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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의 옥웅룡과 <삼국유사>
1984년 중국 요녕성 우하량에서 적석총을 발굴하던 도중에 한 쌍의 옥룡(玉龍)이 출토되었다. 발굴되는 유물과 유적이 대부분 ‘사상 처음’이고 ‘인류사 최고(最古)’인 홍산문화의 일부다. 서로 대응하는 모습의 C자형 옥룡은 면밀한 검토 후 웅룡(熊龍)으로 명명되었다.
이른바 옥웅룡(玉熊龍)이다. 풀이하자면 옥으로 만든 곰과 용 모양의 형상물이다. 옥과 곰, 용의 의미가 이 유물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해석하는 키워드다.
옥은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상징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옥을 ‘오덕五德을 갖춘 아름다운 돌’이라 하였고, 공자는 ‘군자는 옥으로 덕을 견준다’고 하였다.
『주역』「설괘전(說卦傳)」에서는 팔괘의 첫째인 건괘(乾卦)의 성격을 옥(玉)으로 표현하였다. 그 까닭은 옥玉이 하늘의 빛깔과 하늘의 신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홍산문화 유적지 전체에서 옥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곰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삼국유사』의 ‘일웅일호(一熊一虎)’다. 바로 곰을 토템으로 섬기는 웅족(熊族)을 말한다. 홍산인들이 곰을 얼마나 신성시 했는지는 우하량의 여신묘 터에서 여신상과 함께 곰 소조상이 나온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용은 동북아에서 경이롭게 모셔지는 동물로 봉황과 함께 천자天子를 상징한다. 역대 황제와 왕들이 곤룡포(衮龍袍)를 입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상징하는 청와대의 문장(紋章)이 봉황이다. 용봉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천자(天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준말이다. 천자는 하나님이신 상제님을 대행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의 ‘Son of God’이라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천자가 등극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하늘의 상제님께 제사를 지내는 천제天祭를 올리는 일이었다.
예로부터 천자는 통치자이며 스승이었고 신의 뜻을 전하는 대무(大巫)였다. 우리는 무당을 단골로 불렀다. 단골은 단군으로 제사장을 뜻하고, 왕검은 통치자의 의미다. ‘단군왕검’은 정치와 종교, 정교(政敎)가 합일(合一)된 호칭이다. 동방 신교(神敎,以神設敎)에서는 예로부터 군사부(君師父) 일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천자는 다스리는 군君이자, 가르치고 깨우치는 스승(師)이고 새로운 생명을 열어주는 아버지(父)다. 군사부 문화가 신교神敎의 삼신문화에서 나왔다. 또한 군사부는 삼신(三神)의 현현顯現인 천지인의 덕성이기도 하다.
동방의 한민족은 원래 천자(天子)의 나라
천자는 동이의 호칭 처음으로 천제자(天帝子)라는 말을 쓴 것은 배달국 환웅 때부터였다. 환인, 환웅, 단군 이들은 상제님으로부터 국가건설과 통치의 대권을 신탁받아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나라를 다스렸다. 한민족사 최고의 전성기인 단군조선은 몽골, 티벳, 흉노, 중국 대륙 전체와 한반도, 일본을 아울러 산하에 70여개의 제후국을 거느린 대제국(大帝國)이었다.
중국에서는 6국을 통일한 진秦왕 영정(嬴政)이 최초의 천자로 ‘황제皇帝’가 되었다. 이 천자문화가 한민족에게서 유래했음을 중국의 역사서에서도 증명하고 있다.
한나라의 채옹이 지은『독단(獨斷)』에 보면 “천자는 동이족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라 부른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는 대목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치우는 구려의 천자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孔安國曰 九黎君號가 蚩尤라.(『사기색은史記索隱』), 應劭曰 蚩尤는 古天子之號라(『사기집해史記集解』), ]라고 하였다.
열국시대에서 고려까지 대부여를 계승한 북부여는 물론이고 해모수의 후예, 고주몽이 건국한 고구려 역시 천자가 다스리던 나라였다. 천자국 고구려인들의 자부심이 만주 집안현(集安縣)에 1,5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에도 잘 나타난다.
비문에는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라는 문구가 있어 그들이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발해) 역시 당나라에 예속된 지방정권이 아니라 당당히 천자국의 위상을 떨친 독립국이었다.
최근에 발굴된 상경성의 제2궁전지의 전면이 19칸인 사실(당나라 장안성의 함원전은 11칸)과 1980년 발견된 정효공주의 묘지명에서 그 아버지인 문왕을 ‘황상皇上’이라 부른 것이다. 왕비의 묘비명에서 황후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고려 역시 출발은 천자국이었다. 태조 왕건은 천수天授, 광종은 광덕光德, 준풍峻豊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수도 개성을 황도皇都라 일컫고 원구단을 설치하여 천제天祭를 올렸다.
※ 甲午三十四年이라 十月에 東明國高豆莫汗이 使人來告하야 曰我是天帝子라 將欲都之하노니 王其避之하라한대 帝難之러시니 是月에 帝憂患成疾而崩하시고 皇弟解夫婁가 立하시니라.
재위 34년 갑오(단기 2247, BCE 87)년 10월에 동명국(東明國)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로다. 장차 여기에 도읍하고자 하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 하니, 임금께서 난감하여 괴로워하셨다. 이 달에 고우루단군께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아우 해부루解夫婁가 즉위하였다. (「북부여기 上」)
※ 時에 下夫餘人이 將欲殺之어늘 奉母命하사 與烏伊摩離陜父等三人으로 爲德友하시고 行至岔陵水하사 欲渡無梁이라 恐爲追兵所迫하야 告水曰 我是天帝子오 河伯外孫이라 今日逃走에 追者垂及하니 奈何오 於是에 魚鼈이 浮出成橋하야 始得渡하시고 魚鼈이 乃解하니라.
당시 동부여 사람들이 주몽을 죽이려 하므로, 주몽이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세 사람과 친구의 의를 맺고 함께 길을 떠났다. 차릉수岔陵水에 이르러 강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뒤쫓아 오는 군사들에게 붙잡힐까 두려워하여 강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상제님)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으로 오늘 달아나는 길인데 쫓는 자가 다가오고 있으니 어찌하리까?” 하니, 물속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수없이 떠올라 다리가 되었다. 주몽이 물을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졌다.(「북부여기 下」)
중국으로 전해진 천자문화(天子文化) 금간옥첩(金簡玉牒) 전수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동북아에는 9년 홍수라는 사상 최대의 대재난이 있었다. 당시 초대 단군왕검은 우주변화원리로 무사히 홍수를 다스렸는데, 중국의 순임금은 홍수를 다스리지 못해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때 순(舜)의 신하 사공司空 우禹가 도산塗山에서 단군왕검의 큰아들 부루 태자에게서 오행치수법(금간옥첩)을 전수 받아 홍수를 다스리게 된다. 그 공덕으로 우는 하夏 왕조를 개창하게 되는데 그가 죽기전에 부루태자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자기를 회계산(도산)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오월춘추』)
우禹가 전수받은 금간옥첩은 치수의 요결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道와 동방 단군조선(고조선)의 정치제도와 문화가 수록된 국가 경영지침서다. 여기에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의 내용도 실려있었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이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왔다. 즉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 있는 금간옥첩(金簡玉牒)이 전해짐으로써 단군조선의 천자문화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 汝后請予하야 以欲導治水土하야 拯救百姓일새 三神上帝가 悅予往助故로 來라
너희 임금(순임금)이 나에게 수토를 다스려 백성을 구해 주기를 청원하니, 삼신상제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는 것을 기뻐하시므로 왔노라 (『태백일사』 「번한세가上」)
※ 且其五行治水之法과 黃帝中經之書가 又出於太子扶婁오 而又傳之於虞司空하고 後에 復爲箕子之陳洪範於紂王者가 亦卽黃帝中經과 五行治水之說이니 則蓋其學이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니라.
또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黃帝中經)』이 부루태자에게서 나와 우虞 사공司空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箕子가 은나라 주왕紂王에게 진술한 홍범구주(洪範九疇) 또한『황제중경』과 오행치수법이다. 대저 그 학문은 본래 배달 신시 시대의 구정법(邱井法)과 균전법에서 전해져 내려온 법이다.『( 태백일사』「 신시본기」)
하·상·주 3왕조는 단군조선(朝鮮)의 제후국 하夏나라에서 상商나라로 교체될 때에도 단군조선의 힘이 작용하였다. 상나라 개국공신 이윤은 단군조선 11세 도해단군 때의 국사(國師) 유위자의 제자였다. 상나라 말기의 도읍지였던 하남성 안양시 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궁전, 성벽, 무덤 등이 동북방(단군조선)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단군조선을 상국上國으로 지극히 받들었음을 보여준다. 상나라 다음으로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주周나라도 그 창업 당시부터 단군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은 병력과 전차를 보유한 상商나라 군대를 이기기 위해서 주周 무왕은 동이족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무왕을 도운 동이족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강태공이다. 주周나라도 이전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단군조선에 조공(朝貢, tribute) 과 방물(方物)을 바쳐 예를 표했다.
『단군세기』에는 주나라 왕 하가 단군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친 일, 32세 추밀단군 때 주나라가 번조선에 방물方物을 바친 기록이 있다. 하·상·주 중국 3왕조는 모두 단군조선을 문화의 종주로 모시던 제후국이었다.
※ 是歲冬에 殷人이 伐夏한대 其主桀이 請援이어늘 帝以邑借末良으로 率九桓之師하사 以助戰事하신대 湯遣使謝罪어늘 乃命引還이러시니 桀이 違之하고 遣兵遮路하야 欲敗禁盟일새 遂與殷人으로 伐桀하시고 密遣臣智于亮하사 率畎軍하시고 合與樂浪하사 進據關中邠岐之地而居之하시고 設官制하시니라.
이 해(BCE 1767) 겨울, 은殷 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치자 하나라 왕 걸桀이 구원을 청하였다.(13세 흘달단군)임금께서 읍차邑借 말량末良에게 구환의 병사를 이끌고 전투를 돕게 하셨다. 이에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므로 군사를 되돌리라 명하셨다. 이때 걸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어 길을 막고 맹약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께서 마침내 은나라 사람과 함께 걸을 치는 한편, 은밀히 신지臣智 우량于亮을 보내어 견군畎軍을 이끌고 낙랑樂浪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邠·기岐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官制를 설치하셨다.「( 단군세기」13세 흘달단군)
천자국의 위상이 무너지는 과정- 고려의 쇠망
고려 초기에는 천자국으로서 당당히 건원칭제(建元稱帝)를 하였다. 고려는 예종 때 와서 윤관(尹瓘·1040~1111)을 앞세워 여진을 물리치고 동북쪽에 9성을 구축함으로써 고구려의 후예라는 건국이념에 보다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나 동북 9성은 설치된 지 1년 만에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고 매년 공물을 바친다’는 언약을 받고 다시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된다.
이후 여진은 성장을 계속하여 9성을 환부받은 지 6년째에 금나라를 세운고, 드디어 고려 인종 3년(1125년),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는 유화적인 태도를 거두고 고려에 군신君臣관계를 강요해 왔다.
전쟁을 두려워한 고려 조정은 금나라에 상표上表를 올리고 스스로 신하라고 칭신稱臣하였다. 고려를 부모로 섬기던 여진족을 이제 고려가 임금의 나라로 섬기게 된 것이다. 유교식 정치체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고려는 어느 새 문약(文弱)에 빠져 버렸다.
이후 고려는 금나라와 송나라의 연호를 쓰기 시작하며 사대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고려 말엽에는 세계 제국을 건설한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이 시작되면서 황제국 고려는 제후국으로 전락하였고, 국왕에 대한 칭호는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었다. 그 첫째 왕인 충렬왕은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을 왕비로 맞았다. 이후로 고려는 줄곧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다. 환국, 배달, 조선(단군조선) 이래 줄곧 천자국이었던 고려의 위상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고려 말기의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7~1364) 때에는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더욱 강화되어 오잠, 류청신 등이 국호 ‘고려’를 폐지하고 원나라의 일개 성(城)이 되고자 하는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고, 원으로부터 ‘원나라의 삼한성(三韓省)으로 한다’는 칙령이 내려오기도 하였다.
이즈음 이존비(李尊庇, 1233~1287)와 이암은 상소문을 통해 자주독립정신을 상실한 고려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 本國이 自桓檀朝鮮北夫餘高句麗以來로 皆富强自主하고 且建元稱帝之事는 至我太祖初하야 亦嘗行之나 而今則事大之論이 定爲國是하야 君臣上下가 甘受屈辱하고 不圖所以自新하니 其畏天保國則誠美矣어니와 奈天下後世之笑에 何.
우리나라는 환단.조선.북부여.고구려 이래로 모두 부강하였고 자주를 유지하였다. 또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칭한 일은 우리 태조 때에 이르러서도 일찍이 실행하였으나,
지금은 사대事大의 주장이 국시로 정해져 있어 군신상하가 굴욕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방법을 도모하지 않으니,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고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진실로 훌륭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천하 후세의 비웃음은 어찌하겠사옵니까?「( 고려국본기」-이존비의 상소문)
※ 國界를 不可破也며 民俗을 亦不可混也니이다. 况我國이 自桓檀以來로 皆稱天帝之子하고 行祭天之事하니 自與分封諸侯로 元不相同이오 今雖一時爲人轅下나 旣有魂精血肉하야 而得一源之祖하니 是乃神市開天과 三韓管境之爲大名邦於天下萬世者也니이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고 제 풍속으로 민속을 삼으니, 나라의 경계를 깨뜨릴 수 없으며 민속 또한 뒤섞이게 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환桓·단檀(환국-배달-고조선) 시대 이래로 모두 천상 상제님의 아들(천제자天帝子, 天子)이라 칭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니 자연히 분봉을 받은 제후와는 원래 근본이 같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일시적으로 남의 굴레 밑에 있으나 뿌리가 같은 조상[一源之祖]에게 물려받은 정신과 육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배달의) 신시개천神市開天과 (고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이 천하 만세에 대국으로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 것입니다.「( 고려국본기」 -이암의 상소문)
조선왕조의 멸망
고려를 계승하여 새롭게 열린 조선왕조는 고려 때보다 더한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조선 사회는 철저한 모화사대주의(慕華事大主義) 사회였다. 선비들은 말끝마다 명나라를 본조本朝 또는 천조天朝, 성조聖朝라고 했고 조상의 비문에도 항상 유명조선(有明朝鮮),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라고 내세웠다.
조상의 비문에도 항상 유명조선(有明朝鮮), 명나라에 속한 조선이라고 내세웠다.
유교를 국교로 숭상한 조선은 개국초 태종 때에 서운관에 보관되어 있던 한민족의 고유사서를 이단이라 하여 모조리 소각하였다. 그 이후 세조에서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사서수거령을 내려 유교 지상주의에 반하는 수많은 사서들을 압수, 소각하였다. 이는 자기 스스로 자기의 역사를 파괴하는 해괴한 행위다. 이미 국초國初부터 망국으로 가는 비운의 단초가 시작된 것이다.
1910년의 경술국치는 사실상 죽어가는 환자의 숨통을 일본이 와서 끊은 것에 지나지 않다. 조선은 이미 정신적으로 한·중합병으로 망한 상태였다. 조선의 명운이 촛불처럼 꺼져가던 1897년 고종 임금은 원구단에서 천제를 올리고 스스로 천자의 보위에 올라 새로운 국호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비록 대한제국은 곧바로 망했지만 이 사건은 끊어진 한민족의 천제문화의 맥을 되살리고 동방의 한민족이 본래부터 천자국임을 만천하에 알린 역사적인 대사건이다.
바야흐로 동북아는 역사전쟁이다. 일본은 자국의 교과서까지 왜곡하면서 집요하게 독도 침탈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통해 만주 지역에 있었던 우리의 고대사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강탈해갔다. 이러한 역사전쟁의 이면을 보면 한·중·일 삼국三國이 사실상 천자국의 종주권宗主權싸움을 하고 있다.
천자국이 되면 인류문명의 종주국宗主國이자 장자국長子國의 위치에 서게 된다.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는 나라’라고 해서 나라 이름을‘ 중화中華’라고 한다. 그들은 급속도로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으로 패권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름 그대로 자신들이 인류 역사의 천자국임을 내세워 앞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넘버원 행세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근본’이라는 일본日本 역시 그들의 왕을 천황天皇이라고 해서 진짜 천자국임을 표방한다. 천자국이 성립되려면 제후국을 점령하여 다스린 역사가 필요하다.「 임나일본부」라는 가공의 역사가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다. 독도 침탈 야욕이 끊이지 않는 것 역시 그 깊은 심연에는 천황제가 자리잡고 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이 천자국 다툼을 벌이는 것은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자 동북아의 원형 문화인 홍산문화에 대한 소유권 다툼을 벌이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를 쓰는 우리가 홍산문화의 주인공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드러난 유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고, 역사기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바로 천자 문화의 고향, 동방의 한민족으로 삼신상제님께서 오셨다. 인간으로 오신 증산甑山 상제님(1871~1909)께서는 동방의 한민족이 다시 천자국의 위상을 회복할 것을 말씀하셨다.
제 뿌리를 못 찾고 환부역조하는 조선인을 경계하심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이 無依無托하니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不可不 文字戒於人이니라
불가불 문자계어인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道典 5:347)
※ 장차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道主國)이 되리라. (증산도 道典 7:83)
한국이 세계의 일등국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조선이 중국을 대국이라 칭한 고로 중국 인종이 조선 사람보다 큰 것이니라. 또 대국의 위에 특대국이 있으니 이는 곧 서양이라. 그러므로 서양 인종이 제일 크니라. 그러나 앞으로는 조선이 세계의 일등국이 되리니 선생국의 인종이 서양 사람보다 작아서야 쓰겠느냐. 내가 너희들의 키를 여섯 자 여섯 치로 쭉 늘여 뽑으리라.” 하시니라.
이 때 한 성도가 여쭙기를 “일등국이 되려면 전쟁으로 세계 각국을 다 이겨야 되지 않습니까?”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넌 왜 그리 멍청하냐? 세계 사람들이 ‘선생님’이라 하면 일등국이 될 것 아니냐.” 하시니라.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
상제님께서 안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 해동조선에 지상천국을 만들리니 지상천국은 천상천하가 따로 없느니라.” 하시며, “장차 조선이 천하의 도주국(道主國)이 되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7:83)
진묵대사를 선경 건설에 역사케 하심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으로 돌아와 선경 건설에 역사하게 하리라.(증산도 道典 4:14)
상제님께서 태전으로 들어가시며 말씀하시기를 “우리 일에 말이 들어야 한다.”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얼마를 더 가시다가 문득 한 자리에 멈추어 서시더니 오른발로 땅을 힘껏 세 번을 구르시며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이곳이 제왕지지(帝王之地)니라! 여기서 왕이 나온다! 장차 여기에서 전무지후무지법(前無知後無知法)이 나오리라. 태전을 집을 삼고 인신합덕(人神合德)을 하리니 태전이 새 서울이 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오로봉전이십일(五老峰前二十一)이 아니라 오로봉전태전이니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만국을 살려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피고, 도술 문명의 대운은 우주 저 끝까지 통하리라. 이후 상제님께서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부르시니 성도들도 따라서 종종 읊조리니라.(道典 5:306)
한국은 온 인류 구원의 나라
상제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닥쳐오면 달리 방도가 있나니, 너희들에게 명하여 때를 기다리게 하였다가 때가 오면 천하에 쓰도록 할 것이니라.
세상 모든 나라들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진멸의 지경이 되었다가 너희들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 이후에 세계의 만백성들이 너희들을 맞아다가 진수성찬(珍羞盛饌)을 차려 놓고 한바탕 풍류를 펼쳐 크게 환대하리라. 그 때 너희들의 영락이 지금 내 눈에 선연하니라.” 하시니라.(道典 7:51)
道典 5:399) “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朝)에 장사지내고, 최수운을 초혼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에 장사하노라.” 하시니라. 이어 성도들에게 24절을 읽히시며 “그 때도 이 때와 같아 천지에서 혼란한 시국을 바로잡으려고 당 태종(唐太宗)을 내고, 다시 24절에 응하여 24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나니 너희들도 장차 그들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리라.” 하시니라.(道典 5:399)
나의 운수는 더러운 병 속에
7월에 제비창골 삼밭에서 공사를 보신 뒤에 성도들을 거느리고 서전재 꼭대기 십자로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손사풍(巽巳風)을 불리시며 장질부사 열병을 잠깐 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만하면 사람을 고쳐 쓸 만하도다.” 하시고, 손사풍을 더 강하게 불리신 후에 “손사풍은 봄에 부는 것이나 나는 동지섣달에도 손사풍을 일으켜 병을 내놓느니라. 병겁이 처음에는 약하다가 나중에는 강하게 몰아쳐서 살아남기가 어려우리라. 나의 운수는 더러운 병(病) 속에 들어 있노라.” 하시니라.
병목이 너희들 운수목
이에 갑칠이 여쭈기를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치병을 하시면서 병 속에 운수가 있다 하심은 무슨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속담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병목이 없으면 너희들에게 운수가 돌아올 수가 없느니라.
병목이 너희들 운수목이니 장차 병으로 사람을 솎는다.” 하시고, “내가 이곳에 무명악질(無名惡疾)을 가진 괴질신장들을 주둔시켰나니 신장(神將)들이 움직이면 전 세계에 병이 일어나리라. 이 뒤에 이름 모를 괴질이 침입할 때는 주검이 논 물꼬에 새비떼 밀리듯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세상이 한바탕 크게 시끄러워지는데 병겁이 돌 때 서신사명 깃대 흔들고 들어가면 세계가 너희를 안다. 그 때 사람들이 ‘아, 저 도인들이 진짜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5:291)
제 뿌리를 못 찾고 환부역조하는 조선인을 경계하심
朝鮮國 上計神 中計神 下計神이 無依無托하니
조선국 상계신 중계신 하계신 무의무탁
不可不 文字戒於人이니라
불가불 문자계어인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道典 5:347)
하루는 공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옛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七八年間古國城은 畵中天地一餠成이요
칠팔년간고국성 화중천지일병성
黑衣飜北風千里하고白日頃西夜五更이라
흑의번북 풍천리 백일경서야오경
칠팔 년 동안에 고국성은 그림 속의 세상, 한 조각의 떡과 같네. 검은 옷이 북쪽으로 나부끼니 바람은 천 리에 이르고, 환한 해가 서쪽으로 기우니 밤이 벌써 깊었구나.
고국성(古國城):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유서 깊은 문화국가를 말한다.
東起靑雲空有影하고 南來赤豹忽無聲이라
동기청운공유영 남래적표홀무성
虎兎龍蛇相會日에 無辜人民萬一生이니라
호토용사상회일 무고인민만일생
동쪽에서 일어난 푸른 구름은 허공에 그림자만 드리우고, 남쪽에서 온 붉은 표범 홀연히 소리를 죽이는구나.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이 서로 만나는 날에 아무 죄 없는 창생들이 무수히도 죽겠구나.(道典 5:408)
※ 시두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道典 7:63)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에 꽂으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꾼이 콩밭(太田)에서 낮잠을 자며 때를 넘보고 있느니라.” 하시고, “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太田)에 꽂았느니라.” 하시니라.
작은 서울이 큰 서울 되리니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새 세상이 오면 서울이 바뀌게 되느니라. 큰 서울이 작은 서울 되고, 작은 서울이 큰 서울이 되리니 서울은 서운해지느니라.
허미수(許眉叟)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나는 하루 만에 36만 칸 옥경대(玉京臺)를 짓느니라. 금강산 구룡폭포의 금(金)이 서해바다에 와 묻혔나니 장차 36만 칸 옥경대의 상량이 되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5:136)
허미수(許眉叟)는 하루 만에 강선루(降仙樓)를 지었다 하나: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읍 비류강 기슭에 있던 고려시대의 누각. 성천 객사의 부속 건물이었다. 관서팔경의 하나로 꼽혔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道典 5:184) 상제님께서 순창 농바우에 계실 때 조선 국운 심판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미수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의 일만 이천 고물에는 녹(祿)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는 겁살(劫煞)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겨야 하리라.” 하시고
“너는 광찬과 원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가 열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청수 한 동이씩을 길어서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을 스물한 번씩 읽으며 백지를 사방 한 치씩 오려 그 종이에 한 사람이 모실 시(侍) 자 사백 자씩 써서 네 벽에 돌려 붙이고 나를 기다리라.” 하시고, 엄히 경계하시기를 “붙일 때는 종이가 포개져서도 안 되고 요만치 틈이 있어도 안 되나니 끝이 딱 맞아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원일이 형렬로부터 이 말씀을 전해 듣고 싫은 기색을 띠거늘 형렬이 상제님께 아뢰니 상제님께서 “이도삼(李道三)을 데려가 행하라.” 하시매, 형렬이 도삼, 광찬과 함께 구릿골로 돌아가 명하신 대로 행하여 열흘에 마치니 글자의 총수 일만 이천 자요, 종이도 틈 하나 없이 정확하게 붙었더라.
모실 시(侍) 자는 절(寺) 사람(人), 곧 부처를 말한다. 이 공사는 도운(道運,증산도의 운로)과 세운(世運,지구촌의 운로)의 도수(度數,천도지수(天度地數)가 동시에 얽혀 있는 대표적인 공사(公事)로, 남조선 도수가 전개되면서 금강산 부처 기운이 걷히고, 그 일만 이천 봉의 정기에 응하여 후천 새 시대 일만 이천 도통군자가 나오는 개벽공사이다.
道典 5:306)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만국을 살려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피고, 도술 문명의 대운은 우주 저 끝까지 통하리라.
萬國活計南朝鮮(남조선): 일찍이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리기 이전에 상제님께서 이미 남조선 도수로 갈라놓으시고 ‘남조선’이란 말을 즐겨 쓰셨다. 남조선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국-배달-조선-북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대진국·후(통일)신라-고려-조선-임시정부-대한민국(남북분단 시대)’으로 전개되어 온 국통의 맥을 인류사의 시각에서 보는 총체적인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道典 6:60) 인류 구원의 남은 조선 사람
7월 어느 날 성도들을 거느리고 제비창골 입구를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서 사람들이 삼을 치거늘, 상제님께서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잘 골라서 안아다 올리니라. 이에 삼대 석 다발을 한데 섞으신 뒤에 먼저 상(上)대를 추려 뽑아 버리시고 다시 중(中)대를 추려 버리시니 가장 가늘어 쓸모없는 하(下)대만 한 줌 남는지라.
그 하대를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재시더니 끈으로 묶고 한 발로 탁 차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동남풍이 불면 살 수 없는 병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이후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남조선(南朝鮮) 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이라. 동서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남은 조선사람: 선천 동서문화권의 어떤 종교나 이념, 세계관을 광신, 맹신하는 자는 천지의 새 질서를 열어 가는 대개벽의 대시(大時)에도 정신이 근본적으로 크게 깨지지 않는다. 선천의 묵은 진리에 찌들지 않은 한민족의 남조선 사람이야말로 인류 문화를 추수하는 새 생명의 싹인 것이다.
이도삼(李道三, 1865∼1943): 본관 전주. 비교적 학식이 있는 성도로 주로 천문과 관련된 공사에 참여하였다. 상제님께서 자신의 죽은 딸을 살려주시는 등 강렬한 체험을 함으로써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였다.
애기판: 조선을 두고 일러전쟁을 붙여(영국·프랑스가 훈수)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신 공사이다.
총각판: 일본과 중국이 주역이 되고, 독일과 소련이 훈수한 중일전쟁(1937)으로 총각판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하고 국제연합(1945)이 발족되었다.
상씨름: 남조선 도수에 의해 전개되는 남북한 대결 구도를 말한다. 남북한의 상씨름은 인류사의 상극의 모든 문제를 가름하는 최후·최상의 대결구도라는 의미와 역사성을 갖는다. 인류사의 총체적인 문제가 남조선 도수에 얽혀 있다.
소가 나가면: 1998년 6월 16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1,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세계 상씨름의 무대인 삼팔선에 소가 나간 것은 상씨름판을 걷게 될 최후의 대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개벽의 신호탄이다.
道典 4:7) 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송구봉(宋龜峯, 1534~1599): 본관은 여산(礪山). 본명은 익필(翼弼), 호는 구봉, 현승(玄繩). 자는 운장(雲長). 학식이 뛰어나 율곡(栗谷), 우계(牛溪) 등과 교유하였고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등의 걸출한 학자들을 길러냈으며 당대 8문장가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서얼 출신이었으므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다.
道典 2:63) 상제님께서 하루는 형렬의 종 으렁이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 끝간데가 있더냐? 만리타국을 다녀도 하늘은 그 하늘이요 끝간데가 없느니라. 그렇듯이 천지에 내 새끼 네 새끼 없이 다같이 화목하게 살자고, 내가 천지를 뒤집으려고 지금 이러느니라. 너도 머슴 산다고 서러워 말고 꼭 진심으로만 마음먹으면 이제 괜찮아지느니라.” 하시니
道典 2:59) 사람이 사랑스러운 세상이 온다
이제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앞으로 세상이 거꾸로 되어 바람 부는 대로 살리니 무를 거꾸로 먹는 이치니라.
두고 보라! 아침에 본 것, 저녁에 본 것이 다르고 날마다 해마다 달라지리니, 이제 세상이 다 가르치느니라. 구름도 가고 바람도 그치는 때가 돌아오면 사람 보는 것이 즐겁고 누구나 기룹고 사랑스러운 세상이 되느니라.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도수를 따라서 다니는 것이니라. 밥도 다 되었는지 뚜껑을 열어 보지 않느냐?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내가 그냥 다니는 줄 알아도 세상일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느니라. 내가 세상을 뒤집는 것은 손바닥 안팎 뒤집는 것과 같으니라. 이 세상일이 내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따라 모두 그렇게 되느니라.
이제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세계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지구촌 문화 시대를 열어 가는 과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선천 상극의 원한 서린 어두운 세상(陰道)을 보내고 대광명의 새 세상(陽道)을 오게 하신다는 뜻이다.
애기판: 조선을 두고 일러전쟁을 붙여(영국·프랑스가 훈수)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신 공사이다. 이 공사에 의해 조화정부의 제1차 발현인 국제연맹이 1920년에 창설되었다.
총각판: 일본과 중국이 주역이 되고, 독일과 소련이 훈수한 중일전쟁(1937)으로 총각판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하고 국제연합(1945)이 발족되었다.
상씨름: 남조선 도수에 의해 전개되는 남북한 대결 구도를 말한다. 남북한의 상씨름은 인류사의 상극의 모든 문제를 가름하는 최후·최상의 대결구도라는 의미와 역사성을 갖는다. 인류사의 총체적인 문제가 남조선 도수에 얽혀 있다.
소가 나가면: 1998년 6월 16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1,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세계 상씨름의 무대인 삼팔선에 소가 나간 것은 상씨름판을 걷게 될 최후의 대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개벽의 신호탄이다.
道典 4:5) 모든 일을 신도(神道)로 다스리심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내가 이제 신도(神道)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道典 2:21)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120)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서양이 곧 명부(冥府)라. 사람의 본성이 원래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하나니 이것이 곧 배서향동(背西向東)이라. 만일 서양을 믿는 자는 이롭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제 동양이 서양으로 떠 넘어가는데 공부하는 자들 중에 이 일을 바로잡으려는 자가 없으니 어찌 한심치 않으리오.하시니라.
道典 5:164) 조선이 서양에 넘어가면 다시 올 날 없다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에 하루는 전주 용머리고개에서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 하시고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하시니, 김공선(金公先)이 아뢰기를 “운세(運勢)가 부득이하면 일본에 의탁하는 것이 좋은 방편일 듯하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지역별로 동양에 붙여 두면 다시 올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만약 서양으로 가면 다시 올 날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5:23)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 대역사를 시키심
계묘년 3월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적에는 동서양 교통이 없었으므로 신명들이 서로 넘나들지 못하였으나
이제 기차와 윤선으로 수출입하는 화물의 물표를 따라 서로 통하게 되었나니,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역사(役事)케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조선 신명에게 서양을 맡기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천지에 전쟁을 붙이는 일꾼으로 쓰려 하노라.” 하시고, 이어서 “이제 재주(財主)를 얻어 길을 틔워야 할지니 재주를 천거하라.” 하시거늘, 이 때 마침 김병욱(金秉旭)이 전주 부호 백남신(白南信)을 천거하니라.
신도(神道)차원에서 지구촌의 역사 질서를 개편하는 주역은 증산 상제님의 천명을 받고 움직이는 조선의 대신명들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도의 역사를 현상의 인류사에 합일시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세계 대전쟁 공사의 녹줄을 끄르심
그 후에 상제님께서 남신을 대하여 물으시기를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남신이 “삼십만 냥은 됩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이십만 냥으로 그대의 생활이 넉넉하겠느냐?” 하시매 남신이 “그러합니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제 쓸 곳이 있으니 돈 십만 냥을 들이겠느냐?” 하시니,
남신이 한참 생각하다가 여쭈기를 “칠만 냥을 드리면 어떠하겠습니까?”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불가하니라. 반드시 십만 냥이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아뢰기를 “십만 냥을 채우려면 서울 집까지 팔아야 하겠습니다. 현재는 가진 돈이 없사오니 곧 정리하여 올리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열흘 내로 들이게 하라. 어음으로 하여도 무방하리라.” 하시니, 남신이 열흘 내에 어음 십만 냥을 상제님께 바치겠다는 증서를 써서 올리니라. 상제님께서 그 증서를 받아 병욱에게 맡기시니 병욱이 “두 분 다 희세의 대량(大量)이로다!” 하고 탄복하더라.
道典 5:24) 당분간 세계 경제의 녹줄은 서양에 두심
이어 부안(扶安) 바닷가에 가시어 많은 글을 써서 공사를 행하시고 병욱에게 맡겼던 증서와 함께 불사르시며, “지금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면 나중에 배에 실려 오는 화물표를 따라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 하시니라. 그 후 기한이 이르매 남신이 어음 열두 장으로 십만 냥을 드리니 이를 받아 무릎에 놓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재주(財主) 기운을 서양에다 두노니 후일에 서양으로부터 재물을 보급 받으리라.” 하시고, 어음을 도로 돌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돈은 이미 요긴하게 썼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현금으로 쓰지 않으심을 죄송히 여겨 여쭈기를 “현물 시세를 보아 무역하여 이익을 냄이 어떠하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모리배나 하는 짓이니 옳지 않으니라.” 하시고,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남신의 일이 용두사미(龍頭蛇尾)와 같도다.” 하시니라.
김병욱(金秉旭, 1874∼1938): 본관 김해. 서원규와 친하여 계묘년에 서원규의 약방에 가 있던 중 상제님을 뵙고 따르게 되었다. 이후 자신의 상관이었던 백남신 성도의 친가 막내동생에게 자신의 딸을 출가시켰다.
백남신(白南信, 1858∼1920): 본관 수원. 갑진 7월에 육군 참령으로 전주진위대 대장에 임명되어 육군 부령(副領, 지금의 중령)까지 진급하였고 종2품 가의(嘉義)에 올랐으며 정미년 군대 해산 때 해직되었다. 해마다 부채 3만 자루(당시 5만 냥에 상당)를 수십 마리의 말에 실어 왕궁에 상납하던 전주 토호로서 한말의 한지 대왕(韓紙大王)이었다.
道典 5:25) 조선은 주인 없는 빈집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지방을 지키는 모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전란(戰亂)을 일으키게 하였나니, 이 뒤로는 외국 사람들이 주인 없는 빈집 드나들 듯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 제 집 일은 제가 다시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77)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을 잠시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천운(天運)을 기다리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요,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어질 인仁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仁)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仁 자는 뺏기지 말라.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이어서 양지에 천하시비신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4)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일본 사람이 3백 년 동안 돈 모으는 공부와 총 쏘는 공부와 모든 부강지술(富强之術)을 배워 왔나니 너희들은 무엇을 배웠느냐. 일심(一心)으로 석 달을 못 배웠고 삼 년을 못 배웠나니 무엇으로 그들을 대항하리오. 그들 하나를 죽이면 너희들은 백이나 죽으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일본 명부, 전명숙(全明淑)을 조선 명부, 김일부(金一夫)를 청국 명부, 이마두(利瑪竇)를 서양 명부로 정하여 각기 일을 맡겨 일령지하(一令之下)에 하룻저녁으로 대세를 돌려 잡으리라.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2:58) 조선의 대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심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상제님께서 대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조선의 대신명(大神明)을 서양으로 보내 큰 난리를 일으켜, 선천의 악폐(惡弊)와 상극의 기세를 속히 거두어서 선경세계를 건설하리니, 장차 동서양을 비빔밥 비비듯 하리라.” 하시니라.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개벽의 운수는 크게 개혁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니 성과 웅이 하나가 되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5:166)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감히 거역할 수는 없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지라,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때가 때이니만큼 네가 나서야 하나니 속히 나의 명을 받들라.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그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성연(金成淵)과 함께 말을 타고 관왕묘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운장을 서양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하시고, 성냥을 그어 관왕묘에 불을 지르려 하시다가 성연의 간곡한 만류로 그만두시니라.
관운장은 의리와 용맹의 표상으로 그의 대인대의(大仁大義)를 기려 역대 왕조에서 거룩할 성(聖), 임금 제(帝), 임금 군(君) 자(字)를 놓아 성제군(聖帝君)으로 추앙해 왔다. 우리 민족이 관운장을 경애하여 잘 받들어 주어 관운장이 삼보조선(三保朝鮮)한다는 말이 전해 온다.
道典 4:15) 신도(神道)의 병마대권자 관성제군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에서 으뜸가는 보배, 의로움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
관운장(關雲長, ?~219): 관우(關羽). 촉의 장수로 자는 운장(雲長). 송대 이후에 관제묘(關帝廟)가 세워져 무신(武神), 군신(軍神), 복록 장수신(福祿 長壽神)으로 모셔지는 등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만력 42년(1614) 제호(帝號)를 받으며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威遠鎭天尊關聖帝君)에 봉해졌다. 세속에서는 ‘관성제군’, ‘관제(關帝)’라 불린다.
道典 4:115) 귀신을 뜻대로 부리는 조화
무신년 여름에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강태공 용칠십이후 사귀신여노지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장자방 용삼십육계 사귀신여우지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제갈량 용팔진도 사귀신여사지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쥔다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그러니 어서 부지런히 닦으라.” 하시니라.
제갈량(諸葛亮)은 팔진도(八陣圖)하여: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이 창안한 여덟 가지 진형(陣形), ‘팔진(八陣)’ 또는 ‘팔진법(八陣法)’이라고도 한다.
道典 2:21)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道典 5:202) 상씨름 종결 세계 대전쟁 공사
12월 24일 공신의 집에 계실 때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후에 전쟁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시니, 있으리라는 사람도 있고 없으리라는 사람도 있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 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앞으로 천지전쟁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뒷날 대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주를 자랑하여 재주가 일등 되는 나라가 상등국이 되어 전쟁은 장차 끝을 막으리라.” 하시니라.
전쟁은 장차 끝을 막으리라: 남북 상씨름은 선천 문명의 상극 정신과 인류 역사의 모든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는 인류 최후의 개벽 전쟁이다. 즉 상제님 일꾼들이 그 중심에 들어가 전쟁 상황을 끝막게 된다.
道典 5:412)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위무(威武)를 보배로 삼아 복과 영화를 이 길에서 구하였나니 이것이 상극의 유전이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쓸 곳이 없으면 버린 바 되고, 비록 천한 것이라도 쓸 곳이 있으면 취한 바 되나니, 이제 서양에서 건너온 무기의 폭위(暴威)에는 짝이 틀려 겨루어 낼 것이 없으리니 전쟁은 장차 끝을 막으리라.” 하시고, “그러므로 모든 무술과 병법을 멀리하고 비록 비열한 것이라도 의통(醫統)을 알아두라. 사람을 많이 살리면 보은줄이 찾아들어 영원한 복을 얻으리라.” 하시니라.
난은 병란이 제일 무서우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동토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의 극심함을 모두 없이하고 오직 병겁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나니, 앞으로의 난은 병란(病亂)이니라. 난은 병란이 제일 무서우니라.” 하시고, “앞으로 환장 도수(換腸度數)가 열리고 괴병이 온 천하에 퍼져 ‘아이고 배야!’ 하며 죽어 넘어가리니, 그 때에 너희들로 하여금 포덕천하(布德天下)하고 광구창생(廣救蒼生)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84) 상제님께서 순창 농바우에 계실 때 조선 국운 심판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미수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의 일만 이천 고물에는 녹(祿)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는 겁살(劫煞)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겨야 하리라.” 하시고
“너는 광찬과 원일을 데리고 구릿골로 돌아가 열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청수 한 동이씩을 길어서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을 스물한 번씩 읽으며 백지를 사방 한 치씩 오려 그 종이에 한 사람이 모실 시(侍) 자 사백 자씩 써서 네 벽에 돌려 붙이고 나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모실 시(侍) 자는 절(寺) 사람(人), 곧 부처를 말한다. 이 공사는 도운(道運,증산도의 운로)과 세운(世運,지구촌의 운로)의 도수(度數,천도지수(天度地數)가 동시에 얽혀 있는 대표적인 공사(公事)로, 남조선 도수가 전개되면서 금강산 부처 기운이 걷히고, 그 일만 이천 봉의 정기에 응하여 후천 새 시대 일만 이천 도통군자가 나오는 개벽공사이다.
道典 5:185)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이르시어 갑칠에게 염소 한 마리를 사 오라 하시거늘, 갑칠이 염소를 사서 지고 오매 말씀하시기를 “너 소 한 마리 메고 오느라고 욕봤다.” 하시고,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벽에 돌려 붙인 일만 이천 모실 시 자 위에 일일이 점을 치신 뒤에,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 형상이 무엇과 같으냐?” 하시니
갑칠이 아뢰기를 “아라사 병정 같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라사 병사가 내 병사니라.” 하시고 “모든 일을 잘 알아서 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사기(邪氣)는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 하시더니 마침 김제 수각(水閣)에 사는 임상옥(林相玉)이 이르거늘, 청수 담던 사기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인부(人夫)를 많이 부릴 때 쓰라.” 하시고, “다 쓴 뒤에는 김제장에 가서 매각하라.” 하시니라.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벽에 돌려 붙인 일만 이천 모실 시(侍) 자 위에 일일이 점을 치신 뒤에,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이 형상이 무엇과 같으냐?” 하시니, 갑칠이 아뢰기를 “아라사 병정 같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라사 병사가 내 병사니라.” 하시니라.: 금강산 12,000봉 8만 9암자에 끼어있는 겁살(劫煞), 살기(煞氣)를 걷어내는 공사(아라사,러시아에의한 북한의 신(神)을 부정하는 공산화로 종교는 껍데기가 되었다. 앞으로 열리는 대변혁기에 지구촌 인류를 구하는 12,000명의 상제님의 대행자들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금강산의 겁살, 도통하지 못하고 죽은 불교, 중들의 원한의 살기를 걷어내는 공사(公事)를 보신 것이다.
道典 2:141) 공자는 다만 72명만 도통시켰으므로 얻지 못한 자는 모두 원한을 품었느니라. 나는 누구나 그 닦은 바에 따라서 도통(道通)을 주리니, 도통씨를 뿌리는 날에는 상재(上才)는 7일이요, 중재(中才)는 14일이요, 하재(下才)는 21일 만이면 각기 도통하게 되느니라.
금강산의 정경을 읊어 주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옛시 한 수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步拾金剛景하니 靑山皆骨餘라
보습금강경 청산개골여
其後騎驢客이 無興但躊躇라
기후기려객 무흥단주저
걸어서 금강산의 정경을 둘러보니 푸른 산이 모두 뼈만 남아 있구나. 저 뒤의 나귀 탄 나그네, 흥이 없어 주저만 하는구나.
道典 2:21)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 6,25전쟁의 미스터리 이형근 장군 증언
첫째, 일선 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는 점이다.
둘째,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었다. 전투를 지휘해야 할 지휘관들이 적정이나 지형은 커녕 부하들의 신상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셋째, 6월 23일 자정에 육본은 비상 경계령 해제와 더불어 전 장병의 2분의 1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그리고 육군 장교클럽 댄스파티가 6월 24일 밤 열렸다. ......중략
※ 6·25초전의 패배 책임을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미국의 오판이 가장 컸다. 미국은 애초부터 싸우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특히 1950년 1월 21일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고 공표한 것은 적에 대한 초대장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군 수뇌부의 잘못이 간과될 수는 없다.
※ 국제연합(國際聯合·UN)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유엔총회와 별도로 5개 강대국의 거부권(拒否權)이 인정되는 안전보장이사회(安全保障理事會) 상임이사국(常任理事局) 중에는 소련(蘇聯)이 있었고, 소련은 북한(北韓)에 대한 어떤 제재(制裁)도 거부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에 유엔이나 미국이 개입하는 일은 차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오후 2시에 소집(召集)된 유엔 안보리회의(安保理會議)에는 소련이 불참(不參)했다.
따라서 "북한의 무력공격(武力攻擊)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북한은 적대행위(敵對行爲)를 중단하고 38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決議案) 82호가 채택될 수 있었다.
소련은 6월 27일의 결의안 83호, 7월 7일의 결의안 84호 채택회의에도 불참함으로써 유엔의 이름으로 한국의 안전을 위해 무력을 포함한 원조(援助)를 제공하며, 이에 동참하는 회원국 병력의 지휘권(指揮權)은 미국이 맡는다는 내용까지 무사통과(無事通過)되게 하였다. 왜? 소련이 안보리 결의에 계속 불참했는지는 현대사 최고의 수수께끼 중 하나다.
道典 4:5) 모든 일을 신도(神道)로 다스리심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내가 이제 신도(神道)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道典 2:21)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
道典 4:7)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송구봉(宋龜峯, 1534~1599): 본관은 여산(礪山). 본명은 익필(翼弼), 호는 구봉, 현승(玄繩). 자는 운장(雲長). 학식이 뛰어나 율곡(栗谷), 우계(牛溪) 등과 교유하였고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등의 걸출한 학자들을 길러냈으며 당대 8문장가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서얼 출신이었으므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다.
※ 한국전쟁(韓國戰爭)의 또 하나의 미스터리는 인민군이 여세를 몰아 계속 남진(南進)을 하지 않고, 3일 동안 서울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뜻 모를 지체(遲滯) 때문에 국군은 재정비(再整備), 반격(反擊)할 기회를 얻었고, 유엔의 움직임을 통해 미군(美軍)이 개입(介入)해 올 시간도 마련되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 3일동안의 지체야말로 '조국해방전쟁(祖國解放戰爭)'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뼈아픈 결정이었던 셈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에 유엔UN에서 16개 나라가 전투병을 파병하고 다섯 나라는 의료를, 40개국이 물자를 지원하였다. 발발 이후 3년간 밀고 당기는 전투를 치른 끝에 1953년 7월, 휴전선을 새로운 경계선으로 정하고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 됨으로써 6·25전쟁은 상씨름의 전초전이 되었다.
한반도를 분할하는 군사 분계선이 삼팔선으로 확정되기까지 미국과 소련은 수차례 수정안을 제시하며 협상을 했다. 미국의 러스크 중령이 38°선 안을 제시하였고, 처음에 소련은 북위 40° 이북만 점령해도 좋다고 여겼는데, 미국이 38° 선을 제안하자 놀랐다고 한다.
道典 2:21)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道典 4:124) 구릿골에서 술장사하는 김사명(金士明)의 아들 성옥(成玉)이 어느 날 급증에 걸려서 나흘 만에 죽거늘,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백방으로 주선하여도 회생할 여망(餘望)이 없는지라. 할 수 없이 그 어머니가 숨이 끊어진 아이를 안고 구릿골 약방으로 찾아오니, 상제님께서 미리 아시고 문득 말씀하시기를 “약방이 안 되려니 송장을 안고 오는 자가 있도다.” 하시니라.
성옥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상제님 앞에 눕혀 놓고 애처로이 울면서 살려 주시기를 애걸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법인데 나라고 어찌 살리겠는가?” 하시거늘, 아이의 어머니가 더욱 슬피 울부짖으며 “이 아이는 외아들입니다. 아이가 살아날 수 없다면 저도 아들을 따라 죽어 버리렵니다. 가련한 이 모자의 형편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고 애원하니 그 애절한 울음소리가 하늘에 닿을 듯하더라.
미수야, 우암을 잡아 오너라
상제님께서 차마 보지 못하시고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혀 배를 만져 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 큰 소리로 “미수(眉叟)야, 우암(尤庵)을 잡아 오너라.” 하고 외치신 뒤에 모과를 씹어 그 즙과 함께 침을 흘려서 죽은 아이의 입에 넣으시니 아이가 문득 항문으로 추깃물을 쏟거늘
상제님께서 “나가서 회초리 하나 끊어 오라.” 하시어 회초리로 아이의 종아리를 탁탁 때리시매 죽었던 아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홀연히 살아나더라.
이에 아이의 어머니가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 술 취한 듯이 말하기를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이시여! 죽은 자식을 살려 주시니 이 큰 은혜 호천망극(昊天罔極)하옵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아이에게 미음을 쑤어 먹이게 하신 후 그 어머니에게 이르시기를 “요 모퉁이에 가면 걸인이 하나 죽어 있으리니 옷 입혀서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주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죽은 아이가 다행히 살아났으니 잘 가르쳐서 어진 사람을 만들라.” 하시며 아이를 걸려서 돌아가게 하시니라.
미수(眉叟), 우암(尤庵): 허목(許穆, 1595~ 1682)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주자를 통해서만 유학이 이해되던 시대에, 우암은 주자를 절대적으로 존숭한 반면, 미수는 성인에 뜻을 두고 선진유학으로 직접 뛰어들어가 공부했다. 둘의 2차에 걸친 예송논쟁으로 인해, 결국 우암의 서인 정권은 축출되고 미수의 남인 정권이 정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우암이 북벌론을 주장하는 등 이상주의적인 의리론을 폈다면, 미수는 북벌론을 반대하고 농민부흥 정책을 도모하는 등의 현실적인 의리론을 펴 나갔다.
후천선경 종주국 공사
상제님께서 매양 뱃소리를 내시매 성도들이 그 뜻을 여쭈니, “조선을 세계 상등국으로 만들려면 서양 신명을 불러와야 할진대 이제 그 신명이 배에 실려 오는 화물표를 따라 넘어오게 되므로 그리하노라.” 하시고, “해동조선 사람들은 장차 세계의 조물(兆物)을 받아먹고 사느니라.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다 다닐 길이 난다.” 하시니라.(道典 5:389)
남조선 국운 도수
하루는 약방에 성도 여덟 사람을 벌여 앉히신 뒤 사물탕 한 첩을 지으시어 그 봉지에 사람을 그리시고, 두 손으로 약봉지를 받쳐 드시며 시천주주를 세 번 읽으시니라. 이어 여덟 사람으로 하여금 차례로 돌려서 그와 똑같이 하게 하신 후에 “남조선배가 범피중류(汎彼中流)로다.” 하고 노래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갑오년(甲午年)에는 상륙을 못 하여 풍파를 당하였으나 이제는 상륙하였으니 풍파는 없으리라. 장차 조선이 제일로 좋으니라.” 하시니라.(道典 5:388)
동서양 운세가 서로 바뀌리라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서양이 잘살지만 나중에는 동양이 잘살게 되느니라.” 하시고, “조선과 미국은 운세가 서로 바뀌리라.” 하시니라.
“이마두를 초혼(招魂)하여 광주 무등산(無等山) 상제봉조(上帝奉朝)에 장사지내고, 최수운을 초혼하여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에 장사하노라.” 하시니라. 이어 성도들에게 24절을 읽히시며 “그 때도 이 때와 같아 천지에서 혼란한 시국을 바로잡으려고 당 태종(唐太宗)을 내고 다시 24절에 응하여 24장을 내어 천하를 평정하였나니 너희들도 장차 그들에 못지않은 대접을 받으리라.” 하시니라.(道典 5:399)
가을개벽 전 시두(천연두)가 대발한다
하루는 최창조의 집에서 성도 수십 명을 둘러앉히시고 “각기 글 석 자씩을 부르라.” 하시므로, 천자문의 처음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최덕겸(崔德兼)이 ‘일(日) 자’까지 부르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덕겸은 일본 왕도 좋아 보이는가 보다.” 하시며 “남을 따라 부르지 말고 각기 제 생각대로 부르라.” 하시니라.
그 다음 날 밤에 담뱃대 진을 쑤셔 내시며 덕겸에게 “한 번 만에 잡아서 놓치지 말고 뽑아내어 문밖으로 내버리라.” 하시거늘, 덕겸이 명하신 대로 하니 온 마을의 개가 일시에 짖어대는지라, 덕겸이 여쭈기를 “어찌 이렇듯 개가 짖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대신명(大神明)이 오는 까닭이니라.” 하시거늘
또 여쭈기를 “무슨 신명입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시두손님인데 천자국(天子國)이라야 이 신명이 들어오느니라. 내 세상이 되기 전에 손님이 먼저 오느니라. 앞으로 시두(時痘)가 없다가 때가 되면 대발할 참이니 만일 시두가 대발하거든 병겁이 날 줄 알아라. 그 때가 되면 잘난 놈은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 너희들은 마음을 순전히 하여 나의 때를 기다리라.” 하시니라.(증산도 道典 7:63)
상제님은 지구촌에 병겁이 휩쓰는‘ 다시 개벽’ 상황이 오기 전에 먼저 시두가 대발한다고 하셨다. 시두(천연두)와 천자국(天子國)은 우주 가을개벽의 암호를 푸는 비밀열쇠와 같다. 그 해답은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이 집행하신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에 들어있다. 병든 천지를 뜯어고쳐 새 천지를 열어주시고, 해원解寃, 상생相生, 보은報恩,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이념으로 역사의 방향을 설계하신 천지공사를 통해 인류는 태고 시절 누렸던 광명의 삶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인류가 꿈꾸어왔던 이상세계가 이 지상위에 구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개벽의 실제상황에서 한민족이 상제님의 도道로 인류를 구원함으로써 성취된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9천년 전 환국에서부터 전수되어 내려온 홍익인간 사상의 실현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천명을 가을개벽기에 인류구원으로 완성했을 때 우리는 다시‘ 인류 문화의 도주국(道主國)’으로서 우뚝 서게 된다. 사실 한반도는 ‘개벽의 진원지’이며 동시에 ‘구원의 땅’이다. 홍익인간 정신으로 크게 하나 되어 다가오는‘다시 개벽’을 준비하는 비상한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