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톡
서승현
감나무 집 102세 시어머니가
안방 문 앞
맨땅에 앉아서 톡톡톡
콩을 터신다
딱딱 벌어지는 콩꼬투리
잘 익은 노란 콩알들
황금빛 햇살 속
천지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남편 잃고 올망졸망 남겨진 자식 여섯
시집장가 보내고 증손자까지 마흔 여섯 명
102세 이력서인 백수 기념 가족사진 걸린 안방 문 앞
맨땅에 쪼그리고 앉아서
톡톡톡 콩타작 하신다
마당을 소리없이 가로질러
여윈 문살 두드리던 소리에
수줍게 가슴 열고 족두리 쓰던 날처럼
민들레 꽃씨같은 흰 머리 수그리신 채
작달막한 작대기로 톡톡톡
콩들의 방문을 열어 주고 계신다
일찌감치 방문 걸어 잠그고
하늘 문 열어버린 눈치 없던 영감은
여태 방문 안 열어주고 뭘 하고 계시나
당신 곁에 갈 준비 끝낸 지 오래
오늘이라도 날 데려가라며
구시렁구시렁 톡톡톡
맨 땅바닥 두드리고 계신다
(<시와세계> 2018, 여름호)
어부바
서승현
서 너 칸 높이 얕은 계단 앞에서
걸음도 못 떼는 팔순의 어머니가
바짝 들이미는 중늙은이 아들 등을
십일월의 풀솜같은 힘으로 자꾸 밀쳐내고 있다
엄니 언능 업히시라니께요
아이구, 우리 엄니 부끄러우시당가
우째 얼굴에 고족족 복상물이 들고 있당가
엄니, 언능 업히시라니께요
이러다 서산에 노을꺼정
엄니 볼에 몽땅 옮겨와 불 것쏘잉
성긴 흰 머리 단정하게 빗어 넘긴 안존한 노인네
두 볼에 번지는 홍조, 차츰 짙어지고 있다
엄니, 언제 제가 엄니 한번 업어 본 적 있으요
오늘 한 번 마음 놓고 업혀 보씨요
우리 엄니 한 번 업어보고 싶었당께요
서산에 해 다 넘어가 불것쏘잉
조곤조곤 달래며 어깨 넘어
기우듬히 돌아보는 애잔한 눈길
잔물결 주름 밀리는 두 볼에 소복소복 쌓여
복숭아꽃봉오리처럼 부풀어 오른다
엄니, 우리 엄니, 이쁘신 우리 엄니
가을 하늘 저녁 해는 걸음도 빠르당게요
복상물 노을꽃 다 져불기 전에
고우신 우리 엄니 한번 업어 보고 싶당게요
엄니 돌아가시면 업히고 싶어도 못 업히고
업어보고 싶어도 못 업는다니게요
미처 갈아입지 못한 감청색 작업복
흙먼지 구부정한 아들은
한사코 여윈 등을 들이밀고 있다
말 못하는 벙어리 늙은 어머니
아직 덜 마른 탯줄 자국 거기 있는 듯
물기 잃고 갈라터진 손바닥으로
얼룩진 등허리 쓰다듬고 있다
거친 실밥 드러나고 빛바랜 헤진 잠바
하염없이 투덕투덕 어루만지고 있다
해는 서산에 걸려 꼼짝 못하고……
( <삶이 보이는 창> 2018,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