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누리길 1~14코스)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 네이버 지도에 표시한 3월22일 산행등로 >
< (고양누리길-1코스) 네이버 지도 >
< (고양누리길-2코스) 네이버 지도 >
< 트랭글로 본 3월22일 산행기록 >
산행코스 = 솔고개-1코스-2코스(옥녀봉-오송산)-삼송역
산행시간 = 5시간 (7:20~12:40) (휴식시간 20분별도)
산행거리 = 15k
오늘 1코스는
6년전에 마친
(북한산둘레길 10~12구간)과 겹치며
95%가 산길이다
지난번과 달리 반대로 타니 기분이 새롭다~
경기도 양주시
(솔고개) 도착 (7:20)
산행 시작~
솔고개
많이온 버스정거장이다~
(고양누리길-1코스 북한산누리길 안내도)
햇빛에 바래서 보이는게 없다~
(북한산둘레길-12구간=충의길)로
올라갑니다~
(비탐방구간 출입금지)
여길 넘어가면
(상장능선 상장봉)으로 갈수있다
4년전 생각이 난다~ㅎㅎ
우측 산길로 갑니다~
이구간은
(북한산둘레길-12구간=충의길)
이구간에
사방다리가 여러개 있다~
(엔젤 보스톤 농원)
좌측으로 나왔음~
땀이 나서
이곳 쉼터에서 점퍼를 벗었다~
계단길로 올라갑니다~
쉼터~
오늘코스에
up-down이 많다~
출렁다리-1
출렁다리-2
군데군데에
비탐방구간 (샛길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
위반시 50만원이하의 과태료 부과~
전망대-1
날씨가 흐려서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
1,
이사진으로 대신합니다~
2,
출렁다리-3
(사기막교)를 건너갑니다~
(북한산둘레길-11구간=효자길)
충의길 끝나고 효자길 시작점~
(북한산 사기막야영장) 정문
정문 옆으로 갑니다~
아치형 사방다리~
(국사당) 도착~
디자인이 특이한
쉼터~
철조망 옆으로 갑니다~
계단길~
갈림길 이정목
이구간은
(북한산둘레길-11구간=효자길)
산길을 내려가면
좌측
도로 따라서 갑니다~
(관성사)
읽어보니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장비-관우)
3 의형제 중에서
(관우)를 모시는 절이다~
(관세비스타)
불교식 웨딩홀인것 같다~
(북한산둘레길-10구간=내시묘역길)
효자길 끝나고 내시묘역길 시작점~
갈림길 이정목
저는 네이버지도 따라서
공사중 구간을 통과해서 왔는데
우측은 새로난 길이다~
(전주이씨 서흥군-위성군 묘역)
조선11대 중종의
제2왕자 해안군의 자손 묘역이다~
다리에서 바라본
(북한천)
전망대-2
1,
여기도
이사진으로 대신합니다~
2,
오늘 토요일
9시 지나서부터
북한산에 등산객이 많이 올라온다~
(북한산성 탐방 지원센터) 입구~
쉼터~
다시
도로 따라서 갑니다~
장릉천 도착~
사곡마을
장릉천(덕수천) 이야기
여기가
(고양둘레길-1코스) 끝지점
(고양둘레길-2코스) 시작점~
이이정목이
마지막 (고양누리길-14코스)
끝지점이다~
(옥녀봉 이야기)
다시
산길로 올라갑니다~
1,
2,
여기가 (중고개)
(중고개 이야기)
옥녀봉으로 올라갑니다~
1,
2,
옥녀봉 다왔다~
3,
6년만에 다시찾은
옥녀봉(205m) 정상도착
인증샷~
바로 옆은 군부대
확성기로
접근금지 방송이 계속 나온다~ㅎㅎ
내려갑니다~
(고양 한북누리길 안내도)
(한북누리길과 군사시설)
여기 오니까
벙커가 몇개 보인다~
체육시설과 쉼터~
저위가 오송산~
오송산 정상에 있는
이정목
오송산(130m) 정상도착
스틱으로 인증샷~
쉼터와 체육시설~
다시 올라가니~
또 쉼터~
(옛길)
마지막 쉼터
여기서 20분간 휴식~
로푸구간
내려갑니다~
오송산 출구부~
지나온
(사랑의 전원마을)
경기도 고양시
(삼송역) 도착 (12:40)
산행 종료~
첫댓글 ●고양누리길 1~2코스(옥녀봉-오송산), 잘 봤습니다.
►관성사(關聖祠)에 관한 표지판 설명을 보면서, 왜 관우신앙이 조선에 퍼졌을까?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나라 지원군이 조선에 와 있었는데, 명나라 장군 ‘양호’가 선조에게 이 땅에 명나라 군이 와서 싸움에 이긴 것은 관우가 직접 오셔서 싸우신 덕이니, 관우 신앙을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조선 왕은 마땅히 관왕께 감사의 예를 표하라.'고 강요했다.
즉 장군 양호가 선조에게 '관우의 생일(음력 5월 13일)에 관왕묘에 왕께서 직접 오셔서 술 따르고 사배례(四拜禮)를 하시라.' 라고 요구했는데, 타국의 왕에게 사배를 강요하는 것은 마땅히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허나 거부하자니 명군의 심기를 거슬러 명군이 철군해버릴까 두려워 선조는 결국 울분을 참고 관왕묘에서 삼작에 사배를 올려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수많은 명군 장수들이 너도나도 선조에게 요구하여 조선 여기저기에 관왕묘가 들어섰다.
▶그 후 숙종은 본격 관우 빠돌이(광신도)로 신하들에게 관우신앙을 강요했다. 관왕묘에 지내는 제사를 정례화하여 국가차원으로 관우를 섬겼고, 자신의 뜻대로 모든 지방의 관왕묘에 정기적으로 향축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당시 좌의정 서종태는 숙종에게 '과도한 관우 신앙을 자제하라.'고 했으나 숙종은 듣지 않았다.
▶영조, 정조, 순조, 고종 때도 관우 신앙은 이어져 그 흔적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아하 그렇구나
삼국지연의를 10년전에도 다시 읽으면서
대한남아로 태어나서 반듯이 읽어야할 중국 역사책으로
(유비-장비-관우)가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
같은날 태어나지 못했지만 같은날 죽기로 결의한 것은
후세인들이 배워야할 교훈으로 생각합니다~
◆중국 ‘삼국지연의’, 도원결의 삼형제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인물은 단연 둘째인 관우, 관운장이다. 그는 지(智),덕(德), 용(勇)을 고루 갖춘 장수일 뿐만 아니라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충신의 전형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누구에게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수중의 장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의 명망은 송나라 때 이후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중국의 곳곳에 사당이 세워졌고, 종로구 숭인동에 보물 142호로 지정된 동묘가 바로 관우에게 제사를 지내는 묘로서 본래 이름은 ‘동관왕묘’라고 했다.
►전쟁을 도운 명분으로 자신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관운장을 우리들에게도 모시도록 강요받은 셈이다.