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명칭 :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지정일 :
1962.12.20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당간 수량/면적 : 1기 시대 : 고려시대 주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현재 청주 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간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 하는 고려 광종 13년(962)으로,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당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 우리 문화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곳과 함께 공주 갑사, 안성 칠장사의 세 곳에서만
철당간을 접할 수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의 피해가 컸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 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
당간지주(幢竿支柱)
국내 각지 사찰을 찾아 가보면 절집 밖 멀리, 또는
가까이는 일주문 근처, 그러니까 절집으로 들어서기 전쯤에 이제 이곳부터 사찰영역이다 싶은 곳에서 늘 만나던 당간지주(幢竿支柱). 그저 2개의
석재 돌기둥이 서 있었고 그 이름이 당간지주라고 쉽게 지나쳤다. 그런데 막상 당간지주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마도
온전하게 '당(幢)을 붙들어 맨 간(杆)을 세운 지주(支柱)'의 완성체를 본 적이 없고 늘 지주 2개가 서 있는 것만을 보아서가
아닐까?
정확히 표현하면 '당간지주'는 '불화를 그린 기(旗)인 당(幢)을 붙들어 맨' '간(杆)'을 세우기 위한 '지주(支柱)'이다.
즉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벽사적인 목적으로 만든 당(幢)이라는 깃발'을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잘 보이도록 들머리
어딘가에 높이 매달아야겠는데 그러려니 높다란 장대와 같은 깃대가 필요한바 이 깃대가 곧 간(杆)이다. 그런데 이 장대처럼 긴 간(杆)을 높이
세워서 단단하게 고정하려니 받침대 역할을 하는 시설이 필요한데 바로 그 받침대이자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당간지주(幢竿支柱)인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당(幢)이나 간(杆)은 사라지고 지주(支柱)만 남아 있으니 흔히 만나는 돌기둥 2개가 그것이다.
용두사터(龍頭寺址) 철당간(鐵幢竿)
지금은
청주시내 번화가로 변해버린 이곳에 용두사와 관련된 어떤 것도 찾기 힘들다. 다만 철당간에 새겨진 기록과 다른 역사기록들을 살펴보면 고려시대에
세워져 번성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기 전 고려 말쯤 폐사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다행스럽게도 철당간만은 잘 보존되어 국보 41호로 지정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간(幢杆) 장식
게양대처럼 높다랗게 세워진
당간(幢杆)에 어떤 그림의 당(幢)을 어떻게 매달았는지도 궁금하다.
불교적인 그림이라고만 하기에는 당(幢)에 대한 상상이 부족하다.
아무튼, 어떤 형태의 깃발일지라도 간(杆)에 단단하게 매달아서 바람에 펄럭이더라도 문제가 없어야 할 것이며 수십 m에 이르는 높이까지 깃발을
올리고 내리는 방법도 궁금하던 차에 국립대구박물관에 있는 용두(龍頭) 당간장식의 발견은 놀라운 일이며 이러한 궁금증을 쉽게 해소해주는 열쇠가
된다.
현재 남아있는 철통은 스무 개, 약 12m쯤이나 원래는 서른 개였다고 하니 18~9m쯤일 것이며 그 위에 이 용두 당간장식을 얹었다면 최종
20m는 족히 넘는 크고 높고 멋스러운 당간이었을 것이다. 그 당간에 화려한 불화(佛畵)가 그려진 비단 깃발 당(幢)이 매달려 펄럭이는 모습,
당(幢)과 간(竿)과 지주(支柱) 전체가 연결된 멋진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러한 철당간은 계룡산 갑사, 속리산
법주사, 안성 칠장사 등에서도 볼 수 있으나 깃발까지 휘날리는 완전한 모습은 보기 어려우므로 불국사나 해인사, 통도사, 조계사 등 대표적인
사찰에는 완전한 모습을 재현하여 세워놓는 것도 검토 추진하기를 기대해본다.
당간과 전통 민간신앙
당간은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바, 이는 불교적인 장엄기구일 뿐 아니라 민간신앙에서 선사시대의 ‘솟대’나 일본의 신궁이나 신사 앞에 있는 ‘도리이(鳥居)’와도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즉, 불교가 수용되기 이전에도 민간에서는 전통적인 천신 사상의 산물인 솟대를 세워 성역화를 표시하였으니 일본의 도리이도 이와
비슷하게 보이며, 이후 불교가 수용되고 난 후에도 사찰 영역을 성역화하는 역할로 당간을 세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뿐만아니라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사찰의 성역공간 표시 외에 청주 지형이 무심천 위에 떠 있는 배(舟)와 같아서 청주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상징하는
철당간을 세웠다는 민가의 전설을 보더라도 이러한 민간사상과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첫댓글 국보 제41호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에 대한 것을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