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陶淵明, 365~427)을 존경하여 천석고황(泉石膏肓)의 마음으로 평생 유량과 은둔생활을 하며 술과 가야금을
벗 삼아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사랑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이른 봄 매화를 찾아 당나귀를 타고 장안에서 파교를 건너
눈 덮인 산으로 길을 떠.났다고 한다.
맹호연의 고사는 탈속하고 고아한 선비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파교심매, 설중탐매(雪中探梅)의 모습으로
그림에 등장한다. 이들 그림에는 눈이 가득 쌓인 적막한 산골에 핀 매화와,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선비, 그리고 매화음(梅花飮)에 필요한 음식과 술 그리고 시를 짓기 위한 문방구 등을 담은 보따리를
들고 따르는 시동이 등장한다.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60세 때인 1766년에 그린 이 그림도 맹호연의 고사를 소재로 한 것이다.
나귀를 타고 파교를 건너려는 선비와 그를 따르는 시동이 화면의 초점을 이루고 있으며, 그 주위는
삭막한 겨울 풍경이 에워싸고 있다. 전체적인 구도나 인물의 묘사에서 [고씨화보(顧氏畵譜)]의
곽희본(郭熙本)과 장로본(張路本)을 참고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라 껍질 모양의 언덕과
가지만 남은 헐벗은 한림(寒林), 그리고 화면을 압도하듯 솟아난 둥글둥글한 산 모양이라든가
구불구불한 필선들은 심사정 만년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표암 강세황은 이그림이 중국 전통 산수화인 남송문인화산수화풍따라 그려진 것으라 지적하였다.
이를 중국의 竹林七賢圖와 灞橋風雪圖에 나귀 탄 맹호연과 비교해 본다. 유감스럽게도 발제문이
잘려나갔지만 맹호연을 닮아보려는 灞橋尋梅圖에서 玄齋 沈師正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灞桥:桥名。本作霸桥 。据《三辅黄图·桥》: 霸桥 ,在 长安 东,跨水作桥。 汉 人送客至此桥,折柳赠别。
后常用“灞桥”的典故,表示送别之地。‘诗思在灞桥风雪中驴子上,此处何以得之?’”
灞桥(파교)는 中國 陕西省 長安(西安)市 동쪽에 있고 灞桥折柳, 灞橋風雪圖로 보아 강세황의 감식처럼 남송전통산수화풍
진경산수로 보여집니다. 이 진경산수는 사진처럼 정밀한 현대산수화에 의해 도태되지만,
함의돤 멋과 분위기만큼은 현대산수화와 비교할 바가 못됩니다..
'诗思在........
春 曉 孟浩然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봄에 잠들어 새벽인 줄 몰랐더니, 이곳 저곳에서 새 소리 들리네
지난 밤 비 바람에, 꽃들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봄날 새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시인이 간밤의 비바람에 꽃잎이 얼마나
떨어졌을지를 걱정하는내용이지만, 시인의 섬세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에 울고 웃는 시인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孟浩然이 젊은 시절 鹿門山에 은거할 때 지은 시로. 孟浩然은 襄陽( 지금의
호북성 양양시) 출신으로, 40세가 될 때까지 양양부근의 녹문산에서 독서와
시작으로 소일했으며, 40세가 되어서야 수도인 長安으로 나아갔다.
孟浩然은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孟山人으로도 불린다.
孟浩然은 王維의 시친구로, 짧은 오언시로 산수 전원과 은거의 감정 및
객지 생활의 심정을 잘 그려냈기 때문에 흔히 산수전원파 시인으로 불린다.
첫댓글 그림 감상 잘 하고
설명에 감사합니다.
조선시대회화전집 제3권을 경비아저씨 드릴려고 꺼내놓았습니다
경비실 벽면에 산수화가 바꼈습니다.
마음이 편해져서 한 질을 더 드리려합니다.
고맙지요 산수화 사랑해주시는 분들 고맙지요
보내면서 그 중 灞橋尋梅圖 다시 한번 더 봅니다
저도 石隅님의 글을 보며
즐거운 배움을 느끼고 갑니다
항상 감사드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