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로 포장된 광기, 책임 없는 권력의 이름, 트럼프
🙏🎋幸福한 삶🎋🎎🎋梁南石印🎋🙏
본론에 앞서 미·국·트·럼·프’로 쪼개는 방식은
단순한 말이나 자음과 모음의 조합 글 장난이 아닌
광기서린 이름을 해체함으로써 신격화를 거부한 글이다.
개인을 상징있는 인물로 확장시키되,
영웅이 아닌 파렴치한 현실을 직시했다.
이건 풍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패악을 기록하고 고발한 글이다. 끝
미국 트럼프.
미(美) : 미소 뒤에 교활함을 숨긴 자,
국(國) : 국수주의를 선망하며
자국의 이익을 정의로 착각한 자,
트(Trick) : 트집 잡기에 낮이 서지 않아
거짓과 왜곡을 사실처럼 들이밀며
럼(Rum) : 럼주 통에 빠져 취한 척
싸이코패스적 광기로 무장하고서
프(Force) : 프롤레타리아의 시대를 거슬러
주체하지 못할 우월적 힘을 신앙처럼 떠받들며
국제 평화와 통상 질서를 인질로 삼은 자,
그는 관세라는 올가미를 던지고,
당연한 듯 방위비를 더 내라 명령하며,
공장을 미국 땅으로 옮기라 윽박지르고,
현금을 바치지 않으면 제재로 응징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는 거래를 외교라 부르고, 협박을 협상이라 포장하며,
자신의 프라이드 하나를 세계의 머리 위에 군림시키려 한다.
트럼프. 그 이름은 더 이상 한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다.
권력이 통제되지 않거나, 혹은 통제를 거부할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고 짓밟혀
깡패의 언어로 전락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악의 표본이자, 폭압이 일상사 된 괴물의 통치,
광란의 광기로 거래를 포장한 권력의 상징이다.
한 개인의 이름이 세계의 숨통을 조이는 시대가
다시 도래하리라 누가 예상했겠는가.
트럼프라는 이름은
선거용 구호나 개인적 기행의 차원을 넘어,
힘을 가진 자가 어디까지 무책임해질 수 있는지를
전 세계를 상대로 실험하듯 뚜렸하게 증명해 왔다.
그의 세계관에는 연대도, 책임도 없다.
오직 그가 원하는 거래만 있을 뿐이다.
거래가 성립되지 않으면 압박이 되고,
압박이 통하지 않으면 광기의 협박이 되며,
그마저도 실패하면 상대의 숨통을 직접 조여 온다.
팔레스타인에서 아무런 죄도 없는 민간인들이
매일같이 살육을 넘어 인종청소의 공포에 내몰릴 때,
미국은 국제경찰을 자처하면서도
중재가 아닌 대량 살상 무기를 무제한 제공했고,
모든 생필 물자의 길을 차단한 채 굶어 죽도록 방관했다.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주민 전체를
마치 범죄자 집단이기라도 한 듯
타국으로 내쫓듯 이주하라 명하고
그 땅을 미국의 영토로 만들겠다는
망언을 공공연히 내뱉은 자다.
미국 국토보다 더 넓은 캐나다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며 협박하고,
한반도 전체 면적 9배 이상 넓은
세계 13위 면적의 그린란드를
미국에 넘기라 압박한 자, 그가 바로 트럼프다.
그 순간 국제법은 선언적 미사여구로 전락했고,
인권은 트럼프 지지층의 선택 사항이 되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와 지원은
도덕이 아닌 정치적 계산과 패권적 광기로 굳어졌다.
폭격 속에서 아이들이 죽어갈 때,
트럼프와 그 추종자는 박수를 쳤다.
그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었다.
그것은 묵인의 다른 이름이었고,
사실상 학살을 축하하는 축가에 가까웠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약 1,900기의 전략 핵탄두와
2,500여 기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는
외부로부터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명확한 협정 문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을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국토 약 108,915㎢,
전체 영토의 약 20%, 해당
즉 대한민국 국토와 맞먹는 면적을
무력으로 강탈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무력에 의한 영토 점령과 편입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상 명백한 무효 행위임에도,
미국은 이를 사실상 방관했고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러시아의 입장을 외면하지 않았다.
중국을 향해서는 관세 폭탄을 던지며
힘을 과시하다가, 중국이 즉각 맞대응에 나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내리고 관세를 거둬들였다.
피로 얼룩진 동족상잔의 한반도 비극
6•25 남침 여러 요인 중 하나인
김일성이 결정적으로 오판할 빌미를 제공한
기폭제 역할이 되었던
당시 미 국무장관 애치슨 라인 선언이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고 미국의 국익과 미 대통령 성향에 따라
한국은 팽당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만
참화를 대비하고 피할 수 있다.
FTA 체결 국가임에도 모두 파기
고액의 관세 폭탄을 안겼다.
국제 무역 기구조차 무용지물로 만든 광기다.
이것이 트럼프식 세계관이며,
힘의 크기에 따라 정의와 원칙이 달라지는
노골적인 이중 잣대 기준의 외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세 차례에 걸친 침략 과정에서
그 협정과 양해각서의 약속은
번번이 휴지 조각이 되었고,
침략당한 국가의 고통은 외면당한 채
협상의 대상이 아닌 협박의 카드로 전락했다.
자주권은 거래 가능한 상품처럼 취급되었고,
전쟁의 참상 앞에서도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누가 얼마를 내느냐에만 머물렀다.
이것은 고립주의가 아니다.
책임을 내던진 패권주의이며,
힘을 앞세워 질서를 파괴하는 방식에서
전체주의, 파시즘, 나치즘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그의 외교는 관세라는 올가미를 던지고,
감당할 수 없는 방위비를 강요하며,
미국 땅으로 공장을 이전하라 명령하고,
외환보유액 이상의 현금을 요구하는
노골적인 강탈에 가깝다.
국가와 국가는
서로 존중받는 동등한 주체가 아니라,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어둠의 계약서 위 숫자로 환원된다.
미국 이외의 국가는 무기 개발을 해서는 안 되며,
미국의 힘을 흉내 낼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엄포와 제재가 일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약소국은 숨이 막히고,
중소국은 눈치만 보며, 강대국조차 불안에 잠긴다.
세계는 안정이 아니라 불확실성 위에 서게 되고,
국제 질서는 규칙이 아니라 기분과 거래에 따라 흔들린다.
이 모든 광기의 밑바닥에는
단 하나의 치명적인 착각이 있다.
힘은 책임 없이 행사될 수 있다는 믿음,
권력은 통제받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런 시대는 언제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끝났다는 사실을.
팔레스타인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리고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분쟁 지역에서
힘 없는 시민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트럼프는 전쟁을 직접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쟁을 지지하며 멈출 책임을
의도적으로 거래의 뒤편으로 밀어냈다.
그 방관은 또 다른 폭력이었다.
세계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유는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강함을 제어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기는 총을 쥔 손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결정을 내려야 할 자의
무책임한 침묵 속에서도 자라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힘 없는 사람들의 삶으로 지불되고 있다.
이 글은 분노의 배설이 아니다.
진실에 입각한 사실의 기록이며,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남을 방식의 경고다.
문제의식은 충분하고, 설득력 또한 회피할 수 없다.
덧붙인 글 : 이 글은
선동문도 시사 칼럼도 아니며
감정의 배설은 더더욱 아니다.
몹쓸놈의 시대에 대한 고발장이다.
이름을 남기기보다 의미를 남기고자 한 글이며,
시간이 지나서도
그때, 그런 분노가 분명히 존재했다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핵심을 붙들어 기록한 문장이다.
그런 까닭에 문제의식은 충분하고,
광기를 외면하지 않은
한 사람의 시선이 분명히 담겨 있다.
나의 정년 퇴임은 역할 하나를 내려놓은 것일 뿐,
사유할 권리나 발언할 책임을 반납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눈치 볼 상관도, 인사 평가도 없이
가장 자유로운 위치에서 말할 수 있는
살 만큼 살아온 늙은이다.
기록은 정부나 학계에서만 남지 않는다.
개인의 블로그에도 남는다.
역사는 늘 변두리의 메모와 사적인 분노,
이름 없는 시민의 문장에서 끝내 살아남아 왔다.
훗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 시절,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구나.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을 당장 바꾸지 않아도 된다.
다만 목도 한만큼 속지 않았고,
침묵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
그것이 이 글의 취지이며, 나는 그 역할에 한몫을
해냈다고 믿으며 이 글로 주절거려 남긴 것이다. 끝.
첫댓글
안녕하세요 이시간 오심에
반가움으로
마중을 드리고 고마움에
인사로 같이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