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끼 이야기
이 태 준
현은 잠이 깨자 눈을 부비기 전에 먼저 머리맡부터 더듬었다. 사기대접에서 밤샌 숭늉은 얼음에 채운 맥주보다 오히려 차고 단 듯하였다. 문득 전에 서해(曙海)가, 이제 현도 술이 좀 늘어야 물맛을 알지 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껏 서해가 살았던들, 술맛, 물맛을 같이 한번 즐겨볼 것을! 그가 간 지도 벌써 십 년이 넘는구나!’
현은 사지를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켜고 파리 나는 천장을 멀거니 쳐다본다.
중외(中外) 때다. 월급날이면, 그것도 어두워서야 영업국에서 긁어오는 돈 백 원 남짓한 것을 겨우 삼 원씩, 오 원씩 나눠 들고 그거나마 인력거를 불러 타고 호로를 내리고 나서기 전에는, 문 밖에 진을 치고 선 빵장수, 쌀장수, 양복 점원들에게 털리고 말던 그 시절이었다. 현은 다행히 독신이던 덕으로 이태나 견디었지만, 어머님을 모시고, 아내와 자식과 더불어 남의 셋방살이를 하던 서해로서는, 다만 우정과 의리를 배불리는 것만으로 가족들의 목숨까지를 지탱시켜 나갈 수는 없었다.
“난 매신으로 가겠소. 가끔 원고나 보내우. 현도 아무리 독신이지만 하숙빈 내야 살지 않소.”
현은 그 후 ‘중외’에 있으면서 실상 ‘매신’의 원고료로 하숙집 마누라의 입을 겨우 틀어막곤 하였다. 그러다 ‘중외’가 기어이 폐간이 되자 현은, 그까짓 공연히 시간만 빼앗기던 것, 이젠 정말 내 공부나 착실히 하리라 하고, 서해가 쓰라는 대로 잡문을 쓰고 단편도 얽어 하숙비를 마련하는 한편, 학생 때에 맛 모르고 읽은 태서대가(泰西大家)들의 명작들을 재독하는 것부터 일과를 삼았었다. 그러나 사람은 조금만 틈이 생기어도 더 큰 욕망에 눈이 텄다. 공연히 남까지 데려다 고생을 시켜? 하는 박성이 한두 번 아니었으나 결국 직업도 없이, 집 한 간 없이, 현은 허턱 장가를 들어놓았다. 제 한 몸 이상을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확실히 제 한 몸 전신으로 힘을 써야 할 짐이었다. 공부고 예술이고 모두 제이 제삼이 되어버렸다. 배운 도적질이라 다시 신문사밖에는 떼를 쓸
데가 없다. 다행히 첫아이를 낳기 전에 월급은 제대로 나오는 ‘동아’에 한 자리를 얻어, 또 신문 소설이라도 한옆으로 써내는 기술을 가져, 그때만 해도 한 평에 이삼 원씩이면 살 수가 있었으니 전차에서 내려 이십 분이나 걷기는 하는 데지만 우선은 집 걱정을 면할 오막살이가 묻어오는 이백여 평의 터를 샀고, 그 후 부(府)로 편입이 되고 땅 시세가 오르는 바람에 터전 반을 떼어 팔아 넉넉히 십여 간 기와집 한 채를 짓게까지 되었다.
“인전 집을 쓰고 앉았으니 먹구 입을 걸…….”
현의 아내는 살림에 재미가 나는 듯하였다. 재봉틀 월부를 끝내고, 간이 보험을 들고, 유성기도 이웃집에서 샀다는 말을 듣고 그 이튿날로 월부로 맡아 오더니,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 현이 어쩌다 소리판을 한둘 사들고 와도,
“그건 뭣 허러 삼 원씩 주고 사오, 음악이 밥 주나! 그런 돈 날 좀 줘요.”
하였고, 여름이면 현은 패스 덕이긴 하지만 혼자만 싸다니는 것이 미안하여 이십 원 만들어다,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 인천이라도 하루 다녀오라고 주면, 아침에는 인천까지 갈 채비로 나섰다가도 고작 진고개로 가로새어 백화점 식당에나 들어갔다가는 냄비, 주전자, 찻종, 그런 부엌 세간을 사서 아이들에게까지 들려가지고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이 현의 아내는 바로 이들 집에서 고개 하나 너머 있는 M여전(女專) 문과(文科) 출신이다. 오막살이에서나마 처음에는 창마다 유리를 끼고, 꽃무늬의 커튼을 드리우고 벽에는 밀레의 안젤루스를 걸고, 아침저녁으로 화분을 가꾸었다. 때로는 잠든 어린것 옆에서 조슬란의 자장가도 불렀고, 책장에서 비단 뚜껑한 책을 뽑아다 브라우닝을 읊기도 하였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부터 그리고 그 흔한 건양사 집들이 좌우전후에 즐비하게 들어앉는 것을 보면서부터는 모교가 가까워 동무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을 도리어 싫어하였고, 어서 오막살이를 헐고 뻔듯한 기와집을 지어보려는 설계에 파묻히게 되었다. 안젤루스에 먼지가 앉거나 맙거나, 화초분이 말라 시들거나 말거나 그의 하루는 그것들보다 더 절박한 것으로 프로가 꽉 차지는 것 같았다.
현은 일 년에 하나씩은 신문 소설을 썼다. 현의 야심인즉 신문 소설에 있지 않았다. 단편 하나라도 자기 예술욕을 채울 수 있는 창작에 자기를 기르며 자기를 소모시키고 싶었다. 나아가서는, 아직 지름길에서 방황하는 이곳 신문학을 위해 그 대도(大道)로 들어설바 교량(橋梁)이 될 만한 대작이 그의 은근한 복원끼기도 했다. 인물의 좋은 이름 하나가 생각도 적어두어 아끼었고 영화에서 성격 좋은 배우 하나를 보아도 그의 사진을 찢어 모아두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구상만으로 해를 묵을 뿐, 결국 붓을 들기는 몰아치는 대로 몰아쳐질 수는 있는 신문 소설뿐이었다.
현의 신문 소설이 시작되면 독자보다는 현의 아내가 즐거웠다. 외상값 밀린 것이 풀리고 단행본으로 나와 중판이나 되면 하지 않은 목돈에 가끔 집 안이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소위 불혹지년이란 게 낼모레가 아닌가! 밤낮 이것만 허다 까부러질 건가? 눈 뜨면 사로 가고 사에 가선 통신 번역이나 허고…… 고작 애를 써야 신문 소설이나 되고……’
현의 비장한 결심이 그렇지 않아도 굳어질 무렵인데 ‘동아’가 ‘조선’과 함께 고스란히 폐간이 되는 것이었다.
명랑하라, 건실하라, 시대는 확성기로 외친다. 현은 얼떨떨하여 정신을 수습할 수 없는 데다, 며칠 저녁째 술에 취해 돌아왔던 것이다.
밤 잔 승늉에 내단(內丹)이 씻긴 듯 속은 시원하였으나 골치는 그저 무겁다.
‘술이 좀 늘어야 물맛을 알지…… 흥, 신문사 십 년에 냉수 맛을 알게 된 것밖에 는 게 무언고?’
다시 숭늉 그릇을 이끌어왔으나 찌꺼기뿐이다. 부엌 쪽 벽을 뚝뚝 울리어 아내를 불렀다.
“기껀 주므셌수?”
“물 좀.”
아내는 선선히 나가 물을 떠 가지고 와 앉는다. 앉더니 물을 자기가 마시기나 한 것처럼 목을 길게 빼며 선트림을 한다. 아내는 벌써 숨을 가빠하는 것이다. 한 딸, 두 아들이어서 꼭 알맞다고 하던 것이 다시 네 번째의 임신인 것이었다.
“나 당신헌테 헐 말 있어요.”
평시에 잔소리가 없는 만치 현의 아내는 가끔 이런 투로 현의 정색을 요구하였다.
“요즘 당신 심경 나두 모르진 않우. 그렇지만 당신 벌써 사흘째 내려 술 아뉴?”
현은 잠자코 이마를 찌푸린 채 터부룩한 머리를 쓸어넘긴다.
“술 먹구 잊어버릴 정도의 거면 애당초에…… 우리 여자들 눈엔 조선 남자들 그런 꼴처럼 메스껍구 불안스런 건 없습디다. 술루 심평이 피우? 또 작게 봐 제 가정으루두 어디 당신들 사내 하나뿐유? 처자식 수두룩허니 두구, 직업두 인전 없구, 신문 소설 쓸 데두 인전 없구…… 왜 정신 바싹 채리지 않구 그류?”
현은, 듣기 싫어 소리를 치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으나, 또 반동적으로 이날도, 그 이튿날도 곤주가 되어 들어왔으나, 사실 아내의 말에 찔리기도 하였거니와 저 혼자 취한다고 세상이 따라 취하는 것도 아니요, 저 혼자나마도 언제까지나 취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현은 아내의 주장대로 그 송장의 주머니에서 턴 것 같은, 가슴이 섬찍한 퇴직금이지만, 그것을 밑천으로 토끼를 기르기로 한 것이다.
뉘 집에서는 처음 단 두 마리를 사온 것이 일 년이 못 돼 오십 평 마당에 어떻게 주체할 수 없도록 퍼지었고, 뉘 집에서는 이백 원을 들여 시작했는데 이태가 못 되어 매월 평균 칠팔십 원 수입이 있다는 것은 현의 아내가 직접 목격하고 와서 하는 말이었고, 토끼 기르는 책을 얻어다 주어 현은 하룻저녁으로 독파를 하니, 토끼를 기르기에는 날마다 붙잡히는 일이기는 하나 날마다 신문 소설을 써대는 것보다는 마음의 구속은 적을 것 같았고, 신문 소설을 쓰면서는 본격 소설에 손을 댈 새가 없었으나, 토끼를 기르면서는 넉넉히 책도 읽고 십 년에 한 편이 되더라도 저 쓰고 싶은 소설에 착수할 여력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은 시대가 메가폰으로 소리쳐 요구하는 명랑하고, 건실한 생활일 수도 있는 점에 현은 더욱 든든한 마음으로 토끼 치기를 결심하였다. 그리고 우선 아내의 뒤를 따라 아내와 동창이라는, 이백 원을 들여 지금은 매달 칠팔십 원씩을 수입한다는 집부터 견학을 나섰다.
그 집 바깥주인은 몇 해 전에 ‘동아’에서도 사진을 이단으로나 낸 적이 있고, 그의 연주회 주최를 다른 사와 맹렬히 다루기까지 하던, 한때 이름 높던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니스트답지는 않게 거칠고 풀물이 시퍼런 손으로 현의 부처를 맞아주었다. 마당엔 들어서기가 바쁘게 두엄내보다는 노릿한 내가 더 나는 훗훗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목욕탕에 옷 벗어 넣는 궤처럼 여러 층 여러 칸
으로 된 토끼집이 작은 고층 건물을 이루어 한편 마당을 둘러 있었다. 칸칸이 새하얀 토끼들이 두 귀가 빨쪽하니 앉아 연분홍 눈을 굴리며 입을 오물거린다. 현은 집의 아이들 생각이 났다. 동화의 세계다. 아동 문학을 하는 이에게 더 적당한 부업같이도 생각되었다. 현 부처는 피아니스트 부처에게서 양토 경험담을 두 시간이나 듣고, 보고 더욱 굳어지는 자신으로 돌아왔다. 와서는 곧 광주 가네보 양토부로 제일 기르기 쉽다는 메리켄으로 이십 마리를 주문하였다. 곧 목수를 데려다 토끼장을 짰다. 토끼장이 끝나기도 전에 ‘오늘 토끼를 부쳤다’는 전보가 왔다. 현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 풀과 아카시아 잎을 뜯어왔다. 두부장수에게 비지도 마퀴었다. 수분 있는 사료만으로는 병이 나는 법이라 해서 건조사료(乾燥飼料)도 주문하였다. 사흘 만에 이 작고 귀여운 현의 집 새 식구 이십 명은 천장을 철사로 얽은 궤짝에 담기어 한 명도 탈없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더위에 할락거리기는 하면서도 그저 궤짝 속이 저희 안도(安堵)인 듯, 밖을 쳐다보는 일이 없이 태연히 주둥이들만 오물거리었다. 자연의 한 동물이라기보다 시험관 속에서 된 무슨 화학물(化學物) 같았다. 아이들과 아내는 즐겨 끄르며 덤비었으나, 현은 뒤에 물러서서 그 작은 그 귀여운, 그리고 박꽃처럼 희고 여린 동물에게다 오륙 명의 거센 인생의 생계(生計)를 계획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확실히 죄스럽고 수치스럽기도 하였다.
아무튼 토끼가 와서부터 현은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먹이를 주고 다음 먹이의 준비까지 되어 있으면서도 얼른 손을 씻고 방으로 들어와지지가 않았다. 토끼장 앞으로 어정어정하는 동안 다시 다음 먹이 시간이 되고, 다시 그 다음 먹이를 준비해야 되고 장 안을 소제해야 되고, 현은 저녁이나 되어야 자기의 시간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차츰 밤 긴 가을이 깊어졌다. 워낙 구석진 데라 더구나 저녁에는 찾아오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현은 저녁만이라도 홀로 조용히 등을 밝히고 자기의 세계를 호흡하는 것이 즐거웠다. 십 년 전, 독신일 때 하숙집에서 재독하기 시작했던 태서 명작을 다시금 음미하는 것도 즐거웠고, 등불을 멀찍이 밀어놓고 책장을 살피며 근대의 파란 중첩한, 인류의, 문화의, 문학의 뭇 사조(思潮)의 물결을 더듬으며, 한 새 사조가 부딪치고 지나갈 때마다 이 귀퉁이 저 귀퉁이 부스러뜨리기만 해오던 장편(長篇)의 구상(構想)을 계속해보는 것도 얼굴이 달도록 즐거움이었다.
많지는 못한 장서(藏書)나마 현은 한가히 책장을 쳐다볼 때마다 감개무량하기도 하였다. 일목천고(―目千古)의 감을 느끼는 것이다. 새 책은 날마다 나온다. 또 새 책은 날마다 헌 책이 된다. 한때는 인류 사상의 최고봉인 듯이 그 앞에는 불법(佛法)도 성전(聖典)도 무색하던 것이 이제는 그 책의 뚜껑빛보다도 내용이 앞서 퇴색해버리고 말았다. 그 뒤에 오는 다른 새것, 또 그 뒤를 따
른 새것들, 책장 한 층에만도 사조는 두 시대, 세 시대가 가지런히 꽂혀 있는 것이다.
‘지나가버린 낡은 사조의 유물들! 희생된 것은 저 책들뿐인가? 저 저자들뿐인가? 저 책들과 저 저자들뿐이라면 인류는 이미 얼마나 복된 백성들이었으랴마는, 인류는 언제나 보다 나은 새 질서를 갈망해 헤매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새 사조가 지나갈 때마다 많으나 적으나, 또 그전 것을 위해서나 새것을 위해서나 반드시 희생자는 났다. 그 사조가 거대한 것이면 거대한 그만치 넓은 발자취로 인류의 일부를 짓밟고 지나갔다. 생각하면 물질문명은 사상의 문명이기도 하다. 한 사상의 신속한 선전은 또 한 사상의 신속한 종국을 가져오기도 한다. 예전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이나 겪을지 말지 한 사상의 난리를 현대는인은 일생 동안 얼마나 자주 겪어야 하는가. 청(淸)의 시인 이초(李樵)¹가 일신수생사(一身數生死)라 했음은, 정히 현대의 우리를 가리킴이라 하고, 현은 몇 번이나 책장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신수생사! 사상은 짧고 인생은 길고…….’
토끼는 듣던 바와 같이 빠르게 번식해나갔다. 스무 마리가 아카시아 잎이 단풍 들 무렵엔 사십여 마리가 되어 북적거린다. 토끼장도 다시 한 오십 마리치를 늘리려 재목까지 사들이는 때다. 문제가 일어났다. 먹이의 문제다. 풀과 아카시아 잎의 저장을 충분히 할 수 없어 비지와 건조 사료에 오히려 믿는 바 컸었는레 두부 장수가 가끔 거른다. 오는 날도 비지를, 소위 실적의 반도 못 가져온다. 건조 사료도 선금과 배달비까지 후히 갖다 맡겼는데도 오지 않는다. 콩이 잘 들어오지 않아 두부 생산이 준 것, 그러니 두부 대신 비지 먹는 사람이 는 것, 그러니 비지는 두부보다도 더 귀해진 셈이다. 건조 사료란 잡곡의 겨〔糠〕 인데 무슨 곡식이나 칠분도(七分搗) 내지 오분도로 찧으니 겨가 나올 리 없다. 알고 보니 최근까지의 건조 사료란 전년의 재고품이었던 짓이다. 현의 아내는 동분서주하였으나, 토끼는커녕 닭을 치던 집에서들까지 닭을 팔고, 닭의 우리를 허는 판이었다.
현의 아내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처럼 며칠이나 얼굴이 붉어 있었으나 결국 토끼를 기름으로써의 생계는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토끼를 헐값이라도 치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죽이면 얼마든지 일시에 처분할 수가 있으나 산 것채로는 어디서나 먹이가 문제라 길이 막히었다. 사십여 마리를 일시에 죽이자니 집 안이 일대 도살장(屠殺場)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사십여 마리의 가죽을 쟁을 쳐 말릴 널판도 없거니와 단 한 마리라도 칼을 들고 껍질을 벗길 위인이 없다. 현은 남자면서도 닭의 멱 하나 따본 적이 없고, 현의 아내 역(亦), 한번은 오막살이집 때인데 튀하기는 닭 한 마리를 온군 채 사왔더니 닭의 흘겨 뜬 죽은 눈이 무석워 신문지로 덮어놓고야 썰던 솜씨였다. 더 늘리지나 말고 오래는 갈리더라도 산 채로 처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 채로 처분하자니 팔리는 날까지는 어떻게 해서나 굶겨 죽이지는 않아야 한다. 부드러운 풀은 벌써 거의 없어진 때다. 부엌에서 나오는 것은 무청뿐이요, 밖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클로버뿐이다. 클로버도 며칠 안 있으면 된서리를 맞을 즈음인데 하루는 현의 아내가 그의 모교인 M여전 운동장이 클로버투성인 것을 생각해냈다. 그길로 고개를 넘어 모교에 다녀오더니, 학교에서는 해마다 사람을 사서 뽑는데도 당할 수가 없어 잔디를 버릴까 봐 걱정이니 제발 뜯어라도 가라는 것이라 한다. 현은 입맛을 찍쩍 다시다가 “당신이 가기 싫음 내가 가리다. 오륙이 멀쩡해 가지구 미물이라두 기르던 걸 굶겨 죽여야 옳우?” 하는 아내의 위협에 아내가 홀몸도 아닌 때라, 또 다른 곳도 아니요 저희 모교 마당에 가서 토끼 밥을 뜯고 앉아 있는 정상이 어째 정도 이상으로 가긍하게 머릿속에 떠올라, 그만 대팻밥 모자를 집어 쓰고 동저고리 바람인 채 고무신을 끌고, 마악 학교에서 돌아오는 큰녀석에게까지 다래끼를 하나 둘러메여 가지고 고개를 넘어 M여전으로 왔다.
운동장에는 과연 잔디와 클로버가 군데군데 반반 정도로 대진이 되어 있었다.
‘나야 이렇게 동저고리 바람에 농립을 눌러썼으니 누가 알아볼라구…… 또 알아본들 현 아무개란 하상…….’
하학이 된 듯 운동장에는 과년한 여학생들이 설멍하니 다리들을 드러내고 발리볼을 던지기도 하고 자전차를 타고 돌기들도 한다. 현은 남의 집 안마당에 들어서는 것 같은 어색함을 느꼈으나 수굿하고 한편 여가리에 물러앉아 클로버를 뜯기 시작하였다.
“아버지?”
“왜?”
아들애는 우두머니 서서 언덕 위에 장엄하게 솟은 교사와 여학생들이 자전차 타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엄마두 여기 학교 나쐈지?”
“그럼…… 어서 이 시펴런 풀이나 뜯어…….”
이 아버지와 아들의 짧은 대화를 학생 두엇이 알아들은 듯,
“얘, 너이 엄마가 누군데?”
하며 가까이 온다. 현의 아들애는 코만 홀쩍하고 돌아선다. 현은 힐끗 아들을 쳐다본다. :그 쳐다보는 눈이, 가끔 집에서 ‘떠들면 안 돼’ 하던 때 같다.
아들애는 잠자코 제 다래끼를 집어다 클로버를 뜯기 시작한다.
“이거 뜯어다 뭘 허니?”
“토끼 메게요.”
“토끼! 너이 집서 토끼 치니?”
“네.”
학생들은 저희도 뜯어서 현의 아들 다래끼에 담아준다.
“너이들 뭐 허니?”
현의 등 뒤에서 다른 학생들 한 떼가 몰려온다. 현은 자기까지 아울러 ‘너희들’로 불리는 것같이 화끈해진다.
“우린 요쓰바 찾는다누.”
딴은 그들은 토끼 밥을 뜯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희들 ‘행복’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두, 나두…….”
그들은 모이를 본 새떼처럼 클로버에 몰려 앉는다. 현은 수굿하고 다른 쪽을 향해 뜯어나가며, 차기의 아내도 한때는 브라우닝의 시집을 끼고 이 운동장 언저리를 거닐다가 저렇게 목마르듯 ‘행복의 요쓰바’를 찾아보았으려니, 그 ‘행복의 요쓰바’와 함께 푸른 하늘가에 떠오르던 그의 ‘영 웅’은 오늘 이 마당에 농립을 쓰고 앉아 토끼 밥을 뜯는 사나이는 결코 아니었으려니, 이런 생각에 혼자 쓴 침을 삼켜보는데 무엇이 궁둥이를 특 때린다. 넓은 마당에 까르르 웃음이 건너간다. 현의 각도로 섰던 발리볼 선수 하나가 볼을 놓쳐버렸던 것이다.
현은 다음날 오후에도 큰녀석을 데리고 M여전 운동장으로 왔다. 클로버는 아직도 한 댓새 더 뜯어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날이 마지막이게 이날 밤에 된서리가 와버린 것이다. 현의 아내는 마침내 김장 때라 무청과 배추 우거지를 이 집 저 집서 모아들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철이었다. 현은 생각다 못해 한두 마리씩이라도 없애보려 대학병원에 그리 친치도 못한 의사 한 분을 찾아가보았다. 십여 년째 대이는 사람이, 그도 요즘은 한두 마리씩 더 갖다 맡기어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현은 대학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책사에 들렀다. 양토법에 관한 책에는 토끼의 도살법까지도 씌어 있기 때문이다. 전에 아내가 빌려온 책에서는 그만 기르는 법만 읽고 돌려보낸 것이다.
토끼를 죽이는 법, 목을 졸라 죽이는 법, 심장을 찔러 피를 뽑아 죽이는 법, 물에 담가 죽이는 법, 귀를 잡고 어느 다리를 어떻게 잡아당겨 죽이는 법, 동맥을 짤라 죽이는 법, 그리고 귀와 귀 사이의 골을 망치로 서너 번 때리면 오체를 바르르 떨다가 죽게 하는 법, 이렇게 여섯 가지나 씌어 있었다.
현은 먼지 낀 책을 도로 체자리에 꽂고 주인의 눈치를 엿보며 얼른 책사를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로, 옷을 갈아입는 길로, 토끼 한 놈을 꺼내었다. 묵직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뻐들컹거리고, 눈을 똘망거리고……교미기가 지난 놈들이라 새끼 때의 화학물감(化學物感) 박꽃감은 이젠 아니요, 놓기는커녕 웬만큼 서투르게만 붙잡아도 뻐들컹하고 튕겨 산으로 치달을 것만 같은 ‘짐승’이다.
현은 단단히 앙가슴과 뒷다리를 움켜쥐고 마루로 왔다. 딸년이 방에서 나오다가 소리를 친다.
“얘들아, 아버지가 토끼 꺼냈다!”
큰녀석 작은녀석이 마저 뛰어나온다.
“왜 그류, 아버지?”
“병 났수?”
“마루에 가둬. 우리 가지구 놀게.”
“이뻐서 그류, 아버지?”
딸년은 제 손에 들었던 빵쪽을 토끼의 입에다 갖다 댄다. 토끼는 수염을 쫑긋거리더니 빵쪽을 물어떼려 한다. 현은 잠자코 아까 책사에서 본 여섯 가지 방법을 생각해낸다.
“왜 그류, 아버지?”
“가, 저리들.”
현은 그제야 소리를 꽥 질렀다. 아내가 부엌에서 나온다. 현은 아내의 해산달이 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현은 등솔기에 오싹함을 느끼며 토끼를 다시 안고 뒤꼍으로 왔다. 아내가 따라오며 그 역,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뭣 허러 아이처럼 따라댕겨?”
아내는 얼른 물러나지 않는다. 현은 도로 토끼를 갖다 넣고 만다. 암만 생각하여도 그 목을 졸라 쥐고, 뻐들적거리는 것을 이기노라고 같이 힘을 쓰며 뒤어쓰는 눈을 내려다보고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노릇, 현은 그 목을 졸라 죽이는 법에 자신이 생기지 못한다. 심장이 어드메쯤이라고 그 폭신한 가슴을 더듬어 송곳을 들이박기는, 남의 주사침 맞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현으로
는 더욱 불가능한 일이요, 쥐처럼 덫 속에 든 것도 아닌 것을 물 속에 끌어 넣기나, 귀와 다리를 붙잡고 척추가 끊어지도록 잡아 늘이는 것이나, 그 어린아이처럼 따스하고 발랑거리는 목에서 동맥을 싹뚝 짤라놓는 것이나, 자꾸 돌아보는 것을 앞으로 숙여놓고 망치로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나 현으로는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치고, 지금 아내의 뱃속에 들어 있는, 마치 토끼 형상으로 꼬부리고 있을 태아를 위해 이런 짓은 생각만으로도 죄를 받을 것만 같았다.
김장철이 지나가자 토끼 먹이는 더욱 귀해서 사람도 먹기 힘든 두부와 캐비지로 대는데 하루에 일 원 사오십 전씩 나간다. 이렇게 서너 달만 먹인다면 그 담에는 토끼 오십 마리를 한목 판다 하여도 먹이 값밖에는 나올 게 없다. 서너 달 뒤에 가서는 토끼 문제뿐반 아니다. 토끼 때문에 이럭저럭 사오백 원이 부서졌고, 김장하고 장작 두 마차 들이고, 퇴직금 봉지엔 십 원짜리 서너 장이 남았을 뿐이다
‘어떻게 살 건가?’
어느 잡지사에서 단편 하나 써달란 지가 오래다. 독촉이 서너 차례나 왔다. 단돈 십 원 벌이라도 벌이라기보다, 단편 하나라도 마음 편히 앉아 구상해보기는 다시 틀렸으니 종이만 펴놓을 수 있으면 어디서고 돌아앉아 쓰는 게 수다. 하루는 있는 장작이라 우선 사랑에 군불을 뜨뜻이 지피고 ‘이놈의 토끼 이야기나 써보리라’ 하고 들어앉아 서두를 찾노라고 망설이는 때였다.
“여보? 어디 게슈?”
하는 아내의 찾는 소리가 난다. 내다보니 얼굴이 종잇장처럼 해쓱해진 아내는 두 손이 피투성이다.
“응?”
“물 좀 떠줘요.”
“웬 피유?”
아내의 표정을 상실한 얼굴은 억지로 찡기여 웃음을 짓는다. 피투성이 두 손은 부들부들 떤다. 현의 아내는 식칼을 가지고 어떻게 잡았는지, 토끼 가죽을 두 마리나 벗겨놓은 것이다. 현은 머리칼이 쭈뼛 솟았다.
“당신더러 누가 지금 이런 짓 허래우?”
“안 험 어떡허우? 태중은 뭐 지냈수? 어서 손 씻게 물 좀 떠놔요.”
하고 아내는 토끼털과 선지피가 엉킨 두 손을 찍 벌려 내어민다. 현의 머리 속은 불현듯, 죽은 닭의 눈을 신문지로 가려놓고야 썰던 아내의 그전 모습이 지나친다. 콧날이 찌르르하며 눈이 어두워졌다.
피투성이의 쩍 벌린 열 손가락, 생각하면 그것은 실상 자기에게 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은 펄썩 주저앉을 듯이 먼 산마루를 쳐다보았다. 산마루엔 구름만 허옇게 떠 있었다.
-끝-
2016년 5월 19일 앍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