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가수이며 기타 연주자이기도 한 '밥 웰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태어났다. 밥 웰치의 부모는 연예계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인 '로버트 웰치(Robert Welch)'는 '파라마운트 영화사(Paramount Pictures)'의 영화 제작자로 1940년대와 1950년대 걸쳐서 여러편의 히트 영화를 제작한 바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인 '템플턴 웰치(Templeton Welch)'는 1941년에 개봉된 영화 '시민 케인(Citizen Kane)'의 각본을 직접 쓰고 감독과 연기를 한꺼번에 했던 '오슨 헬즈(Orson Welles)'가 뉴욕에서 운영하고 있던 '머큐리 극장(Mercury Theatre)'에서 가수 겸 배우로 출연하고 있던 연예인이었다. 어린 시절에 클라리넷(Clarinet)을 배우며 음악에 대한 이해도를 키워 나간 밥 웰치는 10대에 접어들면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며 록과 재즈, 리듬 앤 블루스 같은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동시에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이런 그의 꿈을 향한 도전은 1964년에 '세븐 소울스(Seven Souls)'라는 밴드에 가입함으로써 출발하게 된다. 하지만 밥 웰치는 파리 유학을 위해 1969년 까지 이어진 밴드 활동을 접어야 했고 1960년대 말에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Sorbonne) 대학으로 유학 길에 오르게 된다. 파리의 유학 생활 중에서도 밥 웰치는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 행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새로운 음악 활동을 위한 기회를 기다리던 1971년 여름, 밥 웰치에게 음악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그것은 록 밴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이 새로운 기타 주자를 공개 모집한다는 작은 광고였다. 당시 록 밴드 플리트우드 맥은 '피터 그린(Peter Green)'에 이어 '제레미 스펜서(Jeremy Spencer)' 마저 밴드를 떠나 버리자 새로운 기타 주자를 공개 모집을 통해 뽑는다는 광고를 내게 된다.
이 광고를 보고 공개 모집 경연에 참가한 밥 웰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종적으로 플리트우드 맥의 멤버로 확정되면서 새로운 음악 인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플리트우드 맥의 일원으로 합류한 밥 웰치는 1972년에 발표한 음반 'Bare Trees'를 시작으로 1973년 음반 'Mystery to Me'와 1974년에 발표한 음반 'Heroes Are Hard to Find'까지 3년간 활동하다 밴드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플리트우드 맥을 탈퇴한 밥 웰치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쓰로 툴(JethroTull)'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글렌 코닉(Glenn Cornick)'과 사이키델릭 록 밴드 '나즈(Nazz)' 출신의 드러머 '톰 무니(Thom Mooney)'와 함께 1975년에 파워 트리오 '파리스(Paris)'를 결성하였다. 파리스는 데뷔 음반인 'Paris'와 1976년 음반 'Big Towne, 2061'까지 두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1977년에 해산하였고 밥 웰치는 이때 부터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
1977년 9월에 밥 웰치는 자신의 솔로 데뷔 음반 'French Kiss'를 플리트우드 맥 시절의 동료인 드러머 믹 플리트우드(Mick Fleetwood)와 크리스틴 맥비(Christine McVie, 백보컬)의 도움을 받아 발표하였다. 또한 이 음반엔 밥 웰치의 후임으로 플리트우드 맥에 가입한 '린지 버킹햄(Lindsey Buckingham)'이 기타를 연주해 주고 있기도 한데 이 음반에서 싱글로 발표된 'Ebony Eyes'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위 까지 오르며 히트를 하게 된다.
'Ebony Eyes'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었던 곡으로 특히 가수 혜은이가 1979년에 발표한 '제3 한강교' 음반에 '검은 눈동자'라는 제목의 번안 곡으로 수록하여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