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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거리에서
여름방학 동안 도오루는 자신의 마음을 두 번 다시 요코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요코에게는 점차 쓰지구치 집이 너무도 불편한 곳으로 여겨졌다. 요코는 애써 도오루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피했다.
기타하라와 멀어지고 도오루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게 된 요코는 너무도 외로웠다. 여름방학이 끝나자 도오루는 삿포로로 돌아갔다. 2학기가 시작되자 요코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러나 몇몇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진학반이어서 복도를 걸어다닐 때에도 단어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나가곤 하여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가 없었다.
“요코, 기타하라 씨에게선 왜 편지가 오지 않니? 싸우기라도 한 거야?”
나쓰에는 요코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코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요코는 기타하라가 보낸 몇 통의 편지를 봉투도 뜯지 않고 불태워 버렸으나 막상 편지가 딱 끊어지니 허전해서 안절부절못했다.
일요일 같은 때에 편지가 배달되는 시간이면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괴롭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귀를 기울이고 ‘편지요!’하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은 잠시나마 쓸쓸함을 잊을 수 있었다.
‘이제 편지가 오면 절대로 불살라 버리거나 하지 않을 거야.’
기다리고 있는 동안은 약간의 달콤한 기대가 있었다. 그런 요코의 심정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듯이 나쓰에는,
“기타하라 씨로부터 편지가 통 오지 않는구나. 네가 편지를 해보렴.”
하고 말하기도 햇다. 그러나 기타하라의 사진 때문에 상처를 입은 요코는 자기 쪽에서 먼저 편지를 보낼 기분은 나지 않았다. 요코는 진심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기를 바랐던 자신을 배신한 기타하라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나쓰에는 기타하라와 요코 사이에 편지 왕래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기 모르게 두 사람이 몰래 편지를 주고받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기타하라는 요코의 친구한테로 편지를 보낼 것만 같았다. 나쓰에는 요코 몰래 기타하라의 편지를 되돌려 준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신의 눈을 피해 은밀히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기타하라 같은 사람 별로 좋아하지 않아. 너한테 편지를 보내면서 딴 아가씨와 다정하게 사진까지 찍고.....기타하라는 여자 친구가 많은 가봐.”
나쓰에는 이런 말도 햇다. 요코는 기타하라가 집에 와 머무는 동안 나쓰에가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것을 잊지 않았다. 그때 나쓰에가 기타하라와 매일같이 숲속으로 산책을 간 것도 요코는 알고 있었다. 따라서 기타하라가 싫다는 나쓰에의 말을 요코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언ㅂㅅ었다.
한편 나쓰에는 기타하라가 삿포로의 다방에서 자신을 뿌리치듯이 하고 자리를 뜬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 원망이 기타하라와 편지를 주고받는 요코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기타하라에게서는 여전히 편지가 오지 않은 채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는데도 도오루는 웬일인지 집에 오지 않았다.
‘올 겨울에는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삿포로 요양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에요. 12월 말부터 일주일 정도 집에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기대하지는 마세요.’
도오루가 간단한 엽서만 보낸 것이 나쓰에는 못내 서운했다.
“이상하군요. 무엇 때문에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려는 걸까요? 용돈이 모자라는 것도 아닐 텐데요. 정 일하고 싶으면 우리 병원에서 거들어 주는 게 좋잖아요?”
게이조는 도오루의 아르바이트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기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난 괜찮은 생각 같은데? 우리 병원에 오면 제대로 일하는 거 같은 기분이 나지 않을 거요. 도오루가 할 수 있는 일이래야 고작 객담 검사나 적혈구, 백혈구를 헤아리는 정도일 거요.”
요코는 역시 도오루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자기 때문에 도오루가 겨울방학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이되었다.
도오루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요코와 남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기타하라가 병이 났다고 해도 문병을 가려 하지 않고, 편지 왕래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요코의 모습에 도오루는 은근히 마음이 놓였었다.
처음에는 기타하라에게 요코를 맡기려고 생각했던 도오루였다. 그러나 요코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자신이 얻어온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하자 도오루는 요코에 대한 연정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기타하라가 요코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 눈치여서 도오루는 더욱 몸이 달았다. 요코의 내력을 아무것도 모르는 기타하라와 결혼하는 것이 요코에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서도 오랫동안 사랑해온 요코를 단념할 수 없엇다.
도오루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정원에 있는 마가목의 빨간 열매에 흰 눈이 쌓여 교회의 종과 같은 모양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요코는 즐거웠다. 요코는 외로움에도 익숙해져 차츰 혼자 있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요코는 혼자서 그리스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본래 좋아하던 수학에 몰두하여 게이조의 책장에서 유클리드 기하학 서적을 꺼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마가목의 빨간 열매가 눈을 뒤집어쓴 모습을 내다보면서 요코는 무심코,
‘기타하라 씨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하고 생각하였다. 문득 정신을 차린 요코는 너무나도 변덕스러운 자신의 마음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기타하라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도 요코의 외로움을 지탱해주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기타하라 씨는 나를 배신했지만, 난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기타하라의 일로 요코는 양심이 거리끼지는 않았다.
저녁을 먹고 요코는 나쓰에의 심부름으로 물건을 사러 거리에 나왔다. 커다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포근한 밤이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밤거리에는 징글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세일이라고 영어로 쓴 간판을 내걸고, 쇼 윈도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되어 빨갛고 파란 전구가 켜졌다 꺼졌다 하고 있었다.
쇼핑을 마친 요코가 양품점을 나섰을 때였다. 2,3미터 떨어진 맞은편에서 인파 속을 걸어오는 기타하라가 눈에 띄었다. 요코는 움찔하여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기타하라는 검정색 목도리를 두른 어떤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요코 쪽으로 다가왔다. 요코는 얼결에 상점 앞의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그늘에 숨어 버렸다.
사진에서 본 그 여자가 생긋 웃자 새하얀 덧니가 드러나 귀엽게 보였다. 요코는 눈앞을 지나가는 기타하라를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된 가지 사이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타하라는 약간 여윈 것 같았고 나이가 좀 들어 보였다. 두 사람은 요코를 발견하지 못하고 상점 앞을 지나갔다.
그리웠다.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준 기타하라가 어째서 이렇게 그리운지 요코는 알 수 없었다. 요코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쫓아가서 뭘 어쩌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리에서 기타하라와 그 여자의 모습만이 요코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여자는 때때로 기타하라를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고 잇었다.
4조의 헤이와 거리 신호등 앞에서 두 사람은 멈춰섰다.
기타하라 혼자 교차로를 건너가고 함께 있던 여자는 오른쪽 길로 돌아갔다. 두 사람 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짓조차 하지 않았다. 깨끗한 작별이었다.
요코는 빨간 불로 바뀐 신호등 저편의 기타하라를 놓쳐 버렸다. 하지만 쫓아가 보았자 말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바로 길모퉁이 약국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방금 기타하라와 헤어진 바로 그 여자가 전화 다이얼을 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코는 자신도 모르게 그 여자의 뒤에 다가가 멈춰 섰다. 상대방이 통화 중인지 여자는 다시 다이얼을 돌렸다. 수화기를 가반히 귀에 댄 채 그 여자는 무심코 요코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통화중인가봐요. 먼저 거세요.”
그 여자는 귀여운 덧니가 드러나게 살짝 웃고는 요코에게 전화를 양보하려고 했다.
“아네요, 괜찮아요.”
요코는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은 나를 모르는구나. 인상이 참 좋은 걸 보니 이 사람은 절대 악인이 아니야.’
여자는 요코의 말을 듣고 순순히 다시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아, 얏짱. 나야. 아니, 나 몰라? 나라니까, 미치코야, 기타하라 미치코.”
‘기타하라 미치코?’
요코는 그 여자를 눈여겨보았다.
“응, 고마워. 하지만 오빠와 함께 와 있어.”
그 여자는 공중전화 위로 상반신을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오빠와 함께?’
요코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얼마나 큰 오해를 했는가!’
기타하라의 동생은 기타하라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고 어머니는 분명 기타하라 씨의 애인인 것 같다고 말했는데.’
기타하라의 여동생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자꾸만 웃고 있었다.
‘오빠도 기타하라와는 결혼할 수 없다고 했어.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요코는 ‘기타하라와 결혼할 수 없어.’라고 한 도오루의 말을 기타하라에게는 애인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애인은 사진에서 본 여자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 여동생이라면 따로 애인이 있는 걸까?’
‘넌 살인범의 딸이기 때문에 그 내막을 알게 되면 기타하라와 절대 결혼할 수 없어.’
라는 뜻으로 그 말을 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요코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리의 밤하늘은 희끄무레했다.
“미안해요, 기다리게 해서.”
기타하라의 여동생이 요코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고 했다. 요코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저........?”
기타하라의 여동생이 의아한 얼굴을 하고 멈춰 섰다.
“실례지만 기타하라 구니오 씨의 여동생인가요?”
“네, 그런데요.......아, 당신이 쓰지구치 요코 씬가요?”
기타하라의 여동생은 친절하게 말했다.
“네, 쓰지구치에요.”
요코는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오빠는 바로 저 서점에 가 있어요.”
기타하라의 여동생은 상냥하게 말했다. 요코는 인사를 하고 나서 신호등도 보지 않고 뛰어가려고 했다. 여느 때의 요코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교차로를 지나 길모퉁이에서 두 번째 가게가 서점이었다.
서점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으나 별로 큰 가게가 아니어서 키가 큰 기타하라는 금방 눈에 띄었다. 밝은 형광등 아래서 기타하라는 책을 손에 든 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요코는 기타하라의 옆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어째서 기타하라 씨를 믿지 못했던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사람으로 어째서 믿을 수 없었을까?’
요코는 자신이 미워졌다. 그녀는 우선 너무도 다정해 보이는 사진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그에 더하여,
“이 아가씨가 기타하라 씨의 애인인가봐.”
라고 한 나쓰에의 말에 미혹되었다.
또한 도오루는,
“기타하라는 여자들에게 인기 만점이야.”
하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넌 기타하라와 결혼할 수 없어.”
하고 못을 박았다. 그래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의심한 자신이 경솔했다고 생각하며 요코는 기타하라의 모습을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바라보면서 후회하고 있었다.
기타하라가 책을 두 권쯤 사 들고 입구로 나오는 것을 보고 요코는 또다시 숨어 버렸다.
“여동생인 줄은 미처 몰랐어요.”
하고 한 마디로 끝낼 일은 못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타하라의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불살라 버렸던 날의 격렬한 분노를 떠올렸다.
‘이젠느 기타하라 씨의 품으로 돌아갈 자격이 없어.’
요코는 그것이 사랑에서 비롯된 격정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의심한 자기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만일 반대로 내가 기타하라 씨한테 그런 의심을 받았다면 난 절대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코는 자신을 매우 선량하고 이성적이며 의지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요코는 불과 5,6미터 앞에 걸어가는 기타하라의 뒷모습을 보면서 따라갔다.
‘기타하라 씨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는데도 난 문병조차 가지 않았다. 건강한 편인 기타하라 씨에게는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없을 입원 생활이었을지도 모르는데......역시 나는 기타하라 씨와 교제할 자격이 없어.’
기타하라는 3조 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졌다. 주변은 약간 컴컴했다. 요코는 계속 기타하라의 뒤를 쫓아갔다. 기타하라는 3조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식당은 길에서 바로 지하를 향해 계단이 나 있었다. 요코는 지하의 입구에 서서 계단을 내려다 보았다.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거리에 요코는 멍하니 서 있었다. 기타하라가 나올 때까지 요코는 그곳에 내내 서 있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다키가와에서 일부러 아사히가와까지 왔을까?’
코트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 생각도 하지 않고 요코는 상점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골목길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오빠가 돌아왔을 때 나는 어째서 그 사진의 여자와 기타하라 씨는 어떤 사이냐고 물어 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은 아직 어린 소녀인 요코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요코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빠는 무엇 때문에 그런 사진을 아무 설명도 없이 보냈던 걸까?’
어쩐지 도오루가 그 사진을 보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오빠는 그런 비굴한 사람이 아니야. 오빠는 남자답고 친절하고 무척 좋은 사람이야.’
기타하라와 도오루를 공평하게 비교해 보고 나서 요코는 도오루는 절대로 기타하라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빠보다 기타하라 씨가 좋은 건 어쩔 수 없어. 오빠는 오빠로서 좋은 것 뿐이야.’
요코는 함박눈을 맞으면서 그 자리에 줄곧 서 있었다. 요란한 징글벨 소리나 화려한 네온사인조차 지금은 요코의 생각을 방해할 수 없었다. 기타를 멘 두 사나이가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갓다.
기타하라 씨-.
제게는 편지를 보낼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기타하라 씨가 혹시 이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난로 속에 던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한 마디 사과의 말을 드리지 않을 수 없어요.
기타하라 씨,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전 줄곧 오해하고 있었어요. 도오루 오빠가 보내 준 사진 속에서 당신의 사진을 보았어요. 포플러 가로수 밑을 어떤 여자분과 정답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사진이었어요. 함께 사진을 보던 어머니는,
“이 아가씨가 기타하라 씨의 애인인가봐.”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때의 제 심정을 상상할 수 있나요? 저는 제 몸뚱이가 두 동강이 나는 듯한 심정이었어요. 마침 그때 기타하라 씨에게 쓰고 있던 편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당신의 편지도 저는 슬픔에 못 이겨 모두 불태워 버렸어요.
“이 여자는 누구예요?”
하고 한 마디 물어 보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들 그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텐데.
그 후 전 당신이 보내 준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불태워 버렸어요. 오해였다고는 하지만 저는 당신의 인격을 의심한 것을 돌이킬 수 없는 심정으로 후회하고 있어요. 오늘밤에 전 당신의 여동생을 만났어요. 그리고 서점에서 온 당신의 뒤를 밟았어요. 당신이 서점에서 나와 식당에 들어가 있는 동안 저는 눈을 맞으며 줄곧 밖에 서 있었어요.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 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심정이었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벌을 받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저 당신을 말없이 기다리고 싶었어요.
당신은 식당을 나와 역을 향해 걸어가더군요. 저는 입원한 당신에게 위문편지 한 장 보내지 않은 냉정한 자신을 생각하면서 당신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어요.
역에서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당신은 여동생이 산 물건 꾸러미를 받아들고 개찰구에서 잠시 거리 쪽을 돌아보았어요. 그때 전 가슴이 뜨끔했어요. 저를 알아본 것은 아닌가 생각했던 거예요. 전 플랫폼에도 들어가지 않고 대합실에서 배웅했어요.
기타하라 씨, 뭐라고 쓰면 사과의 편지가 될지 알 수 없군요. 무슨 말을 써도 저의 지금의 심정을 전할 수 잇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기타라하 씨, 지금은 다만 만나고 싶을 뿐이에요..
-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