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 오죽광장(梧竹廣場)에 담긴 염원 ]
진주시 봉곡동 오죽광장(梧竹廣場), 꺾인 기맥을 세우는 진주의 간절한 염원입니다. 진주 시민이라면 과거 '국제 로타리'로 불리던 장소, '오죽광장(梧竹廣場)'으로 이름을 바꾼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광장 한편에 심어진 대나무를 보며 많은 이들이 '검은 대나무(烏竹)'를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이곳의 이름은 '벽오동나무 오(梧)'와 '대나무 죽(竹)'을 씁니다.
단순한 명칭 변경처럼 보이는 이 이름 뒤에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억눌려온 진주의 기상을 되살리려는 시민들의 애잔하고도 간절한 역사적 소망이 서려 있습니다.
1. 억압받은 풍수, '대봉(大鳳)'에서 '비봉(飛鳳)'으로
예부터 진주는 "영남 인재의 절반이 진주에서 난다(三南人才 半晉州)"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는 명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지령(地靈)은 중앙 권력의 견제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고려 예종 시절, 진주에서 왕이 될 인물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자 조정은 간신 척준경을 내려보내 진주의 기를 꺾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산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봉황이 머무는 산이라는 뜻의 '대봉산(大鳳山)'을 봉황이 날아가 버렸다는 뜻의 '비봉산(飛鳳山)'으로 격하시킨 것입니다. 이어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바위를 파괴하고, 봉황이 노니는 연못인 '봉지(鳳池)'를 물이 끓어 봉황이 머물 수 없는 '가마못'이라 부르게 하며 진주의 기운을 철저히 훼손했습니다.
2. 조선의 건국과 무학대사의 지맥 끊기
진주를 향한 견제는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진주의 강한 기운이 새로운 왕조에 위협이 될까 우려하여 무학대사에게 지리를 살피게 했습니다.
무학대사는 비봉산의 형세와 향교의 입지가 완벽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임을 간파하고 전율했습니다. 그는 지맥을 끊기 위해 비봉산과 봉원초등학교 사이의 능선을 잘라내고, 인재 양성의 요람인 향교를 강제로 이전시켰습니다.
심지어 남강 하류 '석용골'의 용 형상을 한 돌산을 파괴했는데, 당시 돌이 깨질 때마다 용의 피 같은 붉은 물이 의령까지 흘러갔다는 설화는 당시 진주의 지기가 얼마나 참혹하게 훼손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3. '오동나무'와 '대나무'가 광장에 심긴 이유
이러한 아픈 역사 속에서도 진주는 하륜, 논개, 삼장사 등 수많은 충절의 인물을 배출하며 그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끊어진 기운을 다시 잇고자 하는 염원을 '오죽광장'이라는 이름에 담았습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둥지를 틀고, 대나무 열매(죽실)만을 먹고 산다."
광장에 벽오동나무(梧)와 대나무(竹)를 심은 것은 명확한 논리적 근거를 가집니다. 날아가 버린 봉황(비봉)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봉황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을 조성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조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진주의 기맥을 회복하여 '인재의 고장'이라는 옛 명성을 되찾으려는 시민들의 집단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4.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미학
명품 오동나무처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그냥 내버려 두면 속이 비어 재목으로 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순을 자르고 다시 곁순을 틔우는 인고의 과정을 반복할수록 그 속은 단단하게 차오릅니다. 그렇게 단단해진 나무만이 비로소 명품 악기와 가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진주의 역사 또한 이와 닮아 있습니다. 수차례 지맥이 끊기고 이름이 격하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그 고통을 견뎌낸 진주의 정신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오죽광장의 나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주가 품은 인고의 세월과 장래의 희망을 상징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글을 맺으며 *
무심코 지나던 광장에 담긴 위대한 소망. 이제 오죽광장을 지날 때, 단순히 도심의 교차로로만 보지 마십시오.
그곳은 불순한 의도를 가졌던 무리들이 꺾으려 했던 진주의 자부심을 다시 세우는 '기운의 안식처'입니다.
로타리 중앙에 옹골차게 자리잡은 푸른 대나무와 오동나무 잎사귀 사이로, 다시 돌아올 봉황을 기다리는 진주 시민의 간절한 기도가 흐르고 있음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난 속에서 더 단단해진 오동나무처럼, 진주의 미래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 편집; 주)신동아방송 논설위원 白潭 이정구 배상
첫댓글 이글을 본인이 일반기사로 올린 *오죽광장 이야기*내용에 담았으면 더좋은글이 되지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카톡으로보내온 지인에게도 이말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