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 오른 사진 한 장
5월이 끝나는 날, 아직 정오라고 일컫는 시각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전화기에서 카톡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이 좋은 아침소리를 주고받는 시간인지라 그러려니 하였는데 이번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속한 동네 모임 단톡방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모임의 간사를 통한 고지가 아니라 모임에 속한 분 본인이 직접 올린 것으로 된 사진 속에는 또 다른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붓글씨체로 쓰인 검은 글씨, “故 이00...”. 그리고 알림문자 “이렇게 돌아가셨어요”. 아마 가족 중 누군가가 고인의 전화기로 단톡방에 소식을 직접 올린 모양이었다.
그는 2년여 전 모임에서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나와 마주 앉아 소주잔을 잘 기울였었다. 그러더니 한 1년여 전에 잔을 받지 않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만 하였다. 그러더니 그 후 두 달을 건너 아주 짧은 머리에 안색이 안 좋은 모습으로 모임에 참가하였기로 난 직감적으로 혹 그가 암이 아닌가 생각하였었다. 모임에 못나오는 동안 수술을 받았다고 하였다.
근자에 그는 통원치료를 받는다고 했었다. 난 집사람에 대한 경험이 있기로 그가 치료에 얼마나 힘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날 때 마다 여러 가지 경험과 위로의 말을 하곤 했었다. 어느 날 그는 CT촬영에서 좀 안 좋은 게 발견되어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5월을 몇 시간 남기고 떠났다.
내가 이 소식에 한 참이나 멍하니 있었던 것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의 여섯 페이지 밖에 안되는 프롤로그를 세 번째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책에서도 본문에 들어가기 전 이런 프롤로그를 많이 대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하리만치 세 번을 계속 읽은 적은 없었다. 아마 한 두어 번은 더 읽은 후에나 본문을 가까이 할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진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 책은 프롤로그로 들어가기 전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로 시작된다. 아마 이어령씨는 본인에게 주어졌던 생명까지도 본인의 것이 아닌 선물로 받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 모양이다. 본인이 쓴 책이 아니라 이어령씨를 마지막까지 취재한 기자의 손을 빌어 세상에 내보낸 책이지만 난 어찌 되었건 이 책은 6월에는 꼭 읽어야겠다 마음먹었었는데 단톡방에 오른 사진을 보고는 다시 그 프롤로그 페이지를 열었다.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을 읽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책이 두꺼워서가 아니다. 프롤로그를 지나는 게 이렇게 어려운데 본문은 또 어찌할꼬. 책을 읽은 후에는 독후감 (다른 이들이 읽으면 책 소개서라 할지도 모르겠지만)을 남기고 있는데 이 책을 다 읽는다 한들, 또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한들 독후감이라는 걸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6월엔 다른 책을 더 읽는 것 보다는 이 책 한 권을 완독하고 되새기는 것으로 만족해아 할 것 같다.
문득 십 수 년 전 마나님을 먼저 보내고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병원에)가더니 안 왔어”라는 말을 남기고 그도 곧 폐암으로 마나님 곁으로 떠난 또 한 사람이 생각났다. 만날 때 마다 그의 손에는 늘 책 한 권과 천주교의 묵주가 쥐어져 있었다.
2022년 6월 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IrOnHskKjps 링크
Scarborough Fair (Acoustic Guitar Cover - Uros Baric)
첫댓글 잔잔히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는 고 이어령 장관의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을 떠오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