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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뒤면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여성 정치의 역사가 훨씬 긴 미국에서도 못 이룬 일이다. 권력의 최상층부에서 ‘유리 천장’은 깨진 듯 보인다.
하지만 한국 여성의 실질적인 입법 활동 참여율은 세계 중간에도 못 미친다. 국제의원연맹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결과다. 연맹이 각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15.7%(국회의원 300명 중 여성 47명)에 그쳐 세계 190개국 중 105위에 불과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도 국회에 입성한 여성 정치인은 왜 10명 중 2명도 안 되는 걸까. ‘여자가 무슨 정치냐’는 편견 때문에 정치에 도전하는 여성 수 자체가 적다. 정치권에 어렵게 입성해도 정보와 네트워킹에서 소외된다. 여성 정치인을 동료 정치인이라기보다 ‘서포터스(보조자)’로 보는 남성 정치인도 있다. 주말과 낮·밤이 없는 여성 정치인에게 육아·가사는 언감생심이다.
지난달 31일 중앙SUNDAY 편집국에 모인 여성 국회의원들은 그런 어려움을 토로하며 소속 정당을 떠나 쉽게 친해졌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김희정 의원, 민주통합당 이언주·유은혜 의원이다. 이들은 남편·시댁 자랑을 하거나 자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회에서 멱살을 잡고 싸우다가 폭탄주로 화해하는 남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소통법이었다. 의견차도 있었지만 여성 리더십의 장점을 이야기할 땐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 정치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여성 대통령 탄생의 의미
이혜훈 최고위원=21세기를 지배하는 세 키워드가 ‘3F’, 여성성(feminity), 감성(feeling), 상상력(fiction)이다. 여성 대통령 탄생은 시대적 흐름이다. 주요 20개국(G20) 국가를 보면 박근혜 당선인을 포함해 여성 대통령과 총리가 여섯 명이나 된다. 한국은 한·중·일 3국 중 제일 먼저 그 흐름을 받아들였다.
김희정 의원=미국에서도 여성 대통령보다 흑인 대통령 탄생이 먼저였다. 많은 이들이 인종보다 남녀 벽을 넘기 힘들 거라 했다. 한국처럼 가부장적이고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곳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건 어떤 사회 변혁보다 확실한 사회적 메시지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인권 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흑인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선을 바꿨다. 박근혜 당선인도 그동안 많은 일을 한 여성 운동가들 이상의 일을 할 거라 기대한다.
유은혜 의원=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꽤 역할을 했다. 하지만 존경받는 여성 대통령이던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은 2012년 방한 당시 “선거에서 여성과 남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정책 내용이고 그가 걸어온 방향이다. 한국에도 유력 여성 후보가 있다는 건 유권자들에게 선택지가 넓어진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단순히 여성이기만 한 게 아니라 걸어온 길, 지향점, 정책 역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거다.
이언주 의원=리더를 뽑을 때 예전보다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선택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건 한국 사회가 상당히 선진화된 거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을 뚫고 리더로 올라온 모습을 많이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물론 박 당선인도 정치권에서 여성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걸 극복한 게 없진 않을 거다. 하지만 부인하기 힘든 건 전직 대통령의 딸이라는 프리미엄이다. 우리도 (여성 프리미엄) 그런 부분이 있었을 텐데, 앞으로는 여성도 배경과 상관 없이 경쟁해 커가는 환경이 정착됐으면 한다.
유은혜=여성 의원 수가 많아진 건 2004년부터 비례대표에 여성을 50% 공천하는 제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동등한 경쟁 구조에서 여성들이 살아남기엔 아직 우리 환경이 부족하다. 사회 각계에서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에 있는 여성은 아직 10%가 안 된다. 박근혜 당선인은 프리미엄이 없진 않았겠으나 당 최고 지도자로서 10여 년간 본인이 노력해 성과를 거둔 건 인정해야 한다.
김희정=설이면 어른들이 남자애들한테는 ‘장군감이네, 국회의원 해라’고 덕담하고 여자애들에겐 ‘미스코리아나 현모양처 돼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자애에게 ‘대통령 돼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이젠 여성 대통령이 나왔으니 손녀나 딸에게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박 당선인에게 프리미엄이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데 처음엔 분명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건 데뷔까지다.
그 프리미엄을 넘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건 자기 능력이다. 여러 여성 의원이 있지만 박 당선인, 추미애 의원을 빼곤 대부분 비례대표로 등단한 분들이다. 역시 (여성) 프리미엄인 거다. 이언주 의원이 (경기 광명을이 지역구이던) 전재희 전 의원을 꺾었다. 하지만 이 의원이 라이벌인 전 의원에게 도움 받은 면이 있다.
여성 의원을 지역구 의원으로 경험해 본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 앞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선거운동하는 것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전재희 전 의원을 이미 뽑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이언주 의원에게도 여성이란 거부감이 없었을 거다. 그런 면에서 여성 대통령을 뽑아본 사람들에게 우리도 분명히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거다.
이언주=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은혜=제 지역구(일산 동구)가 한명숙 전 총리(가 의원을 했던) 지역이다. 그 옆(일산 서구)에도 김영선 전 의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보통 ‘여자가 무슨 정치냐’ 하는데 일산의 유권자들에게 ‘여자냐 남자냐’는 첫 번째 기준이 아니다. 나보다 먼저 여성이 의원을 했었고 경쟁자도 여성이 많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게 선거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여성 의원을 경험해본 유권자들은 여성 대통령을 뽑는 징검다리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여성 대통령을 통해 (가능성이) 더 확장될 거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의 삶
유은혜=2004년부터 정당 활동을 했다. 남편이 같은 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모든 여성이 그렇지만 육아·가사 부담이 사회 활동을 어렵게 한다. 여성이 충분히 발전하기 위해선 다른 여성의 희생이 꼭 뒤따랐다. 대부분 친정엄마·언니나 동생이 그 역할을 한다. 난 그 역할을 시어머니가 해준 케이스다. 시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시어머니가 멘토이시다. 아이도 봐주고 집안 살림도 봐주셔서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느끼면서 일했다. 가족의 배려가 없었다면 참 힘들었을 거다.
이언주=정치권에 오기 전 기업 임원으로 있었다. 그때도 바빴지만 지금은 스케줄이 예측 불가능하고 사생활은 보호되지 않아 더 힘들어졌다. 남편이 든든한 지원군이다. 처음엔 정치한다고 하니 말리더라. 대중에게 노출되는 삶이니 상처 받을 일이 많을 거라는 거다. 하지만 결국 이해해줬다.
그런 면에서 나도 운이 좋은 편이다. 한국에서 워킹맘의 삶은 거의 전쟁이다. 선거운동할 때 아이 볼 사람이 없을 때가 있었다. 아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사람들과 악수하는데 (아들이) 뒤에서 잡아 끌고 울더라. 사람들이 ‘저 사람 정치에 전념할 수 있을까’ 생각할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육아에 관심 많은 엄마·아빠들과 공감대가 잘 형성된다.
이혜훈=시아버님(김태호 전 내무부 장관)이 오래 정치를 하셨기 때문에 남편이나 시댁은 정치인 가족으로 산다는 게 어떤 희생을 수반하는지 안다. 정계 입문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정책 컨설팅을 했었는데 국회에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게 답답했다. 직접 국회에서 정치를 하면 답답함은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니 가족들이 (내가) 정치를 하게끔 이야기하더라.
그런데 애들이 힘들어했다. 첫 선거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다음 날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식을 했다. 그런데 눈도 많이 왔고 아파트가 비슷비슷해 애가 집을 못 찾아왔다. 오전 11시면 끝나는 입학식인데 오후 7시에 경찰서에서 찾았다. 평생의 첫 입학인데 가족은 아무도 못 가고 아줌마가 데리고 오게 했는데 엇갈렸다. 누구나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게 힘들지만 정치는 주말도 없고 한밤도 없어 더 어려운 것 같다.
김희정=(지역구가 부산이어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애 둘을 데리고 오갈 때가 있다. 우리 애들은 아직 어린데도 비행기나 KTX를 굉장히 많이 타 안쓰럽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어렵다. 여성 정치인은 소수라서 아무래도 주목은 받는다.
하지만 2003년 처음 선거운동을 다녔을 땐 지금보다 어려서인지 사람들이 나에게 ‘어느 후보 딸이라고요?’ 묻더라. 조금 늙수그레하게 하고 다니면 ‘누구 사모님이냐’고 물어본다. 여성이 지역구 의원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라서 내가 후보라는 걸 설명하는 데도 굉장히 시간이 걸렸다.
이혜훈=구의원·시의원을 대동해 재래상가에 가면 사람들이 제일 포스(힘) 있어 보이는 남자가 국회의원이라 생각하고 인사한다. 여자가 국회의원이라고 생각 안 하는 거다. 물론 여성 프리미엄도 있다. 공천 때도 기획상품처럼 같은 이력서를 가진 남성들보다 발탁이 빨리 된다. 하지만 본선에선 프리미엄이 아니라 약점이다. 과거 선거운동을 나가면 ‘뭐 여자야? 재수 없어’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장수하는 여성 정치인 드문 이유
이혜훈=남성 정치인이 여성 정치인을 보는 시각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느낀다. 의정 활동을 잘하고 많이 사랑받은 여성 정치인이 공천에 탈락하기도 한다. 남성 정치인에겐 들이대지 않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공천에서 배제한다. 독자적인 정치인으로 대우하기보다 보조 수단, 서포터스 정도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 정치인이 서포터스의 위상을 벗어나 자기 경쟁자로 자리매김할 것 같으면 제거하는 문화가 있다. 바른 소리 하고 자기 길 걷는 여성 정치인을 세다, 독하다고 표현한다.
이언주=여성 정치인을 장식품 또는 보조적인 역할로만 인식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는 사람들도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성 할당은 불가피하다. 동등한 상태에서 경쟁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환경이다. (후보)경선을 할 때 동창회다 뭐다 여러 인맥이 작용한다. 여성들은 그런 인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유은혜=북유럽은 30%가 여성의원이다. 공천 시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걸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하는 게 필요하다. 잘하는 당에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여성을 공천하자고 할 때 가장 많이 지적된 문제가 인력풀, 훈련된 여성이 없다는 거다. 지방의원의 경우도 여성을 의무공천하라고 하니 친인척이나 정치적 훈련이 안 된 사람을 공천하는 일이 있었다. 각 당에 여성위원회도 있고, 우리(민주당)는 여성 리더십 센터가 있는데,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인력풀을 키워야 한다.
이혜훈=제도도 필요하지만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서포터스 역할만 할 사람으로 30%를 채우면 숫자는 달성할지 몰라도 진정한 여성 정치 발전엔 도움이 안 된다. 몇 %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채울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쿼터가 양날의 칼이 될 때가 있다. 최고위원 선거 때도 다섯 명 중 하나는 반드시 여성을 넣어준다는 게 있어 여성이 입후보하면 남자들이 ‘쟤는 이미 당선이니까 표 주지 마라’고 한다.
여성 쿼터가 여성 정치인의 표를 깎아먹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거다. 그럼에도 쿼터는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쿼터제를 해보니 문제가 있다’면서 쿼터제를 없애는 논리로 들고 나오는 건 잘못된 거다. 종이가 접힌 채 수백 년, 수천 년을 왔다면 이걸 한 번 펴는 걸로는 펴지지 않는다. 거꾸로 접고 뒤집어 줘야 원상복구가 된다. 거꾸로 한 번 뒤집어 주는 것, 이게 쿼터다. 국민 절반이 여성이면 국회와 지방 의회에도 여성이 절반이 될 때까지 중단하지 말고 해야 한다. 단,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김희정=무턱대고 여성에게 할당하라고 하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여성이어서 무임승차한다는 관점은 안 된다. ‘왜 여성이 많아져야 되는가’에 대한 공감이 중요하다. 여성이 절반이니 절반까지 가는 게 자연스럽고, 여성이 잘하는 분야가 분명 있다. 그동안은 여성 의원 수가 적으니 다 (국회) 여성위원회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인원 수가 많아지니 다른 상임위원회에도 여성이 들어간다. 변혁은 사실 거기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군인 가족과 여성 군인이 겪는 어려움은 여성 의원이 해결할 수 있다. 극장에 갔을 때 (남녀 화장실 사용 시간이 다른데)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크기가 똑같아 문제인 것도 여자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 그동안 남자들이 못하던 일, 삶 속에 녹아 있는 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여성 정치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유은혜=쿼터제 얘길 했는데 남성이 부족한 분야도 생긴다. 취업 시험은 여성이 훨씬 잘 본다. 그래서 여성이 70~80%가 되는 게 걱정이란 얘길 듣기도 했다. 핀란드에선 어떤 분야든 한 성(性)이 40%는 돼야 한다고 정해 놓더라. 우리도 정치와 사회에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비가 최소 4:6은 되게 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게 맞다. 남성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거다.
이혜훈=공무원 임용시험은 한 성이 70% 넘으면 나머지 성을 30%를 확보하게 돼 있다. 남자가 70%일 때는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여성이 70%가 넘으니 그 제도를 들고 나오는 부처가 생겼다. 외교부가 그렇다. 교사 등 성적으로 편중된 분야가 늘고 있는데 양성이 균형 있게 종사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
이젠 ‘엄마 리더십’ 발휘할 때
이혜훈=여성 리더십의 특징이 비밀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남성들이 비밀주의적이다. 여성들은 일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절차에 따라 한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술집에서 하는 것에 비하면 절차에 강하다.
유은혜=정치에서 문제 되는 게 밤의 문화였다.
김희정=중요한 결정은 골프장, 남자 사우나실에서 이뤄졌다.
이언주=기업에서도 중요한 정보는 한밤, 마지막 차수에 가서 얘기가 되더라.
이혜훈=정치권도 그렇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밀어붙이는 게 많았다.
유은혜=지금은 여성의원이 늘어나면서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에 대해 지적을 많이 한다.
이혜훈=평균적인 여성 리더십의 특징은 혈연·지연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부패하지 않는 거다.
유은혜=공감능력도 있다. 소통은 공감을 전제로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 배려, 경청이 있어야 소통이 되고 그런 공감은 여성이 더 잘한다.
김희정=여성은 누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능력이 분명히 남성보다 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도 아픈 사람을 먼저 알아본다. 자신이 아파봤기 때문이다.
이언주=여성이라면 누구든 가족이든 조직 안에서든 서러움과 어려움을 반드시 겪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이해할 수 있다. 난 원래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갖고 나니 세상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더라. 많은 엄마가 나와 같은 심정일 거다. 그런 엄마들이 정치권에 들어올 때 사회가 더 나아질 거라 확신한다. 이젠 엄마 리더십이 발휘될 때다.
다음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려면
김희정=정치권과 사회가 여성을 함께 키우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일과 가족도 양립이 가능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권한 뒤엔 숱한 여성의 희생이 있었다. 누구는 일을 포기했고 누구는 가정을 포기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다른 여성의 희생을 안고 있다. 제도적으로 다른 여성의 희생을 딛고 서야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가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언주=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땐 좋은 성적을 올리는데 사회에 나가면 취직할 때부터 많은 장애에 부닥친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여성이 정치에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 남성도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하면 좋겠다. 한국 정치는 너무 권위적이고 적대적이다.
호주 의회를 참관했는데 심각한 토론 중에 여성 의원이 얘기하다가 방청석을 향해 손을 흔들자 상대 당 의원들도 손을 흔들어 결국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는 모습을 봤다. 아이를 가진 엄마가 정치를 하고, 그런 엄마를 보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방청석에 앉아 있는 아빠도 있었다. 그런 일상이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도 그런 날이 왔으면 한다.
유은혜=박근혜 당선인이 잘해 주셔야 한다. 성공한 여성 대통령이 될 때 여성 대통령이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더 확인될 거다. 여성 정치인들이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다. 여성은 아직 사회적 약자, 소수자다. 다른 약자들의 편에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여성 대통령이 더 많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혜훈=여성 대통령 당선 자체가 여성에 대한 편견 개선의 완결형으로 받아들여지면 안 된다. 이제 첫걸음인데 다 됐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스럽다. 여성이 대통령만 할 게 아니라 대법원장도, 국회의장도 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지도자도 많아져야 한다.
각계각층에서 여성들이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어야 차별이 해결됐다는 징후가 되는 거다. 제도적인 걸림돌을 해결하는 건 이미 정치권에 들어와 있는 선배들의 몫이다. 안에서 편견의 벽을 부수는 일은 우리대로 매진할 테니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여성 후배들은 자기 콘텐트를 채우는 일에 매진했으면 한다. 자기 콘텐트가 없으면 열매를 딸 수 없다.
백일현 기자, 권은율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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