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형태에 따른 성의 종류 : 성은 기능에 따라 혹은, 축성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성의 가장 큰 기능은 외적을 효과적으로 방비하는데 있지만, 안정된 울타리로서의 기능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니, 성 제도를 고찰해 봄으로써 화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산성 - 태뫼식, 포곡식, 복합형
산성은 외적의 방비 상 가장 효과적인 성이라고 볼 수 있다.
생활 근거지에서 멀지 않으며, 대개는 평화시에 축성하여 전시에 효과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산성은 공격용이라기 보다는 수비용이어서 적군을 유인해야만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지금도 우리가 잘 쓰고 있는 단어 중 농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적군이 침입했을 때 산성의 문을 굳게 닫고 물러가기를 기다렸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들판의 곡식을 적군이 수확하지 못하게 불을 지르거나 해서 지쳐서 돌아가게 했는데 이런 작전을 청야입보 작전이라고 한다.
대신 산성에는 장기간 버틸 수 있는 군수물자가 확보되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 군창을 두었다. 산성의 종류에는 테뫼식과 포곡식, 그리고 두 가지를 합한 복합형 산성이 있다.
테뫼식은 머리띠의 형태로 산 정상부 아래를 두른 산성으로 초기의 산성이라고 볼 수 있다. 적군이 쉽게 접근할 수 없으며, 접근했다 하더라도 산의 아래에서 위쪽의 성 안 군사들과 싸워야 하므로 방비에 유리하다.
그러나 산 정상부에는 물이 귀할 수 밖에 없어 농성을 하는데 제약이 따랐다. 이 물 부족의 단점을 보완한 산성이 포곡식 산성이다. 말 그대로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으니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그리고 복합형 산성은 기존의 테뫼식 산성을 수축하면서 골짜기로도 성을 두른 형태여서, 마치 두 개의 성이 포개진 것처럼 기능적이다.
*도성
도성은 수도를 에워 싼 성이다. 도성은 최고 통치권자를 포함 정부 기구와 신료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나라 안에서 가장 중요한 성이어서 도성이 함락되면 나라 전체가 적군의 손에 넘어가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구획을 정리해주는 역할도 겸하고 있으므로 상징성이 있는 성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튼튼하고도 아름답게 쌓으려 노력했지만 외침을 받을 때는 공격을 많이 받으므로 계속 수축하여야 했다.
*읍성
읍성의 제도는 어찌 보면 탁상공론적인 행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도 자체만 놓고 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효용 가치가 크지 않았다.
전시를 대비해서 곡식 등의 군수물자를 산성에 옮기지 않아도 되고, 군사와 주민들의 힘을 합쳐 적군의 침입에 발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는가 하면, 성안에 관아가 있어서 관리 및 지휘 체계가 확립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지방의 읍성에 거주하는 인원이 적어 성 전체를 지킬 수 없었으므로 임진왜란을 맞아서 대부분의 읍성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2. 축성재료에 따른 성의 종류
*목책성
나무로 울타리를 하듯이 세운 성이다. 성 제도의 발달 중 초기에 해당하는 성으로서 축성하기는 쉽지만, 적의 화공을 받으면 또한 쉽게 훼손되는 단점이 있다. 대개의 경우 토성을 쌓고 그 위에 목책을 두르는 경우가 많다.
*토성
흙으로 쌓은 성을 토성이라고 한다.
목책성과 같이 초기의 형태이긴 하나, 축성하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성 밖의 흙을 파올려 축성을 하게 되면 자연히 해자도 건설되어 효과적인 방비를 할 수 있다. 대개의 토성들은 나중에 석성으로 개축되는데 그만큼 견고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석성
돌로 성을 쌓으니 좋은 점이 많았다. 적의 화공에도 안전하였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잘 허물어지지 않았으며, 적들의 공격을 지연시키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축성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력이 들어야 하므로 장기적이고도 협동적인 단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는 질 좋은 화강석을 활용하여 성을 쌓았는데,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 성이 있는가 하면, 장방형으로 다듬어서 사용한 성들도 있다. 수직에 가깝게 쌓을 수 있어서 적군이 쉽게 침입하지 못한다.
석성에는 반드시 적심석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들 적심석은 성벽에 직교하는 긴 돌이다. 이 적심석을 잘 활용해서 축성하면 오래도록 원형을 유지할 수 있다. 적들은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보는 순간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짐작되어 기가 꺾였을 것이다.
*전축성
벽돌의 활용은 축성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기존의 석성이 견고하다고 믿어왔지만, 석성은 아래 부분의 돌이 빠지게 되면 우르르 무너지는 단점이 있었다.
더구나 산성처럼 산에 의지해서 쌓은 성은 더욱 약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벽돌은 접착제가 중간에 들어가고 규격이 일정하므로 견고할 뿐더러 빠르게 축성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벽돌을 구워내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벽돌 가마 제도조차 확립되지 않았던 것이 18세기 중반이어서 뜻만 있었을 뿐 실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744년 강화성을 수축할 때 벽돌을 구워 사용해 보니 아름다울 뿐 아니라 견고해 보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강화의 벽돌성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접착제의 개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복합형 축성(석전교축)
벽돌과 화강석이 축성의 재료로 등장했다.
화성이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두 재료를 적당히 사용해서 성을 견고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데 이바지했다. 적의 화공을 받는 곳에는 벽돌을 쌓아 쉽게 무너져내리지 못하게 하고, 성벽과 같은 대형 건조물은 화강석으로 쌓아 효율을 극도로 높였다.
벽돌을 완벽하게 구워내는 데에는 북학파 실학자들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중국에 사신으로 드나들면서 벽돌의 제도를 도입한다. 이 시기가 18세기 후반이므로 무르익은 조선의 문화 능력이 이를 잘 반영해서 좋은 벽돌을 구워냈다.
그러나 완벽한 벽돌을 구워내지는 못했는지, 아니면 생산 과정에서 약간씩 잘못되는 불량품 때문인지 벽돌을 갈아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모든 성은 공성군의 공성(攻城) 무기나 공성 방법의 발달에 따라 축성 방법이라든지 성을 지키는 전술적 구성 등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은 장기간에 걸친 적의 포위 공격에 대한 수비력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많은 병마와 백성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면적 및 양곡의 비축이 가능하고,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는 견고한 성벽이나 험한 지세 등이 갖추어져야 한다. 또 충분한 식수 공급을 위한 우물의 확보와, 적의 전면적 공성에도 대피할 수 있어야 하며, 다시 말해 공성이 불가능한 곳이 한 두곳 쯤 마련되어야 하므로 대부분 강이나 산을 끼고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과 산은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이웃 아군과의 연락이나 지원군의 투입, 적 후방의 교란, 적정의 염탐 등을 용이하게 한다. 그리고 높은 산 위에 장대(將臺)를 설치함으로써 적의 동정 파악과 동시에 수성의 지휘도 가능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최후로 성이 함락될 때 생존자들은 산을 통한 퇴각이나 강을 통한 퇴각이 유리하다는 이점도 아울러 지니게 된다. 예를 들어 성벽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을 흐르는 강물을 이용하여, 적이 성벽을 공격하지 못하게 가설한 넓은 수로와 같은 해자에 물을 담아 적의 전면 접근 공격을 막고 오직 성문 앞에만 다리를 놓아 두어 그 쪽으로 몰리는 적들에게 끓인 물을 퍼부어 공격하는 등 자연을 이용한 여러가지의 수성 방법이 있다.
이상의 여러가지 성의 입지 조건은 모두가 평지 성인 읍성이나 조선시대의 도성인 한양성(漢陽城)이나 화성(華城) 등에 적용된다. 산성의 경우를 보면 오랜 옛날 분화구가 변하여 이루어진, 안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 부지와 그 주변을 에워싼 능선이 외부로는 급한 경사면을 이룬 험한 산세와 소수의 제한된 출구 및 통로 등이 협소해야 적의 공격이 어려운 것이다. 관(關)의 경우는 대규모인 문루만으로 양편에 날개처럼 뻗은 긴 성이 생략된 구조이다.
위치로는 험준한 산의 분수령 부근이나 험한 산의 능선이 자연적 성이 된 지형에 축조했다. 지극히 제한된 개구부 때문에 공격군은 전면에 나선 소수에 불과하게 된다. 수군의 성인 진성의 경우는 오늘날의 방파제처럼 호구같이 만들고 그 위에 성을 쌓아 배가 드나드는 입구를 좁게 만들어 정박 중인 군선에 적군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 적의 기습에 대비하였고, 성안에 여러 건물을 지어 장졸을 수요하고 지휘하게 했다.
성의 종류는 시대적으로나 재료 및 축성 방법으로 분류하거나 성의 기능 및 편제상이 분류 등이 있다. 재료상의 분류를 하면 목성(木城)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목책(木柵)을 들 수 있다. 목책은 통나무를 길이로 쪼개거나 통나무를 엮어 세워 벽을 만든 것으로 일종의 성이나 관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재료를 구하기 쉽고 제작도 간편하여 적이 예기치 못한 곳으로 쳐들어올 때 긴급히 만들 수도 있어 편리하지만 화공(火攻)에 약한 것이 약점이다. 때로는 성 밖으로 나아가 적과 대적할 때 가로로 벌려놓고 인마의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토성(土城)은 목책의 취약점을 보완했다고 볼 수 있다. 높은 축대 위에 적의 화공이 가능한 거리를 벗어난 곳에 세우며 지형에 따라 네모형 또는 원형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돌로 쌓은 석성(石城)은 거의 접근 공격이 어려운 곳에는 자연석으로 쌓고 높이도 낮지만 적의 침공이 용이한 통로가 되는 문루 등의 재료는 장대석을 사용했다. 문 옆의 성벽은 거친 다듬은 장대석이나 큰 자연석을 쓰기도 한다. 이 자연석도 장대석과 맞추어 깎아 쌓아 틈새로 지렛대를 끼워 파성(破城)하기 어렵게 쌓았다. 그리고 흙으로 전을 구워 쌓은 경우는 주로 돌로 쌓은 위의 여장(女檣)이나 성벽 위에 지은 망루 등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성의 축성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경제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제적 문제 해결 방안 중 하나는 각 성의 중요성에 따라 축성 재료가 선택되며, 같은 성에서도 성벽의 부위나 지리적 강약에 따라 성벽의 두께나 높이가 신축성을 가지게 되며, 또한 성의 방비에 있어서도 중요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성들을 예로 들면 도성인 한양성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그리고 남쪽의 화성 등은 도성을 수비하는 위성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경우에 따라 도성을 비우고 딴 성으로 옮겨가며, 적의 전력의 소모를 노려 불시에 적을 포위 공격하려는 전략적 구상을 느낄 수가 있다.
성의 모양에 따라 붙인 성의 명칭은 반월성 또는 만월성 등이 있다. 이런 모양들은 자연적 조건의 제약 때문에 이와 같은 특수한 평면적 구성의 원인이 된 듯하다. 기능과 편제상의 구분은 모성(母城)과 자성(子城), 본성(本城)과 지성(支城), 대성(大城)과 소성(小城) 등 모두가 편제상의 상하 관계 또는 입술과 이빨의 관계 등이다. 이들은 적에 대하여 서로 협공하거나 한 성이 무너지면 딴 성으로 이동, 합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편성은 경제적으로 장성을 쌓는 것보다 유리하며, 전략상으로도 다른 환경과 조건으로 적을 유인하여 적에게 많은 소모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따라서 대거 침공한 적은 전투를 치를수록 병력이 줄어든다. 그러나 격파된 성의 군병은 다시 다음의 성에 집결하여 항상 일정 수의 전력을 유지하고 적이 통과한 성의 군병은 퇴로를 차단하거나 협공으로 서로 도울 수도 있다.
첫댓글 금정산성이 바로 앞산에 있는곳에 살고 있습니당.(소싯적 소풍 단골코스 -_-) 현대에 대대적으로 개수한거라 딱히 좋다고는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괜찮다고 보는....;;
고구려의 경우에는 판축이라는 기법으로 성을 지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역스에서 그러더군요. 이 기법으로 지으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지만 토성임에도 그 견고함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