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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돌봉 하산 길, 춘양목 소나무 숲길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은 신기합니다. 숲마다 바위마다 호젓합니다. … 나의 생활이 밝았을
때는 이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습니다. 이제 안개가 내리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참
으로 어둠을 모르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어둠은 자기를 어찌할 도리 없이 모든 것을
가만히 떼어놓습니다. … 인생은 고독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모릅니다. 모두가 혼
자입니다.
――― 헤세, 「안개 속을」(천양희, 『시의 숲을 거닐다』에서)
▶ 산행일시 : 2015년 11월 28일(토), 흐림, 가루눈, 안개
▶ 산행인원 : 9명(버들,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신가이버, 해피, 도~자, 대포, 무불)
▶ 산행시간 : 11시간 23분
▶ 산행거리 : 도상 17.9㎞(1부 10.7㎞, 2부 7.2㎞)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0 : 26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33 ~ 04 : 54 -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산행시작
06 : 38 - 시루봉(1,092.8m)
07 : 26 - 안부, 임도, 아침 요기
08 : 40 - 고직령(高直嶺) 산신각, 백두대간
09 : 06 - 1,308m봉
09 : 15 - 구룡산(九龍山, 1,344.1m)
09 : 58 - 1,250m봉, ┣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삼동산으로 감
10 : 07 - 1,161m봉
10 : 50 - 임도
11 : 10 - 상금정(上金井),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00 - 하금정, 우구치(牛口峙), 보호수 소나무, 2부 산행시작
12 : 42 - 임도
13 : 13 - 978m봉
14 : 16 - 옥돌봉(1,244m)
14 : 53 - △1,076.8m봉
15 : 12 - 1,023m봉
15 : 18 - 임도
16 : 17 - 우구치, 보호수 소나무, 산행종료
17 : 10 ~ 19 : 06 - 봉화, 사우나, 저녁
21 : 33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백두대간 구룡산에서
2. 금강송 춘양목, 옥돌봉 가는 길
▶ 시루봉(1,092.8m)
새벽 04시 30분. 춘양 서벽리. 차문 열고 박에 나서자 알싸한 바람이 얼굴을 잽싸게 할퀴고
지나간다. 마치 죽비에 맞은 것처럼 졸음이 확 달아나고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군가가 부추겨
하늘 우러르니 열이레 둥근 달이 구름을 헤치며 나는 듯 바삐 간다. 박목월이 본 달이 저랬을
까?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급한 잰걸음이 그려진다.
검은 산릉을 향한다. 도로 옆 창고건물 돌아 사과밭 농로 따라간다. 산기슭 빈 밭 가로지르고
밭두렁 덤불숲 헤치고 물막이 도랑 건너 산속에 든다. 길인 듯 아닌 듯 헤드램프 비춰 잡목
숲 헤친다. 한 피치 올라 지능선 잡았구나 했는데 바로 내리막길로 이어지고 어째 동네 가로
등 불빛이 가까워진다. 방향착오다. 빠꾸(이런 때는 빠구라고 해야 빠꾸하는 맛이 난다)와
동시에 내가 잠시 선두가 된다.
북진. 일로직등이다.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발밑 언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가 차디차게 들린
다. 능선 나뭇가지 끝에는 매운바람이 횡행하여 옷깃 여미고 목 움츠린다. 암릉이 나온다. 주
위를 암만 살펴보아도 외길이다. 해피 님이 척후하여(이런 데는 선수인 해피 님의 괜찮다는
말이 불안하지만 신가이버 님이 오르는데 못 오르겠느냐 하고 달라붙는다) 기어오른다.
눈길이다. 수북한 낙엽을 덮은 눈이니 꽤 깊다. 해는 나뭇가지 사이 동녘 하늘을 잠깐 붉게
물들이다 말았다. 이런 숲길에서는 저러는 것이 오히려 낫다. 두 번째 암릉이다. 블라인드 코
너와 맞닥뜨리지나 않을까 경계하여 올랐는데 다행히 짧다. 시루봉 정상일 공제선이 신기루
처럼 몇 번이나 뒤로 물러나고 쫓다가 지친다.
시루봉 정상. 무덤 한 기가 자리 잡았다. 시루봉 정상이라는 아무런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날이 밝았으나 안개가 끼어 어둑하고 가루눈 날려 스산하다. 잠시 서성이다 간다. 북진! 간벌
한 능선이다. 눈길 지쳐 이제 겨울이라 하니 이가 앙다물어진다. 전도는 안개에 가려 어렴풋
하여 이때다 하고 잘 생긴 좌우 능선들이 어서 오시라 유혹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1,106m봉 넘고 길게 내려 Y자 능선 분기봉인 1,028m봉이다. 오른쪽으로 간다. 다가가기조
차 어려운 암릉이 막고 있다. 가파른 생사면으로 비켜 길게 내렸다가 트래버스 하여 주능선
붙잡는다. 바닥 친 안부는 임도가 지난다. 바람 피한 임도 양지에 둘러 앉아 아침 요기한다.
요기하며 나눈 한담이다. 시루봉 넘으면서 내내 간벌한 눈밭이라 더덕 한 수를 보지 못했거
니와 메아리 대장님이 결근했다. 오늘은 더덕주를 굶게 생겼다고 했더니 메대장님이 지난주
저축한 더덕을 대간거사 님에게 맡겨놓았으니(아, 사려 깊은 메대장님이시여!) 그럴 일은 없
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간거사 님이 집에서 김장하느라고 어수선하여 깜빡 잊고 그 귀
물을 집에 두고 왔다 한다.
이 날벼락 소식은 즉각 해피 님과 대포 님, 무불 님을 비롯하여 여럿을 멘붕상태에 빠지게 했
다. 다마내기주로 대신 하자고 달래보았지만 소용없다. 일주일을 버틴 게 오로지 더덕주인데
퀵서비스로 가져오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예전에 문수산 산행 때 베리아 님이 더덕봉지를
잃은 대참사를 벌써 잊었느냐는 등 말끝마다 대간거사 님을 성토하기에 입이 부르틀 지경이
었다. 이런 때 대포 님의 디테일은 확실히 빛났다.
모닥불 님이 준비해 온 수프를 끓여 컵에 담아 돌렸다. 걸쭉한 수프가 달짝지근하고 뜨뜻하
여 한속을 녹이기에 그만이었다. 대포 님 왈, 이 맛있는 수프를 먹고 나니 총대장님이 잊고
온 더덕에 대한 아쉬움이 해소되었다나. 대간거사 님에게 향한 거센 비난을 대포 님 자기에
게로 방향 틀게 하였다.
3. 시루봉 내린 안부에서
4. 멀리는 문수산
5. 옥돌봉, 고직령 오르는 길에서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1부 산행로
▶ 구룡산(九龍山, 1,344.1m)
구룡산 오르는 길. 절벽인 임도 절개지를 비킬 겸사로 오른쪽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생사면
은 가파르고 낙엽이 수북하여 여러 걸음질로 한 걸음 오른다. 능선에는 찬바람이 인다. 찬바
람에 등 떠밀려 간다. 955m봉 넘기 전 야트막한 안부에서 옛길을 만난다. 아마 탄광을 오가
는 길이 아닐까 한다. 이 옛길은 좌우 사면을 질러가다 고직령을 넘는다.
가파른 데는 석축을 쌓아 다듬은 옛길이다. 옛길은 꾸준히 봉봉을 돌아 넘는다. 고도를 높일
수록 눈이 깊다. 곳곳 바람에 쓸려 모인 눈은 정강이까지 찬다. 희미하던 옥돌봉이 그나마 보
이지 않는 건 가루눈이 날려서다. 오르막길에 땀이 비칠 듯하면 얼굴 들고 가루눈 맞아 식힌
다. 그때마다 상쾌하다. 대간거사 님을 비롯한 다수는 설원을 누비며 오른다. 저녁에 더덕주
를 굶지 않기 위해서인데 별무신통이다.
넙데데한 설원에 오르고 고직령 산신각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백두대간 고직
령이 오른쪽 1,234m봉이다. 구룡산까지 백두대간 길을 간다. 길 좋다. 등로 주변이 설경이
가경이다. 일목일초 눈꽃이 만발하였다. 숨 멈추고 들여다보고 카메라 셔터 소리에 놀랄까봐
가만 누른다. 돌계단 오르막길은 1,308m봉(부쇠봉?) 넘고도 이어진다.
구룡산 정상. 사방 나무숲 두른 헬기장이다. 배낭 벗어놓고 정상주 탁주 분음하며 오래 머문
다. 백두대간 길은 서진하여 도래기재로 가고 우리는 삼동산 쪽으로 북서진한다. 도계(경상
북도와 강원도) 종주하는 이들의 여러 산행표지기가 안내한다. 산죽지대다. 무릎 키인 산죽
숲 사이로 길이 잘 났다. 골골 설경은 우리의 발걸음을 수시로 머뭇거리게 한다.
도계 능선은 구룡산에서 한참동안 쭈욱 내리다 ┣자 능선이 분기하는 1,270m봉에서 멈칫한
다. 우리는 도계 벗어나 직진(남진)한다. 삼동산은 너무 멀어 그만 상금정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개척적인 우리 길이다. 산죽 숲 헤치다가 가파른 바윗길을 내린다. 너나없이 미끄러져
넘어지기 부지기수다. 1,161m봉 주변부터 무리지은 금강송 춘양목은 또 다른 볼거리다. 금
강산에서 보았던 그런 미인송이다.
임도 나와 숨 돌리고 다시 능선 붙든다. 가파른 내리막은 우구치계곡 임도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된다. 산기슭 덤불 뚫고 머리 내밀어 임도다. 우구치계곡의 계류는 큰물소리 내며 흐른
다. 곧 상금정(上金井) 마을 삼거리다. 두메 님이 와 있다. 예전에 금정광산(1923년부터 금,
은을 채굴하기 시작하였고, 1997년에 폐광하였다)이 한창일 때는 상금정 마을과 하금정 마
을에 수천 세대가 살았다고 한다. 광산이 문을 닫자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두 마을 합하여 수
세대뿐이다.
가루눈 하얗게 깔린 노면에 자리 펴고 점심밥 먹는다. 버들 님이 아구탕을 가져왔는데 끓기
기다리다 밥을 다 먹어버렸고, 별도로 탁주 안주로 먹고 마시니 주체하기 힘든 만복이
되었다.
6. 고직령 산신각
7. 고직령 산신각 앞에서, 왼쪽부터 해피, 버들, 무불
8. 구룡산 가는 길
9. 산죽지대
10. 상금정 가는 길
11. 상금정 가는 길의 춘양목
12. 상금정 가는 길의 우구치계곡 임도
▶ 옥돌봉(1,244m)
2부 산행. 하금정 마을 아래 구점곡 입구로 이동한다. 보호수인 소나무 한 그루와 그 옆에
정석범(鄭碩範) 씨의 송덕비(이 마을 이장직을 맡아 청렴한 기품과 정성으로 주민계도와
지역발전에 기여하였다는)가 있다. 빈 밭을 지난다. 구글어스로도 보일 만큼 너른 밭이다.
밭 가운데 수로 만들어 덮개를 씌웠다. 덮개 밟으며 산기슭을 향한다. 밭 위쪽은 들짐승이 침
범하지 못하게 전선을 둘렀다. 이 전선(電線)이 우리에게는 전선(戰線)이다. 전선을 넘는다.
잔뜩 부른 배 안고 가시나무 섞인 잡목 숲 뚫느라 전진이 퍽 더디다. 땀이 다 난다. 산허리 도
는 임도에 이르러서야 잡목 숲 벗어난다. 대간거사 님과 해피 님은 생사면 훑으며 오르고 다
수는 능선 마루금의 간헐적인 인적 따른다. 등로 주변은 늠름한 기산의 금강송 춘양목이 산
재하였다. 앞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뒤돌아보고 고개 꺾어 올려다본다.
이런 춘양목을 보려고 일부러 여기에 올 만하다. 우리로서는 일거다득인 셈이다. 에헤라디
여, 환성이 울려 퍼지고 978m봉에 올라 그 사실을 확인한다. 대간거사 님의 ‘今臣沙蔘 尙有
三根’(지금 신에게는 아직 더덕 세 뿌리가 남아있습니다)이라는 의기양양한 육성 장계(狀
啓)와 더불어서. 대물이다. 이로써 집에 두고 온 불찰은 벌충되었다.
산행 후의 일을 생각하니 눈(眼)과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이제 아무 부담 없이 설경을 즐길
일이다. 설경은 점입가경이다. 춘양목 군락지를 벗어나자 참나무가 안개 속 한 경치한다. 상
고대는 꽃망울 터뜨리고 당단풍의 무수한 잎은 눈꽃송이 못 이겨 일제히 다소곳하니 고개 숙
였다. 옥돌봉 정상이 가까워지고 완만한 오르막길이 미음완보하기에 딱 알맞다.
헬기장 나오고 그 옆이 옥돌봉 정상이다. 뭇 산행표지기들이 운동회날 만국기 모양 나뭇가지
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안개가 자욱하고 가루눈 내려 원경은 캄캄 가렸다. 옥돌봉 정상 표지
석 둘러싸고 기념사진 찍는다. 하산! 도래기재에서 올라온 백두대간 길은 서진하여 선달산
쪽으로 가고 우리는 옥돌봉 오른 길을 뒤돌아 내린다.
Y자 능선이 분기하는 데까지 450m쯤 뒤돌아 내리고 왼쪽 능선을 간다. 잡목 숲 헤치는 우리
길이다. 설원의 춘양목 열주의 장관은 다시 이어진다. 사열한다. 능선은 봉봉에서 주춤했다
가 쏟아져 내리기를 반복한다. △1,076.8m봉, 1,023m봉, 임도, 902m봉에서 그렇게 내린다.
그중 막판의 902m봉 내리는 길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수적조차 없는 가시밭길을 간다. 앞뒤에서 곡소리 난다. 가파르고 미끄러워 붙드느니 가시나
무 줄기를 훑는다. 간벌지대까지 합세한다. 발목에 걸릴라 풀숲 더듬는다. 이런 험로에서는
주력에 변별력이 없다. 해피 님이 앞장서고 그 뒤를 줄줄이 따르며 자일 대용인 낭창한 나뭇
가지를 서로 인계인수한다. 쓰러진 거목 또한 대단한 장애물이다.
불과 수십 미터 아래에 보이는 농로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사면 살금살금 내렸다가 좁다
란 너덜계곡 건너고 산비탈에 드러누운 낙엽송 거목을 넘어 다시 좁다란 너덜계곡으로 떨어
지고 가시덤불숲 헤치며 나아간다. 마침내 농로다. 식겁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산모
퉁이 돌아 옥돌봉 산행 시작한 들머리다. 하이파이브는 마음을 진정하여 봉화 가는 차속에서
한다.
(부기) 그러면 그렇지 대간거사 님이 집에 더덕을 두고 왔다는 건 일부러 해본 말이었다. 그
빈말로 인해 본인은 물론 여러 사람이 설원 누비며 분발했고, 덕분에 봉화읍내 숯불갈비집에
서 모조리 자근자근 두들겨 넣은 오지산행 최상의 더덕주를 마셨다.
13. 하금정 우구치 보호수인 소나무. 산중에 이런 크기의 소나무는 수두룩했다.
14. 옥돌봉 가는 길
15. 옥돌봉 가는 길
16. 옥돌봉 가는 길의 금강송 춘양목
17. 옥돌봉 정상이 가까웠다
18. 옥돌봉 가는 길
19. 옥돌봉 가는 길, 눈꽃
20. 옥돌봉 가는 길, 눈꽃
21. 옥돌봉에서, 버들 님은 2부 산행을 포기했다
22. 옥돌봉 하산 길에서, 겨우살이들
23. 옥돌봉 하산 길의 춘양목
24. 하금정 우구치 보호수인 소나무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2부 산행 옥돌봉, 왼쪽에서 올라 오른쪽으로 내려왔다
첫댓글 ㅋㅋ 대포야 앞으로 군대생활 편하게 될거야. 덕분에 해피도 큰놈 손맛봤으니 성과가 없진안았쥬?
구룡산 정상에서 어찌 표정들이 굳어 있네요.
옥돌봉에선 환한 얼굴이 비교가 됩니다.
더덕 때문인가요? ㅋ,ㅋ.♡^.^
멋진 하루였네요.
맞아요. 구룡산 오르기까지 애만 썼지,소득은 보잘 것 없고.
필체가 가경입니다...설경도 좋고...오지산행 최고의 더덕주라니 부럽기만 합니다. ^^
우려 낸 더덕 찌기를 약간 가져와 이튿날 집에서 또 더덕주를 조제했는데
뽀얀 우윳빛이 나고 술맛도 더 좋더군요.ㅋㅋ
ㅋㅋ 그럼 그렇지~! 네요
앞으로 죽~멋진 설경 기대합니다^^
진한 더덕주 마실라꼬 꼼수를 피우셨구먼유
옥돌봉이 여러모로 명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총대장님의 오버액션첫술에 배부르랴가 아니라 첫눈에 배부른 산행이었네요..여기 저기 첫눈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수고들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