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 / 천수호
매일 밤 꿈을 꾸지만
꿈속에선 개가 아니어서 꿈 밖으로 끌려나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영원히 꿈속에 살 거라 버팅기지도 않았기에
개의 사생활은 발자국을 찍어봐야 아는 것이었다
눈 덮인 길이거나 모래밭 길이 아니면
내가 개라는 근거도 없지만
내가 짖는 소리에 내가 놀라면서
발소리를 더 빠르게 내는 뜀박질의 나날들
눈과 입이 다르게 웃는 사진이
목끈 매인 개처럼 문 앞에 걸려 있다
사진관의 문지기 사진처럼 누가 들락거리는 것을 막지도 못할
심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꿈속에서 왈왈 짖던 말티즈 한 마리가
꿈 밖에서 사람 걸음을 걷는 놀라운 목격담 같은 것은
소용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슬퍼서 귀를 막고 천둥처럼 혀를 찼다
개는 소리를 믿고 소리를 향해 짖지만
꿈속의 나는 소리를 의심하면서 더 깊이 침묵하고 싶어졌다
개가 아닌 몸으로 꿈속을 더듬다가
개로 돌아가는 방법을 잊었다
- 시집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2020. 문학동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MjAyMDExMjhfMjIy%2FMDAxNjA2NTM2MTczNjc1.clQMn0lpFDec4QLAHekylStutQkWgXyKDPZepPPqRVog.GKncvo3Nkcxf3wRR0FcQdgnn2W8GLTeSeetEH4XV324g.JPEG.w_wonho%2Fchunsooho-150.jpg%3Ftype%3Dw3)
* 천수호 시인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및 명지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말티즈에 대하여](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blogthumb4.phinf.naver.net%2FMjAxOTAyMjNfODkg%2FMDAxNTUwOTMzMjU4MzEy.CXf5HXHkoxiFO6wDzlCPMPBmHhRqkjkD1yPiSZ6bz2cg.9JH3xiEu_vC2-a7kvETC2PF1uV7lSkzdQ5pqBKCFC-8g.JPEG.tkppon%2FGettyImages-824883238.jpg%3Ftype%3Dw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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