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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a Lisa - Nat King Cole Orchestra accompanied 모나 리사 - 냇 킹콜 English & Korean Caption 영한자막 오케스트라 반주
※ 출처: hoseonsoo
출처: 자명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이다.
다빈치는 일반적으로 화가(畵家)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만능 천재였던 그는 화가
이전에 음악가, 건축가, 기계 공학자, 해부학자, 발명가, 화학자, 물리 실험가이기도 하다.
그의 노트에는 비행기의 날개 모양까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출처: 자명
'다빈치'는 신분상 결혼이 불가능한 시절에 태어난 서자(庶子)이다.
다빈치의 주요 작품인 모나리자는
신비한 웃음과 미완성 작품으로 유명한데 그 사유는 아래와 같다.
당시 초상화, 벽화, 성화가 유행할 때 '리자'라는 24살의 여인이 남편과 함께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다빈치를 찾았다.
리자의 아름다움은 다빈치를 감동시켜 승낙하게 된다.
그림에 전력을 다하였으나 리자의 모습에서 살짝 스치는 미소를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로 진척이
잘 되지 않는다.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러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으며, 리자는 날마다 같은 시간에 찾아와 그림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어느 날 리자는 서운한 듯 말하였다.
"선생님, 제가 남편을 따라 외국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얼마나 걸립니까?"
"석 달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전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남편이 한사코 가자고 해서..."
"함께 가셔야죠. 그림의 끝은 다녀오신 뒤에 마무리하죠.
언제 떠나십니까?"
"오늘 갑니다. 그런데 그림의 제목을 무엇으로 붙이실 겁니까?"
"'모나리자'라고 할까 합니다."
리자 부인은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모나'란' 마돈나', 즉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로 여자를 높임말이다.
아쉽게도 리자는 외국 여행 중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미완성의 작품으로 남게 된 것이다.
‘모나리자’라고 하는 불세출의 그림은 위와 같은 연유(緣由)를 가지고 있다.
모나리자(MonaLisa) 그림의 여자 이름은 '리자'이다.
[모나리자의 모든 것]
" Mrs. Risa "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한 폭에 “약 4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림 한 장 값이 40조 원이라니, 도대체 그 그림은 어떤 그림이며 어디에 있을까?
그 그림은 바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에 있는 것으로서 르네상스 시대 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 레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1503~1506년경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 53cm x 세로 77cm짜리 유채(油彩) 패널화 “모나리자(Mona Lisa)”라고 한다.
이 모나리자라는 작품은 프랑스 정부와 루브르 박물관의 소유이므로 경매의 대상은 아니지만, 프랑스 정부는
경제적 가치가 최소 약 2조3,000억 원에서 최대 약 40조 원 정도 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최대 40조 원이라는 이 엄청난 가격이 붙은 이유는 2018년 기준 연간 루브르 박물관의 방문객 수가
약 1,000만 명 정도인데, 방문객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최후의 만찬 등 다른 역작들을 제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 작품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기술적으로도 대단 하지만 다빈치가 죽을 때까지 항상 가지고 있었던 그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눈썹 없는 여인네에 불과한 이 그림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그림의 모델인 리자 게라르디니(Risa Gherardini)는 피렌체의 성공한 사업가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모나리자(Monarisa)라는 단어의 모나(Mona)는 이탈리아어로 Mrs라는 의미이므로 “모나리자는
Mrs. Risa”라는 뜻이 된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리사 부인”이라는 말이다.
다빈치가 그녀를 그리기 시작한 1503년 게라르디니(Gherardini)가 자식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었던
직후였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미소 짓게 하기 위해 광대와 악사들을 고용했다고 하는데 모나리자의 야릇한 미소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6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림이 완성되지 않고 오래 걸리자 다빈치와 그녀 사이가 야릇한 관계라는 소문까지 돌았는데 하지만 다빈치는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방탄유리로 보호받고 있는 모나리자는 신비한 미소로 특히 유명하다.
200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연구팀이 인간 감정(感情)을 인식하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나리자”를 분석한 결과 이 미소에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입술의 굴곡과 눈가의 주름 등 얼굴 주요 부위의 움직임을 수치화해 분석한 결과 전체표정의 83%는 행복함,
9%는 불쾌함, 6% 두려움, 3%는 분노 등이 섞여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1506년에 완성된 이 그림은 1518년 프랑스 국왕이 구입하여 프랑스의 소유가 되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 후인 1797년에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으로 옮겨져 영구 소장하게 되었다.
기네스북(Guinness Book)은 모나리자를 1962년에 보험가격을 1억 달러로 산정한 바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보험가격이 가장 비싼 그림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현 시가로는 9억 달러가 되며 한화로는 1조 2천억 원이 넘는다.
모두가 알고 있듯 모나리자 그림에는 눈썹이 없다.
다빈치의 전기작가 조르조 바사리(Georgio Vasari)는 눈썹이 없는 점이 바로 이 그림의 백미라고 극찬한 바 있다.
출처: 자명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인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는 모나리자의 구성과 형식을 그의 그림에 자주 도입하였는데, 그 이후 500년 동안 모나리자의 구성과 형식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으며, 근대에 들어와서도
많은 화가가 이를 원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나리자 그림이 문학, 음악, 영화, 방송, 광고 등 예술과 문화 분야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미국의 흑인 가수 “냇 킹 콜”이 부른 “Mona Lisa”는 1950년에 빌보드 차트 1위를 5번 차지하고, 영화 주제가로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이런 모나리자 그림이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실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눈썹이 없는 한 가지 흠이 있어서 오히려 그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출처: 자명
출처: 자명
출처: 자명
출처: 자명
“페르시아의 흠(Persian flaw)”이라는 말이 있다.
페르시아의 카페트 장인들은 카페트를 만들 때,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한쪽 구석에 일부러 작은 흠을 하나씩
낸다는 것이다.
출처: 구름샘지기
인디언들도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흠이 있는 구슬 하나를 일부러 넣는데 그 흠 있는 구슬을 영혼의 구술이라고
한단다.
완벽함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흠 없는 사람은 없다.
자연계를 보아도 대형 태풍, 대형 산불, 대형 폭우 같은 자연 재앙이 없는 해가 없다.
자연계도 이처럼 한두 가지 흠결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되라는 말은 만능의 신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한두 가지 흠이 있다고 해서 조금도 기죽을 이유가 없다.
기억하시라. 눈썹 없는 모나리자가 증명하고 있듯 개인이든 국가든 최고의 가치는 자신의 특성을 최고로
살리는 데 있다.
지방특산물이 그 지방을 살리는 무기가 되듯 그대의 특장점이, 또 나라의 특장점이 그대와 나라를 살리는
최고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출처: 황금동 김기태
※ 아는 만큼 즐길 수 있어요!
미리 알아보는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품과 위치
박물관의 8개 전시관에 공개되는 작품 수는 35,000점에 달해요.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작품과 위치 알아볼까요. 세부 작품설명은 다음 글에 포스팅할께요.
먼저 유럽의 층수는 0층 우리나라 1층, 유럽 1층은 우리 2층입니다. 뮤지엄맵 가이드에서의 층수 확인해주세요.
더욱이 루브르 박물관은 방대한 공간이라 어디부터 봐야 할지 정말 고민되죠.
미리 대표작품들과 위치를 파악해서 먼저 보시고, 차츰 본인이 좋아하시는 섹션을 주로 보세요.
루브르 박물관은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이집트 고고학, 그리스 에트루리아 로마 고고학, 이슬람 예술,
조각, 그림, 그래픽 미술, 예술 공예, 그리고 그림 및 조각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판넬에 유채 1503년~1506년경
대표 작품 '모나리자(Mona Lisa)'는 다빈치관에 있어요(드농관 1층, 711). 제가 갔을 때는 방탄유리로 되어있어서 그림에 비치는 글래어 현상 때문에 사진찍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 유명세 덕분에 항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어요. 다만 빨리 사람들이 빠지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시면 차츰 앞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사진이 흐릿하네요. 들어가는 계단 입구에 상징적으로 서있는 니케의 여신상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도 대표적이죠.
이집트부터 그리스, 로마시대의 조각상들이 많아요.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는 쉴리관 로비층 0층, 345에 있답니다. 승리의 여신 '사모트라케의 니케'
드농관 1층, 703 그리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보려면 드농관 회화실에서
찾아보세요. 작품 번호를 검색하거나 지도가 있으면 훨씬 빠르게 찾을 수 있어요.
출처: 예술여행가_ArTrip
※ 벨기에 회사로부터 각국 대표자 회의에 초청을 받고, 회사 출장비로 출국하여, 모닝캄 카드로 check in하여
대한항공편으로 김포→파리에 도착하여 여행사에서 예약한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check in 하고, Samsonite
여행가방 대, 소 두 개를 객실에 내려 놓고, 루브르 박물관까지 걸어가 입장표를 사서 안내판을 보고 모나리자와
비너스 조각상 두 개 표시 층수와 전시실 번호만 적고 모나리자 그림을 보니 벽시계처럼 나무상자에 유리창을 해
놓고 전시실 바닥에 약 10m 반지름으로 백색으로 반원을 그려놓아 접근을 못 하게 해 시력도 좋지 않아
모나리자 상을 잘 볼 수 없어 실망이 아주 컸다. 복도는 관광객들로 꽉 차서 빨리 갈 수도 없었다.
비너스 조각상은 흰색 석고처럼 보였는데 양 팔이 떨어져서 다 알고 와도 좀 실망했다. 그후 루브르는 유리로
피라미드 같은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이하 관광은 생략.
2박3일 관광을 마치고 샤르 드골 공항에 가서 부뤼셀까지 항공기로 가서 공항을 나가니 렌트카 회사 직원이 'S.R.No' 로 쓰인 종이패를 들고 있어 나를 pick up하여 초청 회사가 예약해둔 리에즈 유일한 호텔에 무료
투숙했다. 다음날 담당 부장이 호텔에서 pick up해서 본사를 견학하여 부장실을 들러 비서도 만나고, 담당 비서가 외출 시 내 국제전화를 받아주는 옆자리 다른 기술 담당 미인 비서도 만나고, 선적 담당 고참 여직원도 만났다.
르 메르(바다인데 그지방 강 이름) 강변에 있는 생산 공장을 견학할 때 명함을 보고, 품질 담당 부장임을 알고
"Oh, you are rearly very important gentleman for our business!" 하고 악수를 굳게 했더니 아주 순진한 사람으로 내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몇년후 이 부장이 한국담당 부장으로 승진하여 결국 나를 한국회사의 사장으로 만들어 주었다.
벨기에에서는 사장부터 다른 임직원들이 나를 'Dr. No'('007영화'의 주인공)로 부른다. 나는 그 '007영화'를 본적이 없다. 다음날 2대 한국담당 부장 집에 점심에 초대를 받았는데, 이 부장은 이혼을 하여 혼자 살고 있었고
나는 그를 'Registance'라고 불렀다. 언제나 bere 모자를 쓰고 아주 노련하고 sporty하게 보였고 한국에 올 때는 자기 부인을 동반하고 왔다. 그 부인은 값이 싼 호텔에 투숙하여 출국전 날 조선호텔에 초대해도 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는 다른 회사 부장의 초대를 받아 북해 살아있는 굴에 레몬을 짜서 움츠려드는 굴을 먹었다.
그 다음날은 부뤼셀에 가서 그랑 플라세 관광을 했다. 오줌싸게 어린 아이도 보고 그날 저녁 기술담당 이사 부부와
판매 담당 부장 부부가 나를 프랑스식당에 초대하여, 밸기에의 아름다운 부인들이어서
"Oh, you are very beautiful!" 했더니, 남편들도 부인들도 진심으로 아주 기뻐했다.
출국 전날 저녁은 담당 부장 자택을 들러 집안과 넓은 밭을 보고, 부부가 자기 딸과 한국 입양아 포함하여
중국식당에 나를 초대하여 Peking duck 요리를 먹었다.
Liez에서 Brussels Airport까지 자기차로 태워주었다. engine oil은 해외출장을 많이 해서 연도는 무시하고
10,000km 주행하고 교환하다고 하여 나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장거리 주행을 많이 하지 않으니 7~8,000km 주행후 교환했다. 브뤼셀→파리 샤르 드골 공항에 내려 대한항공을 타고 김포공항 국제선에 내려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