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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이라고 하면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8,000 미터 급 여러 준령과 남 북극점을 탐험한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허 영호 대장이
우선 생각 난다. 도봉산 기슭에서 성장하였던 엄 홍길 대장처럼
허 대장님도 여럿 유명한 산들이 즐비한 이곳 제천이란 곳에서 출생하여 학창기를 지냈던 인연이 그 분의 인생 항로를 그리
결정 지었던 모양이다.
그 다음으론 농업용 관개수리 시설로 삼국시대에 축조한 의림지가 김제의 벽골지, 밀양의 수산지와 함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맑은 의림지엔 공어 라고 하는 아주 특이한 민물고기가 서식 하고 있다.
요즈음은 겨울철에 결빙이 된 춘천 소양호에서 얼음 낚시로 건져 올린다 하여 빙어 라고들 하는 그 물고기의 원조가 바로
의림지의 공어 인데 내장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워 진다고들 한다. 우리 어릴 적
어렵게 제천 의림지 관광을 다녀 오신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의림지에서 공어를 주문하면 뽀사시한 사발로 만든 큼직한
대접에 물을 가득 담고는 그 속에 여러 마리의 빙어를 동 동 띄워 주는데 물 속에서 파닥거리는 공어를 젓가락으로 집어선
초고추장 종재기에 푸욱 담것다가 깻잎이나 쑥갓 등으로 한쌈 싸서 먹는 게 별미 중의 별미 였다고 한다. 쪕 쪕
마지막으로 충북 제천이라는 동네는 충청도 땅이라고 하여 성정이 유순하고 느긋한 양반 동네를 연상하면 크나 큰 오산이다.
전라도의 벌교 처럼 함부로 주먹 자랑을 해서는 아니 되는 곳이 바로 이곳 제천땅이다. 그 사유는
제천은 북으론 원주를 경유하여 서울 청량리로, 동쪽으론 영월, 태백, 정선을 비롯하여 강원도 땅으로, 남쪽으론 단양과
경북 영주 소백산 죽령을 넘나 들고, 서쪽으론 울고 넘는 박달재를 넘어 충주와 청주로 이어 지는 교통의 요지인지라
일제 시대에 청량리에서 경상도 땅으로 빠져 나가는 중앙선 철로가 전라도 벌교처럼 개설되면서 사람과 물류가 모여 든 탓에
자연스레 건달들이 들끓게 되었다고들 한다.
도로 사정이 열악하였던 6~70 년대엔 대부분의 물류 운송을 철도가 담당하였는지라 철길이 있는 곳엔 돈과 이권이 넘쳐 나게
마련이다. 아주 단순한 예로
강원도 탄광지대로 유명한 사북과 고한이란 고장이 있는데 채탄한 석탄을 각 도시로 반출하는 시발점인 고한 역장을
일년 역임하고 집 한채 못 사면 병신이란 말이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고한역을 출발 하여야 하는 석탄업자들이 고한 역장 책상 서랍에 수시로 돈봉투를 질러 넣었다고들 한다.
우리 느림보 산악회에서 8월 마지막 화요 산행으로 제천 백운산을 점지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곤 황급히 예약방을
두드렸으나 북상하는 태풍 덕분에 산행 자체가 취소 되어 버렸다.
절멋던 시절 백운산 남쪽에 있는 천등산 박달령 자연휴양림 에서의 정녕 잊지 못할 그 밤을 애써 되새김 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때문에 산행에 동참 하고자 벼르고 별렀지만 사세가 여의치 몬하여 이번 주도 결국엔 방꾸석 신세가 되어 버린
이 가련한 심정을 산행기로 나마 달래 보려 마우스를 두드려 봅니다.
빌어 먹을 하늘은 쥔종일 빗님을 내려 보낸다. 정녕코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그 인연을 시샘하는 처사라면 너무도 잔혹한 처사다.
가까이 고찰 경은사가 있던 박달령 자연 휴양림 어느 단촐한 오두막에 여장을 풀고
아카시야가 흐드러 지게 만발한 초여름밤에 나란히 팔베게를 하고 누워 폭죽 처럼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헤아리며
박달 도령이 된 내가 마치 금봉 낭자 처럼 보이는 그이의 손을 포개 잡으며 어느 손이 낭자 손이요? 어느 손이 내 손이냐고?
귓볼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나즈막히 속삭이니 흐미 발그레한 얼굴로 오늘밤 이후론 두 손 모두 당신손 이라며
나를 쳐다 보던 그 눈동자!
이 목숨이 구천을 헤매일지라도 차마 잊혀 질 리가 있으오리... 참고로
지꿈의 제 예팬네를 보고는 때려 쥐긴다고 해도 금봉 낭자라고 불르지는 않습니더. 제 글 계속해서 애독 하실 의향 이면
지발 적선 입조심 쉿. 이제서야 오늘의 본론으로 장을 열고 들어 가면 짜장.
사람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것은 대략 네가지로 대별 된다.
첫째는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가 있어 오로지 그 분을 믿고 따르면 천국에서 영생을 한다는 것.
둘째는 사람은 이 생에서 지은 업장에 따라 사람 아귀 축생 지옥 극락 아수라 즉 육도윤회를 하게 되므로 오늘 현재의
내 운명은 지난 생에 지은 내 업장(카르마)에 의해 좌우 된다는 것.
셋째는 사람이 태여 나는 생 년 월 시에 따라 이미 그 사람의 운명이 결정 되어 버린다는 사주 명리학이란 것이 있는데
이 학문은 원래 중국의 사서 오경 중 하나인 주역에 근거를 두고 있다. 명리학은
주역이 세상에 알려 지고 약 1,500년 후에 그 이론이 완성 되었다고 하는데 정다운 스님이 쓰신 인생십이진법 이란 책을 보면
어떤 사람이 태여 난 시각에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 하는 별 즉 수성,화성, 목성같은 혹성들의 위치에 따라 그 기운을 각기 다르게
받기 때문이란 것인데 태양 같은 별을 항성, 지구 처럼 자전 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별을 혹성,혹성 주위에 빌 붙어 있는
별들을 위성이라고 하고 태양과 태양 주위의 전체 별들을 일갈하여 태양계라고 하는데 이러한
별들이 대략 1,400 억개가 모여서 거대한 집단을 이룬 것을 은하계 (The galaxy) 라고 하고 사람들이 천체에서 대충
인식할 수 있는 은하계만 해도 1,000억~3,000억 개나 된다고 한다. 평생 헤아려도 셀 수 없는 숫자인데
이 많은 은하계 중에서 우리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계가 대충 얼마나 떨어져 있나 하면...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속도인데 이 빛의 속도로 무려 일년을 가는 거리를 1 광년 이라고 한다. 가장 가까운
은하계를 갈려면 빛의 속도로 달려서 무려 16만 광년이란 세월을 달려야 한다고 한다. 여담으로
지구 종말론 내지는 대재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론에 의하면 태양을 중심으로 어느 순간 여러 혹성들이 십자가 형태(grand
cross) 를 이루게 되면 밀고 당기는 힘의 균형이 깨어져서 예기치 못한 현상이 일어 난다는 것인데 좌우간
별이 쏟아지는 해변에 누워서 하늘을 함 보시라.
세상사 찌지고 뽁고 물고 뜯고 삼키면서 살 필요가 과연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지구란
땅덩어리 자체가 전체 우주 입장에서 본다면 티끌 정도도 되질 몬한다. 글구
이 티끌 보다도 더 적다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서 고추 모종 한포기 꽂아 세울 텃밭 하나 내이름 석자로 된 것이 없는
이내 신세를 생각하문 눈물이 절로 앞을 가린다. 흐흐 흑.
맨마지막으론 사람의 생긴 상판대기 즉 모양새에 따라 그 사람의 부귀영화가 결정 된다는 것으로서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는 현실적인 문제인데 우리 민족은
조선시대 이래로 의식주 라고 해서 먹고 자는 것 보다도 우선 외양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한술 더 떠서
신언서판 이란 말도 있다. 말빤찌나 알량한 글재주 보단 허우대 멀쩡한 신수를 최우선으로 삼아 비록 거지일 망정 옷만
잘 입으면 얻어 먹는 일도 그리 어려븐 일이 아니 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요즈음
등산복을 파는 아웃도어 용품점은 연일 만원사례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람의 외양을 보고 그 사람의 운세를 살피는 방법 중엔 우선 관상이 있고 그 다음으론 수상,족상 그리고 뼈의 모양새를 살피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처음으로 선을 뵌 골상이란 것도 있는데 그냥 듣기 좋은 소리로 머니 머니 해도 심상이 최우선 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낯짜기 잘 생긴 걸 따를 것이 어디 있겠습니껴? 근데
오늘 따라 서설이 이리도 장황한 이유가 대체 머냐구요? 상기 기술한
네가지 이론 어디에도 부함되지 않는, 아니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나름대로의 인생 항로를 개척하며 살아 온 내 고향동네
두살 터울 누나인 복길이란 어떤 여성의 질곡의 삶을 소개해 드리고져 함 입니다.
외할머니와 달랑 두 식구만 살고 있는 복길이 누나네 집은 도로 보다 지대가 낮을 뿐 더러 담장 이라고 해 봐야 얇은 송판으로
대충 얽어 놓았기 때문에 학교를 갈려고 골목길을 돌아 나오면 우물가에서 엉덩이짝 높이 쳐 들고 머리 감고 있는 복길이
누나를 흘겨 보지 않을 방법이 없다.
목이 좀 파진 뻐얼건 내복 차림으로 허부적 거리며 머리를 감노라면 복길이 누나의 풍선 처럼 부풀어 오른 젖퉁이가 금방이라도
세숫대야에 쏟아 질 것 같다.
구두약을 쳐 발른 듯한 거무튀튀한 얼굴에 웬 놈의 불구틱틱한 여드름은 그리도 많이 돋아 났는지?
금상첨화 라고 해야 하나 약간 아래로 내려 가다 보면 툭 불거져 나온 뻐드렁니는 또 무신 사유로 그리도 심하게 앞으로 밀고
나오셨는지? 당체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동네 어른들이 한문으로 머라 머라 하는데 당시에는 그 말뜻을 물론 정확히 몰랐다.
흑안이면 다접하고 다시 말해 얼굴이 검으면 남자 관계가 문란한데 출치 즉 뻐드렁니면 더욱이 부실 하다는 것이다.
흑안 다접,출치 부실?
한문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신 옛어른들의 이 와전된 말씀이 오늘의 화두 이다.
약간 신끼가 있어서 방 한쪽 구석에 아주 어설푼 신당을 꾸며 놓은 누나네 외할머니는 말수가 거의 없이 눈매가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여서 범접하기 어려운 상대이고, 연세도 많으셔서 뚜렷하게 하시는 일도 없는데 생계는 어떻게 꾸미는지 이 또한
알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딱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동네를 벗어 나서 한참을 가는 거리에 있는 자갈밭이 조금 있어
그곳에 여름이면 들깨를 키운다는 것이다. 나도
몇 번 누나와 함께 들깨잎을 잔뜩 따서 집으로 돌아 와 평상을 펴 놓고 양푼이에 보리밥과 함께 쓱 쓱 비벼 먹던 즐거운 기억이
여태도 아심 삼삼 하다. 옆에서 보니
복길이 누나 입이 크긴 증말 크더만요.
천생 고아로 어렵게 자라면서 무어 그리 즐거운 일이 많은지 복길이 누나는 마당 한켠에 대충 송판으로 둘러 씌운 통시칸에
쭈구리고 앉아 볼 일을 볼 적에도 한쪽 손에 신문지 둘둘 말아서 움켜 쥐곤 신명나게 한 곡조를 뽑아 댄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도온 나고 사람이 났다더냐?
급하면 돌아 가란 말이 이잇듯이...
그리고 절간엘 가 보면 화장실을 해우소라 부르는데 이 해우소란 용어를 처음으로 쓰신 분은 양산 통도사에 주석 하셨던
경봉 큰스님 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소피만을 보는 화장실은
휴급소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참으로 묘한 의미를 내포한 선문답 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속세에서 먹고 살기 위해
아둥 바둥거리는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는 그 짧은 순간 이나마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시 쉬면서 우려를 해소?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친 난 그 이후론 객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복길이 누나를 본 적이 없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사이에 한분 뿐인 외할머니께서 돌아 가시고 방 한칸이 남아 우리 동네 파출소에 첫 발령을 받아 온 신참내기 순사에게
세를 주었는데...
산 위에 오를 때는 오빠 동생 하더니
산 위에 올라 서는 여보 당신 한다는 말 처럼 낮에는 사람들 눈이 있어 각 방을 쓰지만 늦은 밤이면 한 방에서 운우지정을
나누었던 모양인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약 일년 간을 그런 동거 생활을 하다 순사 나리께서 전근을 가게 되자 낙담을 한 누나는
대충 살림을 정리 하곤 무작정 상경을 하였다는 것이다. 몇년 뒤
서울 간 복길이 누나가 고향 동네를 딱 한번 들렀던 일이 있었다.
재수 좋은 과부는 오줌을 눌 적엔 꼬옥 가지밭에서 누고 잠시 퍼질러 앉아 쉴 적에도 결단코 요강 꼭지 위에 주져 앉는다고 하더니
들깨를 키우던 쓸모 없는 자갈밭이 고급택지로 둔갑을 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 수용되어 거액의 보상비를 수령하기 위해서
고향을 찾은 복길이 누나의 얼굴 땟깔과 옷 매무새엔 이미 부티가 줄 줄 흐르더란 것이다.
자식 없이 상처한 어떤 고위 공직자 출신 영감님의 후처댁으로 안방을 차지 한 누나는 가로 늦게 떡뚜꺼비 같은 아들을
둘 씩이나 뽑아 낸다. 자신의 출신 성분을 아는
고향 동네와는 일체 담을 쌓곤 강남에 있는 부유층 사교 모임에서 총무 역활을 하며 오직 하는 일이라곤 연예인 같은 유명 인사
들과 골프장에서 굿샷을 외치는 그 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넘쳐 나는 돈과 시간 덕분에 개팔자로 살아 가는 여성분들이 한 둘이 아니라구요? 물론
이 정도 팔자라면 앉을 때 마다 요강 꼭지 위에 앉는 상팔자 정도는 된다고 하지만 복길이 누나는 그 정도가 아니져
하루 쥔종일 거 머시냐 해장국이나 설렁탕집 주방에 있는 무쇠 가마솥 꼭지 위에 걸터 앉아 있는 게 복길이 누나 팔자져
이 영감탱이가 돈 마니 벌어 놓고 일찌거니 숨쉬기 운동을 마무리 해 주었기 때문이다.
초호화판 예식장엔 고향 뿌스래기 라곤 물론 나 밖에 없고 아들이 외국계 회사에 근무를 하는지라 하객 중 반수는 외국인이고
나머지 내국인들 중엔 얼굴을 금새 알아 볼 수 있는 유명 인사가 한 둘이 아니다.
자신의 출신 성분을 세탁 하면서 살아 가는 복길이 누나가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아서 청첩장을 보냈는지, 왜 하필이면 나를
그 자리에 초대를 했는지는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기고...
예식장 입구에서 날아 갈 듯한 한복을 입고 참으로 잘 생긴 아드님과 함께 하객들을 맞이 하는 복길이 누나를 먼 발치에서
바라 보노라니 푸세식 화장실에 웅크리고 앉아 청승 맞게 유행가를 불러 대던 그 옛날의 모습이 내 뇌파에 업데이트 되면서
만감이 교차 한다. 얼마 후
결혼식장에 찾아 와 주었다는 답례 인사를 하겠다며 내가 있는 사무실로 오겠다는 복길이 누나가 핸펀으로 너네
사무실 빌딩에도 주차 시설이 있냐는 것이다. 니미랄
카 리프트를 타고 지하 삼층으로 오면 된다고 했더니 너네 빌딩 카 리프트에 외제차도 들어 갈 수가 있냐는 것이다. 띠부랄
대가리 부터 발끝 꺼정 왼통 골프 펫션으로 도배를 한 복길이 누나는 내 근황이나 형편에 대해선 일언 반구도 없다.
아들 자랑, 며느리 자랑, 집 자랑, 차 자랑, 골프채 자랑... 뚜껑 열어 제킨 뻥튀기 기계에서 밥알 튀어 나오듯이 마구제비로
쏟아져 나온다. 지미랄
말을 하는 와중에도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질 않고 툭 불거져 나온 뱃대지를 흔들어 대면서 연신 스윙 자세를 견지 한다.
약 한시간 동안 사람 혼을 빼 놓더니 그제서야 간다고 하길래 대충 인사를 끝낼려고 했더니 카 리프트에 차를 집어 넣기가
어렵다나 머다나 하면서 나를 주차장으로 끌고 간다. 시버럴
들어 왔던 구멍인데 못 나갈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껴? 외제차가 몬지? 숫개가 자랑 할꺼라곤 저엇 밖에 없다더니...
돈이 많고 품격이 높은 귀부인들은 우선 말수가 영화배우 장 미희씨나 디자이너 앙드레 김씨 처럼 느리면서 어눌하다.
차창을 내리곤 아주 슬로우 템포로 한마디 한다.
얘 돌삐야! 이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리 맛있는 거 마니 마니 먹자 응? 난 한참을 떠나는 복길이 누나의 외제 차꽁무니를
쳐다 보며 길거리에서 멀건히 서 있었는데
그 너무 맛 있는 음식 다 얼어 뒤졌는지 그날 이후론 복길이 누나 뻐드렁니 조차 본 일이 없다.
아무리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서방만 잘 만나면 팔자가 늘어 진다고들 하지만 그 돈 많고 지체 높은 영감탱이가
해필이면 저룬 엎어 놓은 된장사발 같은 누나를 점지 했냐는 것이 참으로 미스테리한 일이다. 그래서
잃어 버린 성배를 찾는 심정으로 관상학에 입문을 하였지 멉니껴? 몇 줄 공부하지 않았는데 금새 답이 나오더만요.
백안 무미 : 흰 얼굴은 니 맛도 내 맛도 업따는 것이고
홍안 별미 : 발그스레한 얼굴은 간식거리로 먹기에 아주 일미란 것 외에 장안 구안 등 등이 나오다가 흐 흐
마침내 딱소리 나는 정답이
흑안 다즙에 출치면 부실이 아니라 불설 즉 말로 형언키 어려운 명품 중의 명품 이란 것이다.
물레 방앗깐 명품 공장장 복길이 누나 만만세!
벗님들 우리 다음 주 상주 백악산에서 그날도 어제처럼 즐건 마음으로 뵈어요.
분당 탄천변에서 안즉도 박달령 금봉 낭자가 몽매이게도 보고찌푼 돌삐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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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천 백운산 자락에 묻힌 돌삐님의
금봉낭자와 얽힌 사연은 이번 산행을 나오셨어도
풀어 질 수 는 없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람불고 비오는 백운산에서 금봉낭자와의 추억을 떠올리기엔
너무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시절 그 추억...
비내리던 백운산 등산길을 생각하며 떠올려 봅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