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에 가볼 만한 성지
9월 순교자 성월은 신자들이 성지를 가장 많이 순례하는 달이다. 전국 교구에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와 성인ㆍ복자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신앙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은 성지 100여 곳이 있다. 성지 안내 봉사자들과 전국 모든 성지를 순례한 ‘완주자’들에게 ‘순교자성월에 가볼 만한 성지’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응답자들은 ‘순교자 성월’인 만큼 순교성지를 꼭 순례해보라고 권했다. 또 자주 찾는 ‘유명 성지’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성지, 특히 순교자들의 무덤을 순례하기를 추천했다. 응답자들이 추천한 순교지와 마산교구 복자 묘를 소개한다.
임영선 기자 3Dhellomrlim@pbc.co.kr">hellomrlim@pbc.co.kr
순교지 | ▲ 순교자성월을 맞아 전국 곳곳 순교성지를 순례해보는 건 어떨까? 사진은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인 서소문 순교성지. 평화신문 자료사진 |
서울대교구 새남터성지는 4대 박해(신유ㆍ기해ㆍ병오ㆍ병인) 때 순교한 성직자 14명 중 11명이 순교한 곳이다. 성 김대건 신부와 복자 주문모 신부, 「기해 일기」를 쓴 성 현석문 가롤로 등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또 103위 성인 중 44위, 124위 복자 중 27위가 순교한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인 서소문순교성지와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한 절두산순교성지, 복자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복녀 이성례 마리아와 손소벽 막달레나 등 9명의 성인이 순교한 ‘어머니의 성지’ 당고개순교성지 등이 있다.
수원교구에는 기해박해부터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 300여 명이 순교한 남한산성순교성지, 수많은 무명순교자가 순교한 수원성지, 병인박해 순교지인 죽산순교성지 등이 있다.
병인박해 당시 성 다블뤼 주교ㆍ오메트로 신부ㆍ위앵 신부ㆍ황석두 루카ㆍ장주기 요셉 등 순교자 500여 명이 신앙을 증거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 충청 내포 지역 신자 1000여 명이 순교한 해미순교성지,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순교지 황새바위순교성지도 순례해 볼 만한 곳이다.
대구대교구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이 순교한 관덕정순교성지, 천주교인들이 살고 순교하고 묻힌 한티순교성지가 있다. 이 밖에도 부산교구 병영순교성지, 수영장대순교성지, 전주교구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 풍남문 등 전국 곳곳에 순교지가 있다. 부산 오륜대순교자성지도 찾아볼 만하다.
마산교구 5위 복자 묘
| ▲ 지난 5월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마련한 ‘복자 124위 시복 감사, 최양업 신부 시복ㆍ시성 기원’ 성지 순례에서 참가자들이 박대식 복자 묘를 순례하고 기도를 바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에서 성지안내 봉사를 하는 김영숙(리디아)씨는 “순교자 묘를 순례할 때 가장 큰 감동을 한다”면서 마산교구에 있는 복자들 묘를 추천했다. 마산교구에는 구한선(타대오, 1844∼1866)과 정찬문(안토니오, 1822∼1867), 윤봉문(요셉, 1852∼1888) , 신석복(마르코, 1828∼1866), 박대식(빅토리노, 1812∼1868) 등 순교복자 5위의 묘가 있다.
묘를 순례하기 전에는 반드시 순교자의 삶을 공부하고 묵상해야 한다. 순교자가 신앙을 받아들이고 순교하기까지 과정을 알고 순례하면 아무것도 모른 채 순례할 때보다 몇 배로 감동할 수 있다.
정찬문 복자는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 체포됐다. 주변에서 “배교하면 끌려가지 않게 해주겠다”고 회유했지만 흔들리지 않았고, 진주로 끌려가 25일 동안 옥에 갇혀 진영장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복자는 1867년 1월 옥에서 순교했다.
진주에서 처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구한선 복자는 체포돼 가혹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고통을 견뎠다.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지 7일 만에 눈을 감았다. 22세 되던 해였다. 윤봉문 복자는 거제에서 비밀리에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혔다. 포졸들이 복자의 발뒤꿈치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칡넝쿨을 꿰어 끌고 갔다고 한다. 모진 형벌을 받다가 1888년 순교했다.
소금 장수였던 신석복 복자는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굳게 지켰다. 그는 문초하던 대구 관장에게 “저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하겠다”고 말했다. 38세 때 교수형을 당했다.
1868년 붙잡힌 박대식 복자는 문초와 형벌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했고, 대구로 압송된 후에도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다가 참수형을 당했다. 정찬문(경남 진주)ㆍ구한선(함안)ㆍ윤봉문(거제)ㆍ박대식(김해)ㆍ신석복(김해) 묘 순서로 순례하면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