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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변호사
2018년 5월 3일 어느 소비자의 안방에 있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무색무취의 방사선 기체인 라돈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5월 10일경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중간조사결과 대진침대 주식회사가 2010년부터 침대 매트리스 속커버에 음이온 파우더(모나자이트)를 도포하여 침대를 제작·판매·유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안위는 대진침대 매트리스의 속커버 2개 제품에 대한 피폭검사를 시행했는데 연간 피폭방사선량이 0.5mSv 미만에 불과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 제15조의 안전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원안위는 5월 15일경 위 중간조사결과를 번복했다. 대진침대 매트리스 중 총 7종에 대하여 연간 피폭방사선량이 2.18mSv~9.35mSv에 이르러 안전기준 위반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5월 25일경에는 14종의 매트리스를 추가로 안전기준 위반이라 판단하고 위 21개 제품들에 대하여 수거명령 등 행정조치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 후 8개 제품이 추가되어 총 29개 제품이 행정조치 대상이 되었다.
중간조사 뒤집은 최종조사결과 ‘방사선 안전기준 위반’
대진침대 매트리스를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던 소비자들은 이후 정부의 발표에 따라 자신들의 매트리스를 모두 대진침대에 반환하였다. 원래는 원안위의 행정조치에 따라 대진침대 주식회사가 직접 소비자들의 매트리스를 전부 수거해가야 했지만, 회사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수거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자 정부는 우체국을 동원하여 매트리스 수거를 도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매트리스가 대진침대 천안공장 앞마당에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언론을 도배했다.
이처럼 대진침대 주식회사에 매트리스를 반납한 소비자들은 이후 대진침대 주식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안전기준을 위반한 매트리스를 판매했으니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 또는 채무불이행 책임을 져야하므로 매트리스 값 및 위자료를 배상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담당 변호사로서 소비자 480명의 소송을 대리하게 되었다.
2023년 10월 19일 판결 선고에서 법원은 소비자 480명을 패소시켰다. 그 이유는 이 사건 매트리스가 계약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정도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물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내가 설마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몇 번이고 판결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법원은 원안위의 5월 10일 중간결과 발표가 5월 15일 최종결과 발표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고 인정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사건 각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되었다는 언론보도 이후 최초로 입장을 표명한 2018. 5. 10.자 발표 당시에는 이 사건 각 매트리스에서 검출된 라돈 및 토론의 양과 이로 인한 연간 피폭선량이 생활방사선법에서 정한 안전기준을 초과하여 인체에 위해를 가할 정도가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가, 2018. 5. 15.자 발표 당시에는 연간 피폭선량을 산정하는 수식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평형인자 및 선량환산인자를 종전과 달리 상당히 높은 수치로 적용하여 산정한 수치를 기준으로, 이 사건 매트리스에서 검출된 라돈 및 토론의 양과 이로 인한 연간 피폭선량이 생활방사선법에서 정한 안전기준을 초과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런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8. 5. 10.자 발표 당시 적용한 산식은 UN산하 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 및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에서 발표한 수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던 반면, 2018. 5. 15.자 발표 당시 적용한 산식은 관련 근거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 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종전과 달리 산정된 연간 피폭선량만을 기준으로 이 사건 각 매트리스가 생활방사선법에서 정한 안전기준을 초과하여 건강상 위해를 가할 정도로 인체를 피폭시킨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종이 아닌 중간조사 기준을 근거로 한 원고 패소 판결
위 판단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원안위의 5. 10.자 첫 번째 발표는 ‘중간조사결과’였으므로 원안위 스스로 그 결과를 최종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법원은 원안위가 스스로 중간조사결과일 뿐이라고 밝힌 5. 10.자 결과가 아닌 최종적으로 발표한 5. 15.과 5. 25.자 결과를 참작하여 이 사건 매트리스의 안전기준 위반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
둘째, 원안위의 5. 10.자 중간조사결과는 매트리스 완제품이 아닌 속커버제품 2개에 관하여만 실시된 것인 반면, 5. 15.자 발표에서는 실제 매트리스를 모델별로 수집하여 측정한 결과였으므로 당연히 5. 15.자 발표가 훨씬 신뢰할 만한 것이다.
셋째, 5. 10.자 중간조사결과에 대한 보도자료에는 UN산하 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 및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에서 발표한 수치를 기준으로 한 것임이 명시되어 있고 5. 15.자 최종조사 결과에 대한 보도자료에는 위와 같은 문장이 생략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하여 원안위의 2차 측정이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계산되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당시 원안위에서 근무하던 전문가 증인은 법정에 출석하여 5. 10.자 측정이 최신의 과학지식을 반영하지 못하여 2차 측정 때에는 그것들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증언하였다.
결국 법원은 5. 10.자 ‘중간조사결과’ 발표 자료가 UN산하 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 및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운운하면서 더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겨우 속커버제품 2개를 측정한 ‘중간조사결과’가 더 신뢰할 만하고 판단한 것이다. 위 판결의 논리에 따르면 원안위는 이 사건 매트리스의 피폭선량을 잘못 측정하고, 그것을 근거로 아무 이유 없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것이 된다. 이는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멀쩡한 매트리스를 원안위의 잘못된 측정 결과와 행정명령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대진침대 측에 반납해버린 상황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위 판결 내용에 매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원이 전문성 있는 국가기관인 원안위의 판단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필자의 예측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판사도, 대진침대도 방사능 물질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원안위의 최종 측정 결과를 부정하려면 적어도 원안위 소속 전문가에 준하는 수준의 전문가가 나와서 원안위의 측정방식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증언으로라도 입증했어야 하는 게 상식적이다. 하다못해 다른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매트리스의 피폭선량을 재측정한 자료라도 제출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필자가 이 사건 판결 결과와 그 이유를 480명의 의뢰인들에게 알렸을 때 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이게 말이 되나요?’였다.
판결의 논리가 상식에 부합해야 승복할 수 있다
판결은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 10년 차 변호사로서 필자는 수많은 패소의 경험이 있지만, 대체로 판결문을 곱씹어보면 늘 어느 정도 승복할 여지가 있었다. 판사의 생각이 비록 나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나름대로 논리적 정합성을 잘 구비하고 있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혹시 내가 너무 자신의 생각에만 편향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했다. 판결 내용을 성실하게 해석해서 의뢰인에게 설명하고 판사의 입장에서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주면 의뢰인에 따라서는 비록 억울한 감정은 남아 있어도 시스템이 만들어낸 패소라는 결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았다.
패소한 사람도 승복할 수 있는 판결의 공통점은 판결의 논리가 상식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판사는 얼마든지 우리가 낸 증거를 믿지 않고 상대방이 낸 증거를 채택할 수 있다. 양쪽 증거가 서로 비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여러 가지 정황증거들을 통해 더 신뢰가 가는 쪽의 증거를 믿을 수 있고 그것이 내가 낸 증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전문성을 구비한 국가기관인 원안위의 측정 결과를 단지 대진침대 측의 주장과 보도자료의 문구만 가지고 부정해버린 것은 정말이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대진침대가 재판에서 한 일이라고는 원안위의 측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소송대리인의 개인적인 의견 개진 뿐이었다. 대진침대 소송대리인의 주장이 원안위의 공식 측정 결과나 두 사람의 전문가 증언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니 그 판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출처 : 승복 이끌어내는 판결의 조건-대진침대 사태의 경우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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