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기도
성경 말씀: 시편 61편; 마태복음 26:36-46
요약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하신 것을 분명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기도 직후 예수님은 붙잡혀 재판을 받아 십자가에 처형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로부터 이어집니다. 그것은 기도의 시각으로 십자가를 보게 합니다.
기도로 십자가
예수님은 늘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하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붙잡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복음서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막 14:36).”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차리신 후, 그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지만, 제자들은 칼을 가졌습니다. 즉 예수님은 기도하셨지만, 그들은 칼로 저항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므로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 서사의 정점이자 분기점이고,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이어지는 예수님의 구속과 죽음의 지침을 줍니다.
겟세마네로 이어지는 서사가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이들에게 저항을 보이면, 제자들의 뜻에 의해 획책된 칼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붙잡히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의 갈림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입니다.
따라서 겟세마네 기도는 이어지는 예수님 서사의 지침과 뜻을 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 예수님의 서사가 이어집니다. 예수님 기도의 이루어짐의 서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집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기도가 어떤 것일지 분명히 보입니다.
주기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을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기도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을 향해 기도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으로 십자가로 향합니다. 겟세마네 기도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으로 말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의 기도를 따르느냐 혹은 예수님의 저항을 따르느냐는 겟세마네 기도로 밝혀집니다. 겟세마네 기도로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부각됩니다. 겟세마네 기도로 십자가로 향한 예수님의 길이 하나님의 뜻으로 부각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의 구체적 사례입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뜻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즉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뜻의 접점이 되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체적으로 말해집니다. 기도로 언급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상에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의 추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이루심을 바람으로 표현되니,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기도는 결국 기도자의 집념의 강한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의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어떻든 기도자의 마음의 표현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또한 이 점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단지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의 이루어짐에 대한 바람으로 이끕니다.
기도자가 자신의 마음의 표현부터 하나님 뜻의 이루어짐에 대한 바람으로 가는 것은 자신의 의도일 수 없습니다.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함께로만 표현됩니다.
하나님 뜻으로 기도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함께로 말해집니다. 언약으로 말해집니다. 일반적으로 기도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이 경우 부각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도에서 하나님은 전능자로 반영됩니다.
구약에 보이는 하나님을 향한 청원은 하나님의 능력에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기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구약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은 없습니다. 구약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서사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길로 전개됩니다.
기도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바라면, 그것을 이룰 신을 찾습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로 빠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우상숭배의 언저리에 머물렀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우상숭배에 빠진 가나안 땅의 원주민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바라면, 가나안 땅의 원주민과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금도 보통 기도는 기도자의 바람과 신의 능력으로 의식됩니다. 신은 단지 기도자가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점에서 신은 기도자의 우상입니다. 우상숭배는 결국 그가 자신의 마음에 몰입됨입니다. 극단적 이기심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힘으로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하나님의 힘이 아닌 사람의 힘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향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힘을 향해 기도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겟세마네 기도는 보통 기도가 아닙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하나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향합니다. 기도자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겟세마네 기도에 추축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이루어짐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기도의 전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는 마음으로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도됩니다. 인도된 기도는 함께를 뜻합니다. 기도자는 스스로 인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는 언약의 기도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인도됩니다. 그것은, 자체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인도됩니다. 즉 마음의 기도가 아닌 인도되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됩니다. 겟세마네 기도는 이 점을 보입니다.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그들이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신다고 합니다(롬 8:26-27). 그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되어야 하고, 그런 기도는 성령님에 의해 인도된다고 합니다.
기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되는 기도에 인도됩니다. 그가 기도에 인도되니, 그는 기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의 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는 언약의 기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약의 기도
언약의 삶에서, 언약의 기도는 겟세마네 기도로 갑니다. 언약의 삶에서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에서 마음으로부터 기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된 뜻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삶은 개인의 삶이 아닙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 함께의 약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약속은 이루어지니, 언약의 삶은 개인이 원하는 삶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삶에 개인이 마음으로 바라는 기도는 나올 수 없습니다.
언약의 삶에서 언약의 백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합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뜻으로 이루어집니다. 언약의 삶에 사람의 바람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바람의 내용이 반영되면, 그것은 언약의 삶이 아닌 타락된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 언약의 삶은 불완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옛 언약의 삶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표현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함께는 온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함께는 온전한 함께가 아닙니다.
사람의 뜻이 하나님의 힘으로 반영되면, 그는 언약의 삶을 살지 않고 우상숭배로 삽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사람의 뜻이 반영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 하나님 함께의 언약의 삶은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은 겟세마네 기도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으로 온전히 드러납니다. 따라서 새 언약은 십자가로 말해집니다. 하나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십자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면, 사람의 뜻은 가리어집니다. 예수님의 뜻은 십자가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기도는 겟세마네 기도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어떤 상황에서든 기도의 길이냐 칼의 길이냐가 생각됩니다. 기도의 길은 겟세마네 기도로 이끌어집니다. 그러나 칼의 길은 사람의 추구로 이끕니다.
세상에 사는 개인들은 칼을 향한 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길을 찾습니다. 성공을 향해 치닫는 길이 그렇습니다. 실패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언약의 삶을 사는 언약의 백성은 기도의 삶을 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는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그들은 언약의 삶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언약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언약의 삶을 삽니다.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살면서 힘이 필요해 때,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하는 기도는 그의 개인의 느낌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도라고 불러지지만, 단지 자신의 마음에 머뭅니다. 그런 기도로, 그는 자신의 뜻에 의해 실현되는 자신의 삶을 살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언약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바라기에 기도하기보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게 하옵소서.
저희 기도의 말이 저희 말이기 보다
아버지 말씀이게 하옵소서.
그렇게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는 기도를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게 하옵소서.
기도의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게 하옵소서.
기도 가운데 예수님을 따라
아버지 뜻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