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물의 척도
학창 시절에 소피스트를 배울 때, 그들은 ‘지식을 파는 궤변론자’라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소피스트를 그렇게 한 마디로 규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게 규정지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존경했던 크세노폰이다. 프로타고라스에 대한 기록은 모두 불태워져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그의 업적을 상세히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후대 사람들이 남긴 기록으로만 프로타고라스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는 대결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제자들의 기록을 통해서는 소피스트들에 대해서 온전히 알 수는 없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하는 반면 프로타고라스는 천박한 지식 장사꾼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4대 성인으로 불리고 프로타고라스는 궤변론자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소피스트라는 말에는 ‘현자(賢者)’ 또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당시는 철학의 황금시대였기 때문에 광장(아고라)에서 자신의 논리로 설파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활동이 자연스러웠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말을 잘해야 출세하는 사회였다. 말을 잘해야 정치적으로 출세할 수 있었고, 그 당시에는 소송도 많았는데 전문 변호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논리학이나 수사학(修辭學), 웅변술을 가르치고 그 대가를 받았다. 지금도 강의를 하고 급료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것과 같다. 그들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 지식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민주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배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그들은 여태까지의 자연철학에서 인간에 관심을 갖는 철학을 제시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게기한 것이다. 철학의 주된 관심을 인간의 삶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소피스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프로타고라스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세상에 대한 가치는 인간이 부여한다는 인간중심주의를 뜻한다. 말 그대로 ‘개개인이 만물을 탐구하고 파악하는 잣대(尺度, scale)’라는 뜻이다. 이는 곧 모든 판단의 기준은 개개의 사람에게 속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므로 모든 의견이 참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프로타고라스의 생각은 상대주의라고 평가받는다. 상대주의는 사람마다 판단하는 가치가 다 다르다라고 인정하는 태도이다.
A 씨는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며 “손님도 없고 마감 시간도 돼서 정리 중인데 군복을 입은 앳된 군인이 혼자 들어왔다”고 운을 뗐다. 이등병인데 휴가 갔다가 복귀하던 중 밥시간을 놓친 모양이었다.
A 씨는 군인에게 앉으라고 한 뒤 알과 곤이, 두부와 콩나물을 듬뿍 넣고 끓인 찌개를 내줬다. 군인은 배가 고팠는지 밥 두 그릇을 뚝딱하고 음식값을 계산하려 했다. 이에 A 씨는 “메뉴에 없어서 돈을 받을 수 없다”며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눈 오는데 조심해서 귀대하라”며 군인을 배웅했다. 군인은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식당 밖을 나섰다.
어느 신문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기사를 읽고 마음이 따스해 왔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식당 주인들이 다 이러한 생각으로 사람을 대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사에 나오는 병사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제공했다면 대금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만물을 볼 때 모두 똑같이 보지 않는다. 또 동일한 것을 보더라도 시간에 따라 대상은 달라 보일 수도 있다. 강물을 바라볼 때, 노을이 진 저녁에 볼 때와 아침에 볼 때 그 색깔은 달리 보일 것이다. 탄광촌 아이는 물을 검은색으로 그릴 것이고, 황하에서 자란 아이는 강물을 누렇게 그릴 것이다. 창으로 들어온 달빛도 기쁠 때 보는 것과 슬플 때 보는 것은 다를 것이다. 열대지방의 사람이 온대에 온다면 춥다고 할 것이고, 한대지방의 사람이 온대에 온다면 덥다고 할 것이다. 색깔이나 기온만 하여도 이렇게 인식이 다른데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것보다 훨씬 다양할 것이다.
이런 현상을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은 어떤 것을 인식할 때 모두 똑같이 절대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 각각이 사물의 척도라는 것이다.
프라타고라스의 재판으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수업이 끝나면 재판에 이긴 수임료로 수업료를 지불하기로 한 제자와의 이야기다. 이것은 아마도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생각하며 꾸민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프로타고라스는 변론술에 뛰어나 강좌를 열었는데, 수업료가 그의 명성만큼이나 거액이었다. 어느 날 에우아틀루스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청년은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지만, 지금 저의 형편이 좋지 않아서 수업료를 낼 수 없으니, 외상으로 배울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프로타고라스는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내게서 배운 후에 첫 재판에서 이기면,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수업료를 지불하라.”고 하였다.
프로타고라스는 거듭된 그의 간청을 받아들여 첫 승소 시까지 수업료를 유예하는 계약을 맺고 수업을 듣게 하였다. 그러나 에우아틀루스는 수료 후 어떤 재판도 하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놀기만 하였다. 그러자 프로타고라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에우아틀루스에게 수업료를 달라는 소를 배심 법정에 제기하게 되었다.
프로타고라스는 “어차피 넌 내게 수업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내가 너를 재판에 걸어 내가 이기면 판결에 의하여 내게 수업료를 지불하여야 하고, 내가 지면 너가 이기는 것이니 계약에 따라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대하여 그의 제자는 “저는 어떻게든 스승님에게 수업료를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스승님에게 이기면 판결에 의하여 수업료를 내지 않을 것이고, 제가 지면(이기지 못하면) 계약에 의하여 수업료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논리로 맞섰다.
이 말을 들은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의 뒷목을 잡고 황당해하면서도 자신의 가르침이 얼마나 강력한지 만족해하였다. 이는 그의 논법이 서로 다른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논리적 오류를 갖고 있음을 지적한 이야기이다.
그는 사람의 감각에 의하여 인식된 것을 바탕으로 한 지식만을 인정하고, 그 배경이 되는 신 또는 보편타당성 또는 불변의 진리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첫댓글 멋진 이야기입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샤의 판결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