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간 곳, 강원도 정선 어느 한적한 산촌,
마당 한켠에선 한 낮인데도 자욱한 물안개가 넓은 계곡을 가득 매우며
끝없이 피어올라랐고 참으로 이색적인 풍경이 맘을 설레게 했다.
세상시름 다 거둬가려는 듯 그렇게 유유히 흘렀고, 그 계곡물소리 들으며
잠이 들고 그 물소리 들으며 또 다시 새 날을 맞이한다.
주거니 받거니 도란도란 정답게 예기 나누며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는 자연의 맑은 심성처럼 너무나 평온하게 다가왔고, 마력 같은 강한
흡입력으로 세상을 평정하며 싱그러운 산촌의 신비를 아낌없이 연출하고
있었다.
저 물들도 하나의 작은 물방울로 시작해서 더 큰 인연의 띠를 이루며
또 다른 삶을 찾아 긴 여정에서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마지막 종착지
바다로 흘러들겠지.
모든 것을 수용하는 廣大광대한 바다를 생각하니 의연하고 관대한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러나 저 물들도 흘러가다
보면 때론 예상치 못한 급류를 만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힘든 고난을
겪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치 또한 다르지 않겠지만,
그러나 자연은 섭리를 역행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세상도 저 하해河海처럼 넓고 깊은 도량을 품을 수 있다면~
전쟁이란 끔찍하고 비참한 인명살상의 비극은 지구상에 초래하지
않아도 될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참으로 평화로울 텐데......
자연의 순리를 배격하는, 어리석고 무모한 인간의 과욕으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리라.
모든 삼라만상은 자연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며 우리 인간도 그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속물인 것을!!~
그런데도 우린 위대한 자연의 존엄을 망각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떼 묻지 않은 이 곳 청정지역에도 문명의 이기는 찾아들고,
피서객을 유치하기 위한, 현대식 건물이 청정한 자연 앞에서 대립각을
새우며 대치하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이방인처럼 낯설게 보였다.
이런 시설물들이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편의시설이 되기도 하겠지만,
자연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구조물들은 태고의 자연을 훼손하는 침입
자이며 흠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충족을 얻기 위해 조개 몸을 희생시켜 취하는 양식진주 같은~
사람들은 보석이라며 반기지만, 조개에겐 고통스런 종양이자 한낱
불편한 혹일 뿐이다.
자칭, 타칭 자연주의인 나는 조석지간에 작은 자연의 소리 하나도 놓치
고 싶지 않아 모든 감각기관을 총동원하며 눈과 귀를 활짝 열어 대자연
과 벗하며 대화하며, 팍팍한 현실을 떠난 일탈의 여유를 즐기며 영혼이
살찌는 이곳에서 남은 내 생에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꾸미며 마냥 행복
한 낭만에 젖어본다.
그런데 한 낮에도 인적이 드문 외진 산골이 무서워 함게 동행한 친구가
이 신성한 청정지역에 와서 까지 굳이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정신 사나
운 예기만 늘어놓는 바람에 한껏 고무된 나의 해맑은 감성들이 급 차단
되면서 날개 짓하던 순수한 감성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군중 속 외로움이랄까,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뭔지 모를 허전함
이 냉각된 가슴에서 쓸쓸함이 엄습한다.
지금 심정 같아선 누구의 입김도 닿지 않는, 차라리 나만의 조용한 공간
이 간절해진다.
여행의 진수란~?.....어디를 가느냐,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성이 통하고 코드가 잘 맞는, 소위 공감대 형성이 잘 되는 사람과 함께
할 때가 여행의 의미를 좌우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했다.
골 깊은 그 곳 산촌에서 우주천체를 바라보는, 더 없이 좋은 입지조건에
잔뜩 기대를 걸었으나 그 곳에서 묵는 며칠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는
짓궂은 날씨의 훼방으로 밤하늘 별자리는 한 번 볼 수 없는 암흑가였다.
이 곳 청청지역에 와서 뉘엿뉘엿 기우는 석양너머로 붉게 타는 강렬한
노을을 바라보며 눈이 시리도록 영롱한 별들을 바라보며 현실일랑은
까맣게 잊고 타임머신에 몸을 맡긴 채 어린 날의 동심으로, 아득한 그 날
의 추억여행을 즐기며 마음껏 도취해보리란, 벅찬 상상을 했건만
가슴 뛰는 벅찬 꿈의 상상은 끝내 와 주지 않았다.
바라만 봐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수직을 이루다시피 한 山勢산세며,
며칠 동안 시야에 새겨진 짙푸른 청록의 산천을 뒤로하고
야속한 마음을 안고 그 곳을 떠나오던 날~
오감을 자극하던, 정겨우면서도 애끓는 듯한 계곡 물소리와 골짜기를
가득가득 채우던 물안개의 장관도 눈과 귀에 선~ 할 것 같은데......
한적한 산골, 길섶에 핀 키 작은 백일홍이 떠나는 객을 배웅하며 수줍음
타는 산골 소녀의 모습처럼 양 볼을 빨갛게 물들인 여리고 다소곳한 그
자태는 지금도 내 가슴 한켠에서 애잔하게 서성인다.
ps
피서란 걸 분명 다녀오기는 한 것 같은데~!
머무는 내 내, 하늘을 짙게 덮어버린 검은 마술에 걸린 날씨 탓에 여행이
란 실감도 나질......
갈증만 키우고 온 것 같아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어디든 골 깊은 초자연
속으로 떠나고 픈 유혹만 증폭되고~
좀 더 만족할 수 있는 피서를 하고 오면 이 후유증을 잠재우려나......
하지만 수정 같이 맑은 물에 옥색물감을 풀어 놓은 듯, 짙은 청량감을 더
해주던 수심 깊은 계곡 물소리며 이른 새벽이면 알람처럼 나의 단잠을
깨우던, 구슬 구르는 낭랑한 계곡 물소리는 오래도록 환청으로 남아서
나의 뇌리에 맴돌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