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어디선가 고양이의 악다구니 소리가 들린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걸까?
우리집 주변에는 요즘 어디든 그렇듯, 고양이들이 많이 보인다. 몇달전 이사간 뒷집 발리의 여자는 동물보호단체 간부인듯, 특히 고양에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서 동네 곳곳에다 먹이통을 놓아 두었다.
고양이도 옛날엔 쥐가 많아 집에서 기르기도 하였는데, 요즘은 개체가 너무 많아 푸대접을 받는 편이다.
고양이 녀석들은 건방지다. 사람을 피하려 하지도 않고, 앞라인의 카센터 뒷편에는 하루종일 잠만 자는 녀석이 있다. 먹이활동을 하지않아도 어디선가 먹이사슬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람보다 낫다는 마음이 들었다.
"죽으면 모두 소용없는 일인데, 죽지않으니 일을 해야지!" 어느 유튜브에서 보았던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자식들도 늙어가고, 손자녀들이 장성한 마당에 노부부가 설마 삼시세끼 끼니 못이어 갈까마는 평생을 일구어 온 농토를 묵혀놓기가 아까우니 하시는게 그럴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찾아오는 자식과 손자녀들의 마음의 휴식처가 되고, 돌아갈때 보자기에 먹을거리 싸 보내는 보람이 있으시단다.
엇그제 어느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생각난다. 6,70대 노인들이 무료함을 달래고, 손자녀들에게 용돈이나마 주려고, 이 무더위에 농촌에서 고추따기 작업에 나섰다. 30도를 훨씬 넘는 고추밭에서 허리 구부려가며, 하루 종일 고추를 골라 따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일을 하다보면 인생에서의 허무함도 잊어버리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고 하였다.
게다가 너무 피곤하다보니 저녁밥을 먹기가 바쁘게 골아 떨어져서 늙으막에 잠못이루는 불면증의 고통마져 덜 수 있다고도 하였다.
나도 2년 전엔가 인근지역의 양파수확을 하는 작업에 참가하고자 신청을 하였다가 포기하고 말았던 일이 있었다. 결심하고 신청을 하였는데, 막상 연락을 받고보니 혼자서 나서기가 서먹했었다.
요즘 우리나라도 아사(餓死)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간간이 등장한다. 자신들의 삶이 향상되니 하기 좋은말로 "요즘도 그런사람이 있느냐?"고 남의 말을 하지만, 정작 세상은 내일 아니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사회가 너무 배부름에 익숙해져 있다는 마음도 들게 한다. 방송에선 무료급식소를 찾아간 할아버지가 빵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고, 자신은 빠리바케트 빵이 아니면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는 이야기와 외제차를 타고 나타나 무료급식을 달라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삶이 너무나도 왜곡되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래전에는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등의 불쌍한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그래서 그들 돕기 후원회 활동도 하였었는데 세월이 갈수록 무감감해졌다.
그러한 후면엔 독재주의자들의 그릇된 정치체제가 있어 개선되지 않고, 후원을 주선하는 단체들의 부도덕함도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데 애 엄마가 구운 식빵 두개를 가져다 주었다. 누런 색깔의 보리개떡 같은 식빵, 요즘세상에 버터도 바르지 않은 그것을 누가 먹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집의 식생활 형태로서는 얼마든 가능하다. 1년 내내 집에서는 후라이팬에 기름진 육고기 한번 오르지 아니하고, 철따라 그 흔한 과일한번 사다 먹지 않는 편이다. 애 엄마도 무든하고, 나도 애써 찾지 않는 오랜 식습관이 있기에 그렇다.
나는 요즘들어 간혹 생기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선 전쟁 중 네델란드에서 유래되었다는 그 더치페이(Dut ch Pay)를 주장한다. 생의 현역시절엔 재정의 운신 폭이 컸으나 지금은 그러하지도 못할뿐더러,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랬다.
드디어 우리집 나무도 가지가 말랐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양이 너무적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삶의 터전이 있어야지, 일시적으로 닭모이처럼 뿌리는 적은 것으로는 생명을 유지하기가 힘이 든다. 무조건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다않고 맞서겠다는 각오가 더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