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와 시편
묵주기도는 성령의 인도 아래 많은 성인들의 사랑을 받고 교도권이 권장해 온 기도입니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이 기도는 수세기에 걸쳐서 형성된 신심 행위입니다. 전통적인 묵주기도는 세 개의 신비 주제를 중심으로 묵상해왔습니다. 첫 번째 신비 주제는 예수님의 강생과 유년기의 신비를 묵상하는 ‘환희의 신비’이며, 두 번째 신비 주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에 대한 ‘고통의 신비’, 세 번째 신비 주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영광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생 전체를 핵심적으로 정리한 ‘복음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의 순환은 공생활의 묵상인 ‘빛의 신비’(Mysteria Lucis)로 보완되기 전까지 전통적인 묵상 주제들입니다.
전통적인 세 개의 신비 주제들은 각각 다섯 개의 신비 선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신비 선포에 있어서 가장 많은 반복을 하는 주요 기도는 ‘성모송’(Ave Maria)입니다. 매 단마다 10번의 성모송을 바치게 되며, 10번의 성모송은 15개의 신비 선포를 통해 150번의 반복이 이루어집니다. 150번 반복되는 성모송은 구약성경의 시편(시편의 총수 150편)과 연관지어볼 수 있습니다.
- “묵주기도의 신비들과 그 기본 형태가 복음에서 비롯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
바오로 6세 교황님은 1974년 2월2일에 발표하신 ‘마리아 공경’이라는 교황 권고에 묵주기도와 시편의 관계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성모송을 되풀이하여 바치는 것은 로사리오 기도의 고유한 특징으로서 150번이라는 횟수는 ‘시편’과 어떤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신심 행위의 기원에까지 소급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횟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각 개별 신비에 10회씩 할당되어, 세 주기(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 안에 배열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50회씩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로사리오 기도의 일반 형태가 되어 대중적인 신심 형태로 채택되고 교황의 권위로 인준되기에 이른 것입니다.”(교황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 49항)
이러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02년 10월16일에 발표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라는 교서입니다.
“그리스도 생애의 수많은 신비들 가운데 일부만이 교회 권위의 승인을 받아 폭넓은 신심 관행으로 바치는 묵주기도에 나타나있습니다. 그러한 선택은 지금까지 바쳐온 묵주기도의 형식이며, 이는 시편의 총수에 상응하는 150이라는 숫자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19항)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도 묵주기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세 서방 교회의 신심은, 대중이 성무일도 대신에 드리는 기도로서 ‘묵주기도’를 발전시켰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78항)
성무일도라는 시간 전례의 주요 구성 요소는 시편입니다. 유대인들은 시편을 이용하여 기도를 하였고 예수님 역시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 사실에 덧붙여 그리스도가 부르는 노래 또는 신랑인 그리스도에게 신부인 교회가 바치는 노래로 이해되면서 시편은 시간 전례 안에서 언제나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시편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쓰인 작품이라는 믿음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루를 성화시키는 시간 기도로 성무일도를 바쳤던 것입니다. 시편과의 연관성은 묵주기도가 처음 시작된 이유를 찾는 중요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 시편
- 시토회의 세 창립자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교회를 봉헌.
묵주기도의 기원은 3세기까지 올라갑니다. 당시 아일랜드의 수도자들도 구약성경의 시편을 성무일과로 매일 바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편 150편 전체를 노래하거나 오십 편씩 세 개로 묶어(Tre cinquantine) 기도를 바칩니다. 이러한 시편 기도는 고해성사로 받은 보속을 수행하거나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로써 바치기도 합니다. 점차 인근의 신자들도 시간 전례를 같이 바치기 시작하지만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는 이들에게 긴 시편을 바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150편을 ‘주님의 기도’(Pater Noster)로 대신 바치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으로 알려주신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은 그 무한한 가치로 인해 그리스도교 기도의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주님의 기도’ 한 번이 ‘시편’ 한 편을 대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 150번 혹은 50번 씩 세 개로 묶어 한 묶음을 반복하는 것을 “주님의 기도 시편” 또는 “비천한 이들의 성무일과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교회 언어인 라틴어 습득이 어려운 일부 수도자들에게도 시편을 암송하는 것을 면제해주면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도록 합니다.
베다(672-735) 성인은 곡식 낟알을 머리에 쓰는 관처럼 끈으로 엮어, 반복되는 기도를 세도록 제안합니다. 신자들은 150번의 주님의 기도를 세기 위해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작은 자갈을 넣고 옮겨 셉니다. 그러다가 150개 또는 50개의 매듭을 엮은 끈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묵주와 비슷한 형태로 50개의 나무 조각이 끼워진 끈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기도 형식을 시토회(1098년 창립)의 회원들이 회개를 위한 보속이나 시편 기도를 바칠 수 없는 이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반복하는 기도 형태로 바치도록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시편을 바칠 수 없는 이들은 주님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Qui non potest psallere, debet patere.) 시편의 수만큼 주님의 기도를 암송함으로써 그 의무를 대체했던 것입니다.
시편의 첫 시작은 “행복하여라!”(시편 1,1) 하고 노래하고 있으며, 시편의 마지막은 “숨 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시편 150,6)로 끝맺습니다. 기도로 숨 쉬는 모든 이들, 특별히 레지오 단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살아있는 신앙, 숨 쉬는 신앙을 느끼는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숨을 쉬는 우리들은 시편 전체를 이 묵주기도 안에 담아둡니다.
+ 묵주기도의 형식은 시편의 총수에 상응하는 150이라는 숫자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묵주기도의 기원은 시편을 대신하여 주님의 기도를 반복하는 ‘주님의 기도 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2월호,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여산성지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