스로 가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대요. 요즈음은 자유경쟁 으로 이천 오백만원으로 가격이 내려갔다 하더라구요. 유골을 집까지 택배 서비스로 보내준다고 하던데요?” 그 말을 들으니까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독특한 죽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잠자듯 꿈을 꾸듯 죽는 데는 십억원 그리고 환희를 느끼면서 죽게 해 주는 데에는 전 재산이 그 비용이다. 의료 보험이 안되는 미국에서 병원 한번만 갔다 와도 수천만원 수억원이 드는 것과 비교하면 황당한 것 만도 아니다. 평생을 남의 눈물을 뽑으면서 돈만 벌어온 남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마지막 순간 그 는 자신의 전 재산을 주겠다고 하면서 환희 속에서 죽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정부 당국에 의해 폐쇄됐다. 그 남자는 죽는 순간 평생 사랑했던 돈이 무 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도 자식도 모두 그가 가졌던 돈에만 신경 썼다. 이상하게도 그를 조용히 뒷바라지 했던 여비서만이 그의 임종을 담담히 지킨다. 그가 죽으려는 순간 비 로서 여비서는 그의 얼굴을 가슴에 꼭 껴안았다. 그의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그 모습을 보면 서 후회한다. 말없이 자기를 사랑해 주던 여비서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음을.소설가 아시 다 지로의 단편소설 ‘죽음비용’에서 본 내용이다.
앞으로 환희에 찬 죽음을 파는 그런 회사가 탄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턴널을 지나 는 순간은 무서울 것 같다. 저승길을 배웅해 주다 보면 진정한 눈물 한 방울을 얻는 경우가 많 지 않은 것 같다. 요즈음 아내는 ‘데쓰 클리닝’을 한다고 하면서 그동안 집안을 가득 채웠던 물 건들을 그게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하고 있다. 내가 젊어서 입던 옷들중 아꼈던 쟈켓이나 바지 그리고 티셔츠 두 트렁크 분량을 자살한 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모아만 들이던 물건은 나누 고 정작 만들어야 할 것은 죽은 후 묘지에 꽃 한 송이 가져다 놓을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