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실 파견' 김형래 대령에 수사단이 보낸 e메일 문건 확인
사고 이틀 뒤 '수사 계획서' 받아...지휘부 과실 등 구체항목 담겨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 없어 외압 성립 안된다'는 주장과 모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지난해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이틀 뒤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보고받은 '수사계획서'에
수사 현황과 수사 중점, 수사 진행사항, 수사 예정 사항 등이 담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사건 초기부터 해병대 수사간의 수사 방향을 면밀하게 챙겼던 대통령실이 외업 의혹을 반박하며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은 12일 '해병대 일병, 익사사건 수사계획서'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은 채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사망하고 이틀 뒤인 지난해 7월21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파견돼 있던
김형래 대령이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 문건은 제목부터 '수사계획서'이고 내용에도 '수사'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수사현황, 수사중점, 수사 진행사항, 수사 예정사항이라는 항목별로 구체적인 내용들이 적혀 있다.
수사 중점 항목에는 '사고 현장 안전 대책 및 조치사항 점검'' '제대별 지휘관의 위험예지판단 등
지휘활동 여부 확인'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사망사건 원인범죄(업무상 과실치사) 성립 여부 검토'라고 돼 있다.
사단장과 여단장 등 지휘부의 지휘활동이 적절했는지 뿐 아니라 당시 행위가 업무상 과실치사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수사의 주요 쟁점으로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기재한 것이다.
수사 예정사항 항목에는 '사건관계자(주요혐의자) 등 조사' '관계자 대상 업무상 주의의무 및 과실 인과관계 검토'라고
기재돼 있다.
지휘부 등 사건관계자들이 채 상병에게 수색작업을 시킬 때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정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었는지.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과 채 상병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 업무상 과실치사 범죄의 성립요건을 따져보겠다는
내용이다.
문건에 는 또 '사망사건 원인범죄 관민간경찰(경복경찰청) 공조수사 및 이관 검토' '군사경찰 수사결과 유가족 설명'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대통령실 측은 이 문건을 받은 뒤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은것으로 보인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 문건을 대통령실에 보낸 다음 문건 내용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와 무관한 국가안보실이 해병대에 직접 '자료 요구' 이례적
수사단, 기존 양식 문서도 없는 요청에 새로 만들어서 보고
법조계에선 '요펑 자체가 부적절...수사 독립성 침해 소지'
지난해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이 틀 뒤 해병대 수사단 측이 대통령실 측에 '수사계획서'를 보낸 것은 대통령실 측에서 먼저 자료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채상병 사건 수사상황을 면밀히 챙긴 정황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없다고 강변하는 것과
별개로 '안보실의 수사계획서 요청 자체가 이례적이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경향산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파견돼 있던 김형래 대령은
지난해 7월 21일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로부터 한글 파일로 작성된 '사망사건 수사계획서'를 군 내부 e메일로 받았다.
채 상병 사건 수사를 담당한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는 지난해 7월21일 오전 11시57분 김 대령에게 '말씀하신 수사계획서
첨부한다'며 문건을 첨부한 e메일을 보냈다.
김 대령은 같은 날 오후 1시2분 e메일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측 설명에 따르면 김 대령은 박 전 수사단장에게 연락해 '안보실이 채 상병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병대 수사단 중 어디에서 수사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는 취지로 말하며 '수사계획과 관련된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김 대령의 말은 해병대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해병대가 자체적으로 수사하기보다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수사하는 게
낫지 않냐는 취지였다.
당시 해병대 수사단은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수사계획서 문서 양식이 없어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요청이었다는 뜻이다.
김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의 항명 사건 조사에서 '박 전 수사단장과 전화를 주고받던 중 '앞으로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있느냐'고 문의했다'면서 '박 전 수사단장은 '정리된 것은 없는데 정리해서 보내주겠다'며
보내준 것이 수사계획서라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수사계획서를 요청한 곳이 안보실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안보실은 국가안보 역량 구축 및 국방정책 현안 관리 등의 업무를 맡는다.
김 대령은 '국방정책 지원'을 담당했다.
채 상병 사건이 군에서 발생하긴 했지만 국가 안보나 정책과 직접 연결되는 사안은 아닌 만큼 수사계획을 보고받는 게
일반적이진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국회 국방위원회 질의를 통해 이런 내용의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김대령이)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국방부 조사 본부가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이야기했다'며
'그때부터 안보실은 해병대 수사단이 엄정히 하면 어떡할까 두려워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대령은 지난해 7월28~30일 해병대 수사단에 채 상병 사건 수사 결과 자료를 여러 차례 요구하기도 했다.
수사단은 수사결과보고서 제출은 부적절하다고 보고 대신 언론 브리핑 자료를 김 대령에게 보냈다.
김 대령은 이 자료를 e메일로 받은 다음 '수고한다.
절대 이 쪽에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회신했다.
'윗선'의 수사계획 보고 요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비판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검찰은 2019년 법무부가 전국 검찰청의 주요사건 수사계획을 사전에 보고받은 방안을 추진하자 강력 반발했다.
같은 맥락에서 안보실의 채 상병 사건 관련 수사계획서 요청은 해병대 수사단의 독립성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군 판사 출신 변호사는 '어떠한 군 사건도 대통령실에 수사계획서를 보고하고 수사에 착수하는 경우는 없다'며
'계획서 내용이 개괄적일지라도 이러한 요구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 있음을 인지했다는 정황'
대통령실, '수사계획서' 요구
그러나 수사잔이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등 혐의자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협의를 적용한 수사결과를 경찰에 이첩했다고
보고한 다음날인 지난해 7월3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돌연 걍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격노발언'의혹이 불거졌다.
이전 장관을 비롯해 대통령실과 여당 쪽에선 해병대 수사단에 애초 수사권이 없다면서 수사 외압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군사법원법 개정에 따라 사망 사건의 수사권은 민간경찰에 있기 때문에 해병대 수사단은 수사할 수 없고,
이에 따라 혐의자.혐의사실을 특정하지 말라고 한 윗선 지시는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21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보고받은 수사계획서 문건에 수사 관련 내용이 다수 언급된다.
군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실은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서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수사계획서에 수사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며 '오히려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권이 있음을 대통령실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으로서 수사권이 없다는 대통량실 주장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김 대령은 이날 입장을 묻는 경향신문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대통령실에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강연주. 이혜리 기자
초동 수사부터 개입 흔적...공수처, 대통령실 겨눌까
고발 대상자들 아직 미소환...비켜갈 땐 봐주기 비판 불가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가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해병대 관계자들을 잇따라 소환하며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향후 공수처 수사의 최대 쟁점은 대통령싱까지 겨냥하느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10일 이은세 해병대 공보훈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실장은 지난해 7월30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채 상병 사망 사건 초동 수사 결과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최초로 보고한 회의에 참석했다.
공수처는 이 실장을 상대로 당시 회의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심사는 공수처가 국방부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지, 대통령실까지 뻗어나갈지 여부다.
대통령실은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초동 수사에 외압을 가한 당사자로 일찌감치 지목된 상태다.
대통령실은 국방부의 채 상병 사망 수사기록 이첩 보류와 회수 국면에도 등장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파견됐던 김형래 대령은 지난해 7월30일 김사령관과 통화한 뒤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결과 언론 브리핑 자료를 받았다.
이튿날인 7월31일 이 전 장관은 돌연 수사기록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고 언론 브리핑도 취소시켰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 관계자 여럿이 고발됐지만 공수처는 아직 이들을 상대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수처가 실제로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실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면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고 공수처 수사가 대통령실을 비켜간다면 '사건의 본질에 눈을 감는다'는 비판을 자초하게 된다. 이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