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휴식 없이 달려야 하기에 오늘도 나는 감기약을 독약처럼 먹는다."
감기약이 오히려 감기 치료를 방해한다는 내용의 기사(서울신문 6월23일자)에 어떤 누리꾼이 단 댓글이다.
흡연의 해약을 다룬 기사를 내 보내면 "누가 그걸 몰라서 피는 줄 알아?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하는데?"라고 반문한다.
술을 마시지 말라고 쓰면 "술 없이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한탄한다.
새벽 일찍 출근해 아이들이 잠든 밤중에야 퇴근하는 노동자들.
뙤약볕 밑에서 사시사철 밭을 일궈도 개당 100원에 양파를 팔아야 하는 농민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끼니까지 거르며 경쟁에 내몰리듯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가슴 한쪽에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강해지려면 좋은 음식을 먹고 절주와 금연을 하고 매일 운동을 하고 푹 자고 쉬어야 한다.
무병장수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쉬;ㅁ을 허용하지 않은 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 내 피로, 내 병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잠을 줄여 공부하려고 고카페인 음료를 찾고 직장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술을 마시며 매일 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마약 같은 담배에 의지한다.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약국에서 산 자양강장제 한 병으로 그날의 피로를 위로하며
위안을 삼는다.
오죽했으면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야당의 한 후보가 내 놓은 슬로건인 '저녁이 있는 삶'이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을까.
그토록 바쁘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주5회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지만
일상에 찌든 한국읭 리반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건강에도 사회.경제적 격차가 있다.
흡연율과 비만유ㄹ, 음주율은 빈곤층이 더 높다.
돈이 없으면 병에 걸리고, 병에 걸리면 죄인처럼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無錢有病,有病有罪'의 사회다.
하지만 세상 탓도 지나치면 병이다.
사회가 술과 담배를 권한다고 주로 대로 받아마시며 몸을 망치라는법은 없다.
피로를 숙명처럼 여길 필요가 없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알지 않는가.
피로가 쌓이면 다음날 아침 눈뜨기 전부터 몸이 반응한다.
그런데도 또다시 사회로 복귀해 미친듯이 일을 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과연 주인인가. 노예인가 이현정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