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8:9~14의 말씀은 주님의 자녀된 우리 크리스챤과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가장 중요한 말씀 입니다. 주님의 자녀된 우리 크리스챤 으로서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에 주님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으며,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미신적인 요소를 타파해야 하는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만,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미신에 대한 주님의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여 미신에 자신의 삶과 인생을 의탁하지 않는 것 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삶과 인생은 오직 주님에게 달려 있습니다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역술인,무당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일부의 어리석은 인간들은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기 보다는 역술인,무당에게 찾아가 자신의 삶과 인생을 맡기고 있습니다. 가령, 자신의 문제에서부터 시작에서 작명,결혼상담,사업 문제 등을 가지고 논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도 운세 사이트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2의 말씀에서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인간들에게 레위기 20:6(“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에서 처럼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렸습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 크리스챤 중 일부가 자신의 인생과 삶을 주님께 의탁하기 보다는 역술인,무당에게 의탁하는 크리스챤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가장 충격적인 것 입니다.
역술인,무당은 그런 것을 통해 합법적으로 정부로 부터 사업승인을 받아가며, 사업승인 시 수입이 1년단위로 환산해보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돈을 벌어들인다고 합니다. 그런 것에 매료된 일부의 한국의 젊은이들은 사주카페를 운영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대도시의 중심가에 젊은이들이 많이 지나는 거리에는 이들이 판을 치고 영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는 이 세상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너무 사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역술인, 무당은 인생의 행로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사망의 음침한 그늘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행로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 만이 인생의 행로를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동반자가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자신의 삶과 인생을 의탁할 수 있어서 자신의 마음 속에는 든든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레위기 19:26(“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말며”),레위기19:31(“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역술인,무당에게 찾아가 우리의 인생과 삶을 상담받지 말라고 권면하시면서, 우리의 삶과 인생은 신명기29:29의 말씀에서 살펴본 바같이 주님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크리스챤의 믿음생활에서 미신적인 요소의 타파가 이 말씀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단순히 불교처럼 복을 기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즉, 자신의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기독교 본래의 신앙인 타인의 영혼구원과 신본주의에 입각한 구제를 통한 고차원적인 신앙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자신의 기복적인 신앙은 기독교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 입니다. 불교가 미신종교로서 현재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불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점집, 작명집, 인생상담 등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후배 중에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상임” 이란 사람인데, 그의 본래 한자 이름은 ‘李相林’이라고 썼는데,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불교의 중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서 그의 부모에게 하는 말이 그의 이름 중에서 가운데 자인 ‘상’이 相(서로 상)과 끝자인 ‘임’이 한자로 쓰면 林(수풀 림)으로 쓰면 일찍 죽는다고 해서 그것을 臨(임재하다 임)으로 바꿔 쓰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래의 한자의 이름였던 ‘李相林’을 버리고 ‘李相臨’으로 바꿔쓰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가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일반 대중에게 폐를 끼친 사례입니다. 불교가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가 된 것의 유래는 삼국 시대 때 유래되었습니다. 불교가 미신적인 신앙과 결부됨으로써 질병과 재앙에서 개인을 구제했다는 역사서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에 숭유억불책의 요인이 되었던 것 입니다. 현재, 불교가 자신의 기복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볼 때 우리 기독교에서 미신적인 요소의 타파의 필요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 입니다.
신명기 18:9~14의 말씀에서 우리는 2가지 영적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삶과 인생을 역술인,무당에게 의탁하기보다는 우리의 피난처이신 주님께 의탁하여 주님께서 자신의 삶과 인생을 주관하시도록 기도를 드리는 것과 둘째는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미신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기독교 본래의 신앙의 자세로 믿음생활을 하는 것 입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을 통한 주님의 메시지는 우리 크리스챤이 얻었던 첫번째 영적교훈을 통해 자신의 피난처이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과 인생행로는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직 주님 만이 아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적용해 보는 나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가지로 부족한 저는 여러분께 권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