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5일 연중 제 23주일
-류해욱 신부
‘에파타, 들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군중 사이에서 따로 불러내어 손가락을 그의 귓속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려라’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신부님의 소중한 삶의 체험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 삶에 있어서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사제생활을 시작하신 지 15년 되는 즈음 이탈리아의 피렌체 근교에 있는 ‘사제학교’로 연수 를 떠나셨답니다. 그곳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사제나 부제, 신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도 하고 작업도 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한번은 세탁소에서 작업을 하게 되셨는데, 당시의 체험을 아래와 같이 적 으셨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게 된 짝지는 17살의 앳된 예비신학생이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마치 아들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미니코라는 예비신학생은 슬로바키아에서 왔습니다. 그는 순하고 착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100% 일치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흙 묻은 옷을 손빨래하자고 하면,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기계로 빨래 하자고 하면, 그렇게 했습니다. 또 빨래를 밖에다 널자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으니 실내에 빨래를 널자고 하면, 동의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도미니코와 하는 세탁소 일은 평온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치도 굳건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저와 도미니코와의 일치가 진정한 일치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대부분 제 의견을 중심으로 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제가 의견을 말하면, 도미니코는 제 뜻을 따라주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를 중심으로 일치해야 함을 깨닫게 된 저는 그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던 날, 도미니코는 무척 수줍어하였습니다. 그러나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은 소리로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미니코의 뜻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뜻을 중심으로 일하다가, 형제의 뜻을 중심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 도미니코의 얼굴을 더욱 밝아졌고, 더 적극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물어보지도 않는 자기 집안 이야기와 성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둘 사이의 일치가 깊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 것입 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 서 있던 귀먹은 반벙어리를 당신 가까이 불러내셔서 그의 귀를 열어주시고 또 혀를 풀어서 말을 할 수 있게 치유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시는 주 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전혀 귀 기울일 줄 모르는 귀머거 리인 우리를 향한 말씀이 바로 ‘에파타’입니다.
우리는 때로 너무 무심해서 가난한 이웃들은 배려하지 못합니다. 바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간절한 외침이 ‘에파타’입니다. 지난 오랫동안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바로 이 ‘에파타’입니다. 지금 이 순간 코로나 19로 비록 경제적으로 힘들고 고통이 따른다고 해도 우리 삶은 이 세상 에서 가장 큰 축복이며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달으라는 주님의 권고가 ‘에파타’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류해욱 신부님/예수회, 영성. 피정 지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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