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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산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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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산신령 산행사진 (2017년 4월~) 3월22일 옥녀봉-오송산(고양누리길 1~2코스)
산신령(전성민) 추천 0 조회 36 25.03.23 09:0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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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3.26 09:17 새글

    첫댓글 ●고양누리길 1~2코스(옥녀봉-오송산), 잘 봤습니다.
    ►관성사(關聖祠)에 관한 표지판 설명을 보면서, 왜 관우신앙이 조선에 퍼졌을까?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나라 지원군이 조선에 와 있었는데, 명나라 장군 ‘양호’가 선조에게 이 땅에 명나라 군이 와서 싸움에 이긴 것은 관우가 직접 오셔서 싸우신 덕이니, 관우 신앙을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조선 왕은 마땅히 관왕께 감사의 예를 표하라.'고 강요했다.
    즉 장군 양호가 선조에게 '관우의 생일(음력 5월 13일)에 관왕묘에 왕께서 직접 오셔서 술 따르고 사배례(四拜禮)를 하시라.' 라고 요구했는데, 타국의 왕에게 사배를 강요하는 것은 마땅히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허나 거부하자니 명군의 심기를 거슬러 명군이 철군해버릴까 두려워 선조는 결국 울분을 참고 관왕묘에서 삼작에 사배를 올려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수많은 명군 장수들이 너도나도 선조에게 요구하여 조선 여기저기에 관왕묘가 들어섰다.

  • 25.03.26 09:22 새글

    ▶그 후 숙종은 본격 관우 빠돌이(광신도)로 신하들에게 관우신앙을 강요했다. 관왕묘에 지내는 제사를 정례화하여 국가차원으로 관우를 섬겼고, 자신의 뜻대로 모든 지방의 관왕묘에 정기적으로 향축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당시 좌의정 서종태는 숙종에게 '과도한 관우 신앙을 자제하라.'고 했으나 숙종은 듣지 않았다.
    ▶영조, 정조, 순조, 고종 때도 관우 신앙은 이어져 그 흔적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 작성자 25.03.26 09:58 새글

    아하 그렇구나
    삼국지연의를 10년전에도 다시 읽으면서
    대한남아로 태어나서 반듯이 읽어야할 중국 역사책으로
    (유비-장비-관우)가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
    같은날 태어나지 못했지만 같은날 죽기로 결의한 것은
    후세인들이 배워야할 교훈으로 생각합니다~

  • 25.03.26 09:17 새글

    ◆중국 ‘삼국지연의’, 도원결의 삼형제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인물은 단연 둘째인 관우, 관운장이다. 그는 지(智),덕(德), 용(勇)을 고루 갖춘 장수일 뿐만 아니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충신의 전형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누구에게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수중의 장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의 명망은 송나라 때 이후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중국의 곳곳에 사당이 세워졌고, 종로구 숭인동에 보물 142호로 지정된 동묘가 바로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는 묘로서 본래 이름은 ‘동관왕묘’라고 했다.
    ►전쟁을 도운 명분으로 자신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관운장을 우리들에게도 모시도록 강요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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