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4 주년 임진왜란 우척현 승전기념제]
석청 김재교 올해도 거창 문화원 주최 [제434주년 임진왜란 우척현 승전기념제]가 열렸다. 지역 국회의원, 거창군수, 도의장, 군의장, 문화원장과 각계 지역 의장들과 동네 주민들 각 종중대표들이 약 200여 명과 축하 화환과 무대를 마련하여 거창 문화원 주최 거창군청 후원으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지난 14여년간 서울 남재님과 함께 김면장군 업적을 찾아 낙동강 7백리 전적지를 찾아 나섰다. 임진란 이후 사라진 지명, 의령(宜寧) 마진(馬津). 함안(咸安) 죽현(竹峴)과 거창(居昌) 신창(新倉)도 포함되었다.
몇 달 이전부터 위 3곳은 여러 곳에 알아 보았어나 찾지 못했던 곳이다. 결과는 의령 마진은 임란 당시 합천 마진이었으며, 함안 죽현은 수소문 중 함안인으로부터 낙동강변에 대나무골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아~ 대나무 죽(竹) 고개 현(峴) 죽현이었다.
마진은 지금 창녕보가 조성된 곳이고. 죽현은 대나무골이고. 신창(新倉)은 거창 웅양면인데 웅양면사무소 직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고령 무계리 전투지는 의병선봉장(義兵先鋒將) 의재(義齋) 김홍한(金弘漢) 장군이 전사한 곳이며 왜적이 약탈한 많은 궁중 보화를 일본으로 운반하든 중 무계에서 노획한 한 화함(花艦)에는 보화와 기이한 물건이 심히 많았는데, 모두 방백에게 보내어 행재소(行在所)에 올리니
왕이 가상하여 합천군수를 제수하고 교서에 포상하여 이르기를 양병정진즉둔적치백(揚兵鼎津則遁賊褫魄)하고 정진을 들이치니 달아나는 적이 혼을 잃었고, 접인무계즉유시혼강(接刃茂溪則流屍混江)이라무계에서 칼을 휘두러니 적의 시체가 강을 덮었다.라는 기록도 있다. 의병대장 김면장군이 40전 전승으로 그 중 10전은 대승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14여년 전 가을 등산차 단풍이 우거진 합천 해인사를 찾았다. 차를 세운 주차장 옆에 소암대사와 의병도대장 김면장군 업적과 무계리 전승기록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우리 선조께서 팔만대장경을 지키신 명장이시다. 후손으로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안내판 내용을 사진에 담아 서울 남재님께 보내고 시집에 싣고 어우리 사랑방에 게재도 했다.
거창 우척현에 김면장군 공원을 조성한 후, 고령 무계리 전투지에 2차로 김면장군 전적비를 세우려고 남재님, 전 이태근 군수님과 함께 무계리에 동네 주민들 회의를 열어 동의를 얻어 몇 명 안되는 ‘김면장군후원회’에서 전적비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한참 준비 중인데, 이태근 전 고령군수께서 “부산 융도 고문이 무계는 정인홍 전적지이지 김면 전투지가 아니라고 하는데, 후손이 자기 할아버지 전전지가 아니라는데, 어떻게 세우겠나?”해서 전적비 건립은 무산되었다.
남재님과 저는 고령군수 재임시 전력을 기울어 도암서원을 증축하셨기에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 이태근 군수 송덕비를 세워 드리기로 하고 남재님과 칠현회장, 그리고 내가 자금을 마련하여 송덕비를 준비하였다. 우리가 마련한 자금으로 고령김씨 종원 일동 명의로 도암서원 입구 종중 땅에...
당시 대종회장 용택이는 “이태근 군수 송덕비를 세우려면 산꼭대기 밖에 없다”며 매몰차게 반대하였다.
고령김씨 대종회는 웃기는 단체다. 몇 명 안되는 후원회원 돈으로 건립하려는 400여년전 의병도대장 송암(松菴) 김면장군 전적비 세우는 것은 방해하고, 선조님의 전적비 건립을 방해한 융도의 못난 행적은 대종회 경비로 경덕재 마당에 세우 두었다. 일가도 아닌 이태근 군수의 고마움을 송덕비로 아마 영원히 세우지 못하고 고령 석재공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라를 잊은 민족은 살아갈 희망이 없고. 조상을 잊으면 뿌리가 없고. 어려서 공부를 안 하면. 남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하고. 현 사회에서 자기가 노력 않고 얻는 것만 알면 후일을 기약 못한다.
지금, 세계정세를 보라, 뿌리를 잊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의 긍지를, 손바닥 만 한 작은 나라가 아랍권 전체의 공포의 대상이며 싸우면서 살고 있다. 우리 선조님, 의병도대장 김면장군님은 만석을 풀어 의병을 세워 나라를 구하시고 역사를 바로 세우신 9 분 종친장군님이 함께 계시다. 지금까지 한반도에 역사상 한분 밖에 없는 의병장군 김면이시다.
고령 무계전투(高靈 茂溪戰鬪) 석청 김재교 (破巢之聲完有卵) 파소지성완유란. 내 할아버인데 아니라고 하면 그 집안 후손들은 근본을 잊어 버리는 것이니 어찌할꼬? (聽遠之心何苦地) 청원지심하고지. 멀리서 듣는 후손들은 어찌 땅을 치며 손톱으로 바위를 파는 심정이 아니겠는가.
거창 우척현 (居昌 牛脊縣) 석청 김재교 (還節起次流江同)환절기차 유강동. 지난 수 세월 우척현 선조님 합배에 수많은 사연들도 세월과 사연들은 (心過苦雪細流舞)심과고설세유무. 다음으로 이어지고 무거웠던 가슴 뼈아픈 충격도 실개천 흐르듯 잊어진다. 남재 마음 나는 알고 있다. 함께 흘러 갔으니 (葉落䙨木春新芽)엽낙과목춘신아. 잎사귀 다 쓴나무 다음 세대에는 큰 잎과 꽃이 피겠네 (發雪岸茢不絶身)발설안열불절신. 정직한 큰 뜻은 휘몰아치는 눈발에도 끊어지지 않는 만경강 갈대와 같으니 .
당을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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