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산책]
다윗은 소통과 인내의 달인이었다
고대 근동의 역사 연구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들 중 하나가 혈혈단신으로 몸을 일으켜 서기전 1000년경부터 968년까지 통치한 다비드(다윗)라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다비드가 획득한 영토의 범위가 북으로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미치고, 남으로는 이집트 입구까지 이르렀다는 기존의 가설이 지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여 있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 개념의 국가가 없이 부족이나 씨족을 중심한 인구 천명 내외의 도시국가(city state)들로 점점이 찍혀 있던 캐나안(현재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왕이라고 하는 칭호에 걸맞게 이 지역을 통일하고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가 이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그의 성격 내지는 통치기술이요, 또 하나는 당시의 국제정세가 그에게 유리했다. 다비드의 통치기술 1: 백성의 마음을 모으다 서기전 10세기에 다비드가 등극할 때에는 이스라엘의 두 부족들만 그를 왕으로 인정했으니 어줍은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속한 부족의 본거지인 헤브론에서 칠년 동안 잘 참고 지내며 반대하는 나머지 열 부족들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모았다. 다비드는 자기를 죽이려고 애쓰다 전사한 전임 왕을 비난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영예롭게 보존해 주며 유족을 도왔다. 그는 또한 부족들 간의 싸움이나 오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잘못될 소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해명을 하였다. 허튼 소리나 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칠년 동안 다비드를 지켜보던 나머지 부족들은 결국 새로운 대관식을 치러 그를 왕으로 받들었다. 정권 교체기에 분열하며 피투성이가 되게 싸우던 열두 부족들의 마음이 치유되는데 칠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였고, 다비드는 인내하며 존경받을 만한 언동과 행실로 마침내 그것을 이루고 온 나라의 왕으로 집권하게 되었다. 다비드의 통치기술 2: 수도를 전진배치하다 그는 중앙집권제를 이루고, 주변의 작은 국가들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결과적으로는 북방경영을 하기 위해서 수도를 북쪽으로 전진배치 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부족들 사이에 살던 여부스라고 하는 부족의 주거지인 예루살렘을 함락시켜 자신의 행정수도로 삼았다. 지리적으로 보면, 수도를 남쪽으로 후진배치하면 이집트라는 대국과 맞닥뜨리게 되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북쪽인 예루살렘에 전진배치하면 서쪽으로는 불레셋, 동으로는 모압, 암몬, 에돔 등 작은 나라들을 제어하는데 효과적이며, 북쪽으로 멀리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대국들인 아씨리아와 바빌론 쪽으로는 시간을 벌면서 대처하는데 유리하였다. 또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부족들의 기득권이 없는 곳이었으므로 그가 자유롭게 왕권을 행사하며 비전을 펴 나아가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부족들이 그를 인정할 즈음에 천도하여 국운을 상승시키고 중앙행정부를 튼튼하게 하여 전국적으로 신망을 얻었다.
서부 아시아인 고대 근동(近東)의 일반적인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지도. 강대국은 언제나 이스라엘이 건국했던 지역인 캐나안을 정복하고 유린하였다.
서기전 10세기에는 강대국들의 중앙에 끼인 이스라엘이 다비드라는 왕의 통치 하에 근동의 패권을 일시 쥐었다. 그때는 주변의 강대국들이 침체기에 있었기에 영특한 군주 다비드는 부족들을 통일하고 국가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세기가 지나면서 강대국들이 다시 일어날 때에 이스라엘은 지도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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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국제정세 1: 고양이가 없는 골에 쥐가 왕이다 다비드가 통일국가를 이루기 전에 캐나안은 일반적인 국가는 없었고 조그만 도시국가들이 산재하여 서로 다투던 지역이었다. 반면에 그 주변에는 남으로는 강력한 대국인 이집트가 있었고, 북서에는 메소포타미아까지 패권을 휘두른 히타이트 왕국(현재 터키)이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미타니 왕국, 북동쪽으로는 아씨리아와 바빌론(모두 현재의 이라크)이 있었다. 캐나안은 이 대국들이 싸우는 사이에서 끊임없이 유린 당하는 처지였다. 동물학자들은 사자가 호랑이 보다 세다고 한다. 이집트는 사자, 아씨리아와 바빌론은 호랑이 같은 짐승이었다면 캐나안의 도시국가들은 쥐였다고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다비드가 캐나안의 부족들과 도시국가들을 통폐합하여 통일국가를 수립하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국들이 서기전 12세기를 전후하여 암흑기에 빠져서 미미한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준동을 해도 어쩌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퇴장하니 쥐가 왕 노릇을 한 것이었다. 당시의 국제정세 2: 무너지는 대국을 살릴 자 없고 일어나는 대국을 막을 자 없다 다비드가 서기전 11세기에 몸을 일으켜 10세기에는 발군의 통치력을 발휘하였다. 그런데 12세기에서 11세기 어간에 근동에서는 이 대국들이 밖으로 팽창정책을 펴지 못하고 내부에 머물거나 국력이 축소되어 힘을 못 쓰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미 12세기 이전에 히타이트 왕국이 미타니 왕국을 제압하고 캐나안과 이집트 쪽으로 밀고 내려오다가 국력이 쇠하여 안으로 오그라들고 말았다. 아씨리아와 바빌론도 내부 문제에 골몰하여 영토들이 축소되며 밖으로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이집트도 같은 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국내 반란이나 주변국들 사이의 전쟁, 제후들 사이의 불화로 인한 국력 쇠퇴, 이 칼럼에서 논한 바 있는 해양민족들의 대대적인 이주, 기온의 변화로 인한 농산물 감소, 과다세금에 대한 반발로 이탈한 백성들이 광야로 사라져서 유목민이 된 결과 도시에 나타난 노동력 감소 현상, 나라들 사이의 잦은 분쟁으로 무역로들의 기능마비, 기타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국제정세는 다비드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고양이들이 없는 판에서 큰 쥐가 휩쓸고 다닌 격이 된 것이다. 다비드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 났다고 하더라도, 국제정세가 그에게 유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성취는 불가능하였다. 이 해석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의 아들 솔로몬의 치세가 끝날 즈음인 서기전 10세기 말에 대국들이 잠에서 깨어 준동하기 시작하자 다비드가 세운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가 결국에는 아씨리아와 바빌론에 의해서 둘 다 멸망 당하고 만 것은 이미 지난 칼럼에서 말한 바와 같다.
전통적으로 한반도를 유린해 온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인 한국의 주변지도. 지난 60년 동안 미국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고, 북한이 핵무장을 하여 맹수가 됐다. 한국은 잘 먹고 커졌지만 여전히 고양이이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미국과 힘의 균형에서 처져 있는 동안, 한국은 60년간의 번영과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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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전 10세기 고대근동의 판도와 서기 21세기 아시아의 국제정세 한국이 누려온 지난 60년 동안의 독립과 번영은 다비드가 주변정세의 암흑기에 영토를 확장하고 독립을 유지하였던 것과 비슷하다. 한반도의 주변 국가들이 2차 대전 후에 일시적으로 침체기를 맞았고 한국은 그들 위에 군림했던 맹주인 미국과 한편이 되었다. 미국이라는 사자에게도 욕심은 있었지만, 한반도와 인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토적인 야욕은 없었으므로 한국의 번영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내부적으로 국론은 분열되어 있고 수도는 반쪽이 후진배치 되어 세종시에 몰려 있으며, 전통적으로 한반도를 유린해 온, 일본, 중국, 러시아는 상승하는 기운에 있고, 삵쾡이에 불과하던 북한이 핵무기를 소유하면서 맹수의 반열에 올라 살진 고양이 같은 한국을 병합하려고 한다. 한국인들은 몽골을 대단하지 않게 여기지만 이것도 역사적으로 스라소니이며 한반도에 치명적인 대국이었다. 중국이라는 사자는 미국을 추월하려고 하며, 일본이라는 스라소니가 앞발을 내밀어 한국의 창문 독도로 기어 들어오려고 하는데 호랑이 같은 러시아는 결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으며 몽골은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다. 잘 먹고 커진 고양이가 자신이 호랑이인 줄 알고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시기가 가장 위태로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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