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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에게 나타나신 하나님(2)-은총과 지혜-
사도행전 7:9~16
지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 다시 한번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 중에서 야곱의 아들 요셉의 삶에 대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 왕 바로에게 이끌어서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해주고 곧 닥쳐올 칠년 흉년을 대비할 방책을 말하게 해주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요셉을 보고 그의 언행에 깊이 감동되어 요셉을 일거에 국무총리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래서 요셉으로 하여금 당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발전된 문화를 가진 애굽을 다스리는 귀한 직무를 수행하는 중책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데에는 결정적인 두 가지 은혜를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셨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 역시 그 복된 은혜를 사모하며 받아 누리기를 사모합시다.
첫째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은총’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하나님께서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과 함께해주시면서 그의 모든 환난 중에서 건져주시어서 요셉의 나이 서른 살 때에 애굽 왕 바로 앞에 섰을 때에 그에게 “은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바로 앞에 서 있는 요셉에게 주신 ‘은총’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원어로 보면 ‘카리스’인데, 그 뜻은 ‘매력’을 말합니다. 사람이 끌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 사랑스럽고 기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고 자꾸 곁에 있고 싶고 돕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은총’입니다.
바로가 옥에서 몇 년간 지내다가 갓 나온 히브리 이국 청년 요셉을 만나서 자기의 꿈 얘기를 하고 해몽을 하고 그 꿈 때문에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말해주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청년이 매력이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냥 한번 꿈 해몽만 귀가 번쩍 트이고 멋들어지게 해준 것으로 큰 잔치와 상을 베풀고 말기에는 아쉽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그 청년을 곁에 두고 싶고 얘기를 더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곁에 두고 국사를 상의하면서 조언을 계속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냥 끌려서 돕고 싶은 것입니다. 조건없이 사람이 그냥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은총’의 의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동안 요셉은 자기 집안에서는 형들에게 뭐든지 다 밉살맞고 눈에 거슬르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와서 종살이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니까 그가 보디발의 집안에 종이 되었을 때에 주인인 보디발이 보기에 그 소년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예쁜 것입니다. 뭐든지 일을 다 맡기고 싶은 것입니다.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감옥의 교도소장의 눈에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니까 교도소장이 볼 때에 요셉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은총을 입은 요셉을 보니 교도소장이 볼 때 절대로 이 감옥에 있을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감옥 열쇠를 다 맡기고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요셉이 바로 왕 앞에 섰는데 하나님께 요셉과 함께하시니까 바로의 눈에도 사랑스럽고 매력있게 보입니다. 함께 있고 싶은 젊은이입니다. 믿어지는 구석, 끌리는 구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은총 곧 끌리는 아름다움, 은총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은총은 어떠한 것일까? 외면적인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얼굴이 잘 생겼거나 키가 늘씬하거나 말 주변이 좋거나 재간이 남달라서만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도 일부 매력 중에 하나가 되겠지만 그것들은 잠시 사람의 마음은 끌 수 있지만 지속적인 매력이 되지 못합니다. 지속적으로 사람을 끌게 하고 기쁘고 밝고 행복하게 하고 함께 있고 싶고 말하고 싶고 인생의 중대사를 나누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은 이런 매력, 이런 은총, 이런 아름다움은 내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옵니다.
그래서 사울의 큰 아들 황태자인 요나단은 베들레헴의 목동 출신인 다윗을 보자마자 다윗의 내면의 그 아름다움을 보았고 끌렸기에 여인에 대한 사랑보다 더 깊고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다윗에게 베풀었노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 요나단은 자기와 성정이 같은 아름다운 내면 인격을 가진 홍안 소년 다윗에게 철이 자석이 끌리듯 끌려서 그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했던 것입니다.
생각하건데 이 은총은 성령이 맺게 해주시는 인격의 열매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갈라디아서 5:22.23 말씀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령이 충만히 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은 순수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밝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그 얼굴에 희락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화평합니다. 원수가 없습니다. 한 편을 먹고 누군가를 왕따 시키지 않고 도리어 원수들을 하나가 되게 합니다. 억울한 일을 만나도 오래 참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뒤처진 자들을 보면 불쌍한 마음으로 함께 웁니다. 위로와 격려를 베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베풀어 힘이 되어줍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기의 맡은 책임을 끝까지 지려고 합니다. 구차한 변명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자기의 직임을 끝까지 해냅니다. 자기를 믿어준 사람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습니다. 거칠지 않습니다. 얼굴과 말이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힘이 있지만, 손에 칼이 쥐어져 있지만 그 칼을 칼집에서 쉽사리 빼지 않습니다. 때를 알고 기다릴 줄 압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이러한 성품의 아름다움을 요셉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에 누구나 그를 사랑스럽게 여기고 끌릴 수밖에 없고 가까이 등용하여 일을 맡기고 싶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은총을 입은 사람을 설명하는 다른 구절을 더 들자면, 에베소서 5:9 말씀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빛이신 우리 주님께 속한 사람은 무엇보다 착합니다. 선한 마음,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매력이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욕심꾸러기면 매력이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의롭고 정직해야 그 사람이 끌립니다. 의리를 지키고 강직한 사람이라야 신뢰가 갑니다.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라야 매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변덕스럽고 잔꾀를 좋아하고 속이 깨끗하지 아니하면 매력이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진실해야 합니다. 말을 하면 책임을 질 줄 알고 말과 행동이 일치가 되어야 매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빛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매력이 있습니다. 마음이 끌립니다. 말을 함께 더 나누고 싶습니다.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평생 친구로 사귀고 싶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 가든지 좋은 사람들이 곁에 찾아옵니다. 존귀한 사람도 이런 인격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고 친구로 삼고 싶어합니다. 잠언 22:11 말씀에 이르기를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러한 요셉의 내면 인격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서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게 하고 늘 그를 곁에서 두고서 사귀며 국사를 논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8:29 말씀에 보면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 그 내면이 너무 사랑스럽고 좋아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그를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늘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구합시다. 우리 마음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하기를 사모합시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름답고 끌리고 사랑스럽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사랑스럽고 끌리고 함께 있고 싶고 본받고 싶고 기쁘고 행복하고 싶고 더 좋은 사람, 더 착한 사람, 더 진실하고 의롭고 충성스럽고 신중하면서도 맑고 소망적이고 인내심 있으며 사랑을 기꺼이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그것을 우리 신앙과 삶의 가장 중요한 성취의 푯대로 삼읍시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성령께서 기뻐하시어 늘 함께하시므로 사람들에게도 사랑스럽고 귀중하게 여김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의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9절과 10절에서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를 주심으로써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가 무엇입니까? 이는 헬라어로 ‘소피아’입니다. 이는 어떤 일에 대한 지식과 달리 삶의 때와 기한에 대한 현명한 판단력을 가리킵니다. 단지 애굽의 왕 바로가 꿈을 해몽 잘했다고 요셉을 국무총리로 삼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는 요셉 안에 자기 신하들 점술가와 현인들이 갖고 있지 아니한 현명함이 있음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그 바로의 꿈을 듣고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이 앞으로 연거푸 닥칠 것만 얘기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다가올 앞으로의 일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만 그 칠년 흉년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백성들과 가축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가를 바로 왕에게 조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요셉이 단지 꿈 해몽의 은사를 가진 것이 아니요 미래에 대한 예지력만 가진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이 닥칠 때 그 상황을 대처하여 잘 극복할 수 있는 판단력과 실행력을 다 포함한 능력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것을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이요 장래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이렇게 멀리 볼 수 있고 먼 장래를 미리 헤아려 준비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인 지혜를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 곧 미래를 멀리 볼 줄 아는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성령으로부터 주어집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장래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장래의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그의 뜻대로 만사를 운행하시니, 오직 장래의 일들을 멀리 다 알고 계시고 그 뜻을 이루어가시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셔야 우리는 장래 일을 알 수 있으며, 모든 만사의 흥망성쇠를 알고 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장래 일을 알려주시는 지혜를 받았기에,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이 올 것을 알았고 그 위기를 미리 대비하여 잘 헤쳐나갈 수 방법까지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였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였고 자기 가족과 민족을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살피면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들을 잘 살피고 각 개인이나 가문이나 나라와 민족과 사회의 흥망성쇠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판단과 심판과 보상을 살펴볼진대 우리도 장래 일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교만하면 낮아지고 겸손하면 높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세상 통치의 법칙이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그것을 보면 저 사람은 망하겠구나 낮아지게 되겠구나. 저 사람은 존귀하게 되겠구나” 하고 개인과 가문과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고 하나가 되는 것을 보니 나라가 부강하겠구나.” 하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저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과 잡신을 지성으로 섬기고 백성들이 나태하고 국론이 사사건건 분열하니 결국은 쇠약하겠구나.” 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잘 살펴보고 예언자들이 나라와 개인에 대하여 내린 말씀들을 잘 살펴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경륜이니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잘 살고 그 말씀을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또한 세상 만사를 운행하시는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께서 장래 일을 미리 말씀해주시면, 보여주시면 그대로 장차 이루어질 것을 알고 기도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현재의 경험과 현실의 상황이 아무리 그 말씀하신 미래와 다르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때가 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애굽의 종노릇할 때에 자기가 소년기에 꾸었던 그 신비한 꿈들이 현실과 맞지 않아서 무가치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본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그 꿈이 더욱 선명해지고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적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이 지금 이국 땅에 노예로 끌려와 구정물에 손을 담그고 돼지 밥이나 주는 신세이지만 언젠가 그 때는 모르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여주시고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이 오히려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할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먼 장래의 일일지 모르나 그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미래를 멀리 볼 줄 알았기에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도 묵묵히 참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래에 행할 일들을 미리 볼 줄 알았기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기 인격과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형들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장차 형들이 무릎을 꿇고 자기에게 은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서, 용서할 수 없는 자기의 감정을 깨뜨리면서 형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면서 그 기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멀리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졌기 덕분에 훗날 바로 왕 앞에서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그 나라에 곧 닥칠 무서운 위기를 그가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칠년 풍년에 방탕하지 않을 수 있었고 칠년 흉년을 잘 대비하여 그 절대 절명의 위기를 넘기게 되었고 애굽 백성들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민족, 여러 나라까지 다 살리게 되었습니다. 이 지혜의 사람 요셉 덕분에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요셉의 형제들과 가족들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사람은 본인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살리는 일을 합니다.
지혜의 사람의 귀한 본보기로 신약 시대 사도 바울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사도 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도 로마로 가는 여행 길에 그가 탄 배가 유라굴로 폭풍 속에서 열나흘간이나 갇혀서 살 소망이 없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폭풍에 시달려서 배에 탄 사람들이 다 밥도 먹지 않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와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밤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의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갑판에 쓰러진 선원들과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말했습니다. 그 배에 탄 선장, 선원, 군인, 여행객들 276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로마에 가야 할 것이라고 확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배에 탄 사람을 다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여기 이 배에 있는 사람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항해하다가 한 섬에 걸리게 될 것이니 지금 모두들 안심하고 어서 음식을 다 먹고 기운을 차리십시오.”라고 확신있게 격려하였습니다. 그 바울의 위로와 소망의 말을 듣고서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얻고 음식을 먹고 일어나서 협력하여서 결국 몰타라는 섬에 배가 대게 되어서 모두가 다 살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역시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충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장래 일을 미리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볼 수 있는 지혜를 받았기에 바울은 자기와 함께 있는 그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다 용기를 주고 살려내는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불확실하고 두렵고 근심이 가득차서 미래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 모르는 불안한 시대입니다. 이럴 때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멀리 보는 안목, 곧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성령으로부터 미래를 멀리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되고, 하나님께서 장차 하실 일들을 깨달아 현재를 잘 선용하며 준비하게 됩니다. 불안에 떠는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됩니다. 낙심한 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줍니다.
우리들이 이 지혜를 받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지혜의 주인이 되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기도를 많이 하면서 지혜의 성령께 영적 지혜를 많이 구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많이 하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분명히 말씀해주시고 장차 될 일에 대한 소망적인 약속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지금 현실이 어렵고 불안하고 힘들더라도 소망을 가지고 성실하게 미리 준비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요셉처럼, 바울처럼, 조언과 격려를 베풀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두 가지 지극히 복된 것을 주시어 그 시대에 귀하게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은 은총 곧 아름다움과 매력요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멀리 볼 줄 알며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잘 선용하여 준비하는 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매력과 두 가지 지혜가 있습니다. 육신적 매력과 신령한 매력, 지상적 매력과 천상적 매력, 육감적 매력과 인격의 매력이 있습니다. 삼손을 유혹한 여인 드릴라 같은 성적인 매력과 요셉과 같은 거룩한 인격과 신앙에서 우러난 성스러운 매력이 있습니다. 가까이 하면 인격이 가벼워지고 망가지는 B급 매력이 있는가 하면 접하면 접할수록 인격이 고양되고 기품이 더해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가까이 하면 인생을 되는 대로 살게하는 매력을 풍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접하면 접할수록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 고난과 역경 중에도 인생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의미있게 살고자 결심하게 하는 고상한 매력이 있습니다. 첫 번째 매력은 육신과 세상에서 오는 매력이요 두 번째 매력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깊은 내면의 인격과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매력입니다. 우리들은 첫 번째 매력이 아닌 두 번째 매력이 충만한 은총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은총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임기웅변적 지혜와 멀리 내다보는 지혜가 있습니다. 임기웅변적인 지혜는 이 세상에서 단시간에 부요해지고 유명해지고 성공하여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부러움을 받고자 하여 행하는 육신적인 지혜입니다. 반면에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는 현재는 고난과 역경이 있고 무명의 생활이 길지 몰라도 영혼이 풍요롭고 마음이 넉넉하고 장래에 대한 소망이 푸르른 아름다운 꿈을 꾸는 지혜입니다. 자기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잘 살고 그들의 영혼과 인격과 삶을 살리는 데 필요한 지혜가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임기웅변적이고 찰나적인 지혜를 추구하며 그 눈이 더 어두워지고 더 삶이 무너지고 황폐화되고 고립되어버리곤 합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렇게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 우리 인생을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이 볼 수 있게 해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고난과 역경까지 품고 넉넉히 기다리며 내일을 향하여 묵묵히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는 소망을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지혜가 성경 말씀과 기도 가운데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요셉과 다니엘의 삶을 보면 이 은총과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히 주어졌는데 그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도 힘을 얻었고 나아가 세상에서도 그 선한 영향력이 통하여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하고 살려내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은총과 지혜임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은 선한 매력이 우리의 영혼과 인격에 배게 되고 코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애를 멀리 볼 줄 알고 역사의 미래를 멀리 바라보며 오늘의 혼란과 불안과 불확실성을 꿋꿋이 이겨내며 다른 이들까지 살리는 복된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