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발간하는 월간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6년 4월호(https://ruscis.hufs.ac.kr)에서 K-pop의 영향으로 카자흐스탄에서 Q-pop이 등장하고 확산하는 과정을 짚어보면서, 한-카자흐 문화 교류는 이제 일방 통행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주고받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면 과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Shaikulova Aisulu(석사 수료,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문화의 「수출」을 넘어 「공진」으로:한-카자흐 문화 협력의 질적 전환을 향하여' 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의 대학 강의실과 문화 행사장에서는 한국어 인사말, K-pop 커버댄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소위 ‘한류 열풍’으로 설명하지만, 일시적인 문화 유행 현상으로 설명하기에는 그 영향력과 지속성이 상당하다.
교육과 문화는 국가 이미지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원이며, 국제 정치의 맥락에서 이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핵심 구성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2025년 5월 타계한) 조셉 나이(Joseph S. Nye) 미 하버드대 교수는 소프트 파워를 “강압이나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매력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즉, 소프트 파워(문화, 교육 등)를 통해 국가는 하드 파워(군사력, 경제력)와는 다른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문화 교류는 소프트 파워를 행하는 발신국의 문화가 수용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수용국의 언어·정체성·산업 환경 속에서 재해석되고서 변형되기도 한다. 특히 수용국 사회의 맥락 속에서 해당 문화가 해석되고 토착화되는 재구성 과정은 소프트 파워의 지속 가능성과도 긴밀히 맞물려 있다. 문화적 영향력은 일방적인 전파에 그칠 때보다, 현지 문화와의 접점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상호 작용할 때 그 수용의 폭과 깊이가 확장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한편 수용국 역시 발신국 내에서 자국 문화를 소개하며 교류의 접점을 넓히고자 하며, 이는 양국 간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계기가 된다. 나아가 이러한 흐름은 단방향적인 소프트 파워의 전개를 넘어, 양국 간 문화 교류의 확대를 통해 협력의 질적 심화를 도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우선 카자흐스탄 내 한국 교육·문화의 확산 경로와 현지 사회의 재해석 방식을 고찰한다. 특히 현지의 자생적 문화 현상인 ‘Q-pop’(큐팝)과 더불어, 최근 한국 사회 내에서 관찰되는 카자흐스탄의 문화 알리기 및 교류 행사들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이는 외래문화가 현지 맥락과 결합하여 어떻게 변용되는지, 그리고 수용국 또한 발신국 내에서 자국 문화를 가시화하며 교류의 접점을 어떻게 확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같은 변화를 바탕으로, 공급 중심의 일방향적 확산을 넘어 양국이 함께 지속 가능한 교류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적 과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카자흐스탄 내 한국 소프트 파워의 확산
카자흐스탄에서 한국 소프트 파워의 확산은 교육 및 문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먼저, 교육 분야는 세종학당과 카자흐스탄 초·중등·고등 교육 기관 내에서 한국학 관련 교과목 개설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세종학당은 이제 카자흐스탄 전역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수도 아스타나와 경제적 중심지 알마티라는 거점을 넘어, 남부 심켄트와 북부 코스타나이까지 그 지평을 확장한 것이다. 이는 한국 문화에 대한 열망이 특정 대도시를 넘어 카자흐스탄 사회 전반의 보편적 현상으로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세종학당이 한국 문화 확산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면, 카자흐스탄 공교육 현장에 뿌리내린 한국어 교육은 현지 사회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 카자흐스탄 내 10여 개 주요 대학에 한국학 및 한국어 전공이 개설되었을 뿐 아니라, 20여 개 초·중등 학교에서도 정규 수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는 한국어 교육이 일부 전공생의 학술적 관심을 넘어, 미래 세대 전반으로 폭넓게 확산되며 교육 현장이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양국 간 인재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 또한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한국에서 수학하는 카자흐스탄 유학생 수는 2011년 276명에 불과했으나, 2024년에는 1,516명에 달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양국의 교류가 단기적인 한류 열풍을 넘어, 장기적인 인적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실질적인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한국 고등교육의 국제화와 맞물려 유학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카자흐스탄 청년층에게 한국이 미래를 설계하는 매력적인 교육 목적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문화 영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관찰된다. 일례로 2022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K-pop 커버댄스 챔피언십에는 전국 16개 지역에서 76개 팀이 출전하며 그 뜨거운 저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러한 행사는 단순한 팬덤 활동을 넘어 K-pop이 현지 청년층의 여가와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한국어를 배우는 강력한 동기부여의 접점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 카자흐스탄 K-pop 커버댄스 챔피언십/사진출처:주카자흐 대사관
한국 문화는 이제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외래문화를 넘어, 청년층의 일상과 문화적 실천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하나의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지표들은 한국이 강력한 문화 발신국으로서 입지를 굳혔음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일방향적 흐름에 따른 ‘문화적 비대칭성’이라는 과제도 안겨준다. 한국 소프트 파워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전파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의 호혜적 관계로 진화할 때 비로소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K-pop의 문법을 자국화한 ‘Q-pop’의 사례와, 한국 사회 내에서 자국 문화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카자흐스탄의 시도는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일방적 수용을 넘어 양국이 함께 문화를 구축해가는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한류의 씨앗, 카자흐스탄의 꽃으로: Q-pop이 보여준 재해석의 힘
Q-pop은 K-pop의 음악적 형식과 아이돌 육성 시스템, 화려한 퍼포먼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그 알맹이는 카자흐어 가사와 현지 청년층의 정체성으로 채워 넣은 독특한 장르다. 이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카자흐스탄 내 영향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현지 사회가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토착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Q-pop은 단순한 모방의 단계를 넘어 글로벌 대중문화의 문법과 카자흐스탄의 민족적 자부심이 맞물려 탄생한 창의적 융합의 산물이다. 최근 Q-pop은 현지 음악 산업의 구조적 성장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청년들에게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화적 구심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점은 Q-pop을 단순한 ‘한류의 파생 현상’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Q-pop은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권 아래 탄생했으나, 동시에 카자흐스탄 사회가 자국의 언어와 정체성을 투영해 빚어낸 독자적 산물이다. 즉, K-pop은 현지에 그대로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요구를 통과하며 새로운 장르적 형태로 변주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소프트 파워가 단순한 ‘문화 수출’의 단계를 넘어, 발신국의 문화를 현지에 능동적으로 재해석하고 생산함으로써 문화적 접점을 다변화하고 공동 생성되는 문화적 가치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글로벌 문화 연구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아르준 아파두라이(Arjun Appadurai)는 세계화된 문화 흐름 속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며 새로운 형식이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이와부치 고이치(Koichi Iwabuchi) 역시 초국적 문화 이동이 지역 사회의 ‘재의미화’ 과정을 거쳐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Q-pop은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현지의 조건 속에서 창의적으로 재구성되며 새로운 문화적 표현으로 확장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카자흐스탄 내 한류를 단방향적인 문화 소비의 틀로만 해석하는 것은 현상의 역동성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있다. Q-pop 사례는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문화적 관계가 일방적 전파를 넘어, 수용 사회의 능동적 참여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매력이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방향의 흐름을 보완하고 향후 ‘상호 호혜적인 문화 교류’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국 내 카자흐스탄 문화의 가시성 확대
카자흐스탄 역시 한국 사회 안에서 자국 문화의 가시성과 매력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 내에서 자국 문화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5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카자흐 쿠릴타이(Qurlytay of Aisan Kazakhs)를 들 수 있다. 이 행사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카자흐 공동체를 연결하는 동시에, 그들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과 네트워크를 한국 대중에게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적 자원의 이동 경로에서도 그 상호성을 엿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 인재들이 한국으로 향하는 흐름이 지배적인 가운데, 한편으로는 카자흐스탄 정부가 2019년부터 외국인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여 카자흐스탄 현지 대학에서 학업을 수행하며 언어와 문화를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한국의 정부초청장학(GSK) 프로그램과 유사한 이 제도는 한국 청년들 또한 카자흐스탄 정부의 지원 아래 현지에서 수학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인 것이다.
이러한 장학 제도는 양국 간 인적 교류가 단순히 한쪽으로만 쏠리는 구조를 보완하고, 상호 방문과 학습이 가능한 쌍방향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카자흐스탄 또한 상호 이해를 위한 교류 채널의 창을 구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카자흐스탄 문화 협력의 가능성과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카자흐스탄 공공외교는 한국의 문화·교육 전파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현지에서 독자적인 장르로 변주되거나 새로운 교류 양상이 나타난다. 카자흐스탄 내 K-pop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Q-pop은 외래문화가 현지 음악 산업과 결합하여 나타난 변용의 사례이다. 나아가 한국 사회 내에서 카자흐스탄의 문화적 가시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도 관찰된다.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카자흐 쿠릴타이나 카자흐스탄 정부의 외국인 대상 장학 제도는 자국 문화와 교육 자원을 한국에 소개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자체적인 공공외교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양국의 공공외교 사례가 교차하는 지점들은 향후 양국이 상호 호혜적인 문화 교류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현재의 구도는 정책적 자원 투입의 격차로 인해 비대칭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각국의 공공외교 전략 역시 투입 규모와 도달 범위에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최근 관찰되는 개별적인 문화 현상들이 단발적 사건에 그치지 않고, 양국 공공외교의 접점이 확대되는 흐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구조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문화 전파를 넘어, 발신된 문화 자산이 상대국 내에서 자생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양측의 각기 다른 공공 외교 시도들이 유기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공식적인 채널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정책적 과제가 고려될 수 있다.
첫째, 공동 문화 콘텐츠 제작을 위한 플랫폼 구축이다. Q-pop 등에서 확인된 문화적 접점을 실질적인 공동 생산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때, 교류는 단순 소비를 넘어 생산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둘째, 한국 내 카자흐스탄 언어 및 문화 교육 인프라의 점진적 확충이 요구된다. 카자흐스탄 내 한국어 교육 인프라에 비해 국내의 관련 교육 기반은 미비한 실정이다. 대학 및 교육 기관을 중심으로 카자흐어와 현지 문화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상호 이해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필수 조건이다.
셋째, 양국 간 인적 자원을 연계하는 동문 네트워크 및 공동 학술 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양국을 경험한 유학 인력을 체계적으로 연결하고, 사회·문화적 현안을 공동 연구하는 체계를 마련함으로써 교류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한-카자흐스탄 관계가 일방적 흐름을 넘어 보다 균형 있는 교류 구조로 안착하기 위한 핵심적인 경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