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안과 새장 밖
신록이 싱그러운 오월 첫 주 토요일이었다. 거리의 가로수도 그렇고 시야에 들어온 둘레 산의 원경도 그랬다. 어린이 자녀를 둔 집안에선 뜻 깊은 날이다. 누구네 집에서나 연녹색 잎사귀만큼 푸르른 아이들이길 소망한다. 나는 여느 휴일과 마찬가지로 산으로 향했다. 반송시장 노점에서 김밥을 두 줄 사서 배낭에 넣었다. 교통문화연수원 앞에서 211번 버스를 타서 동정동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북면 온천장 가는 농어촌버스를 갈아 탈 수 있다. 근처 가게에 들러 생수를 한 통 샀다. 십여 분 후에 오는 농어촌버스는 내봉촌까지 가는 11번이었다. 나는 올해 초 추위가 혹심할 때 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창녕함안보를 들리기도 했다. 그날은 길곡을 돌아 임해진에서 학포까지 갔다. 학포에서 다리를 건너 본포에서 다시 온천장까지 걸었다. 짧은 해에 긴 동선이었다.
북면 산자락을 자주 오르내리지만 갈 때마다 상황이 다르다. 혼자이기도하고 동행이기도 했다. 날씨가 화창하기도 했고 비가 부슬부슬하기도 했다. 산나물을 뜯어오기도 했고 산열매를 따오기도 했다. 산행 중 곡차를 한 잔 하기고 했고 샘물만 마시기도 했다. 이날은 나 혼자 화천리에 내려서 감계마을로 갔다. 같이 타고 간 버스에서 내린 낯이 선 중년의 사내 둘이 앞장서서 올랐다.
요즘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공사가 한창이다. 신도시 개발되면서 먼저 뚫린 넓은 길 따라 걸어올랐다. 그들은 감계지구 산행은 초행인지 마을골목도 모르고 등산로 입구도 몰랐다. 나는 워낙 쉬엄쉬엄 걷는지라 뒤를 따라가니 그들의 동선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굴삭기가 작업하는 산기슭 과수원 아래서 길이 막혀 되돌아 나오기도 했다. 아마 작대산을 향해 오르는 사람인 듯하였다.
지난주는 친구와 같이 갔던 길이다. 그날은 작대산 방향으로 올랐다만 조롱산으로 가 볼 요량이다. ‘조롱(鳥籠)’은 새장의 한자다. 멀리서 바라본 산의 모습이 새장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지 싶다. 감나무골에서 오르면 산세가 제법 가파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정에 서면 감계 일대와 달천계곡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작은 산등성이 하나 더 나아가면 작대산으로 이어진다.
지정 등산로는 없다만 봄날이면 내가 가끔 오르는 산이다. 신도시 터에서 감나무과수원으로 올랐다. 고개를 넘으면 함안 칠원 레이크힐스 골프장이다. 나는 산마루 소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며 땀을 식혔다. 그 즈음 고개에는 아침 일찍 산나물을 장만해 오는 노인 내외가 있었다.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촌로 내외는 건너편 산기슭 밭을 일구는 남촌아제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골프에 문외한이지만 레이크힐스는 창원컨트리 못지않은 골프장이다. 나는 조롱산 북사면으로 들었다. 숲은 오리나무가 주종이고 다른 잡목들도 섞여 자랐다. 산 속에 드니 취와 두릅 순은 어느새 쇠어 가고 있었다. 인접한 골프장에선 캐디를 동반한 골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산나물을 뜯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울타리 안 그들이 새장이나 닭장 안에 갇힌 족속처럼 보였다.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는 산기슭을 올랐다. 작대산과 이어진 조롱산 남쪽은 감계고 북쪽은 무동 택지개발 지구다. 산등성에 서니 무동에도 아파트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예전엔 감나무과수원이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취를 뜯었다. 부쩍 여름 같은 날씨에 취는 쇠어가고 있었다. 뿌리 부분은 남겨 놓고 보드라운 잎사귀만 골라 뜯었다.
산정에서 가져간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땀을 식혔다. 이후 하산 방향은 북사면 비탈로 내려섰다. 군데군데 웃자란 취가 보여 몇 줌 더 뜯어 보탰다. 두릅 군락지를 만났는데 애벌두릅은 지났고 두벌두릅도 쇠고 있었다. 그 가운데 억센 가시를 피해 보드라운 두릅 순은 따 보탰다. 산자락을 하나 더 넘어 석간수 흐르는 계곡에서 돌나물을 걷었다. 그 산 기슭에 보라색 오동꽃이 피어났다. 12.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