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기기 임윤찬 비하인드
“모두 꼭 한번 들어보시라” 임윤찬 고백한 충격적 음악
카드 발행 일시2024.07.12
에디터
김호정
임윤찬 비하인드
관심
JTBC '임윤찬의 고전적 하루'에서 방송되지 못했던 뒷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임윤찬이 처음 공개하는 이야기 ③
JTBC '임윤찬의 고전적 하루'에 출연했던 피아니스트 임윤찬. 김성룡 기자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모두가 들어야”라는 피아노 연주
🔹“들은 것이 축복”인 음악
🔹“연주할 때 떠올리는 목소리”
🔹“전혀 몰랐다 최근에 들은 곡”
👌부록: 녹음 노이즈에도 “더 좋아요”한 이유
이번 회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 영상이 없습니다. 대신 임윤찬이 “충격적이었다”며 “꼭 들어보시라”고 한 음악을 들어보겠습니다. 전례 없는 수퍼스타 임윤찬을 보고 클래식에 관심이 생긴 분, 많으시죠. 이제 음악 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볼 때입니다.
직접 들어야만 임윤찬이 느꼈던 충격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는 음악이 있습니다. 말로 설명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임윤찬의 말을 들어보실까요.
“그건 정말 말로 설명하지 못하거든요. 정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 연주에 대해서는 ‘박자’라고 얘기하기도 싫어요. 이건 한번 모두가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연주를 들었던 거죠.
“네, 그렇다 보니 일반적인, 텍스트만 해석하는 연주에서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됐어요.”
임윤찬은 “말로 설명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더니 “진짜 자연 그 자체”라는 짧은 말을 겨우 생각해냈습니다. 이걸 들으며 ‘박자’를 센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다는 연주, 과연 무엇일까요? 들어보겠습니다.
〈처음부터 들어보세요〉
페루치오 부소니가 연주한 쇼팽의 전주곡(Op.28)의 1·2번
네, 임윤찬이 말한 음악은 페루치오 부소니가 연주한 쇼팽의 전주곡(전곡 24곡)입니다. 쇼팽 전주곡은 셀 수도 없이 자주 연주되는 표준 레퍼토리입니다. 하지만 부소니 같은 연주는 없습니다. 악보에 적힌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감각으로 밀고 나가는 직선적 연주입니다. 야생적인 박동이 느껴지지 않나요?
퓰리처상 수상자인 고(故) 헤럴드 숀버그는 부소니의 이 연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이러한 해석으로 청중 앞에서 연주할 수 없다. 쇼팽을 이렇게 마음대로 연주한다면 그 어떤 피아니스트도 음악원에 입학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부소니는 자신을 작곡가보다 우위에 두었다. 피아노 연주 역사상 부소니는 독보적이다.” 『위대한 피아니스트 Ⅱ』
“이걸 들은 게 축복이었다”
“제가 어렸을 때 쇼팽의 왈츠 b단조를 쳤어요. 그때 선생님이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쇼팽을 들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 연주를 어려서 접했던 것이 제가 받았던 축복 중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점에서요?
“음악은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표현은 이렇게 해야 하고 이런 점을 레슨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런 녹음을 들어보면서 매일 배울 수 있었어요.”
임윤찬이 축복이라 여기게 된 그 음악을 우리도 들어보겠습니다.
〈처음부터 들어보세요〉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쇼팽 왈츠 Op.69 No.2
라흐마니노프는 흔히 ‘감상적’인 음악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뚝뚝한 편에 가깝죠. 실제로도 라흐마니노프는 수도승 같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왈츠에서도 침착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참고로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쇼팽의 왈츠뿐 아니라 마주르카와 소나타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김경진 기자
“연주할 때 떠올리는 목소리”
임윤찬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습니다. “혹시 피아노가 아닌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도 영향을 받나요?” 워낙 피아노와 깊은 사랑에 빠진 음악가이기에 궁금했습니다. 임윤찬은 성악가들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일단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중에 유시 비올링이 있어요. 그분의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요, 그 다음에 러시아 가수 중에 샬리아핀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에요. 제가 연주하는 차이콥스키 ‘6월’ 같은 곡들도 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치거든요.”
-아주 옛날 성악가들이군요.
“자기만의 언어가 있는 음악가들을 좋아하니까요.”
-그들의 목소리에서 무엇을 느끼나요.
“비밀스러운 슬픔요. 제가 많이 배우죠.”
〈처음부터 들어보세요〉
유시 비올링이 부르는 ‘안녕! 정결하고 순수한 집이여’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 중에서)
〈처음부터 들어보세요〉
표도르 샬리아핀이 부르는 ‘신이시여’(보이토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중에서)
달콤하고 매끄러운 소리와는 거리가 먼 두 성악가입니다. 비욜링은 튼튼하고 빛나는 음성을, 샬리아핀은 비밀스럽고 위압적인 저음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해석의 전범을 따르지 않는 성악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현대 청중이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발견하는 개인화된 언어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한 음악”
이처럼 임윤찬은 아주 오래된 음악까지 샅샅이 찾아보는 탐험가에 가깝습니다. 탐색과 관찰이 꼬리를 물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해졌습니다. ‘거의 모든 음악을 찾아 들은 건 아닐까?’ 또 ‘최근에는 뭘 듣고 있을까?’
“최근에 아예 모르던 곡을 듣게 됐어요.”
-어떤 거죠?
“베토벤 현악 사중주를 누가 피아노로 편곡했더라고요. 그래서 보니까 ‘이슬라메이’를 작곡한 그 유명한 발라키레프인 거예요. 생전 처음 들어서 놀랐어요.”
-아직도 들을 음악이 남아 있는 거죠?
“너무 많죠. 아마 더 많을 거예요.”
이슬라메이(Islamey)
러시아 작곡가 발라키레프의 1869년 작품. 가장 어려운 피아노 곡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가 러시아 남부의 캅카스 지역을 여행하며 얻은 음악 테마가 반영돼 있어 동양적 색채가 강하다.
열정적 음악가인 동시에 열렬한 청중인 임윤찬을 놀라게 했다는 숨은 작품을 들어보겠습니다.
〈처음부터 들어보세요〉
밀리 발라키레프가 편곡한 베토벤 현악4중주 13번 5악장 ‘카바티나’
“9세부터 심취했던 음악들”
음악광 임윤찬의 또 다른 취미는 악보 모으기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고 하죠.
“어릴 때 레슨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했는데요, 레슨 곡은 항상 하루 전에 연습했어요. 그 대신 다른 곡들 악보 사가지고, 손도 아직 작아서 (악보에 적힌 대로) 안 닿는데 온종일 악보를 보곤 했죠. 그냥 재미로요.”
-악보를 많이 샀나요?
“악보 모으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집에 어려운 악보가 있으면 혼자 만족하고, 치지도 못하는데 보고만 있는 거로도 흐뭇하고 그랬거든요.”
-얼마나 어려운 악보까지 모아봤나요?
“글쎄요, 너무 많아서 딱 하나를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항상 리스트 b마이너 소나타는 제 마음속에 있는 레퍼토리죠. 지금까지도 그래서 함부로 연주를 못 하는 것 같고요.”
임윤찬 자신도 “글쎄 아홉 살 아이가 그랬어요”라며 소개하는 신기한 풍경입니다. 그렇게 혼자서 흥미를 이기지 못하고 들여다봤던 곡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임윤찬은 “협주곡 1번을 가장 좋아하고, 한때 너무 심취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 곡 모두 임윤찬이 아직은 공식적으로 연주한 적이 없는 작품들이죠? 한 곡은 폭발적이고, 다른 한 곡은 정교합니다. 임윤찬이 언젠가는 이 곡들을 연주할 거라 믿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임윤찬 비하인드’ 다음 편은 임윤찬의 해외 공연 뒷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소음 들어갔는데 “더 좋아요”
2024년 6월 17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연주한 임윤찬. 사진 부천아트센터
“죄송합니다. 다시 연주해야 할 것 같은데요.”
JTBC ‘임윤찬의 고전적 하루’ 녹화가 끝났을 때 한 스태프가 말했습니다. 임윤찬의 마지막 연주 중 방송 장비 때문에 소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연주 중에 소리가 났기 때문에 연주를 다시 한번 녹화해야 할 것 같다는 뜻이었죠.
모두 재녹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임윤찬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그게 더 좋아요.” 라이브 연주에 묻어 있는 날것의 소음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습니다. “청중이 조용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다가 내 연주를 들었으면 좋겠다”거나 “많은 피아니스트가 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에서 일부러 틀린 음을 내기도 한다”는 임윤찬다운 반응이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콩쿠르에 라이브로 연주했던 영상을 제출했다는 겁니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예비 단계인 영상 심사에 라이브 영상을 냈다는 거죠. 그래서 물었습니다.
-보통은 스튜디오처럼 안정된 환경에서 찍고, 연주가 잘 안 된 부분은 다시 치고 해서 제출하지 않나요? 왜 라이브 영상을 보냈나요?
“새로 찍고 싶지가 않았어요. 저는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며 녹화를 하면 오히려 더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음반 녹음은 또 다르지만요. 그래서 (공연에서 연주한) 라이브를 그냥 냈어요. 대회 출전이 너무 급하게 결정돼서 시간도 없었고요.”
잘 정돈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서 보여주는 대신, 날것 그대로 공유하기를 원하는 음악가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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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호정
관심
중앙일보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