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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김경래 씨의 집 ‘청노루’…치악산 구름 벗삼아 청노루 되어 살리라
[온라인 중앙일보] 2014.12.06 00:05
[월간중앙] 행복이 피어나는 집(마지막 회) | 어릴 적 시골의 삶 못 잊어 산골에 들어온 귀촌 전도사… 관리 쉬운 작은 집이 시골생활 적응하기에 좋아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그 산야에 깃든 찬란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한번 보여 주마.”
강원도 횡성에서 원주 신림면 치악산 상원사로 내닫는 주천강변길을 굽이굽이 달리다 보면 마치 조물주의 이런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좁은 산길에 도열한 새빨간 복자기나무들이 불을 댕겨놓은 듯 붉게 물들고 있었다. 치악산자락에 울긋불긋, 때로는 황금빛으로 그려놓은 조물주의 치열한 예술혼을 접하면서 ‘생명이 조락하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인지 이곳 지명도 ‘신이 사는 숲’이라는 의미에서 신림(神林)면이 됐다고 한다.
‘요만큼에서 살다 죽어도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왜 이제야 할까? 지금 난 너무 행복하다.’ 그 산자락 어디쯤에 깃들어 살고 있는 김경래(52·OK시골 대표) 씨가 자신의 스케치북에 써놓은 짧은 시구다. 아내 안인숙(51) 씨가 그 글 옆에 말려서 만든 보랏빛 야생화를 장식해 방안 벽에 걸어놓은 것을 보면 김씨 부부가 자연 속에서 느끼는 소회가 어떠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은 낯선 이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산골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대자연의 향연’을 보았느냐고, 느꼈느냐고 들뜬 어조로 말을 건넸다. 국립공원 치악산 자락이 빙 두른 그의 거처 옆에는 천연기념물(제93호)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성황림과 습지공원이 맞붙어있어 탄성을 자아낸다. 습지주변에 나부끼는 하얀 갈대숲과 돼지감자의 노란꽃, 구절초, 붉은 복자기가 ‘겨울-2014’를 앞두고 곧 사라질 현란함을 그렇게 숨가쁘게 뽐내고 있었다.
“원래 촌놈으로 태어나 천성적으로 자연에 심취해있는 것 같아요. 자연 속에 있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감이 물밀듯이 몰려오니까요.” 그는 강원도 정선 부근 임계면 화전민부락에서 태어나 중학교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역시 그 지역의 대학에서 농화학을 공부한 그는 부모님의 기대와 성화에 밀려 서울로 갔다. “대학까지 나온 녀석이 산골에서 살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서울로 가라”는 간절한 요청 때문에 떠밀리다시피 고향을 떠나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근교에서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지만 도시인의 삶이 갈수록 힘겹게 여겨졌다. 온통 어수선한 도시와 감정이 메마른 듯한 직장생활은 그에게 자연에 대한 허기를 불러일으켰다. 쉬는 날 간간이 숲이나 들로 나가면 온몸이 되살아나듯 생기가 돌고 행복감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런 그를 아내는 ‘시골병자’ 라고 불렀다. 그 기분들이 시가 되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가 자연에 도취해서 쓴 시들은 물과 바람처럼 자연스럽다. 간결하고 진솔해 그 울림이 크게 느껴진다.
전원생활 잡지 만들다 시골 정착
도시에서 살면서도 김씨는 자연과 만날 시간을 늘릴 궁리에 빠졌다. 그런 그가 결국 생각해낸 것이 도시인에게 자연 속의 삶을 전하고 실천하게 하는 일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30대 중반 나이에 <전원 속의 내 집> <전원주택 라이프> 등의 잡지를 창간한 것이다. 전국의 산야를 누비며 취재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사화하니 그 일이 체질에 딱 맞았다. 생업이 아니라 즐거움 그 자체였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아내가 그 일을 거들어주니 삶의 동반자가 따로 없었다.
때마침 도시인들의 귀농·귀촌 행렬이 이어지면서 그의 일도 빛을 보았다. 그가 출간한 잡지는 요즘 서점가에 쏟아지는 전원생활 관련 잡지들의 원조격인 셈이다. 독자들의 문의가 쏟아졌고 김씨는 내친 김에 자신의 경험과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전원생활 교육에 뛰어들기로 작심했다. 당시 농림부의 지원을 받아 최초로 귀농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 것이다. 그는 귀농·귀촌 강의를 들어본 이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사람이 됐다. 요즘은 도시민을 위한 귀농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 강의를 앞다퉈 개설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그를 단골강사로 초빙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게 됐다.
그도 드디어 시골에 살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이곳 치악산 자락에 둥지를 튼 것은 6년 전인 40대 중반부터다. 우리나라 산사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천년 고찰 상원사로 들어가는 길목.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곳에 터를 잡았다. 취재를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니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점 찍어놓은 곳이었다. 텃밭 150여 평과 낡은 집 60평을 1억5천만원에 사들였다.
어릴 때부터 주변 어른들이 집을 짓는 것을 눈여겨보았던 터라 낡은 집을 개조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무엇이든 그가 뚝딱 손을 대면 그럴싸하게 바뀌었다. 지금 그의 거처인 ‘청노루’도 그랬다. 빼어난 풍광에 반해 그가 사들인 집은 처음에는 허름하고 볼품 없었지만 그의 손을 타고 나서는 분위기 있는 집으로 변모한 것이다.
우선 집 전면에는 붉은 벽돌을 붙였다. 그 위에 다시 나무를 덧대고, 출입문 등을 파스텔 계열 연녹색과 초록색 페인트로 마감하자 금세 분위기 있는 시골집으로 탈바꿈했다. 집 주변에는 사시사철 온갖 야생화가 만개했다. 늦가을에는 마른 꽃들과 풀잎들이 아무렇게나 어우러져 집 담장 곳곳을 장식해준다. 앞뜰에는 구절초, 벌개미취 등 들국화들이 처연한 모습으로 사위어가고 있으니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빈티지룩’ 콘셉트를 한 집이 돼버렸다.
시인이기도 한 김씨가 이름 붙인 ‘청노루’는 박목월의 시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뜰 한쪽으로 온갖 나무와 채소를 심어놓고 나무탁자와 의자를 놓아두니 자연히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는 집처럼 돼버렸다. 한낮에도 노루, 고라니,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밤에는 반딧불이 반짝거리는 청정지역으로, 더없는 평화로움이 집 주변에 가득 일렁인다.
여행자들을 위해 찻집도 열어
이렇게 되니 한적한 마을을 찾아온 외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김씨 집 주변을 기웃대는 일이 많아졌다. 집 뒤뜰에서 내려다보면 천연기념물로 보호할 정도로 멋진 숲이 자리하고 있고 습지에는 갈대가 은빛물결을 이루고 있어 사진 찍기에 제격이니 자연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집주인인 김씨 부부에게 대화를 청하고 함께 차를 마시는 일도 늘어났다. 주변 사람들이 제안했다. 이 참에, 집 한쪽에 찻집 하나 내시라.
그래서 올 5월 집 한켠을 비워 찻집 겸 카페를 만들었다. 아내가 오랫동안 소망으로만 간직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누구든 이 집 뜰에 들어와 주변을 감상하다 마음이 내키면 이층으로 올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치악산을 둘러보며 찬 한잔을 할 수 있다. 메뉴도 가격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경치에 취해 시간을 보내다 혹 음식을 시키면 아내 안씨는 정중하게 거절한다. 미리 예약을 할 경우라만 밥상을 차려 주겠다는 말도 한다.
“애당초 밥장사를 하려고 한 게 아니니까요. 이 좋은 곳에서까지 돈 버는 일에 쫓기고 싶지 않더라고요. 놀러 오는 분들이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듯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마음을 다해 손님을 대접해 줄 뿐이에요. 미리 얘기해주면 뒤뜰에서 가꾼 것들을 넣은 산채나물밥이나 더덕구이, 된장찌개, 감자전 등은 정성스레 맛을 낼 수 있으니까요.” 아내 안씨가 예정된 손님을 위해 차려낸 밥상은 정갈하고 깨끗한 맛이 마음까지도 편하게 해준다.
감 등 천연소재로 갈색 물감을 들여 만든 옷과 두건을 쓴 안씨의 매무새도 늦가을 자연의 빛깔과 닮았다. 이미 차려진 ‘시골밥상’을 본 손님 몇이 “감자전을 맛보고 싶다. 해주면 안 되느냐”고 부탁하자 그녀가 마침 만들던 것이 남아 있다며 흔쾌히 응해주었다.
남편 김씨가 일하러 집을 비운 사이 아내는 종일 집을 지킨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없으면 뒤뜰에서 채소를 가꾸고 쨍쨍한 햇살이 더 시들기 전에 호박, 가지 등을 말린다. 각종 열매를 따서 차의 재료로 손질한다. 겨우살이 준비다. ‘청노루’의 오디오에서는 고단한 삶을 노래로 위무했던 가수 홍민·최헌·최백호등의 애잔한 목소리가 낮게 깔려 밖으로 흘러나온다.
집 마당 한쪽에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보기 좋게 쌓아놓았다. 한구석 부뚜막에 얹어놓은 가마솥에 지필 장작들이다. 하얀 연기와 구수한 장작 냄새가 파란 하늘로 퍼져나갔다. 흘러가버린 것, 오래된 것의 향수(鄕愁)를 불러일으키는 고향마을의 향수(香水)내음인 것이다.
시와 그림으로 가족의 소망 담아
김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도 읽고 시도 쓰고 강연준비도 한다. 그의 강의를 듣는 이들은 오로지 자연속의 얘기만으로도 즐거워했고 행복해 한다. 그의 얘기와 강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늘어나자 그것만으로도 이제 너끈히 살림을 꾸릴 수 있게 됐다.
바깥채 격인 청노루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2층 방에는 그의 그림과 시들로 채워져 있다. 시는 김씨가 시상이 솟구칠 때마다 직접 벽에다 적어놓은 것이고 그림은 미술을 공부하는 딸(20)과 책갈피에 야생화를 말려놓곤 하는 아내 안씨의 합작품이다. 벽한 면을 차지한 자작나무 숲 그림엔 온 식구가 자작나무 숲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고 한다.
“치악재를 넘어 이곳에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설렘이라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죠. 과연 무슨일을 하면 지속적으로 설렐 수 있나요? 아무리 좋은일이 생겨도 금방 예전처럼 무감각해지죠. 그런데 자연 속의 삶은 달라요. 수시로 설레는 마음을 안겨주고 충만한 기쁨이 온몸을 휘감게 해요.” 호미를 들고 있을 때가 가장 좋다는 아내 안씨는 앞으로 펼쳐질 몇 십 년의 삶, ‘오래된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들뜬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앓았던 갱년기 증상도 산속의 찻집을 연 후로는 잘 가라앉았다고 했다.
살림집인 안채 일부는 황토방으로 하고 한지를 발랐다. 벽은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편백나무로 둘렀다. 나머지 빈 방도 곧 손을 보아 나그네들이 청하면 하루 묵게 해줄 작정이란다. 이 집의 지붕에 오르면 장엄한 치악산의 능선이 짓눌렸던 가슴을 뻥 뚫리게 해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활이 되니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다들 정신없이 살아 가고 있지만 결국 유유자적하는 자연 속의 삶을 그리워하지 않나요? 저는 그 목표를 일찍 이뤄가는 셈이지요. 욕심만 줄이면 행복은 내 것이 됩니다. 우린 삶 속에 깃든 행복과 불행 두 개의 답 중 하나를 선택해 그걸 밀고 나가면 되는 거죠. ”
남편 김씨는 이제 각 신문사에 글도 기고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그동안 <시골에서 찾은 인생 이모작>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살까> <살아생전 꼭한번 살고 싶은 전원주택> 등 여섯 권의 책을 낸 작가로 본격적인 삶을 살아간다. 전원생활 정보제공및 컨설팅업체인 ㈜OK 시골(www.oksigol.com)도 운영 중이다.
또 있다. 전원주택 사업도 시작했다. 예비 귀농자들의 요구에 응해 이리저리 엮어주다 보니 전문가가다 됐다. 이제 건축, 홍보, 마케팅까지도 하고 있다.그의 작업장은 그의 집에서 차로 30여 분 떨어진 횡성군 안흥면에 자리하고 있다. 작업장으로 달리는 시골길은 감탄사가 멈추지 않을 정도로 사계절 내내 장관을 이룬다.
“자연은 말없는 스승이에요. 온갖 번뇌가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은 일인가를 깨우쳐주거든요.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집짓기 작업장에는 그가 진두지휘하는 몇 채의 소박한 집이 이미 모습을 드러냈고, 또 다른 집들도 점차 모양을 잡아가고 있다. 요즘은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지내는 ‘5도(都) 2촌(村)’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 잠만 잘 수 있게 컨테이너를 보다 예쁘게 개조한 캠핑형 ‘아치 하우스’ 제조에 신경을 쓰고 있다. ‘시골살이 전도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가 조언했다. “도시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시골로 내려오는 사람이 많아요. 남들이 보면 멋진 집을 짓고 산다는 소릴 들어야 한다는 욕심에 집을 크게 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지요. 이런경우 결국 집에 치이고 욕심에 흔들려 시골 생활에 실패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에 뛰어든 만큼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덧 자연에 심취해 몸은 고단해도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시골살이 즐기려면 준비 꼼꼼히 해야
그는 최근 과시형의 멋진 전원주택보다 부담이 덜하고 실속 있는 에너지 절약형 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작고 관리가 쉬운 집을 마련하는 것이 고령화 시대에 맞는 장기적 차원의 선택이며 시골 삶을 오래 즐길 수 있는 요령이라는 것. 그가 살고있는 성황림 주변 마을 70가구 중 절반이 ‘인생 이모작’을 위해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는 주택지로 면이나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 중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을 권했다. 자연경관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너무 외딴 곳은 생활에도 불편하고 이웃과도 단절돼 곧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또 무조건 집과 땅부터 구입하고 농사를 서두르기보다 작은 집과 땅을 임대해 적응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결정하라고 덧붙인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토지와 주택구입, 농업창업 자금 저리 융자와 각종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면 은퇴 후의 삶이 버겁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은퇴 후에도 30~40년을 살아내야 하는 이때, 위기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지요. 용기를 내 새로운 삶을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소탈하게 살면 생활비를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어요. 그리고 자연은 먹고 살 수 있고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안겨줍니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소유의 경쟁 속에 내몰리는 건 오히려 생을 허비하는 것 아닌가요?”
그가 쓴 시 한 수가 그의 시골생활을 이렇게 찬미 한다.
‘네가 내 곁에서 피고 지는 것을 몰랐구나/ 꽃을 피우고도 상처가 없는 듯 살았구나/ 살아있는 것들은 누구나 외롭지/ 바람은 늘 떠나기만 하고/ 발끝에서는 떠돌던 곳들의 흙냄새만 씻겨 바래/ 한줌도 안 되는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손톱만큼 살다 보니 문득 알았네/ 산다는 것은 홀로 피었다 지는 것/ 아프지 않은 듯 피고 외롭지 않은 듯 지는 꽃/ 내 가슴 시리던 어느 날/ 솜다리 네가 내 곁에서 외롭지 않은 듯 혼자 피었다 아프지 않은 듯 지는구나’ (김경래, 봄, 꽃, ‘피고 지고’)
김씨 부부의 삶은 욕심 없이 “보다 철저하게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한때 혼자 피었다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주변의 꽃이든 사람이든, 자신의 삶이든 이제 좀 천천히 느리게 느끼고 지켜보려 한다.
글=고혜련 월간중앙 기획위원·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사진=지미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