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은석, ‘高麗 千手觀音圖 圖像에 대하여’, <호암미술관 연구논문집> 4, 1999. pp.38-63 참조.
2) 송은석은 不空의 大悲心陀羅尼의 천수관음 지물과 관련하여, 이 그림에서의 천수관음의 지물을 오른손은 위로부터 月精摩尼手, 化佛手, 寶鏡手, 金輪手, 錫杖手, 俱尸鐵鉤手, 寶鉢手, 金剛杵手, 伐折羅手, 紅蓮華手, 靑蓮華手, 寶戟手, 寶螺手, 寶篋手, 寶箭手, 楊柳枝手, 數珠手, 軍遲手, 施無畏手, 왼손은 위로부터 日精摩尼手, 宮殿手, 防牌手, 如意珠手, 髑髏杖手, 白拂手, 寶印手, 寶劍手, 寶鐸手, 白蓮花手, 紫蓮花手, 鉞斧手, 五色雲手, 寶經手, 寶弓手, 葡萄手, 羂索手, 寶甁手, 玉環手로 비정하였다. 송은석, 앞의 논문, p.44.
3) 송은석은 <법화경> 제난구제 장면 중 타락난은 금강산에서 떨어지는 災難과 수미산에서 떨어지는 재난이 있는데, 이 장면은 관음의 영험이 넓적한 손바닥으로 형상화된 것으로 보아 금강산에서의 추락을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 송은석, 앞의 논문, p.44.
4) 고려시대의 천수관음 관련유물로는 이 불화 외에 프랑스 기메(Guimet)동양박물관 소장 철조천수관음상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천수관음상이 남아있다. 기메박물관 소장 상은 프랑스의 민속학자 샤를르 바라(Charlers Varat: 1842~1893)가 한국에 와서 수집해 간 것으로, 좌대 밑바닥에는 상주 東方寺庵主가 발원했다는 묵서 발원문이 적여 있다. 중앙의 두 손은 높게 들어 아미타화불을 받들고 있으며, 왼쪽과 오른쪽에 모두 40개의 손에 경전·보검·정병·법륜을 비롯한 다양한 지물을 들었다. 국립박물관소장 금동천수관음상 역시 중앙의 두 손으로 높이 아미타불을 받들고 있는 11면 42수의 불상으로 좌우에 다양한 지물을 들었다. 한편, 불상은 남아있지 않지만 1322년에 千手觀音像을 제작하고 장치한 복장물 가운데 千手觀音鑄成願文이 알려져 있어 당시 천수관음상의 제작이 있었음을 보여준다(許興植, ‘14세기의 새로운 佛腹藏資料’, <文化財>19, 文化財管理局, 1986). 원문에는 千手千眼觀音菩薩을 鑄成하는 취지를 밝히고 조성에 참여한 발원자와 주성에 필요한 물자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발원자들의 이름으로 보아 아마도 대구 인근지역에서 주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울러 1614년에 개금한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어 고려조에 조성된 조선중기에 이르기까지 사찰에 봉안되어 예배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 ‘한국의 千手觀音信仰과 千手觀音圖’, <정토학 연구>17, 한국정토학회, 2012. 176~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