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기 계곡 & 취적봉] 산행지도
[취적봉&덕우 8경] 지도
덕산기 계곡 지도
덕산기 계곡 위치도
정선 덕산기 계곡
절경 계곡 속에 산골마을이 숨어 있어
맑고 차가운 물은 계곡 트레킹의 전제 조건이다. 수려한 경치와 아름다운 숲이 배경을 장식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차들이 다니지 못하는 오솔길이나 계곡길이 있어야 한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의 덕산기 계곡은 우리 땅에 몇 남지 않은 오지로 계곡 트레킹의 조건을 잘 갖춘 곳이다.
북동천의 한 구간인 덕산기 계곡은 주변을 둘러싼 깎아지른 절벽과 화려한 산세가 일품이다. 길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물이 불면 차량은 물론 사람도 다니기 어려운 곳이다. 전형적인 오지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계곡으로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볼거리다.
덕산기 계곡은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산속과는 다른 곳이다. 구불구불한 계곡 한쪽에 의외로 넓은 땅뙈기가 붙어 있어 사람들이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 계곡을 걷다 보면 간간히 민가가 나오고 사람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덕산기는 사람이 살고 있는 산속의 오지마을인 것이다.
정선군지(旌善郡誌)에도 덕산기는 경치가 수려하고 물이 맑은 오지 마을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특별한 역사나 전하는 유래가 전무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깊은 산골이었다. 지금은 덕산기 계곡 상류의 북동 마을까지 포장도로가 나 있고, 하류부도 어느 정도까지 포장이 끝난 상태다.
덕산기 계곡은 전형적인 석회암 지형으로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맑은 물이 가득 차서 흐른다. 하지만 가을 이후 갈수기로 들어서면 물은 지하로 빠져버린 건천으로 변한다. 덕산기 계곡 트레킹의 참맛을 느끼려면 여름철 비가 내린 직후에 찾는 것이 좋다.
덕산기 계곡 트레킹은 하류나 상류 어느 곳에서 시작해도 큰 차이는 없다. 양쪽 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반대편 끝까지 다녀오는 패턴의 트레킹이 알맞다. 굳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면 하류인 덕우리 방면에서 접근하는 편이 낫다. 경치가 좋은 구간이 하류에 밀집해 있고 북동리 보다는 접근도 쉽기 때문이다.
하류의 덕우리로 가려면 정선에서 동면 방향으로 진행하다 월통에서 여탄리로 찾아들어가야 한다. 초행길이면 찾기가 쉽지 않은데, 월통휴게소를 기점으로 삼아 찾으면 된다. 여탄리 입구의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따르다 다리를 건너면 덕우리로 진입하게 된다. 덕산기 계곡 하류의 1.5km 구간에는 이미 넓은 포장도로가 나 있다.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포장도로 끝에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기암절벽이 특징인 덕산기 계곡에는 이곳 주민들이 다니는 생활도로가 나 있다. 군데군데 시멘트로 포장을 하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비포장이다. 이 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오지에 사는 이들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다. 이곳은 건기에 물이 많지 않아 사륜구동차량은 계곡 끝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초반부는 시멘트도로가 깔려 있다. 계곡과 거의 같은 높이의 길로 물이 불면 자동으로 잠겨 계곡이 된다. 인공시설이지만 자연과 호흡하려는 설계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물굽이를 돌면 건너편에 민가가 보인다. 지도상에 도사곡이라고 표시된 곳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일품인 곳이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자갈밭이 나타난다. 이 길은 계곡을 직접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옆으로 떨어져서 이어지기도 한다. 계곡을 둘러싼 산줄기는 점차 덩치를 키우며 하늘을 가린다. 가파른 사면에 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숲이 푸른 장막처럼 신선하다. 가끔씩 검붉은 바위를 드러낸 벼랑은 세상의 끝이라도 본 듯 아찔한 느낌을 준다.
장마철 수량이 많아지면 덕산기 계곡은 더욱 장관이다. 바닥을 흐르는 깨끗한 물이 장딴지까지 차오르고 숲과 계곡은 생동감이 넘쳐난다. 여기저기 바위 벼랑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까지 더해지면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계곡 중간쯤에 다다르면 남쪽 사면으로 널찍한 농토와 여러 채의 민가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덕산기 마을이다. 지금도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생활의 터전이다. 이 마을을 지나 한 굽이 돌면 덕산기 계곡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깊고 짙은 계곡에 옆으로 한껏 높아진 벼랑이 까마득하게 둘러선다. ‘정선 산골짜기 하늘은 세 뼘밖에 안 된다’고 한 옛 사람의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상류쪽으로 1km 구간에 덕산기 계곡의 전형적인 절경이 펼쳐진다.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오지계곡의 진면목을 감상하도록 하자. 이곳을 지나면 분위기는 다시 평범하게 변한다.
북쪽에서 지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바닥을 시멘트 콘크리트로 포장한 묘한 분위기의 계곡을 통과한다. 갈수기에는 도로 역할을 하다가 물이 흐르면 계곡이 되는 재미있는 곳이다. 이곳을 통과하면 물이 크게 줄어들어 계곡은 실개천 수준으로 변신한다. 간간히 보이는 민가를 지나 물굽이 몇 개를 돌면 콘크리트포장도로가 시작되는 하북동에 도착한다.
트레킹은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간다. 트레킹 시간을 줄이고 싶은 사람은 덕산기 부근의 절경지대를 반환점으로 삼는 것도 무난하다. 그 이후 상류부는 덕산기쪽에 비하면 경관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덕산기 트레킹 코스는 약 6km로 성인 기준으로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중간에 식사를 하면서 쉬어간다면 4시간가량 잡아야 한다. 계곡을 왕복한다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정선 덕산기 계곡에서 사는 사람들
계곡 물길 25번 건넜다… 길은 없다, 길이 없어 더 좋다
길은 없다. 협곡이라 계곡이 길이다. 흰색과 회색 자갈이 골의 여백을 메우고, 미녀의 목선을 완성하는 보석의 빛깔을 가진 물살이 흐른다. 그저 흐르지 않고 유치원 아이들마냥 명랑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빛이 풍부하게 드는 골이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다. 걸어 들어갈수록 길이 없어 더 좋은 골임을 느낀다. 골짜기로 드는 것은 사람인데 열리기는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낯선 곳에 온 긴장이나 두려움, 도시의 스트레스와 닫힌 마음이 걸을수록 스르르 열린다.
4월 말이지만 아직 뼈만 남은 가지들이 냉랭하게 서 있다. 마을이지만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반적인 마을 풍경은 없다. 꼬불꼬불 휘어진 계곡을 따라 비탈 사면에 집이 띄엄띄엄 있다. 비탈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어르신에게 인사를 한다.
일흔일곱 연세의 최종숙 노인이다. 정선이 고향이고 서른살에 덕산기계곡에 들어와 47년을 여기서 살았다.
"돈 떨어지면 이런 데 와서 사는 거예요. 나는 돈을 너무 일찍 알아 실패했어. 17세에 내가 번 돈으로 정선시내에 집을 지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 돈에 얽매였어."
덕산기마을의 터줏대감인 그는 이곳에 한때 30가구가 넘게 살았다고 말했다. 1979년 수해 때부터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해 1990년대 초에는 세 가구까지 줄어들었다가 근래에 다시 늘기 시작해 11가구가 산다고 한다. 주로 콩·옥수수·고추 농사를 짓고 산다. 최 노인은 괜찮다는데도 꼭 집 안으로 들어오란다. 커피믹스 한 박스가 벽에 걸려 있다. 금방 내주는 커피가 따끈따끈하다. 할머니는 몸이 아파 자식 집에 있고 혼자 산다. 일하던 사람이 안 하면 병난다는 게 그의 신조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여름엔 피서객이 찾아온단다.
갈 길이 남아 있어 할아버지의 긴 얘기를 중간에 마무리 짓고 나선다. 우리가 사라지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다. 너무 짧은 인연인데 뭉클한 것이 속에 남아있다.
드문드문 집이 있다. 통나무집·판잣집·슬레이트집 다양하다. 간간이 집을 지키는 개들이 낯선 사람을 경계하느라 부지런히 짖는 통에 계곡이 시끄럽다.
계곡으로 들어와 4.6㎞ 지점에 오지와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신식 집이 있다. 일을 하는 이가 있다. 전찬범(52)·이혜영(51)씨 부부다.
전씨는 덕산기가 고향이다. 어린 시절을 여기서 보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선읍내에 나가 살다 몇 년 전에 다시 들어와 집을 새로 지었다.
그의 마을 얘기가 시작된다. 원래 큰 산이 많은 터라 해서 덕산터라 부르던 것이 바뀌어 덕산기(德山基)가 됐다. 계곡이지만 물이 귀한 계곡이라 대부분의 날은 물이 말라 있는 건천(乾川)이다. 그래서 집터도 대부분 물이 고여 있는 곳의 옆이다. 석회암 지대고 자갈이 많아 물이 잘 새지만 비가 오면 고립되기 때문에 이곳에선 일기예보에 민감하다고 한다.
▲서쪽으로 트여 있는 골에는 볕이 잘 들어 농사가 잘되는 편이라 모든 집들이 자급자족했다. 예전에는 옥수수·콩·감자 같은 잡곡류를 많이 심었고 요즘은 더덕·황기 같은 약초를 많이 한다. 1983년에야 전기가 들어왔다. 외딴집에서 제일 무서운 건 멧돼지도 귀신도 아니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 밤에 사람이 지나갈 때.
부부의 후한 점심을 얻어먹고 마지막 집으로 향한다. 물이 세차게 흐르는 협곡을 돌아 넘자 예상치 못한 너른 밭이다. 골이 크게 도는 툭 튀어나온 땅 안쪽에 시골집이 있다. 덕산기마을에서 가장 젊은 홍성국(43)·서선화(42) 부부다. 3년 전에 들어온 부부는 '정선애인'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이것저것 일을 하는데도 나는 왜 돈을 못 벌까 고민했어요. 결론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이었어요. 내가 적응하면 변하고 적응하면 또 변하고. 시대가 변하는 걸 내가 너무 늦게 알아차리고 있었어요. 그걸 따라잡을 수 없으니 차라리 옛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 희소성의 가치가 있겠다 결론을 내리고 이곳 오지를 미래산업으로 생각하고 키워가고 있어요."
아내인 서씨도 동의해 이들의 특이한 오지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예약을 받는데 예약을 위해선 조건이 있다.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민박이라 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를 고집하는 것도 단순히 방을 빌려주는 개념이 아니라 오지에서 조용히 쉬다 가는 곳이 되길 원해서다. 그래서 여러 명 와서 놀다가는 이들보다는 솔로 여행객을 더 반기고 관계 맺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사실 "손님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한 팀씩 오는데, 그 사람들이 반갑다. 그림 그리는 사람, 글 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의사, 학생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이들의 즐거움이다. "불편함이 영업전략"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특한 게스트하우스가 덕산기 계곡에 있다.
마지막 집에서 되돌아 나와 계곡을 떠난다. 계곡을 빠져나가는데 세어보니 물길을 25번이나 다시 건너야 했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사는 오지마을 덕산기가 다닥다닥 붙어사는 서울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입구에서 ‘정선애인’까지는 7.4㎞로 약 3 시간 정도 걸린다.
'피리 부는산' 취적봉엔 연산군 네 아들의 슬픈 전설이…
한국일보 이성원기자 (2009년1월2일 기사)
덕우팔경 뼝대 트레킹 중에 만나는 작은 나무 다리.
콧등치기 국수와 황기족발.
정선읍 덕우리 마을 건너편엔 피리를 부는 산이란 뜻의 취적봉(729.3m)이 있다. 이 산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연산군의 네 아들이 이곳에 유배됐다.
그들은 감자로 목숨을 연명하고 피리를 불며 고향 생각을 달래다가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결국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마을 건너편 석벽이 덕우8경 중 하나, 그들이 피리를 불었다던 취적대이고 그 뒷산이 바로 취적봉이다.
취적대를 뺀 나머지 7경은 다음과 같다. 낙모암은 덕우리 백평마을 삼합수 강변에 모자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고, 제월대는 백평마을 강변에 암봉 사이로 달이 건너 다니는 깎아지른 석봉이다. 구운병은 대촌마을 강변에 아홉 폭 병풍을 세워 놓은 듯한 기암이고 옥순봉은 대촌마을 강변에 상투를 틀어올린 듯한 석봉이다.
반선정은 대촌마을 강변에 있는 정자 터로 주변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운금장은 유천마을에 있는 산으로 구름이 이 산봉우리 위로 피어 오르는 모습이 아름답다. 유천마을 중앙에 있는 백오담은 연못이 있던 자리로 옛날 연못에 흰 까마귀가 서식했다고 한다.
덕우8경 외딴집 쪽에선 덕산기 계곡을 따라 또 다른 뼝대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뼝대는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빼어나다. 계곡을 따라 길이 포장돼 있어 차로도 7,8km는 오를 수 있다.
어천은 우후죽순 들어선 고랭지 채소밭 때문에 물이 많이 탁해졌지만, 덕산기 계곡은 오염원이 없어 정선에서도 알아주는 청정 계곡으로 남아 있다. 여름엔 계곡을 물이 가득 채우지만 가을 이후 갈수기로 들어서면 물은 지하로 빠져 건천으로 변한다. 그 계곡을 따라 겨울의 조용한 설산 트레킹이 가능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