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91세로 입적했던 조계종 전계대화상(승려에게 계를 내리는 최고 책임자) 범룡 스님은 평생 이 말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일제 말 한암(1876∼1951)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러 떠나던 그에게 옛 은사가 당부했던 말이다. 범룡 스님은 말년에 스승 한암을 자주 회고했다.
"한암 스님은 서릿발처럼 엄하면서도 자비롭고 진실하셨다. 절대 자기 자랑이 없었고, 남을 흉보는 일도 없었다. 대개 스님들은 한두 가지를 잘하는데, 한암 스님은 고루 잘하셨다. 우선 계행이 철저하고, 선지에 밝고, 한문 실력이 있고, 글씨도 잘 쓰셨다."
한암 스님을 모셨던 대구 파계사의 도원 스님은 스승의 근검 정신을 강조했다." 누구인가 독감이 들면 한암 스님은 당신 방에 있던 꿀 한 공기를 내려보냈어요. 당신은 한 번도 안 잡수셨습니다. 꿀이란 것은 수백 마리의 벌이 만든 것인데 그 공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당신을 위해 약을 드시는 것을 본 적도 없습니다. 스님의 밥은 항상 7부만 담았습니다. 간혹 8부를 담은 적이 있어요. 그러면 스님께서 '야! 이놈아 늙은이가 먹고 화장실만 가라고 이렇게 많이 담느냐.'며 야단을 치셨어요."
한암 스님은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한국불교의 거목이다. 강원도 화천 출신으로 1925년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가 27년 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6.25 때 상원사를 전화에서 지켜낸 일화가 유명하다.
스님은 선(禪)과 교(敎)에 두루 능통했다. 선방에서도 경전을 읽혀 일부 수좌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경전이 뒷받침되지 않은 참선은 자칫 잘못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상원사에 승려수련소를 만들어 후학을 지도했다. 고암.청담.월하.서옹 스님 등 20세기 한국불교의 큰스님들도 한때 그 밑에서 공부했다.
스님은 특히 엄격한 계율을 강조했다. 일제 시대와 해방 직후 한국불교의 '최고직'(교정.종정)을 네 차례나 거치면서도 수행자로서의 자기점검을 철저히 했다. 불자들은 스님에게 삼배(三拜)를 하는 게 관례인데 스승은 이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중노릇은 박복해서 처자권속을 거느릴 수 없는 위인들이 하는 것인데, 절을 세 번 받으면 복 있는 사람이 되기에 중노릇을 할 수 없다."는 이유다.
한암 정신은 '승가오칙'으로 요약된다. 선.간경(看經).염불.의식.가람수호. 부천대 김광식 교수는 "한암 스님은 계(계율).정(선정).혜(지혜) 3학에 고루 능했다."며 "한암 스님은 승려 이전에 인간으로서도 훌륭한 모델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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