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치의 중요성
포치(porch): 건물의 입구나 현관에 지붕을 갖추어 잠시 차를 대거나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하도록 만든 곳. 출처_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도시 지역 범죄율이 오늘날보다 훨씬 높았던 1973년 여름, 아내 캐시는 필라델피아 인근 저먼타운에 있는 교회에서 사역했다. 그곳에서 아내는 포치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젊었고(23세), 또 그 지역에서 유일한 백인이었다. 그 동네 유지의 부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포치에서 세상을 지켜보았다. 아내가 길을 걸어가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블록은 안전해요. 우리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제인 제이콥스의 고전,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 “거리를 바라보는 눈들”이 건강한 도시 생활의 지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포치는 주택 내부와 도로를 잇는 중요한 중간 지대이다. 주택 거주자가 거리를 지켜볼 수 있는 곳이자, 거리를 걷는 사람이 거주자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이다. 길 가는 행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곳, 그러니까 포치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지역은 황량하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반대로 포치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정겨운 동네이다. 포치에 있다가 아는 사람을 보면 계단이나 포치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더운 날이면 레모네이드나 달콤한 차 한 잔을 권할 수도 있다. 포치야말로 활기찬 동네의 핵심이다.[1]
앞마당의 종말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신문에 기고한 일련의 글에서(나중에 ‘Pro Rege’라는 제목의 세트로 묶여 출간되었다) 네덜란드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진정한, 헌신적인 그리스도인과 그가 속해 있는 국가의 문화 사이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실례를 하나 사용했다.[2] 그는 “앞마당”이 있는 유대인 성전에 관해서 언급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솔로몬의 포치”인데, 이방인의 뜰 입구 바로 바깥쪽으로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탁 트인 공간이다. 그리스도인은 그곳에서 공개 집회를 열었다(행 5:12). 현대 주택의 포치가 거리와 집 내부의 중간 공간인 것처럼, 그곳은 세상과 성소의 중간 공간이었다.
카이퍼는 수 세기 동안 유럽 국가의 문화 기관들은 유럽 인구 대부분을 “기독교화하는”(Christianizing)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천국과 지옥, 인격적 창조주 하나님, 성경의 권위, 죄 사함의 필요성, 결혼 생활에서의 성적인 정절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 등이 일반 대중에게 주입되었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했지만, 카이퍼는 대다수를 구성하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을 결코 경멸하지 않았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선포되는 복음을 듣기 위해 교회에 왔다면, 그는 사실상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평생 해 온 것이다. 그들이 듣는 메시지는 혼란스럽지도, 또 그들이 가진 도덕적 감수성과 근본적으로 모순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기독교의 “포치”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퍼의 은유를 사용하자면, 유럽의 문화는 그 자체가 교회를 위한 “앞마당” 또는 포치였다. 그곳은 완전한 불신앙(“거리”)과 열렬한 믿음의 마음(“성소”) 사이에 자리한 중간 지점이었다. 포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에 우호적이고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카이퍼에 따르면, “종교는 더 이상 [유럽 국가의] 사회 및 공공 생활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않다. … 한때 종교에 호의를 보였던 분위기가 지금은 사실상 종교를 억압하고 있다. 앞마당[우리 문화]에서 종교는 잠잠해졌다.”[3]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그들에게 전해 내려온 순전히 역사적인 신앙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은 문화가 “더 이상 그들을 떠밀어주는 파도가 아님을 실감한다; 대신 그들은 이제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야 하기에 점점 지쳐간다.”[4]
단지 성소의 “앞마당”만이 없어진 게 아니다. 이제 문화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5] 카이퍼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놀라운 과학의 부상 뒤에는 “여기 과학과 기술 속에 우리의 모든 질병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자본주의 역시 더 많은 번영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부와 안락과 쾌락을 위해 살도록 유혹하는 물질주의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카데미, 미디어, 예술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종교를 인간 자유에 대한 부담이자 인간 잠재력에 대한 제한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현대인이 대부분 느낄 감정과 관련해서 카이퍼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주의가 산만하고 세부 사항에만 지나치게 몰두한다. 그뿐 아니라, [내면의] 삶을 위로 향하게 하는 내부 스프링이 아예 망가졌다고 느낄 것이다.”[6]
그래서 카이퍼는 (무려 115년 전에!) “기독교왕국”(Christendom)이 쇠퇴하고 있으며, 회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전통적인 가치관과 기독교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서구 사회의 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앞마당의 군중은 몇 년 안에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삶을 택하고 … 앞마당을 떠날 것이다.”[7] 점점 더, 문화는 앞마당이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고 적대적인 사람들이 걷는 “거리”가 될 것이다.
카이퍼가 이런 점을 지적했을 때, 그런 현상은 주로 대학과 같은 엘리트 집단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30-40년 후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유럽의 교회 출석률이 급감했다. 초자연적, 초월적 차원을 부정하는 세속적 관점은 학계와 예술계를 넘어 대중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교회의 포치가 아예 사라졌다.
주
1. Jane Jacobs,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Vintage Press, 1992, 56.
2. Abraham Kuyper, Pro Rege (Vol 1): Living Under Christ the King (Abraham Kuyper Collected Works in Public Theology), Lexham Press, 2016, John H. Kok, ed.
3. Ibid, 94.
4. Ibid.
5. Ibid, 104.
6. Ibid.
7.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