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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준
* 계절의 길목에 서서 *
조팝나무 하얀 꽃이 안개 무리처럼 어리는 곳에는 가끔 푸드덕 꿩의 나름에 깜짝
놀라는 숲길이 있다.
놀라면서도 빙그레 웃게 하는 것은 “노크도 없이 남의 방문을 벌컥 열면 어떻게 해”
하며 나를 탓하는 놈의 항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다음부터는 지나기 전에 헛기침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다시 오면 역시나
파릇파릇 손톱만 한 크기로 올라오는 나뭇잎, 제법 모양을 갖춘 풀잎 오르는 좁은
언덕길 좌우로 봄은 흐드러지게 넘쳐흐르고 흉내를 내어 보려 하지만 어렵기만 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 소리, 물씬 풍기는 흙 내음 그리고 푸름으로 한가로움이
찾아든다.
“이 시각에 어떻게 이곳에 와 있을까?:” 과거가 현재에 녹아들고 미래를 향하는 때에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서 있는 것일까? 아우르며 떠오르는 단어 ‘인연’ 언젠가 펼쳐
보았던 부르트니커 사전에서 인연(因緣)을 떠올린다. “인연(因緣, 산스크리트어:
hetu-pratyaya 또는 nidāna)은 원인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이다. 인(因, 산스크리트
어: hetu)은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인 직접적 원인을 의미하고, 연(緣, 산스크리트어:
pratyaya)은 이를 돕는 외적인 간접적 원인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양자를 합쳐
원인의 뜻으로 사용한다. 직접적인 원인으로서의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으로서의
연(緣)을 구별할 경우, 예를 들어, 씨앗은 나무의 직접적 원인인 인(因)이고 햇빛 ·
공기 · 수분 · 온도 등은 간접적 원인인 연(緣)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씨앗에서
나무가 나타나게 하는 원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고타마 붓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써 생겨나고 인연으로써 소멸하는 연기(緣起, 산스크리트어: nidāna)의
이법을 깨우쳤다고 한다. 《아함경(阿含經)》에서는 인간이 미망(迷妄)과 고통의
존재임을 12인연으로써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부파불교에서는 12인연을 인간의 윤회
과정에 해당시켜 해석하고 있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
그 답을 청화 큰스님 설법에서 찾아본다.
“현상계의 일체 제법은 75법의 인과 관계에 의하여 성립됩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법은
모두가 다 인과율(因果律)의 범주에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립된 세계를 세간(世間)
이라고 하며 이 세간은 기세간(器世間), 즉 모든 천체와 환경 등인 우주와 또는 유정세간
(有情世間) 즉 동물의 세계로 구분됩니다.
기세간은 유정(有情)이 주거(住居)하는 세계로서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삼계로 구분되며
이 세계는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의 4겁의 과정에 의하여 무한한 순환을 계속
합니다.
유정세간은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의 육도(六道)가 있는 바, 생유(生有)
ㆍ본유(本有)ㆍ사유(死有)ㆍ중유(中有)의 4과정을 거치면서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처음
도 없고 끝도 없는 생사윤회를 계속하는 것 입니다.
이 4유(有)를 우리는 깊이 느껴야 합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분 가운데도 “죽어지면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고 다음은 무(無)로 돌아가지 않는가”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상당히 유명한 거사님인데 제가 영가천도(靈駕薦度)를 한다니까 “
영가란 것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천도할 것입니까?” 하고 반문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회 사상은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리이스 철학을 깊이는 연구
안 했습니다만 피타고라스나 헤라클레토스나 또는 엠페도클레스나 모두가 다 윤회를
주장했습니다. 사실은, 동양 철인이나 그리이스 철인이나 근본 사상은 대부분 같습니
다. 그것을 보고 저는 굉장히 환희심을 내기도 하고 경탄하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분들은 동일한 진리의 본체를 깨달았으니 대체로 견해가 같지 않을 수 없겠지요.
생유(生有)는 우리가 막 날 때요. 본유(本有)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며, 본유에서 있다가
죽는 순간이 사유(死有)고, 중유(中有)는 중음(中陰)이나 같은 뜻으로 죽은 뒤에 다음
생까지의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어지면 보통은 다 중유에 상당한 기간
머뭅니다. 보통 수준이 이른바 49일입니다.“
기세간 주겁중 욕계에, 유정세간 인간 본유로 현제의 존제가 설정이 된다.
“육도 중생이 생사윤회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고 하면 유정 각자의 망심(妄心) 즉 무명
(無明)인 것입니다. 유정 각자의 망심에서, 무명에서 일어나는 번뇌로 말미암아 신ㆍ
구ㆍ의 삼업의 업력으로 생사고해에 윤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도리는 다 충분히
알지 않습니까? 이 과정이 바로 과거ㆍ현재ㆍ미래 삼세양중의 인과설 곧 12연기법ㆍ
12인연법이 되는 것입니다.“
“12연기법
과거세(過去世)의 무시번뇌(無始煩腦)인 무명(無明)
선악(善惡)의 행업(行業)인 행(行)
현재수태(現在受胎)의 일념(一念)인 식(識)
태내(胎內)에서 심신(心身)이 발육(發育)하는 자리인 명색(名色)
태내(胎內)에서 육근(六根)이 족(具足)하는 자리인 육처(六處)
이,삼세(二,三歲)때 사물(事物)을 접촉하고자하는 자리인 촉(觸)
육,칠세 이후에 고락(苦樂)을 감수(感受)하는 자리인 수(受)
애욕(愛慾)이나 명리(名利)를 취구(取求)하는 자린인 취(取)
선악(善惡)의 업(業)을 지어 당래과(當來果)를 정(定)한 자리인 유(有)
현재업(現在業)에 의(依)하여 미래생(未來生)을 받는 자리인 생(生)
미래(未來)에 노사(老死)하는 자리 노사(老死)
“우리는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인 삼계(三界) 윤회란 것도 그대로 온전히 수용을 해야
합니다. 마땅히 욕계가 있는 동시에 분명히 색계가 있고 무색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삼계도 심중삼계(心中三界)라 하여 번뇌가 녹아지는 정도에 따른 구분도 있고
또는 실제삼계(實際三界)라, 실제로 인간이 있고 축생이 있고 하듯이 실제로 삼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인데, 마음 법문을 주로 주장하는 사
람들은 ‘삼계는 마음에만 있는 것이지 밖에 무엇이 실제로 있을 것인가’ 하지만 분명
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12인연법은 삼세양중(三世兩重)의 인과인데, 이것은 과거와 현재
의 인과가 일중(一重)이 되고 현재와 미래의 인과가 일중이 되어 삼세 양중의 인과라
하는 것입니다.
무명(無明)은 과거세의 무시번뇌요, 행(行)은 선악의 행업입니다. 무시번뇌란 번뇌가
어느 때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도 끝도 없다는 말입니다. 불교라는 것이 시공
(時空)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무시무종입니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는 말입니다.
번뇌도 역시 시작이 없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다 불법이다, 모두가 다 불성이다’ 하는 말과 어긋나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하나의 법성을 바로 보면 다 불성이요, 불성은 조금도 변치 않는 것인데,
중생이 번뇌에 오염되어서 보면 무명인 것입니다. 기신론(起信論)에 ‘부달일법계고
(不達一法界故)로’ 일미 평등한 법계의 뜻에 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홀연염기(忽然念起)
명위무명(名爲無明)이라’ 문득 생각이 일어나는 그 생각이 바로 무명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보아서 모두가 다 불성으로 보일 때는 무명이 안 나오겠습니다마는 우리가
윤회 가운데서, 성겁이 되고 주겁이 되는 여러 가지 인과의 순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연에 덮이면 바로 못보기 때문에 그때는 생각이 일어나겠지요. 나라는 생각, 좋다
궂다, 그런 것이 바로 무명입니다. 따라서 무명이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 보아서
무명이요, 바로 보면 진여불성(眞如佛性)인데 무명이 있으면 응당 우리한테 몸과 입
과 뜻이 있기 때문에 선악(善惡) 행업을 짓겠지요. 이것은 과거의 두 가지 원인인 것
입니다.
또 현재 5과(果)는 식ㆍ명색ㆍ육처ㆍ촉ㆍ수로 식(識)은 현재 수태의 일념 곧 현재
어머니 태안에 막 들어가는 한 생각입니다. 명색(名色)의 명은 심식(心識)을 말하는
것이고 색은 육체적인 것을 말하며 태내에서 몸과 마음이 발육하는 위요, 육처(六處
)는 태내에서 육근이 구족하는 위요, 촉(觸)은 2, 3세 때 사물에 접촉하고자 하는
자리입니다. 말하자면 어린애들이 모두 접촉하고자 이것도 만지고 저것도 만지고
하는 때아니겠습니까, 수(受)는 6, 7세 이후에 괴롭다 즐겁다 하는 것을 스스로 느
끼는 때입니다. 이것이 현재 5과입니다.
또 현재 3인(因)은 성장해서 또 역시 업을 짓는 애ㆍ취ㆍ유를 말합니다. 애(愛)는
14∼5세 이후에 강성한 애욕이 생하는 위치입니다. 우리 인간은 번뇌에서 나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애욕이 생기는 것입니다. 취(取)는 애욕이나 명리(名利)를 취하
고 구하는 위치요, 유(有)는 애욕이나 명리를 취하고 구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선악
의 업을 짓고 당래의 결과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당래
의 결과를 벌써 머금어 있다는 말입니다.
다음 미래의 2과(果)는 현재의 업에 의하여 미래의 생(生)을 받고 노사(老死)하는
자리입니다. “
춘원 이광수는 우덕송(牛德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하였으나 대개는 속마음이 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도 쥐를 보고 후덕 스럽다고 생각은 아니할 것이요 할미새를 보고 진중하 다
고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도야지를 소담한 친구라고는 아니할 것이다. 토끼를
보고 방정맞아는 보이지마는 고양이처럼 표독스럽게는 아무리해도 아니 보이고
수탉은 걸걸은 하지마는 지혜롭게는 아니 보이며 뱀은 그림만 보아도 간특하고
독살스러워 구약(舊約)작가의 저주를 받는 것이 과연이다-해 보이고 개는 얼른
보기에 험상스럽지마는 간교한 모양은 조금도 없다. 그는 충직하게 생기었다.
말은 깨끗하고 날래지마는 좀 믿음성이 적고 당나귀나 노새는 아무리 보아도
경망꾸 러기다. 족제비가 살랑살랑 지나갈 때 아무라도 그 요망스러움을 느낄
것이요 두 꺼비가 입을 넓적넓적하고 쭈그리고 앉은 것을보면 아무가 보아도
능청스럽다."
글을 쓴 이 사람은 어떤 부류로 보아야 할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몇십 년을 사는 동안 과거 현재의 자취는 알게 모르게 한 생에
영향을 미치고 업은 자연스레 얼굴에 뵈는 것인가 보다.
삼라만상 두두 물물 부처 아닌 것이 없다.
다시 한 번 깊이 새겨 보아야 하겠다.
어제까지 내린 비로 푸름은 더더욱 다가들고 미세 먼지 씻겨진 맑은 공기가 몸에
날개를 달아 주며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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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형을 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1905년 이던가요? 아인시타인 상대성 원리를 발표했을때 일화같습니다. 자신이 연구한 이론을 3시간 동안 열강을 했는데 전 세계에서 모인 석학들이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섭섭하기도 했고.. 자신이 잘 못 강의를 했나도 생각도 했는데... 그 이유로는 30년이 흘러 그 상대성 이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 교수가 비로서 나타난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당시는 아무도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이해를 못해서 왈가왈가 할 처지도 아니고 박수도 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형의 글이 아마 우리 학우들에게 그렇게 와 닿을 수도 있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해도 유형으로서는 정말 이 시대의 진정한 선각자 입니다. 전 다 읽지는 못하고 그냥 속독을 했습니다. 이해는 잘 못한 것은 말 것도 없고요... 그러나 우리 국문과 학우중에 살아있는 부처 같은 인간이라면 유형일 것입니다. 생불!
이동근 선배님 과찬이십니다.
한 시대의 청하 선지식님의 말씀을 전할 따름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