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이라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장편 소설을 머리 속에 떠 올릴 것이다.
그 만큼 인간에게는 먹물의 효과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죄란 무엇인가? 크리스찬들은 자신이 지은 죄와는 무관하게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원죄를 지었다고 믿는다. 즉 하느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는 인간의 행위를 죄라고 여기고 있다. 비기독교도들은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 또는 잘못이나 허무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을 말한다.
반면에 벌이란 잘못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주는 고통 또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하여 또는 습관을 파기하기 위하여 주는 불쾌한 자극을 말한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도 죄를 지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선 이러한 체계가 무너져 절대자에게 천벌을 내려줄 것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것은 법을 아는 법조인들이 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사익을 챙기고도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죄와 벌'로 되돌아 가보자. 대학생인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상테 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방황하면서 문득 다른 사람에게
백해무익한 사람의 돈을 빼앗아 훌륭한 사람을 위해 쓴다는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떠 올랐고,그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로 작정하여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대상으로 삼았다가 선량한 여동생까지 살해하고 돈을 빼앗았다. 그 노파의 돈만 빼앗아 자신의 학자금을 내려고 했던 것인데 일이 꼬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빈손에 돈이 들어오면 쓰이게 마련이므로 그 돈을 유효하게 쓰기는 커녕 여기저기 허투루 써 버리고는 결국은 양심의 가책을 받게된다는 내용이다.
또 오래전에 본 영화 빠삐용이 생각난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살인의 누명을 썼다고 무죄를 주장하지만 배심원들은 유죄를 주장한다. 그 이유는 '시간을 허비한 죄, 인생을 허비한 죄'라고 말이다. 그런 논리라면 유죄를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카메라는 다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 빠삐용의 젊은 시절로 돌려 놓는다.
[가슴에 나비(빠삐용)의 문신이 있는 앙리 샤리에르는 "빠삐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이다. 혹서와 가혹한 강제노동, 그리고 자기에게 씌워진 살인죄란 누명을 벗기 위해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악명높은 프랑스령 기아나 형무소에서 탈옥을 꾀하나 실패하여 공포의 조셉섬 형무소의 독방에 2년간 갇히고 만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아무도 살아 나오지 못한다는 지옥의 독방에서 그는 바닥에 기어다니는 지네나 바퀴를 잡아먹으며 겨우 연명한다.
온갖 고초 끝에 독방형을 마치고 다시 상 로랑 형무소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채권 위조범 ‘루이 드가’ 등과 다시 탈주하지만, 동료들은 모두 살해되거나 잡히고, 고초 끝에 빠삐용만은 독화살을 맞아 바다에 빠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콜롬비아의 해안이었다. 여기서 수도원 원장의 밀고로 다시 체포되어 이번에는 5년의 독방형을 받는다.
지옥 같은 형벌까지 견뎌낸 후 이번에는 상어와 험한 파도로 둘러싸여 탈출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이른바 카옌의 악마섬(惡魔島)으로 이송되어 비교적 편안한 형기(刑期)를 보낸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인생을 체념하여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이 고도에서 보내려는 드가를 외면한 채 빠삐용은 매일 절벽에서 야자 열매를 바다로 던져 해류의 흐름을 연구한다. 머리는 이미 백발이 되고 이도 몽땅 빠진 몰골에 발은 고문 끝에 뼈를 다쳐 절룩거리는 빠삐용은 드디어 결행의 날, 수십미터의 절벽에서 야자 열매를 담은 푸대와 함께 바다로 뛰어내린다. 빠삐용은 멀리 수평선으로 차차 멀어져 가고, 단 하나의 동료였던 드가는 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쓸쓸히 발길을 돌린다.-이상 위키백과]
며칠전부터 척추협착증때문에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한의원 원장의 평결이 나보고 몸을 너무 함부로 써서 온몸의 근육이 굳어 있어 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구 보니 그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자전거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여도 나름대로는 몸의 유연성도 남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었다. 새벽마다 테니스를 한시간정도 하고 오후에는 자전거를 한시간 정도 타고 하였으니 운동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나머지 시간을 책상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시간 책상앞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 근육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빠삐용이나 나나 시간을 허비한 죄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내팽개쳐버린 죄 유구무언이로소이다.
죄값을 치루기 위해선 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받이애 하는 벌은 첫째 양반다리 자세를 취하고서 허리를 굽혀 이마를 땅바닥에 닿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얼마 내려가지 않았으나 몇번 시도했던 조금 내려가긴 하는데 아직도 땅바닥과는 주먹 한개 들어갈만한 공간이 남아 있다. 3분이상 유지해야 뭉쳤던 근육이 늘어난다고 한다. 둘째로는 양손바닥의 손가락이 뒤로 몸쪽으로 향하도록 하고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기인데 1분도 견디기 힘들었다. 세번째가 무릎꿇고 앉아서 두손을 위로 뻗어 들고 있기이다. 어릴 때 학교에서 떠들거나 동무들과 싸워서 선생님한테 벌 받을 때처럼 말이다. 관절을 둘러싸고 있는 힘줄이 당겨서 엉덩이를 다리의 종아리에 붙일 수가 없었다. 네번째는 철봉에 매달려 있기다. 예전엔 턱걸이를 몇개씩 하곤 했는데 지금은 몇초도 버티기 힘들다. 자유룰 향한 빠삐용의 끈질긴 탈출집념처럼 나도 내몸의 자유 재탈환을 위해, 탈출의 위험이 겁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드가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 빠삐용이 되어 하루하루 피나는 투쟁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