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 여기 위대한 懲毖錄(징비록)에 대하여 일부인 自序(자서)의 글을 올리옵니다
* 인생을 살면서 자기의 잘못을 진솔하게 말하여 놓은 류성룡선생님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존경하옵니다
자기의 잘못이 어찌 한 사람의 책임이 있겠습니까
더 위대한 것은 앞으로 닥쳐오는 앞날에 우환을 덜 당하라고 하신 그 말씀에 너무나
고맙게 생각합니다
* 그러나 우리의 귀중한 역사를 남겨주셨는 것을 후대에서 연구와 더 좋은 대책을 못 세운
후대인 우리가 더 부끄럽다고 생각합니다
* 여기 징비록에 대한 自序(자서)에 더욱 가슴을 울리는 것은
하늘이 도왔다는 것과 여러 조상과 여러 임금님의 은덕이 백성의 마음속을 움직였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한번 더 깊이 나라의 소중함을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여기 懲毖錄(징비록)에 대하여 自序(자서)를 올리오니
* 역사와 인생의 삶에 樞經(추경: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글)으로 삼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앞으로의 일들은 여러분인 夫婦(부부)가 할 일들이며 生民(생민)인 백성이 할 일이며
君民(군민)이 함께 協力(협력) 合心(합심)할 일들입니다
* 앞으로는 나의 나라는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나의 얼이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나의 혼이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 懲毖錄(징비록)의 위대함이여
국사의 위대함이여 역사의 위대함이여 아아 홍익인간을 길이길이 나아가게 해주시길
천지신명께 우리의 삼신께 비옵니다 단군할배님께 비옵니다
* 아무쪼록 여러분의 가정에 만복과 화목하시기를 비오며
* 유익한 하루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 또한 은혜에 보답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 마지막으로 제가 꼭 한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위대한 역사가 있는데 어찌하여 光復節(광복절)의 이름을
아직까지 바꾸지를 못하고 있는지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 조그마한 36년 때문에
5천년의 유구한 역사와 위대한 역사를 다 묻어 놓고 있습니다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올해(서기 2008년)를 예를 들어 말하면 檀紀(단기)는 4341년입니다
그러면 광복절의 이름을 살리면서
차라리 4341년의 숭고한 역사 광복의 날(광복절)로 이름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입니다
여러분께서도 더 좋은 이름을 지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 柳成龍(류성룡)선생님의 懲毖錄(징비록) 自序(자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懲毖錄(징비록)]
▣ 懲毖錄(징비록)은 조선 중기 14대왕 宣祖(선조) 때의 명재상 西厓(서애) 류성룡 선생이
저술한 壬辰倭亂(임진왜란)에 관한 기록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國亂硏究(국란연구)의 가장 중요한 文獻(문헌)이다
◐ 懲毖錄(징비록)이란 책의 이름은 그의 自序(자서)에서 밝혔듯이
징비록(懲毖錄: 국보 제132호):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득실을 자필로 남긴 수기이다
☞ 이 懲毖錄(징비록)이란 지난 잘못을 반성하여 앞날에 대비한다 란 뜻이며
- 임진왜란의 전체 국면을 살필 수 있는 최고의 사료(使料)이다
- 임진왜란 초전(初戰)의 궤멸적 패배에 대한 이유 분석
- 전란(戰亂)을 앞두고 조(朝) 왜(倭) 양국간의 외교관계에 대한 설명
- 왜군의 전투능력에 대해선 인정하였으나 그 전략적 능력에 대해선 낮게 평가함
- 병법(兵法)에 무지한 적의허점을 찔러 7년 전쟁을 최종 승리로 이끄는
전략적 사고를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 懲毖錄(징비록)은 詩經(시경) 제4편 頌(송)의 小毖(소비: 일을 삼가서 함)의 문구인
予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에서 따왔다
즉 내가 잘못을 뉘우쳐 미래에 우환을 대비한다 란 뜻이다
♠ 詩經(시경)이란
第一篇(제일편) 關雎(관저)는 國風[국풍: 民間之情(민간지정)]의 始(시)라 하고
第二篇(제이편) 鹿鳴(녹명)은 小雅[소아: 饗宴之事(향연지사)]의 始(시)라 하고
第三篇(제삼편) 文王(문왕)은 大雅[대아: 朝廷之事(조정지사)]의 始(시)라 하고
第四篇(제사편) 淸廟(청묘)는 頌[송: 宗廟之事(종묘지사)]의 始(시)라 한다
이렇게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 懲毖錄(징비록)은 2권의 자필원고본과 16권의 간행본(刊行本)과
4권까지만 전해지는 목활자본(木活字本) 등 3종이 있다
☞ 1695년(숙종 21년) 일본 京都(경도) 야마토야에서 중간 되었으며
1712년(숙종 38년) 조정에서 징비록의 일본수출을 엄금할 것을 명령한 일이 있다
▣ 국보 제132호 이며 이 책은 1592년(선조 25년)에서 1598년(선조 31년)까지
7년간의 기사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저자가 벼슬에서 물려난 한가로이 지낼 때 저술한 것이다
▲ 懲毖錄(징비록):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것
▲ 芹曝集(근포집): 본인이 올린 箚(차: 간단한 상소문) 및 啓辭(계사: 죄를 논하는 글)를 모은 것
▲ 辰巳錄(진사록): 임진년(1592년)에서 계사년(1593년)까지 종군하는 동안의 장계를 수록한 것
▲ 軍門謄錄(군문등록): 1595년부터 1598년까지 본인이 도체찰사로 재임 중의
文移類(문이류)를 모은 것
여기에는 自叙(자서: 스스로 기록한 것)와
自跋(자발: 스스로 겪었는 것)이 들어 있다
▲ 錄後雜錄(녹후잡록=錄後雜記):
임진왜란 7년 동안 본인이 듣고 본 사실들을
수필형식으로 기록한 것
본인 자신은 이 책자가 비록 볼만한 것은 없으나 역시 모두 당시의
事蹟(사적)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 고 했다
이 책의 내용으로 보아 왜란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自序(자서)
懲毖錄者何(징비록자하):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記亂後事也(기란후사야): 임진왜란이 발생한 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其在亂前者 往往亦記(기재란전자 왕왕역기): 임진왜란 전의 있었던 것도 가끔 기록한 것은
所以本其始也(소이본기시야): 임란의 근본과 시작을 알기 위함이다
嗚呼壬辰之禍慘矣(오호임진지화참의): 아아 임진왜란 전쟁의 싸움터는 참혹했다
浹旬之間 三都失守(협순지간 삼도실수): 수십일 동안에 삼도를 지키지 못했고
八方瓦解 乘輿播越(팔방와해 승여파월): 온산천의 팔방이 산산이 무너져서
임금께서 수도를 떠나 피란했는데
其得有今日 天也(기득유금일 천야): 그러고서도 우리나라가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
亦由祖宗 仁厚之澤(역유조종 인후지택): 또한 선대 여러 조상님과 임금님들의
어질고 두터운 은덕이
固結於民(고결어민): 백성들 속에 굳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며
而思漢之心未已(이사한지심미이): 중국 역사에 한을 사모하는 것과 같이
즉 백성들이 조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聖上事大之誠 感動皇極(성상사대지성 감동황극): 임금께서 정성을 다하여
명나라 임금을 감동하게 하였으므로
而存邢之師屢出(이존형지사루출): 나라를 구해주기 위하여
여러 번 군사를 출정해주었기 때문이다
不然則殆矣(불연즉태의): 이러한 일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詩曰(시왈): 시경에 말하기를
予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 시경(詩經) 제4편 송(頌)의 소비(小毖: 일을 삼가서 함)의 문구인
즉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고 대비한다는 말이다
此懲毖錄所以作也(차징비록소이작야):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저술하는 까닭이다
若余者以無似(약여자이무사):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愛國重任於流難(애국중임어류난): 어지러운 시기에 나라를 구하라는 중책을 맡아서
板蕩之際危不持(판탕지제위부지):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잡지 못하고
顚不扶罪死無赦(전불부죄사무사): 넘어지는 형세를 붙들어 일으키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서도 용서를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尙視息田畝間 苟廷性命(상시식전무간 구정성명): 그런데도 오히려 시골구석에서
목숨을 부쳐 구차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니
豈非寬典(기비관전): 이것이 어찌 임금님의 너그러우신 은전이 아니겠는가
憂悸稍定(우계초정): 근심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어
每念前日事(매념전일사):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니
未嘗不惶愧靡容(미상불황괴미용): 그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乃於閑中(내어한중): 이에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粗述其耳目所逮者(조술기이목소체자):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또 체험한 것들을
저의 짧은 소견으로 저술하였다
自壬辰至于戊戌(자임진지우무술): 임진년(선조 25년 1592년)부터
무술년(선조 31년 1598년)까지에 이르기까지의
總若干言(총약간언): 사연들을 대략 기술하니
因以狀啓(인이장계): 명을 받아 민정을 살핀 결과인 장계와
疏箚 文移(소차 문이): 간단한 상소와 전달한 문서와
及雜錄附其後(급잡록부기후): 왜란 역사의 사실에 귀중한 자료에 미치는 잡록들을
그 뒤에 부록하였다
雖無可觀者(수무가관자): 비록 보잘것없지만
亦皆當日事跡(역개당일사적): 모두 그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들의 자료임으로
故不能去(고불능거): 그러므로 버리지 않고 간직하여서
旣以寓畎畝惓惓忠之意(기이우견무권권충지의): 이것으로 내가 시골에 살면서
성심으로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나의 간절한 뜻을 나타내고
又以著愚臣報國無狀之罪云(우이저우신보국무상지죄운): 또 어리석은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나타내도록 한 것이다
(終)
桓紀 9205년 檀紀 4341년 戊子年 西紀 2008년
8월 15일 금요일 4341년의 숭고한 역사 광복의 날(광복절)
삼라만상을 좋아하는 황효상(心操彿山) 庸史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 첫 글인
천지인방으로 http://blog.naver.com/hhs0203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