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울산문화기행,
그 시절, 추억의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장생포가 본격적으로,
고래잡이 고장으로 주목을 받기시작한 것은
1899년 러시아인들이 장생포에 포경기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고래잡이를 하면서부터이다.
연탄가게..
오른 쪽 문패가 보이는 집이 포수의집.
여기는 포수의 집입니다
일반 선박에서는 선장이 중심추 역활을하지만 노르웨이식 포경법을 사용하는
고랫 배에서는 포수가 중심이다 표준말로는 어로장이라고 하지만 장생포사람들은
포수 또는 포장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포경선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바다의
장인이다 포수의 자부심은 고래를 얼마나 많이 잡았는가에 달려있다
포수 방만술씨가 포경포 앞에서..
포수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고래를 잘 잡는다는 말이다
특히 '진짜 고래'인 대형 참고래를 잡아야 제대로 된 포수라고 할 수 있다
일제말기에 홋가이도에가서 포경선을 타면서 2등 갑판원까지 지냈던
김상복씨가 대표적인 장생포 포수이며 이영준, 황여석씨 외
13여명의 포수가 알려져있다
장생포 초등학교, 그 당시는 국민학교.
도시락을 이렇게 데워먹었습니다.
고래해체 작업..
해채된 고래를 실어나르던 리어카~
그 때 그.. 표어,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우체국.
옛날 동네 ...
2015.09.12.소리
첫댓글 나찬형 선생님,
왠만하면 말로 하시지요~ㅎ
회초리 들뻔한
매서운 손짓에 군기바짝든
여학생..ㅎ
정답은 맞추셨나요~ㅎ
옛날 국민학교 단상에서니시
제대로 선생님같은 필이.. ㅎㅎ
형주학생 혼내키느라고~
한바탕 웃음 ㅎㅎㅎ
당시엔 "영자의 전성시대" 포스타면 보아도
죄를 지은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었는데~~
교복~ 연탄불~ 난로~ 우체통~~~
추억을 반추하는 마을이었습니다.
영자의 전성시대
그 당시는 꽤나 야한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되요
요즘에사... 저 정도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