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음산의 배후 - 묵방산,큰만대산,작은만대산,치치박골산
앞 왼쪽이 묵방산이다
실상 등산은 참으로 멋진 것이다.
즐거운 해후를 해주는 것은 등산뿐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금후에도 다시 만나지 못할지언정,
그러나 곧 거리낌 없는 친한 벗이 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산이다.
―― 장 코스트(Jean Coste, 1904~1926, 프랑스 등반가), 『알피니스트의 마음』
▶ 산행일시 : 2019년 12월 1일(일), 흐림, 눈, 비
▶ 산행인원 : 4명
▶ 산행시간 : 8시간 3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14.3㎞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홍천터미널에 가서, 택시 타고 홍천군 동면 속초
리 사락골로 감
▶ 올 때 : 횡성군 공근면 부창리 버스정류장에서 택시 타고 횡성으로 와서, KTX(입석)
타고 상봉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4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0 - 홍천터미널
07 : 55 - 사락골, 산행시작
08 : 38 - 345.8m봉
09 : 04 - △391.0m봉 갈림길, 휴식
10 : 00 - 564.0m봉
10 : 10 - 묵방산(墨坊山, △611.4m)
10 : 55 - 큰 만대산(-萬垈山, 680.1m)
12 : 01 - 슬랩
12 : 15 ~ 13 : 03 - △739.4m봉, 점심
13 : 50 - ┣자 갈림길 안부, 맞은편 등산로 안내판 ‘등산종점’
13 : 58 - 작은 만대산(633.1m)
14 : 46 - 치치박골산(550.7m)
15 : 58 - 부창리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6 : 40 ~ 19 : 15 - 횡성, 저녁
20 : 13 - 상봉역
1-1. 산행지도(묵방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큰 만대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3. 산행지도(작은 만대산, 치치박골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2. 산행 고도표
▶ 묵방산(墨坊山, △611.4m)
산에 가는(혹은, 가야 하는) 주말은 일하러 나가는 평일보다 더 바쁘다. 평일에는 05시에 일
어나 밥 먹고 06시 10분에 집을 나서지만, 주말에는 각각 30분 또는 1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일출시각 07시 26분.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서울을 빠져나간다. 홍천터미널에 도착하니 희
뿌옇게 여명이 밝아온다. 동면 가는 버스는 08시 40분에 있다고 한다. 1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택시 탄다. 홍천터미널에서 동면까지 8km 남짓이니 금방이다.
사락교는 성수리천(城壽里川)을 건너는 허름한 다리다. 택시 기사님도 잘 모르는 사락교를
캐이 님의 안내로 건너고 조금 더 들어간 사락골 입구 Y자 갈림길에서 택시를 세운다. 우리
를 맞이하는 건 부슬비다. 그리 반갑지 않다. 차다. 3주 연속 산중에서 비 맞게 생겼다. 이러
니 주말이 오는 게 겁이 난다. 오늘은 또 어떤 고역을 치를 것인가. 배낭 덮개부터 씌운다.
사락골 입구 Y자 갈림길에서 왼쪽 농로로 들어간다. 사과밭 지나고 삼포(?) 지나 골 깊숙이
들어가서 왼쪽 산자락을 붙든다. 야산이 야성을 드러낸다. 오래전에 간벌한 듯 그 잔해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밀집하여 대나무처럼 가늘게 자란 소나무 숲을 지나고 벌목한 능선을
오른다. 비는 그쳤지만 잔뜩 흐려 원경은 가렸다. 근경인 오음산과 봉화산, 매화산을 희끄무
레한 윤곽으로 알아본다.
나지막한 봉봉을 넘는다. 지도 읽으며 얼기설기한 지능선을 추려서 길 찾는 재미로 간다.
△391.0m봉 직전 갈림길에서 첫 휴식한다. 여느 때 같으면 서로 다투어 등로에서 0.2km 떨
어진 옆구리봉(캐이 님의 버전이다)인 △391.0m봉의 삼각점을 알현하련만 오늘은 모두 시
들하다. 더산 님은 어제 저녁에 술을 진탕 마셨다 하고, 캐이 님은 어제 가평의 대금산, 불기
산을 10시간에 걸쳐 다녀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여진이 있을 것이라서 나로서는 희소식
이다.
오른쪽의 407.4m봉을 오르는 ┣자 갈림길을 직진하여 길게 내린 안부는 넙데데한데 소나무
숲이 볼만하다. 쭉쭉 뻗지 않고 구불구불 자랐어도 그 수피에 켜켜이 쌓인 세월에서 고고한
기품을 본다. 이런 소나무 숲은 경주 삼릉과 영주 소수서원 입구, 거창 수승대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산중에서 이런 소나무 숲을 보거나 지날 때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여태 느긋하던 등로는 정색한다. 곧추선 오르막이 시작된다. 햇낙엽이 수북하여 절반은 헛걸
음질하거나 뒤로 무르며 오른다. 564.0m봉 가까워서 가파름이 잠시 누그러지더니 절벽 위
너른 암반이 나온다. 드문 경점이다. 묵방산의 푸짐한 품 뒤로 첩첩 산이 펼쳐진다. 564.0m
봉을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고 긴 한 피치 오르면 묵방산이다.
묵은 헬기장인 공터 한가운데 세 갈래 가지 뻗은 노송이 묵방산 표지판 달고서 반긴다. 삼각
점은 억새밭을 뒤져 찾아냈다. 홍천 428, 1988 재설. 어쩌면 이 산 아래에 먹(墨)을 만들던
집(坊)이 있어서 ‘묵방산’이라 하지 않았을까 한다. 날이 맑다면 조망이 좋은 듯하다. 오늘은
사방이 뿌옇다. 배낭 벗어놓고 휴식하여 정상주 탁주 분음한다.
3. 오음산
4-1. 멀리 가운데는 매화산, 맨 오른쪽은 봉화산
4-2. 멀리 가운데는 봉화산
5. 자작나무 숲
6. 봉화산
7. 묵방산 가는 길
8. 묵방산 가는 길
▶ 큰 만대산(萬垈山, 680.1m), △739.4m봉
묵방산에서 북진한다. 얼마 전에 단체 등산객들이 다녀갔는지 등로에만 낙엽이 마치 비질한
것처럼 쓸렸다. 큰 만대산까지 1.7km가 녹녹하지 않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다.
첨봉 3좌를 넘고 네 번째가 큰 만대산이다. 한강기맥 산행교통의 요충지이다. 주변의 나뭇가
지에 달린 산행표지기가 39개나 된다. 오음산을 넘어온 한강기맥은 ╋자 갈림길 왼쪽의 응
골산(577.8m)으로 간다.
모르긴 해도 만대산(萬垈山)에 특별한 지명유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첩첩산골에 농사
지을 터(垈)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아닐까 한다. 만대산에서 ╋자 능선
분기봉인 △739.4m봉 가는 길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자유산행이다. 흩어져 향긋한
손맛 보러 양쪽 사면을 번갈라 들락날락한다. 더산 님의 지형을 살피는 눈은 단연 뛰어나다.
지관의 경지다.
나야 막무가내로 이쪽저쪽 사면을 바쁘게 누비면서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데 더산 님은
한두 군데 요처만 들러 대물을 쑥쑥 뽑아낸다. 잔챙이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았다니 나로서는
더산 님의 뒤나 쫓으며 이삭을 줍는 편이 나았다. 횡성이 자랑하는 ‘횡성한우, 횡성더덕’이
빈발이 아니다. 횡성더덕은 그 특유의 맛난 향기가 맵도록 코를 찌르고, 산행 후 횡성시장에
들러 저녁으로 먹은 횡성한우 소머리곰탕(특)은 생더덕주 여러 병을 비우게 했다.
외길 가파른 바위 슬랩을 두 차례 오르고 △739.4m봉이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이다. 묵은 헬
기장인 공터 한가운데 삼각점이 있다. 홍천 307, 1988 재설. 빙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늘
그렇듯이 캐이 님은 한 살림을 차려왔다. 버너 불 피워 라면 끓인다. 우선 넙죽이 오뎅 끓여
먹고, 그 국물에 버섯 넣고, 소시지도 넣어 라면 끓인다. 물론 도시락밥도 곁들인다. 반주는
3년산 마가목주다.
산 공기가 차디차다. 마을에서 내리던 부슬비가 이곳 산에서는 싸락싸락 눈으로 내린다. 이
러니 술맛이 어찌 나지 않겠는가. 한 모금 마시고 흩날리는 눈발 한 번 바라보곤 한다. 겨울
산행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친들 어떠랴 싶다. 그도 정취일
것. 식후 마가목주 얹어 끓인 커피가 또한 일품이다.
9. 앞 왼쪽이 묵방산
10. 큰 만대산 정상에서
11. 바위 슬랩
▶ 작은 만대산(633.1m), 치치박골산(550.7m)
△739.4m봉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간 비킨 벌목지대는 오음산 쪽으로 탁 트여 맑은 날이면
조망이 아주 좋다. 오늘은 흩날리는 눈발로 완전히 가렸다. △739.4m봉 남릉을 가려는 뜻은
지난가을 오음산에서 이쪽 장릉을 바라보고 숙제로 남겨두었던 터라 그 숙제를 해결하는 한
편, 여기서 바라보는 오음산의 남릉은 또 어떠할까 퍽 궁금했다. 과욕이다.
△739.4m봉 남릉. 길 좋다. 우리만 초행이다. 간간이 선답의 산행표지기가 보인다. 흩날리는
눈발과 동무하며 낙엽 지친다.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기행인 「오쿠로 가는
작은 길(おくのほそ道)」의 하이쿠 한 수를 생각나게 하는 길이다.
이 길이여
가는 사람도 없이
저무는 가을
(此道や行なしに人秋の暮)
좌우사면이 상당히 가파르다. 거기에 들러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저 쭉쭉 내린다. 620.0m
봉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 잘 났다. 맞은편의 작은 만대산을 넘어온 이정표는 이 안부가
‘등산종점’이라며 오른쪽 세개골로 내릴 것을 권한다. 직진은 가파른 바윗길 오르막이다. 굵
은 밧줄이 달려 있다. 한 피치 숨차게 오르면 작은 만대산이다.
앞서 오른 산들이 그랬지만 여기에도 정상 표지석은 없다. 삼각점은 ‘홍천 429, 1988 재설’
이다. 조망은 어차피 나무에 가렸다. 배낭 벗어놓고 정상주 탁주 분음하고 내린다. 내리막은
긴 슬랩 바윗길이다. 암벽 하강하듯 밧줄 잡고 뒷걸음질하여 내린다. 톱날 같은 능선이 이어
진다. 삐쭉하니 솟은 봉을 오르고 곧장 내리기를 네 차례나 반복한다. 그런 다음에 550.7m봉
이다.
산꾼들은 이 550.7m봉을 ‘치치박골산’ 또는 ‘송락산’이라고 한다. 키 큰 나무숲이 울창하여
아무런 조망을 할 수 없다. 이제 하산 길 내리막이다. 어디로 내릴까? 숙의하여 산행거리가
가장 길고 용바위도 구경할 겸사로 용바위 쪽으로 내리기로 한다. 작은 만대산에서 만난 인
적은 어디서인지 모르게 헤어졌다. 지도에 눈 꼭 박고 간다.
벌목지대에 내려서고 야트막한 안부에는 벌목장비가 드나드는 임도가 좌우로 나 있지만 우
리는 일로직등 한다. 약간 오른 봉우리에 몇몇 바위들이 모여 있다. 혹시 이 바위들을 ‘용바
위’라고 하지 않을까 의심하며 내린다. 다른 곳에서는 돌멩이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내 산
기슭 도는 농로에 내려서고 빈 밭 가로질러 대로에 다다른다. 부창리 버스정류장이다. 여기
는 부슬비가 내린다.
더산 님이 동네주민에게 ‘용바위’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더니 지도의 표시와는 다르게 저 너
른 벌 지난 금계천(金溪川) 근처에 있다고 한다. 비까지 맞아가며 찾아볼 마음은 내키지 않
는다. 횡성 가는 버스는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횡성택시 부른다.
12. 지난 가을에 오음산에서 바라본 가운데 능선을 간다. 맨 왼쪽이 작은 만대산, 오른쪽은
치치박골산
13. 작은 만대산 가는 길
14. 벌목지대
15. 벌목지대, 용바위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